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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일단 이상(李箱)이 떠올랐고, <횔덜린의 광기,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란 표현은 그의 천재성 혹은 집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상의 작품들 중 시(詩) <오감도> 와 <건축무한육면각체> 를 생각해보면 횔덜린이 추구했던 이상을 조금이나마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조) 횔덜린의 시(詩) 《빵과 포도주》 너무 길어서 검색해서 찾아보시기를~ ㆍ 서문에서 발터 벤야민이 제시한 '이야기꾼'에 대한 에서이에서 횔덜린의 번역과 그가 남긴 글들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는 사건을 어떤식으로든 설명할 의무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례로서 제시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 (중략) 여기서 역사적 사건의 입증을 대신하는 것은 해석이다. 특정사건의 연결성이 아니라, 그 사건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흐름 안에 놓여있는지를 다루는 것이다" 이 글이 조르조 아감벤이 벤야민의 글을 차용하여 횔덜린의 수 많은 번역들과 글들, 그가 보내 무수한 편지의 글들이 보여주는 방식을 설명해주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ㆍ 특히, 아감벤은 근대성의 여명기에 '광인' 으로 취급되었던 시인 횔덜린의 연대기 복원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 물음에 답한다.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를 보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사회 시스템을 부조리한 정신병원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으로 맥 머피(잭 니콜슨)는 남들과 같지 않은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길들여지는 대로 아무런 불만이 없는 것처럼 평온하게 지내고 있는 병원 환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또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항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횔덜린은 단순한 문학적 인물을 넘어, 근대성 자체를 재고하게 만드는 '실패의 패러다임' 이자 '시스템 균열' 로서 아감벤의 사유안에서 결정적인 위상을 점하게 된다. 아감벤은 '횔덜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는 것이다. 철학자 아감벤은 횔덜린의 시에서 드러나는 칸트적 관점과 확장된 실러의 사유, 아리스토텔리스 철학을 통해 시인이 사유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거주하는 삶'을 도달하려 했음을 짚는다 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이란 '우리가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 이라는 것이다. ㆍ 아감벤의 사유는 권력과 생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그 구조의 작동을 중단시키고 그 바깥에서 또 다른 삶의 형식을 상상할 수 있는 실천적 철학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는 더 이상 법과 주권의 틀 속에서 정의되지 않는 존재들이 윤리적 주체로 다시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언어이며, 문학은 그 언어가 탄생할 수 있는 중요한 장이 된다. ㆍ "신과 인간은, 세계의 흐름에 틈이 생기지 않도롴, 천상적인 존재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망각한 '배신'이라는 형상 속에서 소통한다. 왜냐하면 신의 배신은 그 무엇보다도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도 잊고 신도 잊고, 마치 배신자처럼, 그러나 성스럽게 돌아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동성의 극한지점에서는 오직 시간과 공간의 조건만이 남기 때문이다." (p67 ~ 68) ㆍ [ 전망 ] 인간의 거주하는 삶이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포도 넝쿨의 시간이 저 멀리서 빛날 때 여름의 텅 빈 들판도 그곳에 함께 있고 숲은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나네. 자연은 시간의 모습을 메꾸고 자연은 머물고, 시간은 스쳐 지나간다 완전함에서 비롯되니, 하늘의 드높음이 인간에게 빛나네 마치 나무들이 꽃으로 치장한 것처럼 ㆍ 우리시대가 잃어버린 인간다움, 그 복원에 관한 매혹적인 사유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회복할 대안적 영역으로 지시하는 곳은 다름 아닌 문학과 예술이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감동이고 횔덜린 후기의 삶은 아감벤에게 철학적 사유의 진정한 '사건' 이다. 침묵과 무위 속에 머무르며 시인이 증명해보인 삶의 가능성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건넨다. ㆍ @hdmhbook 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임을 밝힙니다. ㆍ #책소개 #신간도서추천 #조르조아감벤 #횔덜린의광기 #거주하는삶의연대기 #사상 #철학적사유 #현대문학 #인간다움 #삶 #시인 #삶의가능성 #인간이란무엇인가 #문학과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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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 지음/ 현대문학 먼저 아감벤 선생님!!! ( 마음을 다해 존경하는 분은 선생님으로 일괄 통일된다!!! ) 조르조 아감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 책이 횔덜린의 작품 분석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심장이 뛰었다. 