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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는, 그러나 지금까지 몰랐던 헬렌 켈러 이야기
"잘 알고 있는, 그러나 지금까지 몰랐던 헬렌 켈러 이야기" 내용보기
새벽 세시가 넘어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장마철이니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는 거겠죠. 그러나 장맛비 치고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 기억 속의 장마는 몇 날 몇 일이고 계속되어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는 지리한 비의 연속이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우산 없이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 이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얘기가 샜습니다.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시 마
"잘 알고 있는, 그러나 지금까지 몰랐던 헬렌 켈러 이야기" 내용보기
새벽 세시가 넘어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장마철이니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는 거겠죠. 그러나 장맛비 치고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 기억 속의 장마는 몇 날 몇 일이고 계속되어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는 지리한 비의 연속이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우산 없이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 이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얘기가 샜습니다.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나 봅니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비로 인해 특별한 아픔을 겪지 않은 이상, 누구든 빗소리를 들으면 상념에 빠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벽 첫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꼭두새벽에 첫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과 목적으로 그 차를 타고 있을 것입니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조간 신문을 배달하러 온 것이겠죠. 매일같이 신문을 가져오는 얼굴 없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얘기가 계속 새고 있습니다. 나의 오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이제 막 덮은 책 때문인 것 같네요. 헬렌켈러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늘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러기에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 할 수 없었던,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삼중고(三重苦)의 성녀’라고 추앙받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헬렌 켈러에 대해서는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이 자서전은 헬렌 켈러가 스물 셋의 나이, 그러니까 래드클리프 대학에 재학중일 때 쓴 글입니다.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 같으면 스물 셋에 무슨 자서전이냐고 하겠죠. 참고로 헬렌켈러는 1880년에 태어나 1968년에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여든 여덟까지 장수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한창 나이인 스물 셋에 자서전을 썼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녀는 스물 셋의 나이에 제가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도 느끼지 못할 인생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천년을 살 듯 하루를 산 그녀의 빛나는 삶 앞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역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다간 이에 대해 독서노트를 쓴답시고 어설프게 평評한다는 건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에게 헬렌 켈러는 너무나 친숙하여 그러나 정작 아무 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던 존재였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인간,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 준 설리번 선생에 대한 일화 - 아마도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학교에서 배웠으니 너무나 친숙한 것일테고, 역시 학교에서 배웠으므로 딱 그 정도까지밖에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하는 이 정도의 문장으로 그녀가 겪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제 아무리 셰익스피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삶의 무게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당사자인 그녀만에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가끔 그녀가 안 보이고 안 들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녀의 글 곳곳에 '듣는다' '본다' '읽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손을 통해 느낀 촉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로지 후각과 촉각을 통해 본 세상이 어찌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세상보다 더 실감날까요. 그녀의 글을 읽으면 가끔 소름 돋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암흑 속에서, 글과 말을 익혀가는 과정, 문학과 외국어를 알아가는 과정,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상상해보지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상황은 전전율율戰戰慄慄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감동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헬렌 켈러에게서는 무서울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면, 감동은 정작 설리번 선생으로부터 느꼈습니다. 헬렌 켈러의 자서전은 설리번 선생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읽었다' '들었다'라고 할 때 그 옆에는 늘 설리번 선생이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손바닥 위에 설리번 선생이 쓰는 그 언어로 세상의 반을 알았던 것입니다. 설리번 선생은 헬렌 켈러의 분신이자 그림자였습니다. "날마다 선생님은 나와 함께 수업을 듣고 한없는 인내로 내 손에 선생님들이 말하는 내용을 모두 써주셨다. 공부하는 데 새로운 낱말이 나오면 일일이 사전을 찾아 설명해주셨고 점자로 되어 있지 않은 책이며 노트들은 몇 번이고 거듭 읽고 또 읽어주셨다. 그 일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p.167) '읽고 또 읽어주셨다'는 것도 실제로 소리나게 읽은 것이 아니라 헬렌켈러의 손에 써주었다는 말입니다. 이 자서전만으로는 설리번 선생이 언제까지 헬렌 켈러의 곁에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곱 살에 처음 헬렌 켈러를 만나 이 자서전이 끝나는 스물 세 살 때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설리번 선생이야말로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물 셋의 자서전 마지막 구절은 이러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나 이제 그 제약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도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길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걸을 수 있다."(p.252) 어려운 단어가 없으니 문장을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저 말뜻을 깨닫기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습니다.
