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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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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다가 역겨움을 느낄때가 있다. 그에 못지 않게 괜히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 이럴 때는 그저 간단히 밥을 많이 먹어서,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여기 사르트르는 그 밀려오는 역겨움들을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아무 이유없이 나열된 존재들에 대한 역겨움'으로 정의된 이것은 처음에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소설속 주인공인 앙투완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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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다가 역겨움을 느낄때가 있다. 그에 못지 않게 괜히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 이럴 때는 그저 간단히 밥을 많이 먹어서,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여기 사르트르는 그 밀려오는 역겨움들을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아무 이유없이 나열된 존재들에 대한 역겨움'으로 정의된 이것은 처음에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소설속 주인공인 앙투완느 로캉탱이 바로 위의 정의를 느낀 인물이다. 로캉탱은 도서관에서 약7년 동안 책을 보아 왔다면서, 이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어서 지식인이 되겠다는 녀석이나, 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옛 프랑스의 영웅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구토증 보다도 더한 끝 없는 허무를 느꼈을지 모른다. 그들은 역겨움에 대해서 모르는 듯이 여겨진다. 물론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러한 그들 때문에 로캉탱의 역겨움은 더욱 슬퍼보이고 안쓰러워 보인다. '저들은 저런데 나는 왜 이러한가? 나도 저들처럼 저렇게 속 편히 살고 싶다'라고 로캉탱은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로캉탱은 소설속에서 느껴지는 주된 느낌인 쓸쓸과 허무의 감정 자체이며, 일기라는 평범한 형식으로 이를 극대화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로캉탱에게 위의 두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그야말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저 '무한경쟁'이 자랑인양, 어린아이들의 '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지 않죠?' 같은 질문들을 웃어 넘기며 살고 있다. 역겨움이라는 최소한의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 근심만 늘어나니 읽지 말라던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르는 그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무엇이 옳튼지 어쩌면 우리는 그 '무한경쟁'속에서 살아남아 소설속처럼 박물관에 모습이 세워진채, 역겨움을 느낄 어떤 후손에 의해 또 하나의 역겨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아버지를 일찍 여읜 것을 두고 일찍이 '잘 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남들은 당연히 이상하게, 아니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나는 그 덕분에 남들보다 선입관이 적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사르트르는 또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최초의 인물로도 유명한데, 그만큼 그는 어떠한 외적인 요소에도 구속되기 싫어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존재'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현실에 그는 언제나 슬퍼했을 것이다. '나는 무'라는 말을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싶어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는 구토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과 그의 사상을 집약해 볼 때, 그는 아픈 시대를 온 몸으로 살다간 인류 최고의 지식인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h*******e 2005.0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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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지 어렵다.. 나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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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프랑스 문학의 거장.. 그의 작품들도 매우 유명해서, 그 이름을 생활속에서도 많이 접할수 있다. 그러나 실상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구토.. 솔직히 제목부터 좀 어렵다^^; 원래 책 제목은 우울이었는데 기존 문학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과감한 내용과 형식이 문제가 되어 출판을 거절당하자, 구토로 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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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프랑스 문학의 거장.. 그의 작품들도 매우 유명해서, 그 이름을 생활속에서도 많이 접할수 있다. 그러나 실상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구토.. 