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절정이던 그때, 우리는 열강의 어깨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던 조그만 나라였다. 오늘날은 다른가. 근대화 과정을 거친 후 경제력과 군사력을 길렀지만, 지정학적 위치는 그대로다. 오히려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부상은 동북아시아의 패권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세계제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의 입김은 어떠한가. 오늘날이 구한말의 상황과 자주 비교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되는 우리 민족의 과제인지 모른다. 이 책은 구한말 열강을 바라본 우리 실수를 특이한 형식으로 지적한다. 짜임은 이렇다. 1장 조선인의 미국관을 시작으로 러시아관, 중국관, 일본관. 이렇게 나뉘어져 있다. 일단 박노자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허 교수가 반박을 하는 식이다. 이 '논쟁'은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출판사 측에서 독자들의 의견을 모아 추가 질문을 하는 것까지 총 3개의 작은 장을 만든다. 일단 최근 정세와 맞물려 흥미를 끄는 부분은 1장 조선인의 미국관이다. 박 교수는 "조선인의 무지와 선망이 대미 맹종 불렀다"며 개화기의 지식인들은 미국을 민주적인, 빠르게 성장한, 부유한, 게다가 우리에게 문명의 혜택을 부여하는 국가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말한다. 당시 미국사회의 모순들-노동자 탄압, 남미 수탈, 필리핀 학살-등을 애써 외면하거나 미국의 시선으로 해석했다는 뜻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회진화론, 약육강식론이 자연스럽게 체화되었고, 이런 인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허 교수는 좀 더 현실적이다. "개화파의 대미의존은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이었다"라며 당시 유길준, 윤치호와 같은 적지않은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들이 판단하기에, 청,일,러 등의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미국을 믿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격돌하고 있는 친미와 반미 두 입장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이라며 미국에 대해 유연한 인식을 갖자고 한다. 단 "미국은 단물만 빨아먹고 우리 선조들이 기대한 조정자와 중재자 역할에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우리의 생존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 기르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두 명의 역사학자의 대담은 '미국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일본은 어떠한가' 등의 현실적인 문음에 대한 좀 더 착실한 답을 구할 수 있게 한다. 시선이 다른 두 학자는 조목조목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여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맹목적인 현실 인식 대신,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권할만한 책이다. 완성도 높은 내용을 꾸리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도 눈에 띈다. 두 학자의 대담 말미에 독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꾸려나가는 장을 하나 더 마련했는데, 그 부분의 내용에 주목할 만한 것이 많다. 책은 본래 일방향적인 매체라 지루하기 쉽지만, 논쟁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읽는 이를 끌어들인다. |
| 박노자 선생님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한민족이 아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도 노르웨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한국인이다. 2001년 분명히 한국인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 한국인 일수 있는 이유는 한국, 한국인에 대한 사랑때문이다. 어떤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알고 있으며 그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다. 허동현 선생님은 민족주의자다. 하지만 민족주의하면 생각나면 꽉막힌 보수주의자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는 통상적으로 좌파쪽에서 많이 주장하는 세계시민들의 연대를 누구보다도 중요시여긴다. 또한 여느 보수주의자들처럼 미국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미국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잘못을 누구못지 않게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우리역사 최전선>이라는 책으로 진보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논쟁을 명쾌하게 보여준바 있는 박노자, 허동현 선생님이 새 책으로 또다른 논쟁을 선보인다. 이번에도 주제는 100여년전 열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는풍전등화의 조선상황이다. 제대로된 논쟁과 토론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그들의 논쟁과 토론은 언제나 기대된다. 책은 4부분으로 구성된다. 조선인의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관에 대해서 두분 선생님이 각각 글을쓰시고 각장의 마지막에는 푸른역사 편집부에서 독자를 대신해서 보충질문을 던진다. 푸른역사가 던지는 보충질문은 각자의 주장을 더욱 탄탄히 하고 궁굼했던 독자의 궁굼증도 풀어준다는 점에서 이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에서 두분 선생님의 새로운 주장이나 의견은 많지 않다. 그동안 다른 텍스트들을 통해서 익히 들어온 주장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의미있게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이 책의 글머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볼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유명한 E.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명재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인들의 미국관을 가지고 논쟁한 장을 보면 결국은 100년전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대미관계를 비판하게 된다. 박노자 선생님은 100년전에도 미국은 제국주의 였으며 현재에도 그 속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고 보며 허동현 선생님은 미국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을 이용해야 한다는 신중함을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장에서도 근본적인 의견차이를 보이며 현재의 한러관계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다. 일본에 대한 장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박노자 선생님은 일제 식민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 한국의 민족주의 만든 주요 원인이었으며 일제에 의한 근대화는 일종의 강간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탈근대 적인 공존모색이 현재의 한일관계에 대한 청사진으로 제시된다. 하동현 선생님의 비판을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제 식민지에 대한 아픈기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며 근대에 대한 해석에서도 조선내부에서 근대로 이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내제적 발전론에 근접한 주장을 펼친다. 