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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근대 시기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팡세>를 읽어보면 그는 철학자임에 틀림없지만, 어릴 적부터 수학 신동이라 불릴 만큼 이과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속한 각 분야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나는 그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던 <팡세>가 그가 다방면에서 공부했던 것의 총 결산이라 생각된다. 그가 저술한 <팡세>는 사후에 출판된 책이며,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구상한 책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으로 무신론자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며,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며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피력하려고 했던 것 같다. 책 제목 팡세란 프랑스어로 ‘생각들’이라는 뜻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이 있다. p143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쓰러뜨리는 데 온 우주의 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증기 한 줄기, 물방울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인간을 짓누른다 해도, 인간은 여전히 우주보다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의 죽음을 알고,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도 인식하지만, 우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존엄은 바로 ‘사유’에 있다. 우리는 이 사유를 통해 자신을 높여야 한다. 공간이나 시간처럼 우리가 결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바로 ‘생각하는 능력’ 안에서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생각하자. 그것이 바로 도덕의 출발점이다. 갈대는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갈대는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 인간을 갈대라고 비유한 것은 갈대처럼 유한하고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위대하다. 인간은 사유를 통해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사유하는 능력은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인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갈대라는 의미는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표현한 문장이며, 인간의 모순된 이중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p158 인간의 위대함과 비열함을 충분히 인식한 뒤, 이제 자신을 평가해 보라. 자신을 사랑하되,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닌 존재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비열함까지 함께 사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경멸하라. 인간은 공허한 능력을 자주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로,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능력 자체까지 폄하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사랑하되, 동시에 경멸하라.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비참함을 느낄 수 있다. 사후가 부질없다는 것은 감각을 통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간만이 자신을 비참하게 여길 수 있다. 비열하다는 것은 자신의 이기심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오만한 인간은 자신의 비열함을 알지 못한다. 또한 오만함은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경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내면을 해부학적으로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서 책을 통해 인간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파스칼은 자신의 단상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여실히 드러낸다. p195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만 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본 것이 틀렸다고는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본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 존재이면서도, 감각이 포착한 정보는 늘 옳다고 믿는 특유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이 직접 대면한 현실 앞에서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인간에게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이 신앙에 도달함에 있어 이성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성이 신앙으로 가는 길은 열어 줄 수 있으나 신을 만나는 것은 감정(믿음,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감정(믿음, 직관)과 내면적 경험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성 중심의 근대 철학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p100 도박, 오락과 같은 유흥은 우리를 속인다. 인생은 늘 어떤 장애물과 씨름하며 안식을 좇는 과정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장애물을 극복하면, 안식은 금세 ‘지루함’이라는 새로운 고통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또다시 소란을 갈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비참함이나, 곧 닥쳐올 비참함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공허함을 싫어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함께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으면 넷플릭스, 스마트폰, 게임 등 유흥거리를 찾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디지털 기기와 연결되길 원하기에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파스칼이 주장하는 인간의 유한성과 비참함, 비열함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리이므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홀로 있길 주장한다. 문득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마들렌과 홍차를 맛보다가 과거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 나는 장면이다. 