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김춘수는 ‘도덕경 비밀클럽’의 핵심 멤버입니다. 이 비밀클럽에는 시인 박남수, 유치환, 서정주, 유하를 비롯하여 《토지》의 박경리까지 모두 멤버입니다. 이들은 모두 노자 클래스에서 비밀수업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비밀클럽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좀 더 주도면밀한 특단의 수사가 필요합니다. 이 해괴한 주장의 주인공은 《옛 공부의 즐거움》의 저자 이상국입니다. 있지도 않은 ‘비밀클럽’을 들먹이다 못해 특단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 황당함에 배를 잡고 쓰러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 이상국의 예리한 눈에 포착된 증거가 그의 주장을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먼저 핵심 멤버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꽃〉입니다. 그러나 이는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를 베끼거나 패러디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덕경의 첫머리는 이러합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어려운 한자는 없으나 해석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몇 년 전 도올의 노자 강의가 ‘개그쇼’일 뿐이라고 맞장 뜬 평범한 아줌마 이경숙과 도올의 논쟁이 아니더라도, 도덕경은 알듯 말듯한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경 비밀클럽’ 핵심 멤버인 김춘수는 시로서 절묘하게 그 뜻을 풀이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無名 그는 다만 / 한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天地之始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有名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萬物之母 세상은 이름 없이 시작되었지만, 이름이 세상을 낳았다는 이 오묘한 뜻을 김춘수는 현대어로 완벽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시인 박남수도 이 클럽의 평범한 멤버 이상의 간부급입니다. 그의 시 〈새2〉와〈새3〉을 연속으로 봅시다. 새는 울어 / 뜻을 만들지 않고, / 지어서 교태로 /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새의 울음이 아름다운 건, 그 뜻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새가 예쁜 건 교태를 지어 사랑을 가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절로 아름답고 예쁘다. 아, 저 새 속에 아름답고 예쁜 무엇이 있겠구나. 포수는 그걸 붙들려고 총을 쏘지만 피에 젖은 새만을 손에 쥘 뿐이다. 아마 박남수는 도덕경의 이 구절에 심히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天下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 천하가 모두 아릅답다고 알고 있는 것이 위미爲美(꾸며진 아름다움)이며, 이것은 꼴사납다(나쁘다). 천하가 모두 선하다고 알고 있는 것은 위미爲美(꾸며진 선)이며, 이것은 선이 아니다. 그 외에도, 유치환의 〈바위〉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을, 서정주의 〈꽃밭의 독백〉은 '천문개합天門開闔 능무자호能無雌乎를, 박경리의 〈대추와 꿀벌〉, 유하의 〈사랑의 지옥〉은 총욕약경寵辱若驚 귀대환약신貴大患若身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상국의 《옛공부의 즐거움》을 읽는 즐거움을 전해드리기 위해 책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옛공부가 어찌 즐거울 수 있는지, 그 실례를 보여드리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제 즐거움을 전할 길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문장에는 고문도 없고 금문도 없다던 연암의 말이, 비록 고문에 천착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저는 문자 그대로 문장에는 옛글이나 지금의 글이나 구분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문장이든 지금의 문장이든 결국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옛문장과 옛사람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즐거움이든 인생의 깨달음이든, 그 무엇이든. 이 책은, 옛공부든 무엇이든 자신의 눈으로 진실되게 바라볼 때에 진정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누구에게나 옛공부가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이상국이 옛공부가 즐겁다고 말한 것은, 옛공부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 맛을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노력과 지식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즐거움도 밑천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추사체가 있기 전에 옛서체의 원형을 찾기 위한 추사의 노력이 먼저 있었듯이 말입니다. 저자로부터 공부하는 자세, 그리고 즐거이 세상 사는 법을 한 수 배웠습니다. |
|
얼마전에 읽은 박철상의 <세한도>를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세한도의 한 폭 그림과 문장을 통해 한 사람의 삶과 고민을 더듬어보는 소중한 경험을 가져다 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도 세한도를 본 뒤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한도의 주인공인 추사는 물론 최치원, 안견, 김홍도에 서화담, 박지원, 소동파에 공맹과 노자, 부처님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전을 통해 옛글, 옛그림, 옛사람과의 귀중한 만남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또한 그 만남이 일상적 고전의 텍스트 내용을 설명하는 형식의 만남이 아니란 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고전을 매개로 저자의 개인 체험과 상상, 사회적 현상을 결합시켜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자유자재로 시공을 드나들면서 다양한 스토리텔링 형식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말 당나라 유학생이였던 고운 최치원의 신라로 돌아올 때의 마음을 저자의 감정이입 방식으로 실감나게 상상하고 전달해 준다. 시인 김춘수와 서정주, 박경리, 유치환의 시세계에 나타난 사상을 분석하고 나서 이들 모두 노자 도덕경을 통해 맺어진 도덕경 비밀클럽의 클라스메이트였다는 엉뚱한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구름이 흐르듯 천천히 거닐며 음미하게 만드는 묘미를 가지고 있다. 한시에 옛 그림중에 익숙하지 못한 내용들이 있어 따라잡기 어려운 부분도 가끔씩 발견된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기반으로 한 분야를 깊게 파고 들 때 비로소 이러한 독서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옛그림과 작품들을 보다 색감있고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인생 별 거 있어? 잘나도 한세상 못나도 한세상, 흥과 맛과 멋에 취해 인생 해피하게 사는 거지, 뭐.”