읽는 내내 체하고 토하고 아프고 나름의 광기?를 경험한 독서였다. 책과 관련 없는 그러나 꼭 하고 싶은 얘기인데 존경하는 대철학자 알랭 바디우 선생님, 아감벤 선생님, 지젝 선생님, 순서대로 1937년생, 1942년생, 1949년생이신 두 분 최근 근황을 찾아보니 세 분다 아직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이 책의 저자이신 아감벤 선생님은 Boucheron 과의 학술 대화 (2025)에 참여하신 것으로 검색된다. 다른 두 분도 2025년 활동이 검색된다. 다행이다. 오래 건강하시기를!!! 가끔 생각하기를, 현존하시는 대철학자들의 시대가 끝나면 철학도 함께 죽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곤 한다. (세상 걱정 혼자 다 하는 편) 그것은 매우 단편적인 걱정일지도 모른다. 철학은 인간의 죽음으로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보다 철학은 오래 산다고 믿으며... 다시 아감벤 선생님으로 돌아와서 이 분의 작품을 읽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위 책과 동일한 번역 박문정 역자의 번역으로 《저항할 권리》와 《얼굴 없는 인간》 두 권을 함께 읽었을 때다. 책은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후반 생애 튀빙겐에서의 은둔기를 연대기적이면서도 사유적인 시선으로 다룬다. 영어 번역본은 2023년에 출간되었다. 철학자 아감벤 선생이 아니면 누가 감히 횔덜린을 말할 수 있을까? 아감벤에게 거주한다는 개념은 단지 물리적인 거주의 공간을 말함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형식이다. 횔덜린은 광기의 상태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로써 새로운 시의 형태를 보여준다. 횔덜린은 누구인가? 헤겔을 읽을 때 그의 친구인 셸링과 횔덜린을 잠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도대체 튀빙겐 대학은 어떤 곳이길래 이런 천재들이 동시대에 입학하고 공부를 하는 건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고 싶은 내 마음의 그곳으로 ) 물론 다양한 삶의 관점에서 그를 말할 수 있다. 시인이자 문학가인 횔덜린!! 아버지는 그가 두 살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부유한 당대 시장과 재혼을 했다. 그러나 새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의 고통은 깊어진다. 다행인 것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풍족한 유년을 보낸 점. 어머니의 고통을 보고 자란 횔덜린은 감수성이 예민했다. '구원'이 횔덜린의 시에 한가운데에 들어와있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이 컸다. 친구인 셸링과 헤겔은 한참 잘나가는 동안, 횔덜린은 안될 사랑을 한다. 세상의 사랑은 두 종류인데 될 사랑과 안 될 사랑.... 참 이상한 일이다. 될 사랑은 금방 잊히고 안 될 사랑은 영원히 남아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고 영원히 회자되곤 하지. 1802년 사랑하는 연인 쥬제테 공타르의 죽음 이후 횔덜린은 반평생을 미친 상태로 광기의 상태로 시를 쓰고 정신병원을 입원, 퇴원 반복한다. 슬픈 사랑아.... 사랑이 뭐길래 사람을 미치게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시인의 삶이란 피투성이를 토해내는 것. 그런 의미에서 시의 시대는 이미 죽었다. 시인들은 앞서 '광기'를 경험하고 자신 작품의 재료 삼는다. 이 책 p.37에서 아감벤도 말한다. 이것은 필연이라고. 광기라는 필연..... 인간은 이 지상에서 시적으로 거주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시대의 지성 아감벤은 횔덜린의 삶과 문학을 통해 사유의 또 다른 방식을 소개했다. 횔덜린의 시에서 논리가 뚝 끊어지는 지점. 그 휴지의 순간에 아무런 꾸밈이 없는 언어 그 자체 즉 순수한 말과 마주하게 된다는 아감 벤와 해석이다. 시인은 행간으로 말한다. 현대문학 출판사는 국내에서 문학과 인문학 경계의 작품들을 꾸준히 출간해왔다. 이 책 역시 문학적 감성과 철학적 사유를 함께 담아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내가 읽은 현대문학 중 감히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작품을 만나게 해주시다니 감사 또 감사!!! 현재 병렬 중인 책 『횔덜린 시선집」 프리드리히 횔덜린 『횔덜린 산문집」 프리드리히 횔덜린 『횔덜린 시의 해명」마르틴 하이데거 『불과 글」 조르조 아감벤 『내용없는 인간」 조르조 아감벤 #횔덜린의광기, #거주하는삶의연대기, #현대문학, #박문정, #조르조아감벤, #프리드리히횔덜린, #횔덜린시선집, #횔덜린산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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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30. 작성 글. #협찬 경계에서 산다는 것 <횔덜린의 광기>를 읽다가, 저의 작은 광기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되는 대로 흘려 적어보려 합니다. --- 들어가는 글: 책은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며, 역사가와 연대기 작가의 차이를 짚습니다. 역사가: 사건의 원인과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 연대기 작가: 사건을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로만 기록하는 사람. 아감벤은 횔덜린의 삶을 역사처럼 해석하기보다, 연대기처럼 사건을 나열하면서 거기서 드러나는 형상에 주목합니다. 흔히 횔덜린은 전반부는 '시인', 후반부는 '광인'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아감벤은 이 단순한 구분을 넘어, 그의 삶 전체를 하나의 형상으로 읽으려 합니다. --- 프롤로그: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횔덜린의 광기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당대의 사람들(셸링, 어머니 등)은 그의 상태를 단순한 '병'으로 보았지만, 실제 그는 소포클레스 번역과 같은 고도의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광기는 단순한 병리가 아니라, 그가 도달한 언어적·철학적 실험의 공간이었다는 거죠.. 