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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욕할 때 ‘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개 같은 놈’ 혹은 ‘개보다 못한 놈’이라고. 견유학파 철학자들이 들이면 서운해할 것 같다. 그들은 철학적 이상을 이루고 현실의 행복을 찾기 위해 문자 그대로 ‘개 같은’ 삶을 살았다. 제목 <인생은 개처럼 사는 편이 좋다>는 그들의 철학적 이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외적인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일치한 삶,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삶을 ‘개’라는 동물을 통해 집약해서 보여준다.
자연과 일치하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데 가장 문명화된 동물인 ‘개’처럼 사는 것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이상은 “인위적인 사회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p.10)” 사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어 자유, 정신적 풍요, 사회적인 관습과 권위 타파 등의 가치가 도출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동양의 도교와 비슷한 느낌이다. 신기한 점은 세계시민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이 민족이니 인종을 운운하고, 동물을 괴롭히며 사는 우리보다 포괄적인 사상을 가지고 실천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기도 한다. 특히나 정직한 야만의 시대에서 바라볼 때,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많다.
첫 번째 장에서 디오게네스의 어록들이 견유학파의 기본 사상을 요약해 준다. 특히 그들이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풍자와 유머로 세상 사람들을 일깨워준 모습이 인상 깊다. 과도한 행위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질이 아닌 형식에 주목해 ‘개 같은 삶’이란 이름표를 붙여줬을 따름이다. 개로서는 매우 억울하겠다.
다만 책은 견유학파에 대한 맛보기로 보인다. 책 표지와 제목에서 주었던 기대만큼은 아니라서 아쉽다. 모르는 철학자나 일화를 알아가는 재미는 있지만, 개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이 아니다. 견유학파에 관한 기록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하는 기록 중에 가장 유명한 부분들을 선별해서 일부 소개해 준 것이다 보니 기대 대비 너무 간략한 듯해서 아쉬움이 크다.
일독일자 260321 / 작성일자 260321 ----------------------------------------------------------------------------- 오늘날 흔히 ‘냉소적이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시니컬(cynical)하다’라는 말의 어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키니코스학파이다. 키니코스는 고대 그리스어 ‘개’(cyon)에서 파생된 ‘개 같다’(cynicos)는 말에서 유래한 용어로 견유학파란 문자 그대로 ‘개처럼 사는 철학자’라는 뜻이다. p.8 견유주의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위적인 사회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기를 추구했다. 그들은 인간 본성이 본래 선하다고 믿으며, 인간이 사회의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를 추구했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규정된 관습과 권위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권위에 맞서는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사회의 계급, 부, 명예 등을 무의미하게 여기며 진정한 가치는 내면적인 덕에 있다고 주장했다. / 견유주의는 국가나 민족을 초월한 세계시민주의를 표방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인간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국가나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에 속하지 않은 세계시민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사람이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인류에 대한 동포애뿐만 아니라 동물까지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10~11 디오게네스 역시 커다란 항아리에서 살며 ‘신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신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 것만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p.20 어떤 이가 ‘시노페 사람들은 당신을 추방했소’라고 말하자, ‘그런가. 하지만 나는 그들을 그곳에 가두어 두었소’라고 대답했다. p.23 점심을 언제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부자라면 원하는 때에, 가난하면 가능한 때’라고 대답했다. p.23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묻자 ‘남의 술’이라고 대답했다. p.23 왜 사람들이 철학자에게는 돈을 주지 않으면서 거지에게는 주는지 묻자 ‘언젠가는 자기도 절름발이나 장님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철학자가 될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p.23 언젠가 디오게네스는 조각상 앞에서 구걸했다.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묻자 ‘거절당하는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p.23 누군가가 ‘대부분의 사람이 당신을 비웃고 있다’라고 하자 ‘당나귀들도 사람들을 보고 비웃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당나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소. 나도 마찬가지요’라고 대답했다. p.24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사람들에게 개라고 불리는지 묻자 디오게네스는 ‘베푸는 사람에겐 꼬리를 흔들고, 인색한 사람에게는 짖어 대며, 나쁜 놈은 물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p.24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제6권 고난을 겪는 것은 결국 아무 고난도 겪지 않는 길 p.32 - <견유학파 서간집> 33편 철학이 가장 우선으로 제공해야 할 것은 바로 공동의 목적의식, 인류에 속한다는 소속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태도라네. 그런데 남들과 다름을 추구한다면 그러한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이지. 우리가 추구하는 미덕들이 조롱받거나 반발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게나. 사실 우리의 가르침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자기 몸을 학대하고, 기본적인 청결을 무시하며 지저분하게 살고, 초라한 정도가 아니라 역겨운 썩은 음식을 먹는 일은 자연을 거스르는 짓이라네. 산해진미를 탐하는 일이 사치의 증거이듯,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것마저 거부하는 일도 일종의 광기의 증거라네. 철학적 삶이 요구하는 것은 고행이 아니라, 절제 즉 분별 있는 절제라네. 나는 이러한 중용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네. 우리의 생활 방식은 훌륭한 인격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네. 모든 사람이 우리의 생활 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되, 그들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네. /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단 말인가?” 바로 그렇다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우리가 대중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라네. 누군가가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가구가 아니라 우리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처신해야 하네. 질그릇을 은그릇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훌륭한 인물이네. 그러나 은그릇을 질그릇처럼 쓰는 사람 역시 그에 못지않게 훌륭하다네. 부유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 나약하다는 증거일세. p.71~72 –세네카, <도덕서한집> 제5권 1~6편 견유학자 데메트리오스 ...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기술을 아느냐가 아니라, 승리하기에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많은 주제가 흥미를 끌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몇 가지뿐이다.” p.76 –세네카, <자선론> 제7권 1~2장, 8~11장 견유주의 철학은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며 자연스러운 철학으로, 특별한 학문적 연구 없이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덕을 사랑하고, 악을 멀리하며 살아가는 신중한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수많은 책을 탐독할 필요가 없다. 속담이 잘 설명하듯이 “많이 배운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진 않는다.” 또한 다른 철학 학파처럼 특정한 경험을 쌓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아폴론 신으로부터 받은 두 가지 가르침, ‘너 자신을 알라’와 ‘관습을 타파하라’를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의미에서 견유주의 철학의 창시자는 사실상 델포이의 신 아폴론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사소한 것조차 간과하지 않는 그가 디오게네스를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적임자로 선택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할 것이다. 아폴론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로 하는 조언, 즉 신탁을 주었지만, 디오게네스에게는 상징적으로 ‘타파’와 ‘관습’이라는 두 단어로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가르쳤다. 눌론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디오게네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준 신탁이며, 지금도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다. p.92 소크라테스가 “철학이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도 p.95 사실 견유학파 철학의 목표, 더 나아가 모든 철학의 목표는 결국 행복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견유학파는 대중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에 따라 사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식물과 동물도 본래의 목적을 방해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때 가장 잘 성장한다. 사실 신들도 마찬가지로 본연의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존재할 때 행복하다. 그렇다면 인간도 마찬가지로 행복을 외부에서 찾으려 애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p.97 견유학파의 삶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철저히 점검하고, 캐물으며, 허황된 자부심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p.100 –율리아누스, <연설집> 6편 ‘무식한 견유주의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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