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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세잔-비커밍 졸라, 그리고 두 예술가의 변함없는 우정 <교차된 편지들> : 폴 세잔-에밀 졸라 1858-1887 (원제: Lettres croisees: 1858-1887) 앙리 미테랑 엮음 | 나일민 옮김 [소요서가] (2025)
이 책을 왜 읽을까? 이 책을 엮은 앙리 미테랑의 표현대로, 그건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서로를 알아본 그 순간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죽마고우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예술가 동지로, 이 두 예술가가 주고받은 신뢰와 우정의 연대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금껏 졸라가 자신의 소설 <작품>에서 묘사한 ‘실패한 화가’가 자신을 모델로 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세잔이 절교를 선언했다는, 그동안의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더욱 느끼는 일이지만, 인간은 몇 가지 MBTI로 사람을 분류하고 정체성을 규정하듯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는 세월 동안 두 친구 사이에 오간 편지 100여 통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 평론가나 역사가들의 시선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 나갔던 실존들의 시선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술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삶을 살아야 했던 인간 존재로서 그들이 떠올렸던 생각의 편린들과 만난다. 여기에 각자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자 분투했던 청년 예술가들의 지독한 목마름을 감지해낼 수 있다. 책에 실린 편지들에는 막 인상주의라 불리기 시작한 미술 사조를 이끌어간 사람들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처럼, 또는 유성처럼 스쳐지나기도 한다. 아카데미즘에 저항하고 새로운 시각을 획득하고자 저항했던 이들 화가의 초상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내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교차된 편지들>에서 나름대로 재구성해본 화가 세잔은, 당대의 전통적이고 고착화된 화풍과 아카데미즘을 비판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작업을 집요하게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기약 없는 실패, 무참한 낙선의 연속이었다. 세잔에게 살롱전의 낙선 소식은 일상의 의식처럼, 혹은 더운 여름 낮잠을 자다 꾼 악몽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작은 일탈과도 같은 사건이면서도 삶의 일부로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중년이 되도록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자의식 강한 예술가였으리라. 여기에 아버지의 눈길로부터 숨겨둔 동거인과 그녀 사이에 둔 아들의 삶까지 걱정해야 했던 화가였다. 그럼에도 당대의 주류 화풍이나 미술계의 관행, 유행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오랜 시간 실험적인 작품을 추구했기에 ‘화가 세잔’이 되었을 터다. 그토록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시각을 발견하고자 분투하지 않았더라면, 피카소가 그린 독특한 시각의 인물들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와 분명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와 달리 에밀 졸라는 우리로 치면 중학생 시절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내던져진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로서 아버지의 건설 회사를 ‘법적으로 탈취’한 이들에 의해 아버지의 회사도 빼앗긴 채 말이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어냈던 인물이었다. 단순히 그 시절을 ‘견디어 낸’것만이 아니라 시와 소설과 같이 문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작가 에밀 졸라’를 빚어낸 것이리라. 이때 몸에 각인된 경험 때문이었을까, 홋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은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 세잔을 비롯하여 모네와 같은 당대의 화가들의 지원 요청에 변함없이 친구들을 돕고 글로서도 그들을 평생 지지했다.
한편 그의 글은 바로 자신을 그대로 닮아서 너무나 직설적이고 솔직한 나머지 수많은 반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던 모양이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던 그는 주류 비평계로부터 배척되기도 한 수모를 겪기도 했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청년 시절, 현실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습작 기간을 견디어 내고 자신을 극복해나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그에게 드디어 <목로주점>과 같은 작품이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을 때 졸라와 세잔의 관계도 조금씩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30년에 걸쳐 왕래한 100여 통의 편지가 실려 있지만, 졸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변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세잔과 인상주의 화가들을 한결같이 지지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인물이었던 것 같다.