특히 번역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횔덜린은 그리스어 문법을 독일어로 옮기는 과감한 직역을 시도했습니다. 당대에는 '미친 번역'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언어의 본질을 시험하는 창조적 실험으로 평가됩니다. 철학적 맥락에서는 피히테와의 대립이 나오는데.. 피히테가 '절대적 자아'를 강조했다면, 횔덜린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 자체를 넘어선 절대적 존재를 상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직 시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연대기: 책의 연대기는 독특하게 두 개의 열로 구성됩니다. 좌열: 횔덜린의 외적 사건 (출생, 학업, 인간관계, 정치적 상황 등). 우열: 그의 내적 사건 (시의 변환, 언어적 실험, 번역 작업 등). 예를 들어,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과 동시에 '디오티마를 위한 시'가 창작되는 식으로, 외부 사건과 언어의 변화를 병치합니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생애와 한 언어의 궤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옮긴이의 글 아감벤은 왜 횔덜린으로 답하는가 ㅡ 거주 불가능한 시대를 위한 철학: 아감벤은 횔덜린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을 생존만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인류학적 기계'에 갇혀 있으며, 우리는 세상을 '점령'하려 할 뿐 진정으로 '거주'하는 법을 잊었다고 지적합니다. 아감벤은 횔덜린의 삶이 성공과 실패, 이성과 광기 같은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중간태'적인 삶이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횔덜린이 사회의 논리를 거부하고 '실패'를 통해 오히려 시대의 한계를 폭로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철학적 모델'이라고 주장합니다. --- 책을 덮고 나서.. '경계에서 사는 법'에 대해 생각 해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 문명 사회와 비문명 사회의 경계 등등... 흠...... 어쩌면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한 사람들이.. 결국 광인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꽤나 긴 시간 동안... (대략 몇 개월 전까지.. 뭔지 아시쥬?? ㅎㅎ...)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기가.. 미치도록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쪽으로든 사람은.. 정말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망각적 특성은 우리 종의 축복이랄까요..) --- 프랑스 대혁명 그 직후의 시기에, 게다가 여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란, 매우 섬세한 어느 사유가 남다르게 깊은 한 인간이 미친 채로 살아갔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게도 합니다. 극단적으로 이념이 갈리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경계에 대한 소중함'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모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너무 컸지만.. 그래도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횔덜린의광기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1806-1843) #조르조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현대문학 어느 경계에 서서....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문학 #바닿늘철학 #바닿늘인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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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거주하는 삶이란 무엇일까?”는 질문으로 책은 시작한다. 우리는 어딘가에 거주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흔히 거주를 평온히 머무는 것, 자신과 친숙한 곳에 안주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거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전체를 뜻한다. 아감벤은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를 “거주 불가능한 시대”라고 말한다. 얼핏 우리는 각자 어딘가에 머무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근대성의 시스템, 곧 ‘인류학적 기계’는 인간을 인간/비인간, 정상/광기, 주체/객체로 구분하며 세계를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에 뿌리내려 사는 대신, 점령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길들여졌다. 그렇다면 거주하는 삶과 횔덜린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횔덜린의 삶은 거주하는 삶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인생의 절반을 광기 속에서 보냈지만, 아감벤은 그 시기를 단순한 병리로 보지 않는다. 횔덜린은 능동적으로 성취한 영웅도, 시대의 폭력에 짓눌린 희생자도 아니었다. 그는 습관과 성향, 주어진 삶 속에서 살아갔다. 아감벤은 중간태적 삶을 곧 거주하는 삶으로 해석한다. 능동과 수동 사이에서 주체가 동시에 행위자이자 대상이 되는 상태, 바로 ‘기뻐하다’, ‘부끄러워하다’, ‘미치다’와 같은 동사가 보여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횔덜린은 이 중간태 속에서 언어와 관계 맺으며 파편적인 시를 남겼다. 