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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처럼” _ 입케 박스무트, 『커뮤니케이션: 인간, 동물, 인공지능』(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4) * [인용한 쪽은 '(쪽수)'로 표시]
최근에 열린 한 대형 IT 박람회에서 삼성전자 산하의 연구소 스타랩StarLab은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인공지능 ‘네온NEON’을 공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스타랩에 따르면, 네온은 인간과 보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으며, 이를 위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상호작용하는지 광범위하게 훈련”하고 있다. 만일 네온의 개발이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할 뿐인 기존의 인공지능 비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사 :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7/2020010703348.html) 그런데 네온의 설계 목표대로 인공지능이 인간과 보다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적 발전들이 필요한 것일까? 인공지능은 정확히 무엇을 학습해야 인간에게 비서 이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독일의 인공지능 연구자인 입케 박스무트Ipke Wachsmuth의 책 『커뮤니케이션: 인간, 동물, 인공지능』은 위와 같은 물음들에 대해 매우 친절하게 답변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나 동물 사이에서의 “자연적” 의사소통의 특징에 관한 연구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한편, 이 연구들을 토대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인공적” 의사소통이 자연적 의사소통과 보다 유사해지기 위해 인공지능이 갖추어야 하는 능력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목표로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막스Max’ 속에 그가 어떤 기술들을 통해 그러한 능력들을 구현하고자 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언어가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아주 핵심적인 자산”(81)이기 때문에, 인공적 의사소통이 자연적 의사소통에 더 가까워지려면 인공지능은 우선적으로 순수한 언어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상당량의 어휘를 탑재하고 있어야 하며, 문법에 따라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내는 “통사적 능력”(84)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박스무트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청각적 신호를 받으면 그것들을 먼저 단어들로 구분하여 통사적 구조를 추출해낸 후 그 단어들 각각의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언어를 처리한다(107). 박스무트가 개발한 인공지능 막스에게는 이와 같은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언어 인식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우선 사람의 목소리 같은 음향 신호가 주어지면 탑재된 단어 사전을 사용해 그 음향 신호로부터 개별 단어들을 뽑아낸다. 그런 후 그것은 그 단어들을 조합해 나올 수 있는 여러 문장들 중에서 비문법적인 대안들을 제거하면서 텍스트를 구성해 낸다(108-9).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그 텍스트 내의 단어들 각각을 단어 사전에 기록된 그 의미와 연결시킴으로써 언어 처리를 완료하며, 주어진 음향 신호에 적합한 반응이나 답변을 보이게 된다(110-1). 그런데 자연적 의사소통에서는 이런 순수한 언어적 능력 뿐 아니라 다소 간접적이라 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어떤 문장이 음성을 통해 전달될 때, 그 문장은 강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청자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어제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라고 말할 경우 화자는 자신이 공부를 했던 장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어제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라고 말할 경우 화자는 자신이 수행한 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같은 효과는 음성 언어의 “리듬”(68)에 의해, 즉 문장의 어느 부분을 길거나 짧게 말하는지 그리고 어느 부분을 끊거나 붙여서 말하는지와 관련해 발생하며, 음성 언어의 “멜로디”(42), 즉 문장의 어느 부분을 높거나 낮게 말하는지와 관련해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박스무트는 막스의 설계에서 텍스트를 음성 부호로 전환한 후 소리의 높낮이와 말하는 속도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해 막스는 문장의 특정 위치를 강조함으로써 한층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음성 언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46), 결과적으로 인간과 보다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한다. 마지막으로 박스무트에 따르면, 인공적 의사소통이 자연적 의사소통과 더 유사해지기 위해서 인공지능은 위와 같은 광범위한 언어적 능력 이외에도 표정, 몸짓, 신체 간의 거리 등을 통제하는 비언어적 능력 또한 갖추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언어적 요소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항상 자연적 의사소통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먼저 표정은 발음과 입모양이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할 뿐 아니라, 나아가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발화되는 문장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몸짓 역시 강세를 나타내거나 문장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사용되며, 대화 참여자들은 상대방과의 신체적 거리를 통해 서로의 관계 및 태도를 감지한다(130). 그러므로 만일 인공지능이 의사소통의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를 적절하게 결합하지 못한다면, 그것과의 의사소통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스무트는 막스가 인간의 얼굴 근육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의 운동을 모방함으로써 자연적 의사소통에서 요구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막스의 얼굴 애니메이션을 디자인하였다(64). 또 박스무트는 성인의 관절 움직임을 모방하여 막스의 “골격”을 만든 다음 그것이 “위계질서를 갖춘 조정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도록 하였다(134). 그리고 그것을 일종의 “몸짓 사전”과 연결하여 막스가 상황에 알맞게 몸을 움직이거나 대화 상대방과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134).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인간, 동물, 인공지능』은 박스무트가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목표로 인공지능 막스를 개발할 때 고려했던 자연적 의사소통의 특징들 및 막스에게서 그것들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들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넘어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이 불필요한 존재가 될 염려가 있으므로 우리가 그 기술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박스무트는 막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그는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의 표현의 생동감과 풍부함”(178)을 모방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인공성이 자연성에 더 가까이 갈수록 그만큼 더 나는 자연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181)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박스무트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처럼” 보이고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처럼” 의사소통하는 기계”(194)이다. 박스무트의 이런 결론을 고려한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까 막연히 우려하는 것은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신중한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성급한 태도인 듯 보인다.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꼼꼼하게 상상하는 일, 또 그런 미래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적절한 방법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혹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성찰하는 일 아닐까?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하는 것은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 같은 상상과 성찰의 부재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