솔직히 제목부터 좀 어렵다^^; 원래 책 제목은 우울이었는데 기존 문학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과감한 내용과 형식이 문제가 되어 출판을 거절당하자, 구토로 제목을 고친다는 조건하에 출판되는등, 우리가 만날수 있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문학평론가들은 충격과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이라지만, 문학도가 아닌 나로서는 솔직히 좀 어렵다^^; 실존주의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에 책의 흐름을 쫓기보다는 책의 형식을 보는 독서방식을 취했는데, 실존주의.. 이 책 두번이나 읽었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생각나는데로.. 자신의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한 책이다. 자기가 이 글의 로캉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나의 일이라고, 나의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지루함만 줄것이다. (대강.. 내가 보기엔 죄와벌처럼 생각을 쓴글 같다.) 사실 난 재미있지 않았다. 하나 인상깊은 내용이 있다. 이 책에는 어느 독학자가 등장하는데(주인공 아님^^;) 그는 도서관에서 혼자 독학한다. 그는 도서관의 A부터 Z까지의 모든 책을 읽으면, 이 세상의 모든 진리와 지식을 획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도 어렸을때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으면 세상 일에 훤할수 있찌 않을까 하는 생각에 ㄱ부터 시작했다가 몇권 읽다 질려버린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터무니없는 발상이겠지만..ㅋㅋ 이 책에는 구토 말고도 벽, 에로스트라트, 방, 어느 지도자의 어린 시절, 은밀 의 사르트르의 다른 작품 5개가 더 수록되어 있다. 구토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반을 차지한다. 다 짧은 단편이다. 근데 내게는 이것들이 더 재미있었다. 특히 벽이라는 작품은 마지막 한줄에서 정말 뒷통수치는 작품이었다. 재미가 없었다는게 아니라, 갑작스런, 아주 극적인 반전이 날 혼란스럽게 했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나~ 하지 마시고,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단편에 많은 애정이 가는 책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i****a 2002.01.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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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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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멀더는 엑스파일에서 항상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에요'. 이 친구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는 항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와, 나의 모든 감각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 과연 진실인지. 이러한 명제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저기 저 책, 김치냄새, 시계바늘 소리, 손끝 상처의 통증, 밥맛, 그리고 마음의 감정. 이 모든 감각이,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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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멀더는 엑스파일에서 항상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에요'. 이 친구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는 항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와, 나의 모든 감각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 과연 진실인지. 이러한 명제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저기 저 책, 김치냄새, 시계바늘 소리, 손끝 상처의 통증, 밥맛, 그리고 마음의 감정. 이 모든 감각이, 과연 '내'가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메트릭스의 한 부분처럼 누군가가 입력시킨 신호를 나의 뇌가 센서역할을 할 뿐인 것인지...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주위의 사물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예전엔 그저 평범해 보이던 부모님의 방이, 당신들의 사후에는 굉장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의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고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움은 다시 메스꺼움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구역질을 한다. 이상이 본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너무나도 획일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람이 읽은 만큼 이 소설에 접근하는 독자들의 시각도 다양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떠올랐다. 만약 나의 모든 감각들이 메트릭스에 의한 것이거나, 절대신-이것을 메트릭스라 표현해도 좋으리라-에 의한 것이라면, 결론은 하나에 귀착된다. '내 존재의 의미는?' 전혀 대답할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다. 그래서 부조리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처음부터 해답(이 세상에 '정답' 혹은 '해답'이 있을까?)을 찾으려는 의도로 이 책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영원한 의문점(존재의 의미)에 대한 조그마한 참고점이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애초에 뭔가 구체적인 답안지를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이 친구의 글이 맞을지도 모른다. 본질에 접근하려고 언저리만 뺑뺑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왔을 뿐이다. 느낀 것이 있다면 '없다'가 아니라 '모르겠다'이다.