이성적 노력이 아니라 우연한 감각적 자극에 의해 드러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성보다는 직관이나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파스칼처럼 이성보다는 직관, 무의식을 중요시하는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이 책은 쉽게 읽힌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읽히는 <팡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비참하고도 위대한 인간을 위한, 기념비적인 파스칼의 탐구에 푹 빠져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당신은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파스칼의 위대한 통찰력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원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사유의 글로 우리 안의 흔들림을 꿰뚫고, 진실에 다가서려는 인간 정신의 위엄을 되새기게 한다는데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이해되는 팡세', '끝까지 읽히는 팡세'가 틀림없는 도서였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5장이 파스칼의 인간학이 가장 응축된 정점이라 하여 가장 먼저 읽어보았다. 인간의 육체적 나약함과 정신적 위대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팡세의 핵심 개념은 바로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이다. 인간의 모든 존엄은 '사유'에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을 높여야 함에 제대로 생각하는 것, 그건 바로 도덕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자기 삶을 조절하고 방향을 잡는 데는 무엇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만큼 인간에게 더 올바른 일이 없다고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현재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만큼 평소 나 자신에 대한 사유의 시간이 짧고다 짧았다는 것일 터, 지금부터라도 그 사유의 시간을 늘려야겠다. 파스칼이 말하길 사유 없는 인간은 짐승이나 돌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인생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만 봐도 맞는 말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반증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지닌 본성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 주는 도서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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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본 서평은 제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팡세>는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여러 고전이 그렇듯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단편적으로 흩어진 단상들과 종교적 배경은 읽는 이에게 다소의 부담과 위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책을 단순히 신앙서로만 치부해서는 블레즈 파스칼이 던진 본질적인 질문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인간은 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비참한 존재다"라는 문장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자기모순을 꿰뚫는 그의 통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파스칼은 본 책을 통해 '신' 이야기만을 한 것이 아니라, 신 없는 인간의 허위와 자기 기만을 드러냈습니다. 본 편역본은 단상들을 주제별로 배치하여 읽는 이가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원문의 난해한 구조 속에서도 핵심적인 철학적 주제를 뽑아내고, 그것을 현대적인 문체와 감각으로 풀어낸 점이 특히 돋보입니다. 그 덕에 파스칼의 사상이 훨씬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 듯합니다. 무겁기만 했던 사유의 고전이 이제는 한 사람의 삶 속 고민처럼 다가옵니다. 또한 본 편역본은 불필요한 해설이나 교조적 설명은 배제하고, 오직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 필수적 설명만 제공합니다. 덕분인지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파스칼의 문장들이 더 직접적으로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사유의 구조가 명확해진 만큼, 읽는 이는 각 장의 주제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대입하며 몰입할 수 있습니다. 본 책은 철학적인 명언을 수집하거나 '고전 하나 읽었다'라는 만족감을 얻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이자, 삶의 본질에 대해 묻고 싶을 때 꺼내 읽어야 할 사유의 도구라 하겠습니다. 고전의 무게를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고민에 선명하게 말을 거는 본 편역본은, 삶을 깊이 있게 사유하는 방법이라는 철학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파스칼의팡세 #팡세 #인간실존에대한위대한통찰 #현대독자를위한새로운편역 #철학 #서양철학 #블레즈파스칼 #강현규 #이선미 #메이트북스 #신간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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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 파스칼은 젊은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고, 열여섯에 기하학 정리를 완성했고, 스물한 살에는 세계 최초의 계산기(파스칼린)를 만들어 냈으며, 진공 실험과 확률 이론까지 선도한 근대 이성의 상징이다.
이렇게 과학계에 지대한 영향과 공헌을 한 파스칼이 돌연 서른한 살의 나이에 과학계를 떠난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바람송이 다리에서의 ‘신비 체험’ 이후라고 한다. 파스칼이 무너지는 육신과 싸우면서도 신과 인간, 존재와 구원, 고통과 욕망에 대한 사유를 메모에 남겼고, 훗날 그 단상들을 『팡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가 살아내어야 했던 17세기는 유럽의 회의주의와 신학 논쟁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 물음이 난무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 가운데 파스칼이 견뎌야 했던 내면의 부서짐과 신 앞에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살아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들어있다.
이 책의 역은이는 그가 특정 교리를 옹호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 당시 기독교 신앙에 깊이 들어가있던 파스칼의 하나님(신)을 향한 신앙고백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이렇게 우리가 그의 외침을 책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팡세』는 다양한 버전으로 많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독자들이 읽고 자신의 삶과 대조할 수 있도록 해놓은 잠언과 같다.