n******8 2005.07.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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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를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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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이른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느낄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과 반가운 이들을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그들의 목소리, 으레 눈을 뜨면 보게 되고 귀를 열어두면 듣게 되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이에 감사하는 것을 잊고 산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것일 수도 있음을 헬렌 켈러라는 인물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내 하루를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내용보기
모든 이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이른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느낄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과 반가운 이들을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그들의 목소리, 으레 눈을 뜨면 보게 되고 귀를 열어두면 듣게 되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이에 감사하는 것을 잊고 산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것일 수도 있음을 헬렌 켈러라는 인물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는 생의 대부분을 암흑 속에서 지냈다. 눈을 떠도, 귀를 기울여도, 세상은 그녀에게 아무런 신호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녀의 세상은 어쩌면 그녀가 창조해낸 허구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녀의 삶으로부터 행복을 찾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물론 셜리번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그녀는 자기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닌 미세한 감각이 물의 차가운 특성을 감지했고, 그것이 물임을 알았을 때 그녀는 황홀해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이루어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더욱 열정적으로 살았다. 손가락이 어디 눈, 귀와 같겠느냐만은 오히려 그녀는 손가락으로 우리가 보고 듣는 세상보다 더욱 넓은 세상을 창조해냈던 것이다. 나이 스물 셋, 자서전을 쓰기에는 너무 어리다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둠 속에서 보낸 시간 23년의 시간은 그리 짧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어둠에 그리고 고요함에 길들여진 그녀가 써 내려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녀의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그것과 동일한 듯 해 보였다. 물론 그녀의 빨간색이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색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꿈도 역시 어두컴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처럼, 그녀가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한 세상이 우리가 말하는 그런 세상인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세상과 같지 않다 한들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것이 진실 아닌 창조된 아름다움이라 하여도, 아니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상상력에 마음껏 박수를 쳐주고 싶다. 먼지라곤 티끌만큼도 허락지 않는 세상을 창조해낸 그녀의 마음은 깨끗함, 그 자체일테니 말이다. 단 사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자신이 눈을 뜰 수 없으리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그녀에게 그저 바람일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좌절해도 소용없는,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그녀에게 유쾌함을 가져다준 듯해 보였다. 다시금 어둠이 그녀를 잠식해 올지라도 그녀가 꿈꾸었던 (결코 이루지 못할) 단 사흘간의 시간이 그녀의 남은 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그녀의 낙관론 속에서 나는 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 인간이란 존재는 실로 자기 중심적이어서 나를 벗어난 영역에 대해서는 좀처럼 고민할 줄 모르나니, 헬렌 켈러에겐 허락되지 않은 단 사흘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평생에 걸쳐 지속되고 있음에도 나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오늘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고, 오늘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듣는 이에겐 같은 일이라도 그 의미가 전혀 다를 것임을... 문득 김소운 님의 수필 <인생의 묘미>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제 눈으로 빛을 볼 수 있는, 제 다리로 길을 걸을 수 있는 성한 사람들이 만일에 소경이나 앉은뱅이의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불행은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자유롭게 제 발로 길 가는 행인이 호송차에 실려가는 수인의 마음을 엿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제 자신의 행복에 얼마나 가슴이 뛸 것인가? 온 천지에 넘쳐흐르는 행복! 목마른 자만이 아는 물 한 그릇의 행복!' 세상 모든 것을 손아귀로 움켜쥐려는 욕심을 지닌 자에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미쳐 주워담지 못한 것들만이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소유한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니, 이런 열정은 행복 아닌 욕심만을 불러올 뿐임을 우리는 잘 안다. 단 사흘을 꿈꾸었지만 이룰 수 없었던, 하지만 생을 통해 모든 것을 꿈꾸었고 또 모든 것을 이루었던 헬렌 켈러, 그녀의 암흑은 우리의 밝음보다 아름답지 않을까 한다.
이달의 사락 q*****2 2005.1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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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면….
"사흘만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면…." 내용보기
사흘만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면…. <사흘만 볼 수 있다면>   10살, 활자 큰 <헬렌켈러> 책을 접하면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그 삼중고가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나보다. 장애라는 틀에서만 보고 그녀의 밝음을 사랑하고 동경해왔다. 그토록 밝음과 행복에 이르기까지의 고군분투를, 나는 오직 보이는 눈으로만 보려고 했던 마음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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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면…. <사흘만 볼 수 있다면>

