| "냇 터서(Nat Turner)의 반란". 흑인 노예가 처한 상황의 부당성을 견디지 못하고 넷 터너는 자신의 인자한 주인을 비롯, 70여명의 백인을 잔인하게 죽인다. 소수의 흑인이 참여한 냇 터너의 반란은 미국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발생한 최초의 흑인 노예 반란으로 일컬어 진다. 하지만 최초의 반란 대부분이 그렇듯, 터너의 반란 역시 참여자의 저조 등으로 실패하게 되고 터너는 사형을 당한다. 사실 터너의 반란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뿐만아니라 어린 아이까지 잔인하게 죽이는 등, 그 내용(방법)에 있어서도 큰 실패를 맛보았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백인을 몰살하였고, 당시 노예제의 부당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의 흑인만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용과 결과 모두에서 실패를 거두었지만 터너의 반란은 흑인의 억압적인 상황을 미국사회에 어느정도 알렸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즉, 실패했지만 최초의 시도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임상수 감독의 새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냇터너의 반란의 이런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영화계의 '터너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의 내용이나 결과가 실패했지만 최초로 한국의 박정희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한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반란의 내용이 실패한 이유는 반란이 너무 잔인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내용이 실패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영화가 '재미 없다'는 점이다. '그때 그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어려움을 안고 시작한 영화다. 그렇기때문에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감독은 알려진 사실들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에 자신의 상상력을 채웠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내용들은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각하'의 여색이나 일본어 사용, 그의 사상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대부분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감독은 의미없이 화면에 옮겨 놓고 있다. 감독이 시도 했던 블랙 코미디는 기존의 알려진 사실을 생각한다면 쉽게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고, 자연히 코미디의 힘은 떨어지게 된다. 그가 박정희 정권에 대해 내뱉은 풍자 역시 매우 약하다. 이미 정치권에 대한 강한 풍자와 독설을 늘어 놓는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임상수의 풍자는 단순한 빈정거림에 머물게 된다. 화씨 911을 본 사람에게 궁정동 연회 장면은 풍자적 요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물론 이 정도에 발끈한 보수인사들이나 법원의 판결은 우리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풍자나 블랙코미디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관객은 실망할 수 밖에 없다. 그날 우연히 죽어간 중정 요원과 경호원에 관한 이야기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많은 인물들이 역사적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희생되었다는 감독의 생각은 영화 속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하룻동안 있었던 긴박감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옯겨 놓는데 충실한 탓인지 박정희가 죽고난 후에 영화의 긴박감은 갑자기 느슨해진다. 작가 인정옥의 말대로 그의 영화는 풍자도 추모도 아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 외에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그가 영화를 만든 의도가 영화 속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역사는 우연히 이뤄진다는 감독의 의도 또한 영화 속에서 찾기 쉽지 않다.) 최근 공개된 흥행 실적을 봐도 영화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조차 우려했던 것과 달리 그때 그사람들의 공격이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법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상황은 더 암담했을 것이다. 영화의 결과 역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이처럼 영화의 완성도 면이나 흥행 면에서 실패를 거두고 말았다. 그로 이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박정희 신화에 대한 도전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임상수의 새 영화가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감독의 시도가 이전 감독들이 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임상수가 흥행을 노리고 만들었던,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만들었던 이런 영화를 만드는 시도는 한국 사회의 인습을 깨려는 그의 시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영웅시대'같은 드라마가 나오고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준 박정희의 영웅신화가 한국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는 정면으로 그의 신화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한국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독재를 하고 자유와 인권을 탄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밝은면만을 부각시키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오고있다. 이러한 영화, 드라마들은 사람들에게 박정히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그가 죽인 많은 민주투사들과 소시민들의 존재는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임상수의 새 영화는 한 쪽으로 치우친 박정희 평가를 조금 균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실패한 최초의 흑인 반란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 잘 표현되지는 못했지만 감독은 죽이는 김부장, 죽임을 당하는 각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그 날 하루 어이없이 죽어간 중정요원과 청와대 경호원들을 영화 중심에 좋으려고 하였다. 결과야 어떻게 되었든, 중심과 주변부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그의 시도는, 항상 중심에 놓인 가치를 의심하는 그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결국 역사에 남은 사건은 중심 뿐이지만, 역사의 주변에도 많은 희생자가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강조하려 한 것이다.(물론 그의 의도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임상수의 첫 영화는 이처럼 절반의 성공에 머무르고 말았다. 박정희 신화에 대한 도전,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된 채 죽어간 희생자들의 기억을 통해 그는 그 동안 한국 영화계가 발딛지 못한 곳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의도의 정당성을 과신한 탓인가, 그는 과거 그의 영화에서 보여주던 상상력과 재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의도와 배경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용이다. 그리고 상업영화를 추구한 '그때 그사람들'이 놓친 재미는 그의 의도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 상황이 아니라 다음이다. 단순한 깐죽거림에서 '그때 그사람들'이 머물렀다면 이 영화를 토대로 더 나은 정치풍자영화,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때 그사람들'의 존재 의미가 살아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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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SBS의 대물(주연 고현정)과 더불어 KBS의 프레지던트(주연 최수종)이 대통령직을 맡으면서 <그때 그사람들>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군사문화가 오히려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게 되었던 자기모순의 역사를, 명령과 복종으로 일관되었던 가치관이 강요한 어이없는 희생의 현장을, 역사의 주역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잊었던 조연 혹은 단역들에 대한 조명을 통해 보여줄 것이다. ‘오늘 해치워버리겠다’며 자신을 따르라던 중앙정보부장, 쏘라고 명령하면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았던 상관,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던 부하들, 그때, 그 사람들의 긴박하고 바쁜 하루를 담은 <그때 그사람들>은 그렇게 우리시대의 아이러니와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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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은 쿨한 농담을 던지는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는 남자들의 농담..
