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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소설가의 유령작가 흉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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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는 표제로 삼은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수록한 단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제목을 소설집의 표제로 삼는 관행에 비추어 본다면, 다소 드문 경우이다. 드물긴 하지만 전혀 없지는 않은 이런 경우, 작가가 달리 선택한 소설집의 표제에는 그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에서 뽑아낸 공통분모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게 수록된 소설들의 주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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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는 표제로 삼은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수록한 단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제목을 소설집의 표제로 삼는 관행에 비추어 본다면, 다소 드문 경우이다. 드물긴 하지만 전혀 없지는 않은 이런 경우, 작가가 달리 선택한 소설집의 표제에는 그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에서 뽑아낸 공통분모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게 수록된 소설들의 주제나 소재가 되었든, 내용 또는 형식이 되었든, 아니면 수록된 소설들의 서사 공간이나 시간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이건 김연수의 소설집『나는 유령작가입니다』도 마찬가지일 터. 따라서 이 소설집에 수록된 아홉 편 소설들의 공통분모를 뽑아서 새롭게 표제로 내세운 아홉 개의 글자,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 서사의 시공간뿐만 아니라 문체와 서술 형식 또한 너무나 다양해서 독자로 하여금 편안하고 쉽게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이 만만치 않은 소설집의 핵심에 도달하는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자명하다. ‘유령작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1. 유령작가 되기

 

유령작가(幽靈作家, ghost writer)는 사전적 의미로는 대필자, 즉 다른 사람의 글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대신 써주는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연설문을 대신 써준다든지 정계나 재계 또는 예능계 등의 유명인사들의 전기(傳記) 따위들을 대신 집필해주는 사람말이다(네이버 용어사전).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유령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요소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① 작가(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 유명인사들의 전기 필자)

② 의뢰인(대통령, 유명인사들)

③ 대필할 내용(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연설 내용, 유명인사들의 실제 인생)

④ 대필해서 써낸 글(대통령의 연설문, 유명인사들의 전기)

 

문제는 ①과 ②가 서로 아무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한다고 해도 ③과 ④ 사이에는 항상 불일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④는 ③의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는데 늘 실패한다는 점에서 항상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작가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의뢰인의 주도 또는 묵인 하에 그러한 왜곡과 윤색이 강요되거나 은근히 부추겨졌기 때문이다.

 

유령작가로서 성공하려면 ③과 ④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를 독자로 하여금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④가 정말 ②에 의해서 쓰여진 글이라고 굳게 믿게 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유령작가로서의 성공 여부는 작가가 얼마나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는가에 달려 있는 셈인데, 이렇게 해서 이루게 된 유령작가의 성공이란 그의 명성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명성을 더해 줄 뿐이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아이러니컬하다. 거짓말쟁이가 될수록 성공하고 또한 성공할수록 자신의 이름은 더욱 철저하게 타인의 이름 뒤로 숨어버리고 마는 유령작가의 운명이라니!

 

그렇다면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대필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이름 뒤로 자신의 이름을 숨기지도 않고 있는 김연수가 자신의 소설집에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다소 엉뚱하고 느닷없다고 여겨지는 표제를 붙인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밝혀내자면 이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2. 유령작가 흉내내기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지금(현대), 이곳(대한민국 서울)’을 무대로 하는 단편「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으로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소설에서는 무대가 영국의 런던으로 옮겨지고(「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다시 파키스탄의 험준한 히말라야 고산인 낭가파르바트로(「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그리고 중국 동북부의 하얼삔으로(「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계속 옮겨지면서, ‘이곳에서 출발했던 소설의 서사 공간은 저곳으로 계속 확장되어 나간다.

 

시간적으로도 지금에서 그때, 즉 한국 전쟁 당시로(「뿌넝숴(不能設), 「이렇게 한낮 속에 서있다」), 19세기 말엽인 구한말 시대로(「거짓된 마음의 역사」), 춘향전의 배경이 되고 있는 18세기 중반으로(「남원고사(南原古詞)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30년대로(「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로 숨가쁘게 타임머신 여행이 펼쳐진다.

 

소설 공간의 다양성은 작가가 직접 발품을 팔아서라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니 그리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2~3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시대상을 직접 체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니 이 소설집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시대는 작가에게는 분명 큰 문제가 되었을 터. 따라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직접 경험에 의존하기보다는 독서와 같은 간접 체험에 더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솔직한 작가인 김연수작가의 말에서 이를 스스럼없이 시인하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쓰기 위해서 는 그간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이 시점에 이르러, 문득,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깨닫는다. 머리는 이럴 때 숙이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다.

 

언제라도 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까닭은 그 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읽은 많은 책들이 이 소설집에는 숨어 있다. 하지만 그게 부질없다는 것을 안 이상, 어떤 책을 읽었는지 밝히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 책들을 통해 보다 더 심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을 위안으로 삼는다. (265, ‘작가의 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작가 스스로 작은 따옴표로 묶어 강조해놓은 라는 단어이다. 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책들을 읽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그 책들을 통해서 작가가 알게 된(또는 상상하게 된) 수많은 인물들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렇게 책에서 만난 인물들을 화자로 직접 내세워서 쓴 소설들로 이 소설집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전쟁에 중공군으로 참전한 바 있는 중국인 점쟁이(「뿌넝숴」), 조선으로 파견된 미국인 약혼녀 간호사를 찾아 데려오는 일을 맡은 미국인 탐정(「거짓된 마음의 역사」), 춘향을 짝사랑한 군뢰사령(「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일제 식민지 시대에 자유연애사상에 경도되었던 잡지사 기자(「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치하에서 부역한 혐의로 사형을 당하게 되는 여인(「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 등 시대뿐만 아니라 국적까지도 제각각인 인물들이 모두 라는 1인칭 대명사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 다섯 편의 소설들에서 소설가 김연수, 자신을 숨긴 채 의뢰인의 시점으로 글을 써나가는 유령작가의 글쓰기처럼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 대신에 1인칭 시점으로 서사를 펼쳐놓고 있는데, 그 기법과 문체와 세부적 사실들로 보자면 웬만한 유령작가들의 글보다 훨씬 치밀하고 철저하다.