흥과 맛과 멋을 그리기 위해 역사 속을 소요하는 선지식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리로 불러들인 뒤 피돌기를 시켜 생생하게 복원해 내고 있는 '옛공부의 즐거움'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현학과 고답으로 중간중간 내용을 건너뛰게 하겠거니 했던 선인들의 문장은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386세대의 입말로 바뀌어 편안하게 읽혔다. 특히 옛선인들을 상대로 번개를 날려 이루어지는 머리말의 모임 이야기는 그 엉뚱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책을 펼쳐들자마자 혼을 쏙 빼놓는다. 톡톡 튀는 대사가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어지는 번개모임의 담론은 옛글과 그림, 선인들의 삶이 실어내는 묵직하면서도 심오한 예술혼을 넉넉히 아우르는 가운데 현대를 사는 도반들의 취향에 맞게 다듬고 즐기면서 놀아보자는 의도와 함께 저자의 만만찮은 내공을 짐작케 한다.
간혹 한시 같은 게 튀어나와 한자하고는 거리가 먼 내 발목을 살짝 잡아채기는 했어도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각 장에 등장하는 선인들의 다양한 생애가 여느 소설 못지않은 탄탄한 서사적 구조로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구사하면서 긴박감있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예술혼의 발현에 올인한 선인의 발자취를 쫓아 줄없는 거문고 소리에 에워싸여 문자향이 넘쳐나는 겹겹의 생을 소요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해 준 이 책에 기꺼이 별다섯을 주고싶다.
[인상깊은구절] 망망대해를 허우적대는 붕어 한 마리의 외로움. 뒤집어 보면 무한을 껴안는 저 외로움. 그의 그림에 그토록 눈길이 끌리는 것은 그가 내질러 놓은 화의의 깊은 출렁임에 대한 내 생애의 멀미일지도 모른다. 물고기 한 마리의 고독으로 나를 품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
|
주문한지 오래됫는데 아직 다는 못 본 책이다. 읽으면 왠지 똑똑해지는거 같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좋은책이다. |
| 책이 주는 기쁨은 여러가지지만 그 중 제일 가는 것은 책에 나오는 글이 오래도록 몸 속에 남는 듯한 기분을 가질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머리가 아니라 몸 속에 말이다.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고, 행복해서 가슴에 손 한 번 대고, 읽다가 무지한 자신의 부끄러움에 손을 맞대어 비벼대고. 다 읽고나서도 어쩐지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아서 책장이 아니라 책상 한 쪽에 모셔두었다. 둔 것이 아니라 모셔둔 것은 저자에 대한 존경 뿐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라는 내 자신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 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책에서 저자는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고 있다. 단순하게 지식을 드러냄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 사람의 느낌이 그토록 비슷한 것에 무릎을 치는 감탄과 함께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고 있다. 금강경을 김지하의 <칼아>를 통해 보여주고, 노자를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들의 글귀에서 쉽게 아주 친근하게 찾아 보여준다. 그뿐이랴. 동서양, 옛날과 지금 그리고 미술과 문학. 그는 시공과 분야를 넘나들며 이 세상에 존재했던, 존재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와 느낌이 같음을 그래서 쉴새없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함을 또한 다른 사람들도 느끼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동의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자청한다. 아는 데서 오는 기쁨을 그것도 은근하게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을 곁불쬐는 식으로라도 맛보는 기회는 흔치않다. 더우기 그 기쁨을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몰래 손을 뻗어 훔치며 느끼는 희열이라니. 저자의 글에 홀려, 지식에 놀라, 심미안이 부러워 '옛공부의 즐거움'에 나오는 또 한 권의 책인 각묵스님의 '금강경역해'를 저자의 창고에서 훔치듯이 덜컥 구입해버렸다. 지금부터는 '옛공부의 즐거움'을 참고서 삼아, 저자인 이상국 선생을 과외선생 삼아 '금강경역해'를 읽어야겠다.칼아> |
|
요즘 보기 드문 옛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해박한 전문지식이 돋보이는 좋은 책인 듯 하다. 옛날과 오늘날의 대비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고전작품에 대한 낯설음으로 인해 그저 지은이의 이끔에 따라나설 수 밖에 없지만 배우고 익히면서 고전에 대한 나의 앎도 넓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