김재규로 나오는 백윤식과 박정희로 나오는 송재호가 가끔 일어를 쓴다...
박정희가 일본 군대에서 일했다고 하니 그런 설정을 한 것일까.
주과장으로 나오는 한석규의 표정은 왜 그리 심각하기만 한건지..
송재호씨는 뭐랄까 자상한 아버지상이면서도 뭔가 피로한 얼굴...
의도적인 캐스팅인가? ...
내가 이 영화가 쿨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건..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윤여정의 나레이션과
박정희의 주검 앞에서 허둥지둥대며 묵례를 하는 그의 수하들...
이건 물고 물리는10.26 그 상황 자체를 조롱하려고 한것일까..
아니면 권력과 죽음을 조롱하려고 한 것일까.. 마치 한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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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말 편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이 영화를 보고 내가 임상수 감독을 정말 싫어한다는 걸 깨달았다.내가 임상수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는 (웃음) 못생겼기 때문이다.단순히 못생겼을 뿐 아니라 뭔가 느끼하달까, 너무 유들유들 하달까, 능란하달까 뭔가 그런 느낌을 이 사람은 준다. (비슷한 계열에 하재봉이 있는데 하재봉은 외려 너무 허술해서 전투력을 감소시키는 측면이 있다.)자신의 얼굴과, 말과, 영화 모두에서.나는 그 느끼함, 유들유들함, 능란함을 참을 수가 없다.불편하고 싫다는 느낌(혐오에 가까운)을 꼭 받는다.하지만 개봉 영화는 꼭 보고 지나가고 싶은 요즘의 이상심리와반가운 사람들을 본다는 생각에 지친 몸 질질 끌고 가서 봤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의 영화를 왜 보는 걸까.늘 명필름과 함께 화제성있는 소재를 가지고 능란하게 영화를 찍어 마케팅을 잘해서 무난한 성공을 하는데 이것도 참을 수 없이 싫다.내가 보고 있어서 더 싫다.)이 영화의 정체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데, 굳이 단언하자면'그날 궁정동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여성중앙 2월호 표제같은 느낌과밑에선 본 10.26, (임상수가 인터뷰때마다 말하는 그놈의 '이름 모를 이들을 위한 진혼곡')즉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부적절하고도, 불편하게 얽혀있다.굳이 진혼곡 운운하고 싶었으면화끈하게 후자쪽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김재규까지 조연으로 미뤄버리고 조과장이나 더 밑에 애들을 전면으로 미는 것이다.살아있는 대사에 높은 점수를 주던데 (난 잘 모르겠다)블랙코미디였다면 그런 장점이 훨씬 더 살았을 것이다.이것은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또한 재미가 없다.전체적으로 호흡이 고르지 못하고 늘어지거나 해서 집중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김재규 죽은 후로는 살살 졸면서 봤다고.)김윤아가 오버하는 것도 싫었고 (실제로 심수봉은 보자기 쓰고 노래했대잖아. 살아있는 쥬크박스였다는데.)임상수가 초반에 단역으로 설치는 것도 싫었다. (얘가 하면 노출증이야.)여전히 느끼하고 유들유들하다. 능란함은 외려 줄고. 이러니 싫어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