 

예컨대, 독백체의 진술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는 「뿌넝숴」에서는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자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믿기게끔 수많은 한시들이 인용되고 있다. 서간문 형태로 씌어진「거짓된 마음의 역사」에서는 19세기 미국인들이 애송한 휘트먼의 시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당시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지녔을 법한 동양인 및 동양 문화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개화기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서는 당시 지식인들이 쉽게 접했던 일본 시가와 식민지 시절의 어휘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어서 이 소설 한 편만 뚝 떼어 읽는다면 지금이 아니라 그 당시에 씌어진 개화기 소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이니 그 솜씨가 정말 놀라울 뿐이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화자의 서술 기법과 문체와 구사하는 어휘까지도 달리 선택해서 그 시대에 꼭 들어맞춘 이러한 카멜레온식 변신은 현학 취미의 발로라기보다는 프로 유령작가처럼 보이기 위해서 소설가 김연수가 의도적으로 공들인 노력일 것이며, 따라서 이 다섯 편의 소설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소설집에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제목을 붙일 만하다.

 

그렇지만 유령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한사코 숨기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소설집의 표제로 삼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눙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설가 김연수가 겨냥한 지점이 단순히 유령작가 되기는 아님을 우리는 금세 깨닫게 된다. 그는 다름 아니라 유령작가 흉내내기를 하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질문 역시 자명해 보인다. 그는 왜 유령작가 흉내내기를 해야 했을까? 그가 유령작가 흉내내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역사 속에서 불러온 인물을 직접 화자로 내세운 이 다섯 편의 소설들에서가 아니라, ‘지금그때’, ‘이곳저곳이 서로 삼투하고 있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삶과 역사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는 나머지 네 편의 소설들에서 보다 분명하게 찾아질 수 있다.

 

3. 짐작과는 다른 삶과 역사

 

인간의 삶이란 어느 누구의 삶이든 간에 함부로 살아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의미가 주어져 있고 따라서 그러한 수많은 개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또한 함부로 간과할 수 없는 엄정한 의미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뻔한 문장이지만, 이것이 대개의 사람들이 삶과 역사에 대해 지니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 문장에서 삶의 의미는 운명으로, 역사의 의미는 진실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다시 요약하자면, 삶은 운명적이고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 는 문장이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언제나 삶은 운명적이고 역사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여는 첫 소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은 이 물음에 전혀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한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서른네 살의 사내는, 지하철에서 일년 전에 이혼한 전처를 우연히 만나 함께 북촌의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닌 끝에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헤어지고 만다. 서로 엇나가는 대화를 하면서 함께 걸었던 이 기이한 행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나중에 북촌의 세부 지도를 사서 들여다본 사내는 그 행로의 중심에 나무 한 그루, 즉 재동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는 수령 600년이 넘은 백송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연암 박지원이 자신의 재동 집 뜰에 손수 심었다는 나무 한 그루와 중국에서 그가 가져왔다는 지구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일년이 넘었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 부부의 이혼사유와 서로 엇나가는 대화를 하면서 전처와 함께 걸었던 꾸불꾸불한 북촌 골목길의 행로뿐만 아니라 연암 박지원 사후에 일어난 갑신정변과 개신교 전파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지배하는 힘 역시 우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비롯한 수많은 책을 남겼으며 조선 후기의 개화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울러 박지원은 벽장 속의 지구의와 뜰 앞의 나무 한그루도 남겼다. 그건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다. 나는 역사라는 이름의 위험천만한 폭약을 단숨에 폭파시키는 뇌관은 『열하일기』나 실학사상 같은 게 아니라 벽장 속의 지구의나 뜰 앞의 나무 한그루처럼 사소하고 하잘것없고 우연의 소산으로만 보이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만을 두고 본다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사이의 행로는 때로는 매우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들로 채워지곤 한다. (18,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필연으로 채워지는 운명적인 삶과 인과관계로 맺어지는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이러한 견지에서 보자면, 삶은 한낱 재미없는 농담에 불과하며 역사란 잘 짜여진 거짓말에 다름 아니다.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랑 동거하다가 그녀의 동생과도 우연찮게 관계를 맺게 되어 이별하게 되는 일본인 유학생이 화자로 나오는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역사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드러나 있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내가 갑자기 역사학을 공부할 마음으로, 영국행 JAL기 탑승권을 예매한 가장 큰 동기는 쓰기야마 토시란 광고영화 제작자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이런 쪽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부자도 아닌데 부자의 세계를 어찌 안담.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세상을 어떻게 그린담. 가진 꿈이 없는데 꿈을 어떻게 판담…… 거짓말은 들통나게 마련인데.’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역사학이란 내게 진실에 다가가는 도구였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거짓말이 들통나는 게 아니라 들통난 것들이 거짓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3,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역사에서는 거짓말이 들통나는 게 아니라 들통난 것들이 거짓말이 된다. 이 말은 아마도 역사적 사실들 하나하나는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 사실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시켜 하나의 끈으로 묶은 인과관계는 거짓말이라는 뜻일 게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연의 소산이니까. 이러한 우연으로서의 역사, 거짓말로서의 역사는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에 적절한 사례가 제시되어 있다. , 만일 이등박문을 저격하는 데 아주 사소한 우연이 개입해서 하얼삔역에서 안중근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다른 역에서 기다리던 우덕순이 했으리라는 것, 그런 경우 역사는 안중근이 아니라 우덕순을 영웅으로 기록했을 것이란 가상을 은퇴한 하버드대학교 교수의 입을 빌려서 들려주고 있는 것. 따라서 안중근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있었기에 이등박문은 저격되었고 마침내 조선은 독립을 할 수 있었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의 인과관계는 결국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역사의 진실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경우가 너무나 많기에 우리는 다만 짐작할 뿐인데, 이건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집의 한가운데 마치 바로 그 소설 속에 나오는 험준한 고산 낭가파르바트처럼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중편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보자.

