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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9. 뭉크전을 다녀와서...
여름방학 때 가려던 것을 어찌어찌 미루다가 노르웨이의 대표화가이며 많은 자화상과 관람도 줄서서 해야했다. 휴일 실감! 우리 나이로 82세까지 살며, 40대 중반엔 자신의 변화를 가감없이 표현했던 뭉크...
※예술은 자연과 대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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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고 어두운 색조, 왜곡된 선, 과감한 나체, 괴기스런 분위기…. 이런게 뭉크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관념은 변한게 없다. 그의 단편 소설 ‘알파와 오메가’, ‘수난의 역사’, ‘자유도시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일련의 괴물들, 조루주 빠띠야나, 보들레르…, 그들과 한 묶음으로 생각을 접을까(더 이상 깊이 알고 싶지 않다). 노르웨이 사람이고 81세까지 살았고 40대에 정신 분열증 환자였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2년전에 죽었다. 그는 행운아다. 천재였고, 장학금으로 유학생활을 했고, 니체, 보들레르, 모네, 파카소, … 아주 유명한 한 세기에 회자되던 인물들과 교우한다. 그리고 수 많은 작품을 쏟아 낸다. ‘노랑 통나무’를 따라가다보면 끝에서 푸른 나무 하나 만난다. 나무는 일련의 숲을 이루고, 화면 전체에 산재된 숲. ‘태양’을 처음 본 순간 세상 쩍 갈라 놓는 것만 같다. 폭발하고 작열하는 해. 해는 웃으며, 또는 빛으로 뜨는 것만은 아니다. 언제 이런 작품 한 편 써 본 적이 있는가. 이 ‘태양’ 앞에서 통곡하며 앙심 한 웅쿰 움켜 잡는다. ‘알마마터(젖먹이는)’ 화면 중앙에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버젓이. 좌측에 바다 백사장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놀이 중. 화면 우측에 모아이(?)의 형태로 언덕에 두개의 두상이 먼데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뭘까. 노르웨이의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를 그린 것인가. 모른다. 그런데 슬쩍 지나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키스’, ‘숲으로’, ‘해변의 여인’들은 남녀가 한 사람으로 뭉쳐진 것만 같다. 지극한 사랑의 묘사인가. 사랑도 이 정도는 해야지. 아예 암수 동체이기를. ‘그 날 이후’, ‘질주하는 말’에서 그의 대담성을 읽는다. 고민에 빠진 남자 재털이에 담배 꽁초를 비벼 끈다. 담배 연기 피어 오르고 연기속에 커다랗게 살아나는 여자. 여자의 실체는 담배불 끄는 남자의 뒤에 서 있다. - ‘재’ 적어도 ;몇 년동안 이런 환상성에 빠져 있다. 아마도 그 최고의 정점은 보르헤스지. 사랑, 공포, 죽음. 대표작 ‘절규’ 앞에 다시 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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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괴기스럽고 히스테리스러운 그림들만 그리는 예민한 뭉크'일거라 생각했다. 물론 뭉크의 작품 대부분이 그 범주르르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고 그 사람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출해 냈다는것 만으로도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해진 그림 몇작품만으로 한작가의 전체를 평가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일인지 알게된다. 삶의 전체를 지배하고있는 그의 어린시절과 그의 현재와 그리고 그의 정신... 그리고 그를 둘려싸고있는 환경... 쇠약하지만 강하고, 따뜻한 면을 동시에 지니고있는 뭉크를 좀더 인간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나 책속에 있는 단편 알파와 오메가'는 뭐랄까... 이해하기 어려운듯하면서도 참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