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젤라즈니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신들의 사회(Lord of Light)"나 "내 이름은 콘래드(This Immortal)"와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작품으로 SF물이 많은 젤라즈니의 번역서 중 몇 안되는 판타지 번역서입니다. 저는 처음 1페이지를 읽는 순간 이미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젤라즈니의 명성을, 그리고 국내 유일의 젤라즈니 번역자 강수백씨의 훌륭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방의 전령"과 맞서 싸우기 위해 돌아온 "동방의 전령" 딜비쉬는 엘프족 셀라의 마지막 후예로 사악한 최고마법사 중 하나에게 지옥으로 추방당한 뒤, 200년 만에 돌아옵니다. 지옥에서 돌아올 때 그는 "외포의 주문"을 비롯한 지옥의 암흑 마법 몇가지를 가지고 그리고 "블랙"이라는 이름의 강철로 되고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악마 말(馬)에게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넘기고 친구가 되어 함께 돌아온다는 첫 설정을 읽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독창적이고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야기 전개 역시 자연스럽고도 즐거운 작풍으로 국내 여타의 질낮은 판타지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문학 작품입니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기존 단편들을 재구성하여 출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젤라즈니 작품들 중에서는 비교적 최신의 출간이지만) 오늘날 감각에서 보아도 매우 현대적인 센스와 분위기를 지닌 신비로운 책입니다. "신들의 사회"만큼의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원래 이 책이 딜비쉬에 대한 여러 단편을 이어놓은 책이니만큼 그런 기대는 옳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묘하게도 "신들의 사회"에 등장한 것과 어감이 같은 "1세대"의 반신, 반마법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젤라즈니 최대의 논란작들인 앰버시리즈보다는 더 훌륭한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 앰버시리즈는 의외로 실망을 한 적이 있어서... 본서 딜비쉬는 현학적인 젤라즈니 특유의 분위기와 한번 패배한 신적 존재(프로메테우스)의 부활이라는 상투적인 주인공상을 잘 살린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최고의 매력이자 백미는 주인공의 헌신적인 친구인 악마 말 "블랙"의 대사들입니다. 인간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그 존재는 끊임없이 딜비쉬에게 충고하며 시도때도 없이 유머를 던지고 철학적인 사색을 던집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블랙이 말할 때마다 때로는 깊이 감명받고 때로는 인간 본성을 반성하며, 때로는 정말 배터지게 웃었답니다. 블랙은 그 이름 그대로 블랙 코미디의 대가입니다. 아마 딜비쉬 못지 않게 매력적인 커플일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의 종이질이 좀 안좋고 번역에서 드물게 오타가 보인다는 점입니다. 제가 찾아낸 것만 오타가 두 군데이더군요. 예전에 강수백씨 번역 중에 한번도 오타를 발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확실히 마이너스 요인이 될 법 합니다. 특히 "악마 주스"를 마시고 싶은 것인지 "아마 주스..."를 잘못 번역한 것인지는 원전을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 엄청나게 매력적인 책으로 젤라즈니 팬이라면 당연히 필독을 요하며, 판타지 팬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참고로 출판사 말과는 달리 SF 물은 아닙니다. 이 책의 속편 딜비쉬 "변화의 땅"을 지금 출판사 너머와 강수백씨가 출간 예정으로 잡고 있어 개인적으로 기쁘고 매우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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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앰버에서 그림자잭 등 젤라즈니의 판타지 장편의 주인공은 아주 전형적인 마초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취향에 따라 이런 구도가 싫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드보일드 형사물에 나오는 식의 인물과도 매우 비슷하고.
그런 마초들의 치명적인 한계가 주체할 수 없는 의협심과 호기심. 때론 이것들이 코메디적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마초적 인물의 전형은 돈키호테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일차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은 아주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류와 비교된다. 내가 다른 판타지 영웅물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겠고.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모험담이 아닌 진지한 복수극이기때문에 매우 상이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유사한 공간개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매우 장대한 앰버의 경우보다는 작가의 독창성은 떨어진다. 톨킨에 의지하는 요소가 꽤 많다.