 

여자친구는 죽으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모님, 그리고 학우 여러분! 용기가 없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야만의 시대에 더이상 회색인이나 방관자로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후회는 없어.” 이 유서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없었습니다라는 존칭에서 후회는 없어라는 비칭 사이의 거대한 틈 때문이었다. 그는 이 거대한 틈 사이에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없었습니다까지 쓰고 그 다음에 후회는 없어라고 쓰기까지 여자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에게 설명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자살하는 자신을 납득하고 있었을까? “후회는 없어는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뿐이었다. 결국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친구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를 생각했거나, 혹은 죽는 순간에도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없었다. 『왕오천축국전』의 원문을 상상하면서 주석을 다는 나나 내 일상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하는 그나 서로 목숨을 의지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짐작만 할 뿐인 원정대원들이 그런 점에서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저 서로를 짐작할 뿐이었다. 한 학생의 죽음이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그건 오해에서 비롯한 일일지도 몰랐다. (143~144,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소설로까지 써보았지만 자살한 여자친구의 죽음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는 죽기 전 여자친구가 대학 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빌려 읽었던 책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설산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조직된 낭가파르바트 등반 원정대에 참가해서 눈 덮인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서로 목숨을 의지해야 하는 사이이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 원정대원들 사이에서 는 정상 등정을 앞두고 실종되고 만다. 이 소설의 화자인 , ‘가 환각상태에서 자주 목격한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더불어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에 마침내 도달했으리라는 낭만적인 상상으로 의 실종에 따뜻한 후광을 더하고 있지만 이 또한 진실이 아니라 다만 짐작일 뿐이다.

 

, 우리가 여기서 살펴본 네 편의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게 역사든, 삶이든, 아니면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마음이든 사람들은 그저 짐작할 뿐이지 진실한 이해와 진정한 소통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유령작가 되기의 4요소 중 대필할 내용과 대필해서 써낸 글은 항상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놀랄 만큼 흡사한 결론이다. 앞서 살펴본 다섯 편의 소설들(역사 속에서 불러온 인물을 직접 화자로 내세운 소설들)이 유령작가 되기의 4요소 중 작가와 의뢰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그 불일치를 제거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음에 반해, 이 네 편의 소설들은 대필할 내용과 대필해서 써낸 글은 항상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함으로써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앞서의 소설들에서는 일관되게 유지된 1인칭 시점도 여기서는 1인칭 화자와 3인칭 주인공이 동시에 등장하는 분열된 시점으로 서사가 전개되거나(「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아예 3인칭 시점으로만 쓰여지기도(「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하는 등 의 뒤로 숨어 있던 유령작가의 존재가 드러나 버리고 만다. , 애초에 의도했던 유령작가 되기는 결국은 유령작가 흉내내기가 되고 만 것.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젊은 소설가 김연수는 인간의 삶과 역사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하여 수많은 책들을 읽는 동안, 우연의 소산이기에 항상 우리의 짐작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삶과 역사의 한계를 철저하게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책 읽기를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치부하고 다만 그 책들을 통해 보다 더 심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을 위안으로 삼는다고 아주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탓에 그의 소설 쓰기는 유령작가 흉내내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유령작가 흉내내기가 뻔히 드러났는데도 그가 자신의 소설집에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고 표제를 붙인 것은 오히려 이렇게 위악적인 고백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역사가 온통 농담과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런 뼈아픈 유령작가의 고백이 없었더라면, 자신 앞에 마치 낭가파르바트 설산처럼 우뚝 솟아 가로막고 서 있는 역사를 젊은 소설가 김연수가 어떻게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 며칠 굶은 짐승의 내장처럼 어둡고 습하고 꾸불꾸불한, 그러나 텅 비어 막히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이어지는 북촌 골목길을 닮은 삶의 우연한 행로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그가 설산을 넘어서고 골목길을 빠져 나와 다다른 눈부신 세계를 이미 알고 있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세계의 끝 여자친구』). 「뿌넝숴」에서 중국인 점쟁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책에 씌어진 얘기가 아니라 두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이야기,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이야기의 세계. 그런 이야기의 세계는 이 만만치 않은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태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따라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김연수 월드의 가장 기념비적인 소설집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c*****t 2010.01.26. 신고 공감 11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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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순간-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소설이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순간-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내용보기
1. 결정적 순간   인생에는 저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마치 내 마음 한 구석에 난 홈과 똑, 같은 모양의 조각을 찾아내, 그것을 홈에 끼워 넣는 그런 순간- 그래서 이제껏 조각나있는지도 갈라져있는지도 몰랐던 그 부분이 채워지면서 따뜻한 온기가 도는 그러한 순간 말이다. 더 이상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을 수 없다고 말해지는 그런 순간.   인생에 수없이 크
"소설이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순간-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내용보기

 

 

 

1. 결정적 순간

 

인생에는 저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마치 내 마음 한 구석에 난 홈과 똑, 같은 모양의 조각을 찾아내, 그것을 홈에 끼워 넣는 그런 순간- 그래서 이제껏 조각나있는지도 갈라져있는지도 몰랐던 그 부분이 채워지면서 따뜻한 온기가 도는 그러한 순간 말이다. 더 이상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을 수 없다고 말해지는 그런 순간.

 

인생에 수없이 크고 작은 결정적 순간들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어떤 때는 그것의 파동이 내 몸 전체를 뒤흔들어 명백하게 “바로 이거다!”싶게 민드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한참이 지난 후에 돌아보고 나서야 그것이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거다”싶은 순간의 그 대상은 때로 사람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고, 한 문장이기도 하다. 지금 이후의 내 시간을 모조리 바꾸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이런 강렬한 느낌은 그 대상에게 무한한 애정을 일으킨다.

 

나에게도 잊지 못할, 결정적 순간이 있다. 아프리카에 나홀로 뚝 떨어진 순간이라든지,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맨 처음 들었던 그 순간이라든지 대부분의 경우는 그 상황이 주는 황홀감과 당혹감에 취해 그것이 나에게 갖는 의의를 따져볼 틈이 없다. 훗날에야 돌이켜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허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내게도, 마치 운명 같은 확신으로 다가왔던 결정적 순간의 체험이 있었다.