파스칼이 본 인간을 "누구보다 비참하고, 누구보다 위대한 존재"였다. 그러한 파스칼의 인간 이해가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이 책에서 파스칼의 번민과 고난에 대한 이해와 신에 대한 부르짖음과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들을 보게 된다. 그가 그렇게도 신과 함께 잇고자 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나가야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짧은 단문으로 된 구절들이 한 장 한 장 우리를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파스칼의 번민과 부르짖음이 독자에게 절절하게 다가온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파스칼의 짧은 글들이 나의 삶의 문제를 꼬집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인간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욕망과 욕구와 상처와 왜곡된 자아의 허무성 등을 만나게 된다. 파스칼이 전하는 신 인식은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나가길 추천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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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세기 활약했던 근대 철학자 파스칼의 사유를 담은 고전 철학서적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내용에 집중하여 선택적으로 편집하여 번역한 책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은 원전 팡세 중에서 7개 주제를 범주로 묶어서 편집하고 있다: 인간의 비참함과 덧없음; 인간 존재의 어긋남; 소유와 행복; 인간이 만든 사회적 질서와 윤리; 생각하는 갈대; 인간 이성의 회의; 종교적 신념과 구원; 저자는 17세기 프랑스 출신 근대 철학 사상가 블레이즈 파스칼이고 편집은 강현규, 번역은 이선미가 맡았다. ---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인터넷 유투브 철학관련 영상 컨텐츠에 출연하는 철학자를 통해 파스칼의 팡세의 문구를 접할 기회가 최근에 많았다. 현대 시대의 철학자가 자신이 아끼는 명언이라며 팡세의 문장을 자주 인용해서 인상깊게 들었었다. 왜냐하면 비록 오래전이긴 하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팡세를 과거에 읽었었고 당시의 느낌으로는 종교적 명상과 자기계발과 관련된 내용이었다는 기억밖에 없어서, 철학자의 평가가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팡세 전체 분량 중에서 편역자의 기준에서 7개의 주제 하에 관련된 글들을 모아 번역한 책이다: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선별한 글들이고 분량도 적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파스칼의 팡세라는 책이 난해하다고 평가를 받으면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가치와 사유의 방식이 30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여전히 소구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굳이 현대 학문의 기준으로 보자면 인지심리학, 계몽주의, 쇼펜하우어의 사변철학 등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주관적 판단에는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타인의 합리적인 주장을 수용하지 못한다든가, 기하학의 목적은 증명에 있고 인간 추론의 목적은 인간 존재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든가, 자연에는 자연만의 법칙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주장은 후대에 등장하는 철학 사상들에 부합한다. 특히 파스칼이 활동했던 17세기 당시의 사회와 문화적 시대 배경을 고려한다면 파스칼의 사상은 매우 진보적인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기독교 교리를 비판으로부터 명확하게 방어하는 주장을 편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기독교적 사유 범위 안에 위치하지만, 신을 의심하고 두려움을 자각한다는 겸손과 믿음의 습관으로 예수에 대한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은 당시로서는 소수세력이자 진보적인 개신교적인 입장에 해당한다. 더구나 인간의 본질이 사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이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합리주의 사상에 대해서도 인간에게는 이성만이 아닌 감정도 함께 공존하며 상호 제어의 역할도 한다고 지적한 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에 해당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파스칼의 주요 사상의 내용들을 선택하여 유기적으로 편집해서 핵심 부분만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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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파스칼은 젊은 시절 천재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인생의 후반에는 과학계를 떠나 신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사유를 하며 적은 메모들이 모여 나온 책이 바로 이 '팡세'다.이 책의 근간이 된 메모들이 쓰여진 17세기 유럽에서는 회의주의가 팽배했고 신학 논쟁이 활발했었는데 이런 배경에서 쓰였다보니 신앙고백같은 내용이 많아보이지만 결국 파스칼이 탐구하고자했던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고 꾸준히 읽히는 책인 것같다. '팡세'는 다양한 버전으로 이미 출간된 적이 많은데 이 책은 학술적 번역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편역이 되었다고 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파스칼은 인간을 "누구보다 비참하고, 누구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종중에 가장 위대하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비참하다'는 수식을 쓴 것이 인상깊었다. 다른 종들과 달리 인간은 감정을 느끼므로 비참함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비참함이라는 감정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가 어떨 때 비참함을 느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비참하다는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은 아닌것 같은데 파스칼은 왜 이 감정에 주목을 했을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절망과 비슷해보이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그런것같은데 생각해보면 고양이나 강아지의 경우 슬픔은 느껴도 비참함은 느끼지 못할 것같았다. 이밖에도 짧은 템포로 구성된 파스칼의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다. 욕망, 행복, 상처 등 인간이 느끼는 것들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생각하게 만드는 문구가 많아 같은 문장을 여러번 읽어보기도 했다. 어려운 내용들도 읽기 쉽게 담겨 있어 출판의 목적대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팡세' 책인 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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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는 이미 나의 책장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당시에 같이 구매했던 데미안 등 다른 고전들은 이제 다시 읽으면 당시부터 조금 더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있는 듯 한데, 팡세는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중 메이트북스에서 쉽게 읽힐 수 있게 엮은 책을 내놓아 기대를 하고 보게 되었다. 원문 그대로보다 현대적으로 엮었다는 것이 과연 원문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메이트북스의 다른 고전 엮은 책이 매우 좋아서 이 책도 기대를 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7개의 큰 주제로 나누었다. 인간은 누구보다 비참하고 그래서 덧없다. 인간은 왜 늘 현재의 자기와 어긋나 멀어지는가 등 문장 형태로 구성된 각 장의 제목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각 내용들을 읽다보면 엮은이의 노력과 재치가 보인다. 팡세가 이런 책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다. 