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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전부 읽은 것도 아니거니와, '수량화 혁명'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접근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기 때문에 별점은 네개를 주도록 하겠다. 본문 시작하겠다.
일단 내가 읽었던 부분까지 조금 인상깊었던(불쾌했던)부분을 인용해보자.
...(전략)... 그런 계측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지각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것을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우리가 이루어온 업적들, 즉 동력 직조기, 우주선, 보험통계지표 등을 제시하면 해결될 것이다. 이런 것이 확고부동한 대단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 우리의 성공이 우연의 소산일 수도 있으니까 - 인간이 흔히 자신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는 '어떤 일이 효과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이니 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말 탁월한 인물들인데 왜 사물의 수량적 파악이라는 유용한 범주에서 뒤로 물러섰을까?
- 29 페이지에서 -
스페인인들이 16세기에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연안에 도착했을 즈음 마야인들은 이미 지적인 침체기에 빠져 있었고 더 이상 수학이나 달력을 발전시키고 있지 않았다.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이 동아시아에 도착했을 무렵 중국인들은 이미 송 왕조의 거대한 시계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였고, 결함투성이던 그들의 달력 체계는 예수회 신부들의 도움으로 고쳐질 때까지 내내 그런 상태였다.
- 34 페이지에서 -
...(전략)... 이런 상황은 유럽에서 가장 먼 곳에 살았던 현학적 민족인 중국인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 42 페이지에서 -
하지만 당대의 이슬람이나 인도, 중국 문명과 비교할 때 서구는 살아남기 위한 준비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런 변화의 밀물을 통해 이익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존재였다. 서구 유럽은 비유하자면, 노화를 극복할 수단을 연구하는 의사가 태아 세포에서 찾아내려고 애쓰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활력을 가지지는 않았더라도, 아직 분화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서 나름대로 가치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태아 세포는 지극히 젊은 것이므로 어떤 종류의 세포이든,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77 페이지에서 -
이진경씨의 책을 읽고서 참 흥미롭다고 여겼던 내용 중 하나가 근대 유럽의 발흥을 도운 주요 요소들이 기계론과 수량화였다는 내용이었다. 나로서는 그런 내용을 이진경씨의 책에서야 겨우 보았기 때문에 그가 생각해낸 발상이라는 불합리한 믿음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서 이 책이 비치된 것을 보았다. [수량화 혁명]! 책 제목부터가 매혹적이다. 아하. 수량화라는 개념 자체가 애시당초 이진경씨의 개념이 아니었군. 단지, 내가 그걸 늦게 접했거나, 혹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개념이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 뿐인거로군! 외국의 사정은 달랐던거야. IT사회랍시고 주절거리지만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이라는게 겨우 이런식으로밖에 못이뤄지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는거지, 운운.
저런 잡생각까지는 해가면서 어쨌든 이 책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기로 했었다. 그런데 도대체가... 중간중간 자꾸 '유럽은 될만하니까 승자가 된거고, 비서구권은 안그럴만 하니까 그렇게 짖밟힌거다.' 라는 식의 냄새가 나는 글귀들이 엿보이는데, 이게 상당한 수준으로 불쾌했다, 이거다.
당장 위에 29페이지에서 인용한 내용을 보자. 계속해서 '성공'이니 '효과적'이니 '업적'이니 '유용한'이니 하는 표현이 나오는걸 알 수 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세계의 다른 부분들을 짖밟을 수 있는 능력을 얼만큼 지니게 되는가'인가? 오, 그렇다면야 인정하겠다. 과학은 사회진화론같은 쓰레기조차도 정당화시켜줄만큼 강력하고도 '효과적이며 유용한 성공적 업적'을 유럽에 부여해줬지. 더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탁월한데도 수량적 파악을 반대한건 어리석다는 어투조차도 그런 입장이라면 너무나 지당하지 않겠는가?
책을 모두 읽지 않았음에도 그 책을 평가하는건 그다지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어찌되었건 읽으려고 생각했었는데, 도무지 이걸 끝까지 읽질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인용한 77쪽의 저 내용을 읽고서 책을 덮어버렸다. 다시금 말하지만, 도무지 이런 쓰레기같은 선동을 더이상 읽을 이유를 못느끼겠다. 이 이후로는 납득할만한 내용으로 전개가 될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제법 낮아보인다는 점만 고려해봐도 내가 진실로 '역겨움까지 느끼는' 마당에 이걸 끝까지 읽는건 나로서 상당한 시간과 힘의 낭비가 될 것 같다.
정리하겠다. 내가 읽은 데까지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피상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한 무지몽매한 저작이다. 이 책의 논리구조가 아무리 탄탄하더라도 상관없다. 그저 불쾌할 따름이다. |
| 저자는 서양이 어떻게 전지구를 장악하는 힘을 얻게 되었는가에 천착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중세말기에서 르네상스로 건너가는 시기에 이루어진 세계관의 변화를 수량화, 시각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질적 세계관이었던 유서깊은 세계관이 어떻게 모든 것을 양, 즉 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는지를 천문, 음악, 미술, 회계 등의 분야를 통해 검토한다. 각각의 항목들에 대한 서술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고, 회화의 투시도에 관한 부분은 소박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개별적으로 다루어지던 사항들을 하나의 줄기로 묶어서 보여준다는 데 있다. 번역은 무척 매끄러운 편이지만, 도판의 인쇄 상태는 상당히 아쉽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뒤러의 판화도 상태가 무척 나쁘다. 그래도 이런 책을 꾸준히 펴내는 심산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