 


 

 

 

2. 삶의 방식이 온전히 바뀌어버린다

 

첫 번째 체험은 초월자의 존재를 느낀 경험이다. 나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열 여덟살까지는 교회를 학교처럼 ‘출석’했다. 그러니까, 일요일이니까 가고, 가라고 하니까 가고, 믿도록 태어났으니까 믿는 그런, 사이비신자였다. 보통의 사람들도 위급하고, 벼랑 끝에 몰리게 되면 신의 존재를 찾기 마련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 당시에는) 일생일대의 가장 위급한 상황- , 전국의 학생들과 암기 실력을 겨루고, 빠르게 문제 푸는 속도를 견줘 대학입학의 ‘찬스’를 잡아야만 했을 때- 제 발로 교회에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 생황이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인문계 중하위권이라는 애매한 성적은, 인생을 바꾸고 싶은 욕망에 비추어 포기하긴 뭣하고 죽도록 노력해도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가능성일 뿐이었다. 서로 격려하던 친구들에게서 나홀로 떨어진 반 배치며 아직도 오래 앉아있기 힘겨워하는 체력, 거기다 비염까지! 내 안에는 내가 속해있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만이 득시글거렸다. 학교 경계 너머에 있는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데, 주변에 그 어떤 것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고 전의를 상실한 채 그렇게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분은 저 필요할 때만 찾아와 온갖 투정에 원망을 서슴지 않는 나 같은 비루한 신자도 기꺼이 포옹해주셨다. 혼자 있다는 고독감에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다는 확신에 이르자, 나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하등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서서히 내 신체와 삶의 방식이 완전히 새롭게 짜여지는 듯한 체험을 했다. 난 그저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는데, 이전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내 마음가짐의 문제라고도 하지만, 나는 구원을 받았으므로 그분의 도우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여 나는 당시로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학-그만큼 굉장한 대학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내가 가게 될 거라고 한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대학-에 입학해, 전혀 계획에 없었던 길로 ‘인도’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렇게 당황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느긋한 성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인생의 가장 큰 고비인 것만 같은 문제가 내 앞에 있다고 해도, 지구 밖에서 보는 분에게 그것은 얼마나 하찮은 것일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먼 미래를 미리 가늠해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그 이후에 내 앞에 펼쳐지는 수만 갈래의 길을 지나치면서, 미리 앞날을 계획하고 걱정하는 것은 그다지 유용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체득했다. 이렇게 어떤 결정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삶의 방식이 온전히 변화하게 된다.  

 

 

3. 진실을 쓸 수 없는 글, 그 너머의 상상력

 

두 번째, 결정적인 체험은 정말 뜻밖의 순간에 일어났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훌륭한 리포트와 논문으로 학업성취도를 높이려는 건전한 욕구로 가득했던 나는, 닥치는 대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바람직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실린 중편 소설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문체분석을 하라는 리포트 과제를 받았다. 친구 몇 명과 나는 과사무실에 모여, 소설을 프린트해 밑줄을 쳐가며 소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소설은 이전에 한번 우연히 접한 적이 있었으나, 첫 페이지부터 나오는 왕오천축국전의 한자어에 눈이 캄캄해져 세 페이지를 못 넘기고 덮은 소설이었다. ‘완전히’ 어렵겠다-는 답을 내놓고 읽어서 그런지 읽고 나서도 좀체 맥락을 잡기가 어려웠다.

 

5.18과 왕오천축국전이 왜 한 맥락에 있는 것이냐는 둥, ‘나’가 ‘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둥의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곧 우리는 이해의 실마리를 먼저 발견해, 득이양양하게 해석해주고 싶은 욕구에 불타올라 마치 숨겨진 비밀문서라도 해독하듯 경쟁적으로 텍스트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었다. 읽고 또 읽는 수밖에는. 물론 장편소설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언제 이렇게 텍스트를 열심히 읽었나 싶을 정도로 소설을 ‘읽어댔다’ 무언가 잡힐 듯 말 듯, 알듯 말 듯 유혹하는 텍스트가 어쩐지 도전적으로 느껴지기만 했다. 밑줄을 그어대던 연필 끝이 뭉툭해졌을 쯤, 다 읽은 소설을 내려놓았고, 다시 한번 읽기 위해 첫 장을 폈을 때였다.

 

그 순간, 아주 놀랍게도 소설 속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명료하게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모든 단어와 문장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정말이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SF도 아니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만, 실로 놀라운 독서 ‘체험’을 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든 구절과 단어들이 한 방향으로 배치되어 글을 읽어가는 눈길을 만들어나갔다. 그 순간 나는 텍스트와 내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취했다. 명료해지는 느낌. 가슴팍에 팍 안기는 느낌. 이것은 이때껏 그 어떤 소설을 읽었을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놀라운 재미였다. 소설의 세세한 결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그런 느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통 불가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는 군사독재시절로 정부가 시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힘으로 제압하던 시대였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주인공인 ‘나’는 가족들과도 원정대 팀에서도 홀로 동떨어져있는 상태다. 그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연애 소설을 쓰면서 더욱 고독한 존재로 변해가고, 겨우 욕설로 자기의 말을 내뱉었을 때도, “닥쳐, 닥쳐! 이 새끼야, 닥쳐!”라고 단번에 제지 당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짐작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짐작과 상상은 진실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해석을 요구하게 된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왕오천축국전』과 쓰여진 책들이 그러하다. 이미 쓰여진 것들은 상호간의 소통이 불가하다. “나는 이렇게 썼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그저 쓰여지지 않은 것, 쓰여질 수 없는 것에 대해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그’와 그의 시간을 해석해나간다.

 

세상엔 말할 수 있는 것만큼 말해질 수 없는 것이 많다. 사랑, 아픔 등 우리의 감정을 낱낱이 ‘진실되게’ 말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진실만을 쓰기 위해 감정적인 것을 베제 하고 사실(fact)만 언급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고스란히 쓰여질 수 있을까? ‘그녀에게 있어서의 나의 존재’, ‘유서를 썼을 때의 그녀의 심정’은 정확하게 알 수도, 납득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이 될 수 없다. ‘정상을 오른 것’이라는 사실은 기록될 수 있지만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은 기록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fact)이 진실일까?