 

10살, 활자 큰 <헬렌켈러> 책을 접하면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그 삼중고가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나보다. 장애라는 틀에서만 보고 그녀의 밝음을 사랑하고 동경해왔다. 그토록 밝음과 행복에 이르기까지의 고군분투를, 나는 오직 보이는 눈으로만 보려고 했던 마음의 장님이었음이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흘만 볼 수 없다면 어떨까. 현실적으로만 보면 아마 나는 사흘 뒤에 눈을 뜨게 될 그 순간만을 생각하고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보이던 현실만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세상은 '볼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흘 내내 꼼짝없이 누워 잠을 청해 꿈속에서 '보이는'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때때로 이기적이다. 누군가 나에게 볼 수 없는 사람, 들을 수 없는 사람, 말할 수 없는 사람의 고통을, 고립됨을 이해하냐고 물어본다면 할 수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힘들고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타고 오는 가슴 아림 정도 밖에 함께 해줄 수 없다. 짐짓 내민 우리의 손과 말 한마디는 따뜻함이 될 수 도 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더한 고통이 될 수 있음을 또 안다.

 

헬렌은 그런 나에게 손끝으로, 마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일깨워주었다. 나뭇잎 하나, 바람의 살랑거림 하나도 그녀의 소중한 친구이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친구인 것을. 혹시나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모든 자연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표정과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내 마음 한 구석의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은 곧 내 자신을 향한 안타까움이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으면서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무엇을 소중히 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보이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길 줄 알고, 더 많은 것을 들으며 서툴지만 힘차게 입을 움직여 생각을 토해낼 줄 알았던 헬렌은 대단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점자가 닳도록 손끝을 마주했던 그녀의 동반자, '책'은 이토록 많은 이의 마음에 빛을 새기는 곧고 밝은 마음씨를 글로 새기게 해주었나보다. 언어와 글, 배움의 즐거움과 깨달음이 이 책의 반을 할애할 만큼 그녀에게는 크나큰 선물이자 행복이었던 것 같다. 평평하지만 검은 활자를 훑는 내 손끝에는 많은 세월을 거친 헬렌의 따뜻한 손끝이 닿아있는 것 마냥 나에게 끊임없이 행복을 즐겁게 읊으며, 때때로의 고독과 슬픔을 스미게 한다.

 

어둠에 잠식되지도, 고요함에 파묻히지도 않았다. 어둠과 고요함은 그녀가 손끝을 더듬어 이 세상 모든 것과 친구가 되도록, 보이지 않아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총명한 아이라는 걸 안 하느님의 뜻 있는 선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단 3일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모른 척한 하늘의 무심함에 내가 나서서 야속함을 토로해본다.

