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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함보다 위대한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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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 갑자기 따스하고 풍만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지, 눈물 흐를만큼 처연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그날, 내 음반이 모여있는 서가에 저 곡들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음반이 없었다. 아니, 대체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도 없단 말이야? 삼백장이 넘는 CD중에서? 그날의 어이없음 때문일거다. 이 박스셋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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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 갑자기 따스하고 풍만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지, 눈물 흐를만큼 처연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그날, 내 음반이 모여있는 서가에 저 곡들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음반이 없었다. 아니, 대체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도 없단 말이야? 삼백장이 넘는 CD중에서? 그날의 어이없음 때문일거다. 이 박스셋을 보고 열광했던게. CD열 장, 버짓 프라이스로 묶여있긴 해도 만만찮은 분량에 가볍지 않은 가격의 이 박스셋에 마음이 끌린 건 이렇게 문득 깨달은 '기본 레파토리의 부족'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유명한 곡은 kbs 1fm이나 이런저런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곡을 수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 후덕해 보이는 아저씨의 박스셋을 사면서 염두에 둔 건 두 가지였다. 멘델스존, 베토벤, 차이콥스키 등 유명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장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연주를 가까히 둘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극히 극단적인 내 취향 - 바이올린의 경우, 날카로운 소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부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하이페츠나 코간, 마이클 레빈 같은 - 을, 따뜻한 음색으로 이름 높은 이 바이올린의 다윗(David)왕,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뽑은 바이올리니스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돌려 볼까 하는 생각 말이다. the art of violin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영상물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도입부로 시작한다. 바로 이 박스셋의 첫번째 CD의 첫 곡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여유 있는 템포를 잡은 두터운 소리가 따스하게 울려퍼진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상적인 멜로디라인보다 두텁고 따스한 음색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할. 수. 가. 없. 다. 그래. 똑같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놓고도, 하이페츠의 인간 같지 않은 속도감에 열광했다. 백만년을 쥐어짜도 물 한 방울 떨어질 것 같지 않은 냉철함과 기술적 완벽함에 눈 멀어 조금이라도 느슨한 구석을 보이는 연주를 폄하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야 이 곡에 있어서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떨궈낼 수 있을 것 같다. 저 풍성해 보이는 아저씨^^가 꾸욱 꾸욱 활을 눌러가며 내는 두텁고 따뜻한 음색 덕택에,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이렇게 풍부한 음을 낼 수 있음에 너무 늦게 놀란다. 그때문에 떨리는 가슴 주체하기 힘든 건 물론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연주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북유럽의 작곡가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아니면 거칠 것 없는 하이페츠나 장영주의 연주 덕분일까. 언제나 이 곡은 내게 차가운 안개가 피어오르는 빙하의 나라를 연상케 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는 이 난곡을 쾌도난마처럼 풀어해치는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밀려오는 눈보라에 북해의 빙벽이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그렸다. 그러나 오이스트라흐는 다르다.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던 기나긴 북해의 빙벽을,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따스하게 감싸안는다. 극단적으로 날카롭고 차가운 소리가 이 곡에 필요할 거라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빠르게 듣는 이의 귀를 조르지 않는다. 그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따스한 햇살을 구석구석에 꼼꼼히 비추인다. 지극히 차갑게만 느껴온 곡에서 가슴 훈훈한 감정을 느끼는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이 열장의 CD를 관통하는 말은 '인간적인 따스함'이 아닐까. 하이페츠처럼 말도 안되는 템포를 잡고도 흔들림 없는 테크닉을 보여줌으로써 듣는 이를 압박하지 않는다. 그저 완만하고 여유있게, 그리고 따스하게 한 음 한 음을 짚어간다. 어느 곡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넘침도 부족함도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떤 곡을 꺼내 들어도 마음 훈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굳이 흠을 잡자면 모노 녹음의 잡음때문에 찝찝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에게도 비할 데 없는 두터움과 따스함, 그리고 그로 인해 풍기는 인간미를 느끼기에 모노 녹음의 잡음은 그닥 큰 문제는 되지 않지 싶다. 게다가, 전통적인 레파토리인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외 낭만주의 레파토리 뿐만 아니라 프로코피에프, 바르톡, 스트라빈스키에 이르는, 쉽게 접하기 힘든 현대 음악가들의 레파토리를 역사에 남을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도 충분히 의의를 둘 수 있다. 완벽한 연주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완벽에 가장 가까운 연주자가 있다면 하이페츠일 것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그랬다지. 그래서 지금까지 하이페츠는 신(神)처럼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뎁혀 줄 음색을 낼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소리를 내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찾는다면, 상처입은 마음을 달래 줄 따스한 소리를 듣고 싶다면 아마 저 후덕한 인상의 아저씨를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완벽함은 숭배해야 하는 것이지만 따스함은, 인간적인 따스함은 가서 기대면 되는 것이니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p******d 2005.07.05. 신고 공감 1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