하지만 캐릭터는... 후편을 더 봐야겠지만, 블랙이라는 말이 보조하는 이 이야기에서의 인물들이, 소수이어서도 그렇고 훨씬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맛이 있다. 그리고 문장의 밀도가 꽤나 묵직하네. |
| 1982년에 출간되었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가진 소설로 보이기도 하지만, 딜비쉬와 블랙을 주인공으로 하는 각각의 단편들이 다른 시기에 쓰여진 것을 알게 되면 놀라움이 배가된다. 아마도 딜비쉬 연대기 정도의 소설이 될 듯한데, 딜비쉬의 여정의 끝을 보려면, 이 단편 모음집보다 먼저 출간된 장편 변화의 땅을 보아야 할 듯 하다. 역시나, 젤라즈니의 소설답게 빼어난 재미가 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비, 내 이름은 콘래드, 신들의 사회, 이 책들만으로도 젤라즈니의 글이 얼마나 재미날 지 추측이 가능하다. 헌데, 이 책은 일본어 번역판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일본식 표현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소설의 재미가 줄어들지는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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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이라고 하면 역시 어렸을때 읽었던 코난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자고 그게 어린이 문학으로 분류가 되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그런 형태의 환상문학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는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을 느즈막히 읽게 되었다.
기사 딜비쉬는 인간과 엘프의 혼혈이다. 지옥에서 올라온 말하는 짐승(말처럼 생긴) 블랙을 타고 다니는데 이 말같지 않은 금속 말은 심지어 말도 하고 마법도 쓸줄 안다. 딜비쉬를 저주한자는 젤레락이라는 어둠의 마법사인데 이 친구는 그 이름만 입에 올려도 저주를 받게되는 무서운 녀석이다. 이 악의 축 젤레락을 무찌르기 위한 딜비쉬의 모험담을 조각 조각 모아놓은 퀼트이불 같은 소설이 저주받은 자 딜뷔시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을 잠시 들여다 봐도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게임들의 기본적인 카테고리는 물론이요. 용비불패, 말하는 자동차 키트,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할것이니.. 본류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악마의 소굴에서 고문을 받다가 그 언어와 마법까지 터득한 딜비쉬를 보면 도로헤도로까지 떠올리게 된다.
뛰어난 누군가의 창조성과 창의력이 일파만파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장면은 늘 감동스럽다. 그런점에서 이런 고전은 읽어야할 필요성과 읽을수밖에 없는 매력이 공존한다 할 것이다.
구매추천 : 87점(서가에 꽂기에는 좀 가벼운 장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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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술사 젤레락의 저주로 이백년 넘게 석상이 되어 혼만이 지하세계-저승-를 간 딜비쉬가 금속말 블랙과 함께 지상으로 돌아와 젤레락을 찾아 여행하며 겪는 모험을 그린 연작단편집이다. 젤라즈니의 다른 소설 <그림자잭>에서도 주인공이 지하세계에서 지상으로 돌아오는데 여기서는 <그림자잭>과는 달리 지상까지 올라오는 여정은 생략되어있다. 딜비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각각의 단편들은 나온 시기가 좀 떨어져있어선지 연결성이 조금 약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젤레락을 찾는 여행 도중이라는 점과 그 단서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딜파로 가는 길>,<셀린데의 노래>,<쇼어던의 종>은 지상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된 동방의 군령 딜비쉬가 쇼어던의 종을 이용해 쇼어던의 저주받은 군단을 불러내 서방에게 점령당한 포타로이를 재탈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셀린데의 노래>에는 엘프처녀가 등장해서 혹시나 이 사람이 히로인인가 싶었는데 여기서만 나오고 다른데선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역자해설에 따르면 <메라이어의 기사> 이후에 긴 공백기간이 있던데 상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메라이어의 기사>, <아아치의 샘>, <분할된 도시>,<흰 짐승>에선 젤라릭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조금씩 얻어 드디어 젤라릭의 성채 중 하나인 얼음탑에 대해 알게 되고 딜비쉬와 블랙은 그곳으로 향한다. <얼음탑>에선 간신히 얼음탑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젤라릭의 제자 리들리와 리나 남매를 만나게 된다. 