 

그래서 그는 벌거벗은 산 낭가파르바트에 오른다. 마치 수사하나 덧붙이지 않은 사실(fact)이라는 개념의 시각적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그 등정 역시 실패하고 만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해서, 쓰여지지 않은 것에 진실이 있을까?

 

원문이 사라졌으므로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문장은 원문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쓰여지지 않은 것 역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상상력과 추측을 발동시킬 뿐이다. ‘『왕오천축국전』의 원문을 상상하면서 주석을 다는 나나, 내 일상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하는 그나 서로 목숨을 의지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짐작만 할 뿐인 원정대원들이 모두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쓰여진 것과 쓰여지지 않은 것,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이 혼동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이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다 이해하는 것이다. 주석을 다는 행위는 그런 것이다. 주석이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해석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해석을 채택하는 일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그 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다.

 

 

주석을 다는 해석자인 의 절망 깊숙한 곳에, 작가 자신의 절망까지 이어져있는 듯 느껴졌다. 가장 깊숙한 울음을 느끼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글은 결코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쓰여진 것은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두지만, 결국 작가는 끊임없이 진실되지 않은 도구로 글을 써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이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어느새 나에게는 작가 김연수와 해석자인 가 뒤섞여, 글로써 진실에 닿고자 애를 쓰는 그 사람과, 아무리 글을 써도, 해석해도 진실에 닿을 수 없다는 절망을 안고 있는 그 사람 모두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로 내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소설을 해석하던 그 날 밤, 짧고도 길었던 밤을 아마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절망을 발견했지만, 금세 처럼 진실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낭가파르바트 봉우리는 모든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고스란히 받은 채 벌거벗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슬픔과 절망 속으로 걸어가 따뜻하게 감싼다.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어지러운 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상상 말고도 따뜻하게 감싸고, 안아줄 수 있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때 그는, 우리는 도달하게 된다. 바로 거기.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갈 수 있는 곳, 문장이 끝나는 곳,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곳,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꿈. 다시 꿈이 시작되는 그곳에 말이다. 그렇게 나는 깊은 위안을 받았다.

 

 

 

4. 책을 읽어가는 즐거움

 