40-50대에 이르기까지 주류 평단의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일원으로서 세잔을 ‘위대한 패배자’라 불러볼 수 있을까. 이 ‘위대한 패배자’ 폴 세잔과 세기의 ‘자연주의의 대표적 문호’ 에밀 졸라의 존재는,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해도 된다면, 두 사람을 각각 따로 떼어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우뚝 섰던 두 사람의 존재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잔에게 졸라가 없었다면, 당대의 화가들보다 돋보이는 문학적 소양과 그림에 대한 안목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졸라에게 세잔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열정적으로 ‘인상주의’에 대한 분석적이면서 애정을 담은 비평을 쓰고, 화가들을 응원하며 그림에 대한 깊은 안목을 습득할 수 있었을까. 중학교 시절 서로를 알아본 후 집 주변의 강둑에서 함께 옷을 벗어 던지고 강으로 뛰어들던 두 사람. 그들은 이미 오랜 시간 그림과 언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각자의 안목을 구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리하면, 졸라와 세잔은 서로가 없었더라면 각자 그만한 문학과 회화에 대한 소양과 깊이을 습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만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역사에 무의미한 가정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편지글은 그 나름의 고유한 형식 때문에, 편지를 작성한 인물들의 의식 일면을 행간에서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청소년 시절, 대학입학자격 시험에 해당하는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서로에게 토로하며 편지를 통해 ‘징징’거리기도 했다. 또 편지지에는 그들 나름의 언어유희와 시적 언어를 실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분명히 서로에게 독특한 형태의 소울 메이트였던 모양이다. 150년 전-후의 시기에 작성된 이 편지들을 읽고 나니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터다. 화가 세잔과 작가 졸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떼어 놓고 그들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이다. 세잔이 없었다면 졸라의 인상주의에 대한 관심과 비평글, 그리고 루공-마카르 총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창조나 그림과 같이 생생하고 감각적인 묘사들은 그만큼 창조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세잔은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그 자녀에게는 다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잔은 어떤 형태의 조직에서 일을 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가 확보되어야 했던 인물 같다. 그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중년의 나이에 이르도록 아버지의 용돈을 받으면서도 그림만 그리기 원했던 사람. 여기에 인상주의 그림에 대한 조롱을 일삼던 심사위원들이 평가하던 살롱전에 출품하여 ‘줄기차게’ 낙선했던, ‘위대한 패배자’였다. 세잔의 나이 50이 가까운 나이에 그린 가르단(Gardanne) 지역의 풍경을 언급하던 1880년대 중반에 그가 친구 졸라에게 보낸 세잔의 편지글을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나 자신감의 불꽃이 한풀 꺾인 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역시 현실의 삶과 인정받지 못한 화가로서의 자괴감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이 없었겠는가. 스스로 생활비를 벌지 못하여 아버지 몰래 상당 기간 숨겨둔 아내와 아들의 생활비를 졸라에게 요청해야 했을 세잔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프랑스의 주류 언론계로부터 추방되다시피 했던 친구 졸라가 그의 소설 <목로주점>의 대성공으로 점차 대작가로 부상하는 상황이 세잔 자신의 상황과 더욱 비교가 되었을 터다. 이는 오랜 친구에 대한 단순한 질투라기보다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친구와 대비되는 자신의 변하지 않는 현실이 더욱 큰 고통과 불안감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19세기 후반 회화와 문학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그들이 직업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해낸 사람들임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고된 현실에서의 삶을 견디어 내고 관통했던 사람들이었음을,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를 빚어내는 데 아낌없는 지지와 시간을 할애했음을 알게 된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신뢰를 평생 이어간 두 사람의 세계를 보다 내밀히 따라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두 사람의 편지를 엮은 에밀 졸라 연구가 앙리 미테랑의 손길 덕분이다. 주류 예술가들과 비평가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았던 ‘인상주의’ 화풍과 그 화가들과 교류했던 두 사람이기에 이 책은 또한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서, 그리고 예술가/창작자로서 자신의 사명에 임하는 태도와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비교적 형편이 넉넉했던 마네와 드가와 잘 어울리지 못했던 시골뜨기 세잔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기성 문단이나 주류 예술가들에 도전하던 인상주의 청년 화가들을 실감나고 친근하게 재구성해낼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화가와 작가의 이름이 이제는 보다 생생하게, 당대를 살았던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