p*********r 2003.10.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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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관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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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가 1938년 발표한 소설 구토는 오늘날에도 그를 사유하게끔 하는 도구로써 존재한다. 사르트르는 앙트완느 로캉텡이 드 롤르봉씨로 인해 존재하려 애쓰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아트완느로 인해 현재 존재한다. 소설 전반부, 앙트완느는 세상에는 변한 것이 없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조약돌이 문고리가 나무뿌리가 전과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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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가 1938년 발표한 소설 구토는 오늘날에도 그를 사유하게끔 하는 도구로써 존재한다. 사르트르는 앙트완느 로캉텡이 드 롤르봉씨로 인해 존재하려 애쓰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아트완느로 인해 현재 존재한다. 소설 전반부, 앙트완느는 세상에는 변한 것이 없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조약돌이 문고리가 나무뿌리가 전과는 다르게 변하고 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사물을 보는 관점, 즉 인식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 변화로 그는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불쾌감을 느낀다. 구토를 한다. 그는 사물을 바라본다. 조약돌을 맥주컵을 나무뿌리를 바라본다. 그는 생각한다. 이 조약돌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맥주컵은 내가 맥주를 마시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할 뿐이다. 동시에 앙트완느는 당혹감, 불쾌감을 느낀다. 조약돌을 인식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無(없음)가 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카페에서 그는 카페주인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병이 들어 방안에 누워있기 때문에 카페 안에는 카페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추리 속에는 이러한 공식을 포함한다. 즉, 카페를 둘러보고 의자, 테이블, 액자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카페 주인은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반대로 카페 안에 주인이 있다면 우리는 의자, 테이블 등을 바라보다가 주인이 보이면 주인을 인식하기 위해 의자에 대한 의식, 테이블에 대한 의식은 無(없음)가 된다. 이것은 조약돌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조약돌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자아에 대한 의식은 無가 되는 것이다. 앙트완느는 이렇게 말한다.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며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유용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유용성만을 볼 뿐이다.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존재 자체가 어느 순간 튀어나올 때 당혹감을 느낀다. 존재에 대한 당혹감과 자아의 무에 대해 느끼는 구토와 동시에 앙트완는 자신의 의식은 자유로워진다. 인식할 것인가? 인식하지 않을 것인가?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존재한다면 무엇으로 왜 존재할 것인가? 에 대한 자유가 부여된다.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고, 선택하는 바로 그 때 창조되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기투(Entwurf) 속에서 존재한다. 자유로써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은 그의 본질이 없음, 다시말해 그의 자유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앙트완느는 계속해서 과거에 집착한다. 18세기 드롤르봉, 박물관의 그림, 조각상, 과거의 연인 안니, 여행지의 사진, 그러나 정작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정확히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인식만이 존재한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 실존에서 떨어진 과거, 환상, 모험에 집착할수록 인간은 불안해진다. 소설 후반부에 과거의 상징, 안니를 만나지만 현실의 모습이 앙트완느를 실망시킨다. 결국 고독한 우리의 주인공 앙트완느는 Some of these days라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앙트완느는 이 노래를 작곡하는 사람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처럼 앙트완느도 인식되어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며 소설을 결말짓는다. 나도 역시 이러한 결심으로 이글을 결말짓는다.
p******o 2002.08.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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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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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로캉탱은 부빌에서 머물며 롤르봉이라는 18C의 인물에 대한 역사서를 쓰고자 한다. 앙투앙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구토"라는 감각으로 느낀다. 인간을 사랑해야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인간에 대하여 앙투안은 그것이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개개의 인간을 모른체 어떻게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독학자에게 묻는다. 지식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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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로캉탱은 부빌에서 머물며 롤르봉이라는 18C의 인물에 대한 역사서를 쓰고자 한다. 앙투앙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구토"라는 감각으로 느낀다. 인간을 사랑해야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인간에 대하여 앙투안은 그것이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개개의 인간을 모른체 어떻게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독학자에게 묻는다. 지식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독학자는 A~Z까지의 알파벳 순으로 저자들의 저작을 읽어나간다. 이러한 수진한 독학자는 자신의 "사랑(?)"을 이기지 못하여 소년의 손을 만지고, 결국 도서관에서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쫓겨나고 만다. 앙투안은 예전에 헤어진 연인 안니를 만나지만, 안니는 과ㅏ거로서의 사랑을 추억할 뿐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단절되어 있다고 말한다. 앙투안은 미련과 과거를 모두 버리고 부빌의 생활을 청산하며, 롤르봉이라는 다면적 인물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포기하고, 소설을 쓰기로 한다. 앙투안 로캉탱이라는 인물은 현대의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소속부재의, 혹은 다른 의미로 자유링으로서의 인간 전형을 사잉한다. 앙투안은 사물과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이 변화해감으로서 매일의 의식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며, '절대성'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앙투안은 그러한 세계인식에서 구토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자기 것으로 한다. 구토는 어디에서나 생겨나며, 그러나 그는 그것에 그대로 몸을 맡긴다. "부조리"에 그대로 대면하고자 하는 실존주의의 명제 그대로..
c****e 2002.04.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