책을 읽는 행위는 마치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특히 소설책은 사회과학책처럼, 사실을 알려주려는 책처럼 명료한 언어로 쓰여져 있기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소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서는 여러 번 읽으며, 소설과 독자 사이에 문을 두드려야 한다. 때때로 나의 상태와 소설의 상태가 주파수가 딱 맞아 단번에 내게 제 본심을 꺼내놓는 소설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두드려도 도무지 내가 해석할 수 없는 언어와 주파수만 흘려놓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소설을 읽는 일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이미 한 번 해보았으므로, 굳게 닫혀있는 다른 소설의 문을 여는 일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며는 그 소설 자체가 주는 내용적 즐거움도 무척이나 크고 풍족했지만, 내게는 그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과정이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진짜 소설을 읽기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이제껏 읽은 책 중에 글 읽기에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난 이 소설을 떠올릴 것이다. 이 소설 덕분에 내 삶에 있어 소설은 이제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 되었으니까. 어제의 소설과 오늘의 소설이 더 이상 내게 같은 의미가 아닌 것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k*****c 2009.06.26.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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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넝쉐 (不能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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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아랑은 왜>나 <흡혈귀>와 김연수의 <굳빠이,이상>을 읽다보면 소설가에겐 왜, 어떻게 소설을 쓰느냐의 문제였겠지만 독자인 내겐 왜 소설을 읽는가의 문제가 된다.   작가 김연수는 김영하와는 다른 진지함을 갖고 있다. 예컨대 김영하가 진지한 이야기를 가볍게 톡톡 치듯 그 특유의 발랄한 문체에 담아낸다면, 그래서 일종의 토크쇼를 주도하는 가수인지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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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의 <아랑은 왜>나 <흡혈귀>와 김연수의 <굳빠이,이상>을 읽다보면 소설가에겐 왜, 어떻게 소설을 쓰느냐의 문제였겠지만 독자인 내겐 왜 소설을 읽는가의 문제가 된다.   작가 김연수는 김영하와는 다른 진지함을 갖고 있다. 예컨대 김영하가 진지한 이야기를 가볍게 톡톡 치듯 그 특유의 발랄한 문체에 담아낸다면, 그래서 일종의 토크쇼를 주도하는 가수인지 탤런트인지 성격이 불분명한 만능 엔터테이너의 요소를 갖고 있다면 김연수의 글은 단숨에 읽어내기 벅찬 문체이다. 물론 과문한 탓이긴 해도 국어 교사인 나로서도 읽기가 힘들 정도로 낯선 단어가 많다. 그것은 이문구 선생의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입말이 어려움이 아니고 아마도 오랜 시간 사전을 붙들고 끙끙거렸을 것인 글말의 어려움이다.   독해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독자에게 숨고르기를 할 시간을 주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굳빠이, 이상> 이 그랬고 이번 소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그렇다.    흔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책들은 조금 양심이 찔리며 반성적 사고를 하게 하거나 순간적 동의를 하게 한다.  해서 어릴 적 엄마 실컷 혼나고 서러움 반, 자책 반으로 우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고 그러저러한 감동을 받게 된다.  해서 그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도덕성의 대리만족을 한다.   하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이런 소설들은 내게 지독한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이 들어서도 물정 모르는 아이 같은 내게 세상이란, 그리고 텍스트란 기표와 기의가 1:1 대응하는 사실적 집합체일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부넝쉐 (不能說)’,  ‘부넝쉐 (不能說)’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란 얼마든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해지는 것이라고, 당신이 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가 진실일 수도 있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당신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건 당신 몫이고 나는 나대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김영하의 <아랑은 왜>를 연상하게도 하는 소설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은 알고 보니 춘향이는 토호들이 발호하는 남원골에 새로 부임해 개혁의 칼을 휘두르는 변사또에 대한 제거 음모이기도 하고, 춘향의 입장에서 보면  내게 사랑을 맹세하는 남주기 싫은 하지만 하필 서울 도련님보다 더 늦게 만난 아까운 인연이다.    안중근의 이등박문 암살은 애당초 두 곳의 역에서 대기하던 저격조 중 앞선 역의 거사가 성공한 것일뿐 역사의 필연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운세나 봐주는 중국인 노인은 한국 전쟁에 참여해서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는(  ‘부넝쉐不能說’) 치열한 삶을 겪었고 그것은 당신이 믿든 아니든 어차피 말할 수 없는 우연과 필연이 복합된 사건이다.       김연수의 책을 읽는 것은 교과서나 딸딸 외우며 공부하다가 내공이 깊어야 푸는 문제를 만났을 때 같은 당혹감을 느낀다.  해서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나는 절망감으로 가득해서 그토록 지루해 마지않는, 거들떠 보기도 싫은 최루성 소설에, 드라마 게임에, 그것들의 달콤한 슬픔에 젖어들고 싶어진다.         
l******r 2005.06.2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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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김연수의 "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김연수의 "나" " 내용보기
는 처음에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다가 좀 낭패를 보았다. 첫 작품을 읽었는데,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거지? 그 동안 머리를 너무 안 써서 내 머리가 굳었나... 아니, 김연수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벽에 머리를 짓찧을 일이었다. 좀 쉬고 나서 다시 잡은 두 번째 글, 다행이다. 오~ 이해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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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작가>는 처음에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다가 좀 낭패를 보았다. 첫 작품을 읽었는데,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거지? 그 동안 머리를 너무 안 써서 내 머리가 굳었나... 아니, 김연수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벽에 머리를 짓찧을 일이었다. 좀 쉬고 나서 다시 잡은 두 번째 글, 다행이다. 오~ 이해가 된다. 그래도 좀 어렵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세 번째 글, 네 번째 글... 아, 잘 읽힌다. 감도 잡힌다. 그런 것이었군. 다섯 번째 글에서 완전 넘어갔다. 넘 재밌다. 미치겠다. 뻑 갔 다.............................................. 나머지 네 개의 글도 아주 좋다. 정말 재밌다. 다 읽고 나자, 너무 허전하다. 뭔가가 더 있을 거 같은데, 벌써 끝나버리다니, 정말 아쉽다. 음... 나머진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군. 오랜만에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다. 김연수의 글은 늘 보면, 참 진지하다. 정말 인생을, 글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간혹은 김연수의 글을 대하며 마음을 다잡는 경우도 많다. 이번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김연수는 나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연수의 "나"가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라 하더라도, 김연수의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힘차게 심장이 뛸 것이다. 마치 김연수가 우리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 같다. "인생은 장난이 아냐. 글도 마찬가지야.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라고. 그래서 진지한 김연수의 글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 작품집에는 멋진 그림과 함께 9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뿌넝숴(不能說)> <거짓된 마음의 역사>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남원고사(南原古詞)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저기요, 있잖아요... 이건 비밀인데요... 진짜로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안에는 진짜 유령이 살고 있어요~"
g******i 2005.10.0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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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여러 단면들, 유령의 눈을 빌려 그 틈을 응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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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여러 단면들, 유령의 눈을 빌려 그 틈을 응시하다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제목과 동명의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작품집의 제목에 ‘유령’을 차용했을까. 그 이유는 소설집에 실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확연해진다. 유령은 시공간을 가로지른다. 그 유령이 바로 ‘작가’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소설은 작가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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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여러 단면들, 유령의 눈을 빌려 그 틈을 응시하다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제목과 동명의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작품집의 제목에 ‘유령’을 차용했을까. 그 이유는 소설집에 실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확연해진다. 유령은 시공간을 가로지른다. 그 유령이 바로 ‘작가’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소설은 작가의 체험이 담긴 형상물’이라는 순진한 상식을 뒤엎는다. 하나같이 30대의 작가 김연수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인물들은 모두 낯선 존재들이다.

 「뿌넝숴」의 주인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병사이다. 「거짓된 마음의 역사」의 주인공은 19세기 구한말의 조선에 약혼녀를 데리러 온 미국인 탐정이고,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는 한국인과 동거하는 일본 유학생이며,「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의 배경은 1930년대의 조선이다. 하나같이 지금-여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과거의 배경 속에서 낯선 타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 낯선 타자들은 작가 김연수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김연수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목격하지 않은 과거의 배경 속에서 역사책을 통해서 ‘상식’과 ‘정설’로 굳어진 활자 속에 묻혀진 ‘개인’들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응시한다. 중국인 병사를 통해 지평리 전투라는 한국전쟁 중의 한 전장기록에 묻혀진 허무한 사랑이야기를 전하고, 구한말의 조선마을을 응시하는 눈을 통해서 낙후된 조선의 모습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하는 미국인을 그린다. 또한「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와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을 통해서 역사기록에 대한 가정(If)을 전개한다. 이 낯선 배경과 인물들, 역사에 대한 가정을 통해서 그는 기록과 상식에 가려진 틈새를 응시한다. 그 틈새에서 파생되는 것은 철저한 개인의 이야기이다. 유령, 즉 귀신은 늘 말하지 못하는 ‘입이 없는 것들’을 대변한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숱한 귀신들도, 햄릿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유령도, 모두 말하지 못한 자의 한을 매개로 현실에 귀환한다.

 김연수는 1990년대 초반에 청춘을 보냈으며, 1990년대 중반에 등단했다. 프로필로만 보면 철저하게 ‘1990년대 작가’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일련의 소설들 -『가면을 가르키며 걷기』(1994), 『7번 국도』(1996),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2) -을 발표한 이후에 ‘유령’이 되기를 자처한다. 개인의 경험을 통한 말하기란 언제나 왜곡과 반론에 부딪히기 쉽다. 이러한 회상과 재해석 이후의 기록 과정에서 간과되는 것들은 늘,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이다. 기록은 언제나 다수와 승리자의 전유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러한 기록과 해석의 한계를, 김연수는 유령이 되어 넘어서는 시도를 행한다. 유령을 자처함으로서 기록에 묻혀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스스로 발굴하며, 상상력을 덧붙여 재창조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몸짓들은 현실에 맞서는 직접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누구나 활자가 역사로 굳어질 때의 불완전함을, 개인의 기억이 가지는 한계를 알고 있지 않은가.