 

 

때로 고독이 찾아들고 차가운 안개처럼 나를 에워싼다. 다만 홀로 앉아 기다린다. 인생이 닫아버린 문 앞에서. 저 너머엔 빛이 있다. 음악과 즐거운 사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채 문 밖에 있다. 누가 내 길을 가로 막는가. 운명, 침묵, 무자비? 아, 이 가혹한 처사에 항변 하련다. 내 심장은 아직도 이렇듯 펄떡거리고 들끓고 있으므로. 그러나 내 혀는 이 고통을 토로하지 못하고 입술까지 이르렀다가도 내 뱉어지지 못한 말은 헛되이, 삼켜버린 눈물처럼 마음속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침묵은 내 영혼을 짓누르고 저만치 희망이 미소지으며 속삭인다. "부디 잊어버림으로써 기쁨을 찾기를." 그래서 나는 다른 이의 눈 속에 든 빛을 나의 해로, 다른 이의 귀에 들린 음악을 나의 교향곡으로, 다른 이의 입술에 떠오른 미소를 나의 행복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P. 237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내게 보이지 않는 사흘이 주어진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말할 수 없는 사흘이 주어진다.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둠과 고요 속에서 헬렌이 찾았던 손끝의 친구들과 마음의 눈을 믿고 뻗었던 손에 닿은 모든 것의 경이로움을 느낀 그 사흘의 소중함을 안고 세상에 뛰어들리라고.

k******3 2008.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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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삶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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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만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에세이와 20세의 대학시절까지의 남다른 인생역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예전의 TV에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발음을 익히는 장면을 보고 과연 저렇게 해서 언어를 익힐 수 있을까 의아해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과정과 어려움이 인간의 놀라운 의지로 극복되는 과정이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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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만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에세이와 20세의 대학시절까지의 남다른 인생역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예전의 TV에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발음을 익히는 장면을 보고 과연 저렇게 해서 언어를 익힐 수 있을까 의아해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과정과 어려움이 인간의 놀라운 의지로 극복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수 개 국어를 익히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정말 가능하구나라는 놀라움과 그녀의 그런 노력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 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 언어를 익혀서 원어 책을 읽는 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의 능력이란 정말... 
j*******g 2007.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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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그녀의 얘기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그녀의 얘기" 내용보기
평생을 앞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사람에게 단 사흘 동안 볼 수 있는 기적이 주어진다면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요.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사흘동안의 일정을 나름대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계획을 세웠을까...아무래도 사흘을 너무 짧더라구요. 오히려 몇가지 해보지도 못하고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것에 절망하게 될 것도 같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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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앞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사람에게 단 사흘 동안 볼 수 있는 기적이 주어진다면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요.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사흘동안의 일정을 나름대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계획을 세웠을까...
아무래도 사흘을 너무 짧더라구요. 오히려 몇가지 해보지도 못하고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것에 절망하게 될 것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었습니다.
핼렌 켈러는 과연 훌륭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사흘을 그녀의 계획 이상으로 보낼 수는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 치밀하게 잘 세운 계획이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의 울림이 원하는 순서대로 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첫째날 가장 먼저 하고싶은 일은 이제까지 주위에서 사랑을 나눴던 사람들을 보면서 그 모습 하나하나를 마음 속에 새기고 싶고, 다음으로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눈으로 보며 느끼고 싶습니다.

둘째날 인간 문화의 유산을 보기위해 박물관에 가고 싶고 마음의 유산을 보기위해 미술관에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연극을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활기차게 생활하는 광경을 거리에서 시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사흘동안의 기적을 감사하며, 마음속에 추억으로 평생동안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도 이런 꿈이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이 글을 썼을 거에요.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니 속상하기만 했을 이 글을 왜 썼을까요. 아마도 소중한 삶을 잊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는 별 의미도 없이 지내버리는 수많은 날들 중에서 사흘을 그녀에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흘동안 저보다 만배는 가치있고 소중하게 사용할 그녀에게... 그러면 그녀는 '그 날들을 받을 수는 없으니 대신 소중하게 보내달라'고 말하겠죠. 그래서 이런 글을 쓴 것이겠죠.

세상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듣지 못하는, 걷지 못하는, 마음이 온전히 자라지 못한, 혹은 외모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많이 가지고 더 축복받은 보통의 우리들은 부족한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가요.
신체적인 결함은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내기 어려운 존재의 한계여서 그 한계를 가진 사람에게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장애를 극복한 사람은 바람직한 사람이 아니라 놀라운 사람이라고 해야 겠죠. 오히려 그로인해 힘겹게 살아가거나 상심하는 게 정상적인 모습일거에요. 