리들리는 이중인격으로 부인격이 젤라릭이 성들 사이를 다닐 때 사용하는 통로인 마법 거울을 막아놓은 일에 대해 젤레락이 벌을 내릴거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랜 갈등끝에 리들리는 젤레락에게 대항하기로 하고 성채로 돌아온 젤라릭과 마법으로 결전을 벌인다. 그동안 딜비쉬와 블랙은 리나와 함께 성채를 빠져나온다. <악마와 무희>는 리나도 동료가 되어 여행을 하다가 오엘레라는 여제관이 있는 성으로 가게 된다. 알고보니 오엘레는 인신공양을 하는 마녀와 같은 여자였다. 오엘레의 성에서 리나는 딜비쉬와 블랙의 여행에 계속 동참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딜비쉬는 수락하지 않는다. 리나도 히로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조금 한방 먹은 기분이었고 판타지면 진히로인이 있을 거란 편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무사히 오엘레의 성을 빠져나온 딜비쉬 일행은 지나가는 노인에게서 젤레락과 리들리의 결전에서 리들리가 졌지만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의 정원>,<저주받은 자,딜비쉬>에서 딜비쉬와 블랙은 리나와 헤어지고 전처럼 둘만이 여행한다. 딜비쉬는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념에 대한 마음가짐이 그대로라는 걸 깨닫는다. 처음엔 딜비쉬가 젤레락을 만나 복수를 하는 게 딜비쉬 연대기의 중심테마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딜비쉬와 젤레락의 직접적 대면과 대결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서 그건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딜비쉬의 신념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딜비쉬는 젤레락과 엮여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잠시 신념이 흔들렸지만 결국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다시 세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무조건적인 선은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념을 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참으로 영웅답다고 할까. 속는 걸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하는 걸 보면서 감탄했다. 보통 판타지물처럼 전개되는 것을 바라고 읽는다면 당황할 수도 있지만 딜비쉬의 가치관과 멋진 동료 블랙에 집중해서 보면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멋진 두 남자-딜비쉬와 블랙-가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벌이는 모험극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고 말이다.
인상에 남는 구절 갑자기 어떤 환영이 딜비쉬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과는 다른 어느 날 밤. 먼 옛날, 다른 젊은 여자가 다른 마법사의 손에 의해 희생다하려는 광경의 환영이. 그리고 그가 그때 했던 행동의 결말은...딜비쉬는 미소지었다. 자신이 또 똑같은 일을 해버렸고,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 다시 직면한다면 역시 같은 행동을 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랜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중에도 딜비쉬는 여러 번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짧은 순간, 딜비쉬는 자신의 일면을 보았다. 자기 내부의 어떤 것, 시련에 의해 부서진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던 자신의 일부를 말이다. P371-<피의 정원>에서 발췌 |
| SF와 판타지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젤라즈니이지만 딜비쉬는 순수 판타지라고 할 수 있고, 또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 여러모로 앰버연대기를 생각나게 한다. 몇 지인은 젤라즈니식 무협극이라고도 하지만. 젤라즈니인 만큼 문장과 스타일은 보증수표였던 것 같다. 김상훈씨의 번역도 여전하고.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아, 이건 특별한 구상없이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만들어진 스토리다"라는 부분이 있었고 그래서 전체적인 구상이 호흡안배의 실패, 모순점등이 얼핏 보이긴 했지만 그의 문장 스타일이 그런 부분을 덮어버려서 꽤 몰입도 높게 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쉽게 읽히고 11편의 단편이 완전 독립된 것이 아니라 스토리상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장편으로 봐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역시 블랙. 혹자가 키트와 마이클 이야기의 젤라즈니판이라는 평이 수긍이 간다. 연대기 시리즈물인 만큼 후속작들이 빨리 번역되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