 김연수가 자처하는 유령의 의미는, 타자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자 하는 ‘다가섬’의 은유인 동시에, 역사가 자행하는 폭력에 대한 작가적 저항의 한 방식이며, 묻혀버린 것들과 응시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개인과 개인, 역사와 개인, 기록과 진실 사이에서 이 유령들은 늘 배회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틈새에 묻힌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령작가의 소설들이, 여기에 있다.

YES마니아 : 로얄 2*****h 2009.04.2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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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 입니다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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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문헌과 기록들을 이용해 그의 나름대로의 독특한 도입과 전개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다   단편 하나하나를 한번에 휙 읽지 못하고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화자가 한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과 영국에서 동거하는 일본인.. 한국인 작가와  마주 앉아 점을 봐주는 중국인.. 한국으로 떠난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한국에 온 미국인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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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문헌과 기록들을 이용해

그의 나름대로의 독특한 도입과 전개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다

 

단편 하나하나를 한번에 휙 읽지 못하고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화자가 한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과 영국에서 동거하는 일본인..

한국인 작가와  마주 앉아 점을 봐주는 중국인..

한국으로 떠난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한국에 온 미국인등등...

그가 말하고자 했던 상황과 맞는 다양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글을 풀어가는 방법은

대화하는 문구 ,편지를 쓰는 형식,스스로 독백하는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혼한 부부가 우연히 만나 가회동을 걸어가며 발견하게 된 한 나무를 통해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개화기때의 이야기를 하고..<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농담>

인천상륙장전과 인해전술이라고 했던 중국의 남하의 이야기가 손가락 잘린 점장이가 한국작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전해지며..<뿌넝쉬>

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고 그들의 문화를 전파할때 모든 민족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보다는 그들의 온화한 웃음뒤에 인간의 기본 욕망이 개입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한 의뢰인의 약혼녀를 찾아 한국으로 파견된 미국인 탐정을 통해 이야기하고.. <거짓된 마음의 역사>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몇행의 이야기를 낭가파르바트 원정의 이야기로..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춘향전을 색다른 시각으로..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하얼빈에서의 안중군의 이등박문 저격사건에 대한 시각와 의미를 장애가 있는 동생의 결혼을 위해 중국으로 온 형제의 이야기로..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

 

이번 소설집에는 인간의 진실을 찾아, 기록된 사실 이면에 숨겨진 굴곡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9편의 연작이 수록되었다. 작가는 구체적 사실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고 상상하고 짐작하면서 역사와 문헌에 씌어진 것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발군의 역량을 보여준다.
                                                                          - 책소개에서...-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거짓말장이가 되버려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지고

유령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색에 동화되며 즐기게 된 매력있는 글들이었다


우연히 김연수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보다가

이 소설집을 다시 꺼내보게되었다.

리뷰를 쓴 것이 있나 찾아봤더니 지금 블로그에는 없고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 개인홈피에 2008년 3월에 올렸던 글이 있어 옮겨와 봤다.

당시 김연수의 이 단편집을 읽으며 한번 읽고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그의 신작들도 좋지만 예전 그의 이러한 단편집들이 좋아서 옮겨본다..

뭐 지금도 그리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예전 글이라 그저 메모 형식으로 쓴 것 처럼 어설프다..

그래도 그때의 느낌 그대로가 좋을 것 같아 그냥 옮겨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2.07.25.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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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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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김연수라는 작가를 분류하자면 그는 正派다. 김연수는 금기를 뛰어넘지 않는다. 하지만 치밀하게 인간의 내면을 파헤친다. 깨끗하게. 정밀하게.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고.그가 해석하는 세계는 넓고 깊다.그는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우리의 내면은 잘게 썰리고 분류되어 어둠하나 없이 그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따뜻한 냄새가 단어 하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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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김연수라는 작가를 분류하자면 그는 正派다. 김연수는 금기를 뛰어넘지 않는다. 하지만 치밀하게 인간의 내면을 파헤친다. 깨끗하게. 정밀하게.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고.
그가 해석하는 세계는 넓고 깊다.
그는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우리의 내면은 잘게 썰리고 분류되어 어둠하나 없이 그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따뜻한 냄새가 단어 하나 하나마다 배어있다.
그의 소설에는 유혈이 낭자하지 않는다. 자극적이지 않다. 잔잔하다. 부드럽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잘 표백되고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는 기분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같은 농담'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 결코 익살과 농담으로만 만들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살아간다는 자체가 무거운 농담이다. 웃을 수도 없고 울수도 없는, 하지만 그렇다고 웃지 않을 수도 울지 않을 수도 없다.
'뿌넝쉬'에서는 전쟁터에서 자란 억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붉은 생명력으로 가득찬 이 이야기는 너무도 거칠다.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은 춘향전을 새롭게 해석은 신선한 작품이다. 변사또의 역사는 김연수에 의해 누명이 벗겨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邪派 적인 성향이 다분한 나로서는 약간 밋밋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금기시 된 것을 조롱하며 규범을 엿 먹이며 컴컴한 어둠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j******3 2011.09.0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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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독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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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집.보통 소설집의 제목으로는 소설집에 있는 소설 중 대표성을 가진 소설의 제목을 사용한다. 하루키, 김영하, 김중혁, 김금희, 김상중 등등과 더불어 김연수 작가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소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어디선가 누락된 건가란 생각을 했으니.그런데 알고보니 누락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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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집.

보통 소설집의 제목으로는 소설집에 있는 소설 중 대표성을 가진 소설의 제목을 사용한다. 하루키, 김영하, 김중혁, 김금희, 김상중 등등과 더불어 김연수 작가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소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어디선가 누락된 건가란 생각을 했으니.