더 많이 축복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위하지 않는 사회라면 인간사회가 아닌 동물사회가 아닐까요.
거리에서 마주치는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모른척하거나 의식적으로 피하고, 주변에 힘들고 불행한 사람을 짐스럽게만 생각하고, 그저 생색이나 면피를 위한 자선활동을 하며, 자신의 관심과 이익 외에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마음이라면 헬렌켈러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그저 의미없이 흘려버릴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그녀의 얘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9 2008.08.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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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서전 소개란에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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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의 자서전과 더불어 꼭 한 번 읽고 싶었던 책이라, 망설임없이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꼭 한 번 읽는 것은 좋지만, 굳이 구입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헬렌 켈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고, 듣고, 말하는 세 가지 능력을 상실하고도 설리반 선생님이라는 헌신적인 조력자를 만나 인간 승리를 이룬 사람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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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의 자서전과 더불어 꼭 한 번 읽고 싶었던 책이라, 망설임없이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꼭 한 번 읽는 것은 좋지만, 굳이 구입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헬렌 켈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고, 듣고, 말하는 세 가지 능력을 상실하고도 설리반 선생님이라는 헌신적인 조력자를 만나 인간 승리를 이룬 사람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23개의 장을 통해 조근조근 쓰여져 있습니다. 생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삶을 누린 그녀의 이야기는, 나태한 나 자신을 충분히 반성하게 합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정말 읽었어야 하는 자서전은 설리반 선생님의 자서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분은 자서전 같은 걸 안 쓰셨던 걸까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a*****y 2007.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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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헬렌 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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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이 책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번에 새로 발간이 된 것이다. Three Days to See..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한동안 말도 못했던 헬렌 캘러가 만약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하고 가정하여 쓴 에세이이다. 사흘동안 그녀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아주 소박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인간 헬렌 캘러.." 내용보기
전에 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이 책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번에 새로 발간이 된 것이다. Three Days to See..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한동안 말도 못했던 헬렌 캘러가 만약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하고 가정하여 쓴 에세이이다. 사흘동안 그녀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아주 소박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해 지는 노을, 해가 뜨면서 어둠이 물러나고 아침이 밝아오는 모습, 시골길, 숲.. 연극과 음악회, 박물관, 미술 전시장.... 하긴 누군가 나에게 사흘 밖에 살 수 없다면 넌 뭐할래..?라고 물으면 아마도 나의 대답 역시 매우 소박할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 계속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기, 가족들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기 친구들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 내 삶에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기.. 미우나 고우나 나의 서방에게 예쁜 가정 이루게 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고 사랑한다 말하기... 어찌보면 너무나 쉬운 일들인데 나는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이 책에는 이 에세이 외에 '나의 삶에 관하여..'라는 그녀의 자서전도 실려 있다. 위인전에서 읽은 위대한 한 여인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러나 작은 것에 감사하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한 인간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바라본 어른들은 너무나 큰 존재들이었으나 지금 그 나이가 된 나는 아직도 인생의 한복판에서 헤매고 있다. 위인들도 마찬가지 아니였을까? 전기에 나오는 그런 완벽한 인물들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워하고 실망하고 사랑하고 좌절하고... 흠.... 그럼 나도 위인이 될 수 있을까? 요리조리 생각해봐도 내가 위인이 되기는 쩜 힘들것 같으니.. 우리 아기를 잘 교육시켜서 박사임당이 함 되볼까나???? 내가 듣기로는 사임당님도 나처럼 덩치 좋구 서방두 마구 패는 여장부였다는디.. 가능성 쩜 많지 않을까? --;;
n*****9 2005.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나 침묵과 어둠속에서 소통과 깨달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나 침묵과 어둠속에서 소통과 깨달음." 내용보기
헬렌켈러 누가나 다 아는 이름이죠.   그러나 그녀의 인생에 대해 이해하기는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과 귀 모든 감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그 고마움을 모르죠.   모두 각자 살기 바쁩니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움과 행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보세요.. 느껴지는건 촉각과 향기. 그리고 나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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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켈러 누가나 다 아는 이름이죠.

