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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에서는 두 청년 '안세모 밀리'와 '프랜치스 치셤'의 삶을 비교하고 있다. 그 둘은 같은 성직자의 길을 가면서도 늘 가난한 자의 편에서 검소하게 사는 '프렌치스'와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안셀모'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의 인생을 볼 때, 늘 존경받는 쪽은 '안셀모' 쪽이다. 사람들은 항상 치셤에 대해 못 마땅히 여겼고, 그의 진심을 잘 알아주지 않았다. 신학교에서도, 중국에서도, 다시 고향에 돌와서도 말이다.
그렇긴 해도, 치셤과 어렵게 친해진 이 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 또, 모두가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아니다. 신학교의 교장 신부 러스터 맥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순수한 청년 '프렌치스'를 대견히 여겼고, 그는 연어 낚시를 하면서 그를 격려해 주었다. 연어는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 힘찬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트위드이드의 가장 큰 연어란 치셤을 두고 한 말일까? 커가는 그를 보며 언젠가 대성할 것이란 것을 느꼈던 걸까? 그러나 프렌치스는 사촌누이 노라의 죽음을 보고 무작정 3박 4일 동안 여행을 한다. 거의 거지꼴이 다 되어서 돌아온 그를 보고 교감 타란트 신부는 프렌치스를 파멸시키려 하지만 그가 쓴 솔직한 일기를 보고 성상을 보면서 용서한다. 후에 성당에서 프랜치스의 누명을 없애는 서신이 도착했지만 만약 그때 타란트 신부가 그를 파멸시켰더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정말 세상에는 아슬아슬한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간발의 차로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운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나도 이번 시험 때, 정말 많이 겪어 보았다.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세상을 산다는 건 늘 이렇겠지... 이렇게 간신히 신학교를 졸업한 프랜치스는 어느 작은 성당에 보좌 신부로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또 그를 못 마땅히 여기는 주임 신부 때문에 중국 선교를 나서게 된다. 하지만 중국 선교에서도 원장 수녀와 마찰을 겪게 된다. 참, 왜들 다 진실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걸까? 프랜치스의 진실 된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것이다. 원장 수녀도 전염병 사건과 홍수 사건을 겪도 프랜치스의 진가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하늘은 그렇게 불공평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지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묵묵하고 꿋꿋이 하면 남들도 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안셀모와 프랜치스의 만남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린 시절 그들의 만남,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안셀모는 늘 위엄있고 의젓한 행동을 하기를 좋아했다. 그러한 안셀모를 프랜치스가 흙탕물에 빠뜨린다. 성인이 되었을 때, 중국에서의 그들의 만남. 프랜치스는 새 주교가 된 안셀모의 방문을 위해 새로 성전을 정비하고 준비하느라 정성을 다했지만 홍수 때문에 다 허사가 되고 만다. 화려한 치장과 멋진 말만 하는 안셀모와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프랜치스. 그 둘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아마도 세사에 대한 처세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남이 자신을 알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마음에 들게끔 아첨하는 사람도 있다. 안셀모는 바로 처세술이 좋은 사람이고 그와 반대로 프랜치스는 처세술이 약간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려면 처세술이 필요할 테지만 너무 얍삽하고 비열한 아첨이나 ... 등등 그런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언젠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겉과 속의 다름을 알게될 것이 아니가? 나는 약간 우둔하지만 강직한 프랜치스의 인간형이 더 좋다. 그리고 프랜치스는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를 희망하여 안셀모에게 신부직을 그만 두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냥 기다리는데 재미있는 건 안셀모의 마차 때문에 프랜치스가 진흙탕을 뒤집어 쓴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미 안셀모와 인간적인 프랜치스. 어쩌면 이 두 요소는 우리가 항상 비교하면서 고민하고 시샘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과연 사회적인 부가 중요한 것일까, 따스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보람있는 것일까?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가질 순 없을까? 프랜치스는 사회적인 명예나 부를 누리는 것에는 소질도 없었고, 욕심도 없었다. 단지 그가 추구하는 생활, 사람들간의 화목, 사랑만을 위하여 살아 왔다. 늘 사람들은 사회적인 면을 외면하는 그에게 불만을 가졌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바꾸려 하지 않았다. 보용하고 묵묵한 행동으로서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안셀모와 같은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나 그 길에 빠지긴 쉽다. 편안하고 안락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랜치스와 같은 이상과 생활에의 실천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정말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바로 작가 자신도 사회적인 욕심에 반해 청렴하게 살고 싶었던 한 가닥의 미련에 프랜치스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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