하이데거는 그의 시구 “인간은 이 지상에 시적으로 거주한다”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읽어냈다. 여기서 ‘시적’이란 세계에 응답하는 삶의 방식이다. 광기의 시인으로 불렸지만 횔덜린은 옥탑방에 머물며 계절의 순환과 강물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겼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점령했고, 괴테는 문학의 정상에 올랐으며, 헤겔은 절대정신의 철학을 세웠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횔덜린은 옥탑방에서 조용히 시를 이어갔다. 그는 성취 대신 응답의 방식을 택한 삶을 보여주었다. 횔덜린의 예는 극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소유하고 정복하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운다. 존재와 세계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곧 거주하는 삶이다. 시인이 아니어도, 곁을 스쳐가는 존재들에게 응답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거주의 방식일지 모른다. “횔덜린이 남긴 가르침은,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창조되었든, 그것이 우리가 성공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운명은 실패하는 것이며, 모든 예술과 학문에서,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는 삶이라는 순수한 예술 안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삶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근본에서 흔든다. 실패는 더 이상 부정하거나 극복해야 할 낙인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본질적 조건이다. 인간은 성공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삶이라는 예술 안에서 끊임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바로 그 실패 속에서 우리는 세계와 관계 맺고, 존재에 응답하며, 시적으로 거주한다. 횔덜린의 삶은 이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길이었다. 그는 비정상이라 불리며 파편적이지만 세계에 응답하며 거주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정상이라 불리는 우리는, 파편적으로 부유하며 세계와 관계 맺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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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광인 그 사이에서, 가장 깊고 아픈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목소리를 드러낸 위대한 예술가!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사유하는 시간!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헤르만 헤세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독일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의 대표 시인이다. 이른바 ‘천재 시인’ ‘시인들의 시인’라 추앙받으며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횔덜린. 하지만 유럽 문학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자 광기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그 이유가 사뭇 궁금하다. 문득 예술가라면 반드시 갖고 싶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치명적인 재능 같은 것이 연상되기도 하고, 우리 문학 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난해한 시인으로 불렸던 이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천재이자 광인으로 불리게 했을까. 이 책은 이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집은 신성한 광기이다.” / 40p
한 사람의 삶을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횔덜린의 삶은 의외로 극명하게 갈린다. 1770년부터 1806년까지 36년간은 정치와 철학 등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살아왔다면, 인생의 후반기인 1807년부터 1843년까지 36년 동안은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은 만나지만 마치 자기와 세계 사이를 단절하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자신을 완전히 밀어버렸다.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조르조 아감벤이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도 1806년 이후, 횔덜린이 광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시기다.
이 무렵, 횔덜린은 작품에 있어서도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명확히 하고, 발전시키고, 유사한 다른 생각들과 연결하고, 외견상 가장 멀리 있는 것들을 일관된 흐름 속에 녹여내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고 한다. 실제로 횔더린과 철학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했던 셸링은 ‘섬세하게 조율된 악기가 파괴’된 것 같았다 묘사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통찰을 지닌 예언가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점에 있어서 평가가 양극단을 오가곤 했는데, 흥미롭게도 조르주 아감벤은 횔덜린의 광기를 정신착란이 아닌 의도된 설계로 해석한다.