그런데 알고보니 누락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작가의 말에 여기에 대한 힌트가 있다. 그런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쓰면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고,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나'라는 존재는 이미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으니 '유령'이라도 되어 글을 쓰겠다는 뜻인가?

1인칭. '나'. 내 눈으로 바라본 세계. 이제 안녕이다. '나'로만 구성된 소설집을 한권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거짓말쟁이가 돼버렸으니.
이 책에서 '나'는 너무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좀 어렵게 됐다. 그 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이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나'는 유령작가가 됐다. 더 많은 이야기. 이제 내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잠도 안 온다. (p.266)


YES24의 책 소개를 보니 유령작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군.

'유령작가'의 사전적 의미는 대필작가(ghostwriter)이다. 작품 뒤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소설이라는 허구의 시공간을 움직이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단순히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써줄 사람이 없기에 소설이 되지 못한 것'을 자신이 쓸 수밖에 없다는 꿈과 열정이 담긴 글쓰기이다. 구전되는 이야기 바깥의, 문헌에 기록된 문장들의 행간에 담긴 진실과 거기 숨겨진 무수한 '나'의 흔적을 치밀하게 그려보려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개인과 사회가 서로 반향하고, 기억은 다채로운 무늬를 보여준다.

모두 9편의 이야기가 담겨진 책이다. 작가의 말처럼 온갖 구라로 된 이야기들인데, 전혀 구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운 한자들과 일어가 종종 나오는데, 책을 읽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알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이런 한자와 일어들 때문에 어쩌면 이 책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조금 어렵기도...

9편의 소설을 읽었는데, 음 뭐랄까, 여운 같은 것들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이야기가 딱 끝나는 느낌이랄까. 그냥 그렇구나라는, 그래서 죽었구나, 그래서 그런 결말이구나,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책 속의 '나'도, 그리고 타인도 이해할 수 없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 유령독자가 되는 길이 아닐까?


YES마니아 : 골드 h******i 2019.03.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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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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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식대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그를 유령작가로 만들어버린 수많은 '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우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이야기 속) 나는 한 그루 나무에 대해 생각한다. 그 나무를 기점으로 전처와 걸었던 길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얼마간의 고뇌 후 그는 깨닫는다. 이 모든 게 우연이란 사실을,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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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식대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그를 유령작가로 만들어버린 수많은 '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우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이야기 속) 나는 한 그루 나무에 대해 생각한다. 그 나무를 기점으로 전처와 걸었던 길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얼마간의 고뇌 후 그는 깨닫는다. 이 모든 게 우연이란 사실을, 그런 우연 따위에 질문을 하고 해석을 부여하는 따위의 일은 부질없다는 사실을.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일단 일어난 일들은 그 자체가 사실로 증명되는 것이다.'(p.19)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은 쓰잘데기 없는 거짓말일 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재생산해낸다.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실재하지 않는, 거짓말로 가득찬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우리는 자주 삶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일화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꿈에 의미를 부여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알기 위해 손 위에 그어진 선 몇개를 해석한다. 심지어 길 이름까지 그 순간에 적용시키려한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듯이, 모든 일이 다 짜여진 운명이라는 듯이. 그러나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일뿐이다. 삶은 어떻게도 바뀔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혹은 읽고) 있는 순간에도.

 

삶은 그렇기 때문에 재밌는 게 아닐까?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p.61) '뿌넝숴'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얘기하듯 삶은 살아가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뿌넝숴에서 한 편의 소설같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할아버지의 탄식대로 이 순간보다는 기록된 역사에 열광하지는 않는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을지 모르는 역사 속에서 진짜 삶의 이야기는 점점 사라져가는 건 아닌지.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세상은 유령의 세상일지 모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일이 실상 진실이 아닌 세상.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작가이기에 김연수는 끝없이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내야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는 여지를,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과 다른 (그래서 스스로 거짓말이라고 밝힌) 이야기로 보여준다. 춘향전을 재해석하고, 안중근이 우덕순이 될 수도 있었다 말한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희망어린 어조 따위 전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세상에 대해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에 질릴 무렵, 우리는 이 세상이 수많은 우연의 합으로 이루어졌음을, 그렇게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골드 z*****x 2009.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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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진가를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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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젊은 작가 중에 주목할 만한 문장력을 가진 작가는 김연수뿐이다, 라고 누군가(대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했다. 당장 서점에 달려가서 산 것이 이 책인데, 단편 읽는 것에 워낙 약해서 두 편만 겨우 읽고 몇 년을 고이 모셔놨다.   제일 앞에 등장하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읽고 아, 쿤데라적이군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옆에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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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젊은 작가 중에

주목할 만한 문장력을 가진 작가는 김연수뿐이다, 라고

누군가(대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했다.

당장 서점에 달려가서 산 것이 이 책인데,

단편 읽는 것에 워낙 약해서

두 편만 겨우 읽고 몇 년을 고이 모셔놨다.

 

제일 앞에 등장하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읽고

아, 쿤데라적이군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옆에 있으면 확 패주고 싶은 능청스러운 남자의 말투 때문에

게다가 그 남자의 농담 때문에.

 

몇 년 후 갑자기 이 단편이 기억나서

먼지를 후후 불며 책을 꺼냈다.

어떤 일 때문에 기억난 건데 그 일이 뭔지 모르겠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한 거다 라고 쓰려는데

방금 기억났다. 어떤 놈 때문에 기억이 난 거다.

그 농담만 즐겨하는.

 

아무튼 그걸 계기로 김연수 소설집을 읽으면서

묘한 경험을 했다.

대단히 지식적이고 잘 짜여진 구성인데

나는 자꾸 지겨워서 책을 덮고 싶었지만

끝이 너무 궁금해서 그럴수가 없었다.

이 책은 각 단편마다 기막힌(과연?) 반전을 담고 있다.

쿤데라적 웃음을 유발한다.

 

자꾸 그러니까 쿤데라 책이 읽고 싶어진다.

 

: 처음 두 단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것들은 좀 더디 읽혔다.

 

s********4 2008.08.22.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