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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선생으로 모시는 사람의 한마디는 제법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국민일보에서 내건 1억원 고료의 당선작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김형경 저)>에 대해 장정일은 ‘상금의 액수와 소설의 수준이 별 상관이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고 혹평했다. 같은 저자의 <세월>에 대해서도 그는 나이도 어린 사람이 자기 인생사를 소설로 꾸민 처사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때 내가 갖게 된 김형경에 대한 편견은 꽤 오랜 기간 나를 지배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산 건 집 앞의 비디오 대여점이 문을 닫은 때문이었다. 비디오와 더불어 책도 대여한 집이었기에 책과 테이프를 싼 값으로 방출을 했는데, 좀 늦게 간 탓에 살 게 별로 없어서 에로비디오와 함께 집은 게 바로 <새들은...>이다. 전직 운동권들이 민주화 시대에 겪는 혼란을 그린 이 책은 주제의 진지함만큼 내게 두통을 유발했고, 주인공 중 하나인 운형이 두통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대목에서는 그 두통이 최고조에 달했다. 확 때려치울까 하다가 인내심을 발휘해 끝까지 다 읽은 건 보람이 있었는데, 그건 책이 뒤로 갈수록 재미있었고, 그럼으로써 김형경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정일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이 정도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과 내공이 필요했으리라. 데뷔작에서부터 이런 역량을 보인 그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소설가가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이데올로기도 꿈도 이상도 다 삶을 위해 있는 거였어”(2권 250쪽)라는 다소 식상한 결말을 이끌어 내는 것 말고도, 내가 생각한 이 책의 단점은 주인공 다섯 명의 사랑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는 거다. 민화(여)는 운형을 좋아하나 말하지 못하고, 시현(남)은 민화한테 결혼하자고 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랬던 시현은 은혜에게 집적거려 몇 달 사귀다 헤어지는데, 그건 은혜가 형조를 한결같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럼 형조는? 은혜를 좋아했지만, 자기 마음을 끝내 말하지 못한다. <광식이 동생> 어쩌고 하는 영화에서 이요원이 말한대로 여자는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는지라 은혜와 형조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게 안타깝다는 게 아니라 세상에 널린 게 남자와 여자인데 같은 써클 친구일 뿐인 이들의 사랑이 왜 그 안에서만 돌고 도는가 하는 게 내 불만이다. 무슨 뱀꼬리잡기도 아니고 그게 뭔가?
한가지 더 맘에 안드는 건 책의 제목이다. <새들은...>이란 책의 제목이 주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본문에 나오는 다음 설명은 실소를 자아낸다.
“새들이 울 때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는 거 알아?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까마귀도 소쩍새도...”(1권 223쪽)
우리나라에서 새의 이름은 대부분 우는 소리를 따서 지었으니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신기한 듯 민화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가 난 더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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