시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모습을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으로 구성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희극적으로 분열된 상태 그대로 드러낸다. 횔덜린은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들 앞에서 끊임없이 시인의 역할 안팎을 넘나들며, 매번 그가 시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낭만적 아이러니’는 극단으로 치닫고 동시에 해체된다. / 332p
즉, 중요한 것은 진짜 미쳤는가 미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이 예술가에게 있어 광기는 거주할 수 있거나 혹은 거주해야 하는 어떤 장소 같은 것으로, 횔덜린 후기 시의 특징으로 보이는 극단적인 병렬 구조와 논리적 인과 관계가 부재하는 형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더 깊은 차원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 아감벤의 설명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옮긴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밤하늘의 별자리를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별들은 물리적으로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 선을 이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또는 무한한 연결을 만들어내듯, 횔덜린 역시 연결성의 부재 속에서 보다 무한한 연결을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재고로, 어쩌면 횔덜린의 광기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믿음에 균열을 가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게오르그 헤르베그는 『사라진 사람』이라는 글을 횔덜린에게 헌정한다. “독일은 진정한 젊음의 시인에게 크나큰 빚을 지었다. 독일 때문에 그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통탄할 현실에서, 우리의 수치심이 극에 달하기 전에,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 전투의 노래를 부르도록 부름 받았던 그가 이제 성스러운 광기의 밤으로 스스로를 구원했다…… ‘젊음이 믿는 것은 영원하다’라고 뵈르네는 말했고, 이 말은 횔덜린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진리이다…… 고대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그 어떤 문헌학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횔덜린은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았고, 또 그것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를 견딜 수 없어 했다.” / 264p
“횔덜린은 모든 것이 리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인간의 운명도 하나의 천상의 리듬이고, 모든 예술 작품도 하나의 리듬이며, 모든 것이 신의 시적인 입술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이에 순응할 때, 운명은 변형되고 그 안에서 천재성이 드러나며, 시를 쓰는 것은 진리를 향한 투쟁과 같다고 했다. 때로는 조각가처럼, 언어가 육체(시의 형태)를 붙잡는 유연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때로는 영적인 정신으로…… 그의 말은 나에게 마치 신탁과 같다. 그는 신의 제사장처럼 광기에 사로잡혀 신의 뜻을 말하지만, 분명 모든 세속적인 삶이야말로 광기이다.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 266p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은 ‘거주하는 존재로서의 삶’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련의 자발적이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습성과 습관들에 의해 매 순간 영향을 받는 일종의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횔덜린은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에게 붙여진 ‘광기’라는 꼬리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과장하기까지 한 듯 보인다. (…)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대립을 무력화하고, 이 둘을 어떤 합일도 없이 정지된 위치에 중첩시킨다. 아마도 이것이 시인이 자신의 철학에 남기고자 하는 정치적 유산일지도 모른다. 공과 사의 구별이 사라진 우리에게 그의 삶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그의 삶은 그의 시대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사유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향한 예언이다. / 339p
그러고 보니 캄캄한 밤하늘,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반짝이는 새를 좇는 표지의 노인에게서 횔덜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새를 잡으면 자신은 컴컴한 밤하늘 어딘가로 추락하게 되는 아이러니, 하지만 그러한 아이러니를 기꺼이 끌어안으려는 노인의 집념이야말로 이 책에서 내가 느낀 횔덜린에 대한 인상이다.
어쩌다 작품 하나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이 연대기를 먼저 접하게 되었지만, 덕분에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끝으로 인상적인 문장이 하나 있어 첨부하려 한다. 횔덜린의 『히페리온』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가혹한 말이지만, 진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일처럼 분열된 민족은 없습니다. 기술 장인은 있지만 사람은 없고, 사상가들은 있지만 사람은 없고, 귀족과 하인, 젊은이와 노인은 있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손과 팔, 그리고 온몸의 지체들이 서로 분리되어 흩어져 있고, 생명의 피가 모래 속으로 흘러가는 그런 전장 말입니다.’ 어쩐지 지금의 대한민국, 우리의 시대에도 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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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푹 빠지기 시작하면 특정 작가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보이게 된다. 좋은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나에게 있어 횔덜린도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었다. 『히페리온』을 꼭 읽어 보고 싶어서 샀지만, 산 책은 잘 읽지 않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어서 그만…(중략).