이 책을 보다가 이 책의 두세배는 되는 원문 그대로를 번역한 책을 봐봤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 책이 상당히 짧게 요약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어나가는 재미가 없는 점이 아쉽지만, 그것은 팡세 원문 자체의 한계인거 같다. 파스칼이라는 천재적 인물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롭지만, 그가 남긴 이 철학서는 나하고는 다소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바라보는 나약한 인간상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심도있게 인간 자체에 대해 탐구한 젊은이의 생각에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나와같이 팡세 읽기를 포기한 이들에게 희망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원문기반의 해석본도 다시 도전해 볼만할 것 같다.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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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요즘 내 화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철학쪽으로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파스칼의 팡세는 니체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니체는 너의 기준대로 살면 된다 라는 느낌이라면, 파스칼은 그래도 사람과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이드라인은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인간은 갈대와 같다. 그러나 생각 안에 우주를 담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내가 읽은바로 번역하자면, 인간은 갈대와 같아서 이래저래 흔들릴 수 있지만 뿌리가 꺾이지 않는다면 우주를 담을 수 있다, 흔들리지만 뿌리가 꺾이지 않는 방법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알려주겠다로 말이다. 초반부에 "유흥없는 젊음은 허무와 마주하게 된다."라는 글귀를 보고 술을 좋아하는 나는 인스타에 올리며 파스칼이 한 말이니 맞을 것이다! 라며 내가 술마시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유흥은 즐겁지만비참하게 만든다."라는 글귀에 좌절했다 ㅎㅎ 유흥은 젊은 날에만 허락된 특권일 수도 있다. 이미 불혹의 나이를 지난 나에겐 유흥의 즐거움을 느낄수록 비참함 비스무리한 감정을 갖는건 어쩔 수 없다. 요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공허한 쾌락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완전한 휴식은 인간에겐 고통이다." 감사하게도 먹고 살만하게 됐고, 아이도 꽤 커서 손 갈 일도 줄고 하다보니, 아쉬운게 없어서 그런지 요즘 내가 좀 나태하다. 나태하니 사람 만나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이 공허한 쾌락이 한 때는 진짜처럼 느껴졌는데, 사실 이것도 어느정도 하다보니 허무하다.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을 땐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버티고 그러다 주어진 휴식은 꿀맛이었는데, 매일이 휴식인 지금은 큰 고통이다. 그래서 무의미한 사람들을 끊어내고, 지금은 애정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있다. 그리고 대부분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풍성하게 보내고자 노력중이다. 대부분 심심하긴 하지만 이 심심함을 견뎌야 허무한 관계를 맺지 않는 것 같다. 가정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다 마음이 이끌리는 여자를 만나거나, 혹은 며칠동안 흥겹게 놀고 나서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면, 그는 어김없이 허탈함과 비참함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 내가 요즘 느끼는게 그런 권태였나보다. 나뿐아니라, 한 번 뿐 아니라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니 괜찮다. 파스칼의 팡세의 표지를 보고, 항해사 출신의 친구는 헥토파스칼을 떠올렸다고 했고, 개발자 친구는 파스칼 계산기를 떠올렸다고 했다. 나는 파스칼을 그냥 철학자 파스칼로만 생각했다. 사람은 자기가 살고있는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자기가 겪은 경험들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토론이 중요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알아보니 파스칼은 철학자임과 동시에 유명한 수학자여서 헥토파스칼이나 파스칼 계산기나 그 이름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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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팡세(Pensées)는 프랑스어로 '생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작품으로 기독교를 설명하고 전도하려는 목적에서 썼기 때문에, 예수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비교하는 등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기독교 변증학의 성격을 갖고 있는 책이다. 파스칼은 인간에 대한 불완전성과 한계를 명확히 한다. 그는 인간의 지혜로움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가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계를 무시한 무모하고 지나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누군가와 어울려야 하는 공동체적인 존재이기에 자기 성찰은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역시 필요하다. 파스칼은 인간은 천사와 짐승 사이의 존재로 한계와 불완전성을 가진채 불완전한 도덕성과 불완전한 이성을 가졌다고 말하며 이때 필요한 것이 이상과 현실의 균형이라고 말한다. 단순함은 최고의 정교함이라는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처럼 그의 천재성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복잡하고 어려운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쉬운것으로 표현하는데서 드러난다. 그는 단순함 속에 존재하는 정교함을 발견한 것이다. 저자는 이에대해 진정한 이해는 단순함과 명확함에서 온다고 말한다. 가장 잘 알기에 단순화 할 수 있고 가장 잘 알기에 쉽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종교적 색채를 최소화하고 현대적 해석을 가미하여 예전에 읽었던 팡세에 비해 훨씬 쉽게 읽혔지만 여전히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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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를 끝까지 직면한 파스칼. 파스칼은 '덜 비참해지기 위해' 생각을 멈추고 살아나느니, 차라리 비참함을 알고 위대해지기를 권한다. 현대 독자를 위해 '읽히는 팡세'로 편역서 전체 400여 단상 가운데 주요 단상들을 뽈아, 총 7장으로 구성되었다. 인간실존에 대한 위대한 통찰이란 소개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깊이 들여다보고 해부한 철학자이다. 구원, 신, 인간, 죄, 선, 행복, 자기 부정, 믿음, 비참함, 인간, 희망, 오만.... 인간을 들여다보고 해부한 철학자의 인간탐구가 신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을때 구원을 받는다는 정의를 동감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한 파스칼의 철학서가 현대 독자에게도 같은 공감과 진정한 자아를 찾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인간을 낳는 좋은 안내서로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