 

그러나 그녀의 인생에 대해 이해하기는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과 귀 모든 감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그 고마움을 모르죠.

 

모두 각자 살기 바쁩니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움과 행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보세요.. 느껴지는건 촉각과 향기. 그리고 나와 다른 차원의 느낄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

 

아마 모든 사람이 힘들테지만, 오히려 그걸로 인해 더 어두운 부분을 보지 못했서 였을까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기만 합니다. 인간도 그렇구요.

 

가끔은 헬렌이 되어 그저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인간은 행복하게 태어났지만, 자기스스로 고통을 만들죠...

 

이렇게 즐기게 많은데..

 

제 삶을 되돌아보고 헬렌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v********7 2008.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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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아이가 살았다. 그녀는 아주 어릴적 시각과 청각을 읽었고, 어둠속에 살고 있다가 훌륭하신 선생님을 만나 장애를 극복하게 된다.>   사실..이 스토리가 내가 아는 헬렌켈러의 전부인듯 하다.;; 물론 단편의 에피소드들도 기억이 나긴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그 후에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본 책에는 나와있지도 않고 나또한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단지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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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아이가 살았다.

그녀는 아주 어릴적 시각과 청각을 읽었고, 어둠속에 살고 있다가

훌륭하신 선생님을 만나 장애를 극복하게 된다.>

 

사실..이 스토리가 내가 아는 헬렌켈러의 전부인듯 하다.;;

물론 단편의 에피소드들도 기억이 나긴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그 후에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본 책에는 나와있지도 않고

나또한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단지 장애를 극복했다..는 해피엔딩스러운 위인전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제목부터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이 책은 당시 53세의 헬렌켈러가 쓴 자서전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즐거웠던 혹은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처음 몇장 넘겼을때 나는 그녀가 시각,청각을 잃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눈과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이런 책을 쓰다니..

 

그러나 뒷장으로 넘겨갈 수록 그녀가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새로운 도전을 했는지.. 그녀의 가족과 설리번선생님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고 그녀는 독서에 몰입했다고 한다.  책을 보면 곳곳에 그녀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학문에도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하버드대에 입학을 하기도 하고

불어,독일어,라틴어등등..여러 언어를 습득해나가며  많은 장애우들의 희망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여러권의 책을 저술하고, 많은 사회활동을 하다 1968년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책은.. 아니 헬렌켈러 그녀의 삶은 그 자체가 드라마고 나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더불어 헬렌켈러를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해주신 설리번 선생님께 박수갈채를 드리고 싶다.

그녀가 없었다면 헬렌켈러의 지금은 없었을테니까..

h******a 2007.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너무나 모자란 나자신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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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거울을 한번씩 봤다. 내 눈을 말이다.. 그녀처럼 눈이 멀지도 않았고, 귀도 잘 들리면서 이때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괜시리 제대로 갖춰(?) 살아가는 것이 미안할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자서전을 32세때 썼다고 해서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했지만.. 역시나, 그녀는 1년을 살아도 우리하고 차원이 틀리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그녀의 1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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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거울을 한번씩 봤다. 내 눈을 말이다.. 그녀처럼 눈이 멀지도 않았고, 귀도 잘 들리면서 이때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괜시리 제대로 갖춰(?) 살아가는 것이 미안할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자서전을 32세때 썼다고 해서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했지만.. 역시나, 그녀는 1년을 살아도 우리하고 차원이 틀리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그녀의 1년은 나의 10년과 맘먹지 않았을까? 매순간마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진정한 사랑을 했고, 진실된 우정을 만들어갔다. 그녀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수많이 읽었던 책들, 자연과의 교감은 그녀를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도 되돌아보게 했다. 어떤일에서든지 긍정적인 생각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질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상깊은구절]
사흘만 볼수 있다면... - 책 제목 -
m****1 2006.09.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