/ 세상의 흐름이 구원의 역사에서 결정되든, ─ 이 대비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이후의 횔덜린의 삶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데, 이는 저자의 의도적인 삽입이었을까? 횔덜린이 괴테와 실러의 명성에 가려져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던 말이 있지만, 횔덜린과 괴테, 이 두 인물의 역사를 병치해서 보니 그 비운이 깊게 와닿는다. / - 벨라도나 6g ─ / 그는 여전히 폐허와 광기 속에서 시를 씁니다. 비록 말년에 이르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쓴다는 진술이 있지만 이 책이 그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니, 그의 작품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횔덜린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의 삶의 연대기 또한 놓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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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은 고대 그리스의 조화와 신성을 동경하며 인간 존재와 자연, 신성의 관계를 시로 탐구한 독일 시인이다.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20세기 이후 철학과 문학 양쪽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은 언어의 음악성과 상징성,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높이 평가되며, 하이데거는 그를 “시인 중의 시인”이라 부르며 그의 시를 통해 존재와 거주의 의미를 해석했다. 문학적으로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를 잇는 독창적 시 세계를 구축했으며, 릴케, 셀란 등 이후 시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 책의 저자인 조르조 아감벤은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적 비평가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체와 참신한 역사 인식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내용 없는 인간”(1970)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한 그는 “도래하는 공동체”, “목적 없는 수단” 등을 통해 ‘주체 없는 주체’ 개념을 제시하며 정치철학으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했고, 특히 “호모 사케르”(1995), “아우슈비츠의 남겨진 것”(1998), “예외상태”(2003)로 구성된 3부작은 생명정치, 주권 권력, 인권, 난민 문제를 다루며 현대 정치철학과 비판이론에서 핵심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의 이론은 9·11 이후의 정치 상황을 예견한 분석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비판도 공존하고 있다. “횔덜린의 광기”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독일 시인 횔덜린의 삶을 통해 철학과 시, 광기와 정치가 어떻게 맞닿는지를 탐색한 책이다. 아감벤은 횔덜린이 정신질환을 앓으며 외부와 거의 단절된 채 지낸 말년을 단순한 불행이나 몰락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이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깊은 사유와 존재의 방식이 담긴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는 철학이 되어야 하고, 철학은 시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횔덜린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철학책이지만 딱딱하지 않다. 횔덜린의 시, 편지, 병원 기록,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엮어서 그의 삶을 연대기처럼 따라가 횔덜린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감벤은 횔덜린이 한때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 걸 무의미한 말로 보지 않고 삶을 굳이 의미나 사건으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해석한다. 아감벤에게 중요한 건 횔덜린이 겪은 일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그것들을 조용히 견뎌냈는가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감벤은 횔덜린의 삶을 ‘중간태적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택하지도 완전히 수동적으로 끌려가지도 않는 그런 삶을 말한다. 그는 이런 삶의 방식으로 세상 속에서 시처럼 살았고 언어가 무너지는 자리에서 새로운 언어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횔덜린의 광기”는 단지 한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횔덜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후 솔직하게 서평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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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남자를 만났다. 비운의 천재들에 가려진 또다른 천재이다. 그는 후대의 천재들에게 멘토가 되었다. 처음 나는 이 남자를 접했을 때 연기라고 생각했다. 상처에따른 생존을 위한 그런걸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아팠다. 그때의 용어로는 미치광이였다 하지만 굉장한 미치광이 신사였다. 나는 이 글들을 읽으며 그가 상업적인 이용수단이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세상은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위해 남의 천재성을 빼앗아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하지만 신은 그에게 인복을 주었다. 모든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그의 인상으로부터 신사다움을 보았고, 그의 천재성을 가지고 감히 휘두르지않았다. 이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그저 휘둘리지않겠다는 생각이아니다, 인간미를 보여주며 그 압도된 힘으로 남이 결코 휘두를수없는 에너지를 가지는게 좋겠다.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내용을 들으며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소속감을 잘 느끼지못하고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 사유를 좋아하고 철학을 좋아한다는 점, 구지 내가 특별히 힘들다곤 보기힘들겠으나 내가 철학을 좋아하던 시점을 떠올리게했다. 어느시점인지 알고나니 그 문장이 위로가 될수밖에없었다. 연대기에서 책의 편집은 처음에 굉장히 혼란스러웠으나 굉장히 천재적인 구조였다. 횔덜린의 상태를 알수있으면서도, 시대의 연대기와 그의 상태가 대조적으로 보여졌다. 누군가의 전기로서 그 모든걸 보여줘 훌륭한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