따라서 그는 좀더 완전한 국민국가를 만들면서도 타자를 포용하는 한일관계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삭막한 토론 풍토에서 이 책은 확실히 논쟁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역사는 결코 의미없는 것이 아니며 지금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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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무엇이 옳다고 믿느냐는 기준 즉, 선악을 척도로 삼아서 적과 동지를 나누었지만, 개화기나 요즘과 같이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어느편을 들어야 득이 되는지를 살피게 된다는 겁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도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p 115, 허동현) 나는 지금까지 감상적 민족주의자였고, 감상적인 이상주의자였다. 지금까지? 이제는 아니라는 뜻인가? 몇년 전 '통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도 그랬다. '왜 우리가 꼭 통일을 이뤄야하나요?'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나는 뭐라 답해줄 수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그때 홍세화님이 내가 사는 지역에 강연을 하러 오셨었고 나는 그 물음을 대신 할 수 있었다. 그때 아마..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로서의 남북통일의 경제성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꺼야. 더이상 '민족'과 '겨레'라는 당위성만으로 전쟁을 모르고 분단의 아픔을 못느끼는 세대에게 통일을 강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그때 느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아마 지금도 나는 말로는 민족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것을 위해 역사의 진실을 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지. 박노자 교수와 허동현 교수 두분의 격론은 어설픈 교과서 지식만 있는 나로서는 조금 버겁기도 했다. 그래서 '아하~ 그렇지'라거나 '으음~ 이 말도 맞는말인데..'라거나 '그랬단말야?'라는 식의 반응밖에는 보일 수 없었던 것이 참 안타깝다. 그렇지만 그런만큼 얻고 배우는 것도 많지 않았는가. 여전히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멋대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세계 정세의 흐름속에서, 나 혼자 살아남겠다고 아둥바둥치며 적을 규정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모두는 동지이며 그 외에는 적일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아, 나는 여전히 배울것이 너무나 많다. |
| 이 책은 100년 이라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우리의 역사를 살펴본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100년전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숨가쁘게 지난 100년을 살아왔는데, 아직도 우리가 처한 상황은 100년전과 너무나 흡사하다.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특성때문이기도 하고, 그 지적학적 특성을 가진 나라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다시 한번 세상은 요동치고 있고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과연 어떤 길이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일까.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며 오늘날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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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허동현 두명의 저자가 조선의 개화기 당시의 모습인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의 조선에 대하여서 그 당시의 열강들의 모습과 조선의 움직임을 주제에 대하여서 자신의 의견을 들려줍니다. 1. 미국편 천사또는 악마 자신들의 안마당이라고 할 수가 있는 중남미에 대하여서 어느 정도의 정리가 완결이 되어지고 식민지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던 중국에 대하여서 숟가락을 걸치기 위하여서 등장을 하였던 미국의 모습이 거대한 보물창고인 중국에 비하여서 상대적으로 왜소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조선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다른 열강에 비하여서 적었다는 사실과 그 당시에 조선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이 조선에 건립을 하였던 병원과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에 준하는 시설의 설립으로 인하여서 상당한 인망을 얻었지만 실제의 속마음은 다른 열강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저자들의 의견이 동일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서 조선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응법에 대한 차이점을 알려줍니다. 개화기의 미국의 모습은 현재와 같은 유일한 강대국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내려보는 입장이 아니라 신흥열강의 처지에서 자신보다 강력한 국가들의 전쟁을 뒤에서 구경을 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모습과 자신의 안마당이라고 할 수가 있는 중남미에 대하여서 최대한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하여서 관심이 적었지만 같은 대양을 관할을 한다고 볼수가 있는 일본에 대하여서 적극적인 우대로 인하여서 문제를 키우는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볼수가 있습니다. 2. 러시아 거인이지만 부실한 하체 자신들의 조국이 엄청난 영토를 영위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석유를 개발을 하여서 부를 이룬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에서 겨울에도 움직일수가 있는 얼지않는 항구를 찾기 위하여서 동서로 진출을 하고 있던 시기의 국가이고 내부적인 문제가 산재를 하였지만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서 워낙 거대한 군대를 유지를 하였기 때문에 겁을 먹고 있는 국가가 많았던 실력에 문제가 있는 국가로 등장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일면은 현재도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항구를 위하여서 찾은 조선에서 목적을 이룰수가 있는 항구를 발견을 하지만 일본의 공격과 중국에서 얻은 항구로 인하여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을 하고 뒤로 빠지면서 조선의 조정에서 생각을 하였던 위력을 행사를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청나라 빈사의 거인 자신들의 영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기 위하여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인 조선을 고르고 있었지만 일본으로 인하여서 문제를 더욱 심화를 시키는 실정을 저지르는 상대국으로 과거의 자신의 영역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던 모습이 아닌 이제는 무조건적인 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국의 힘을 들어내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모습입니다. 4. 일본 환골탈태 자신들이 열강의 먹이가 되는 것 보다는 주변에 있는 약한 국가를 먹이로 삼아서 열강의 주구로 자처를 하기 위하여서 열심히 노력을 하였던 국가이면서 상대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가 되었던 국가의 모습으로 많은 인원이 일본을 배우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던 우등생의 모습을 보였지만 열강의 모습에 대하여서 감명을 받고 침략적인 본성을 들어내고 있는 국가의 과정을 보입니다. 두명의 저자가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서 서로 상반이 되어지는 의견을 들려주고 그러한 의견에 대하여서 문의 사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서 자신들의 의견을 알려주고 있는데 대략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의 위치가 과거의 조선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비하여서 작은 국가의 모습을 보이면서 관심은 있지만 행동을 하기에는 모자라는 국가로 보였지만 이제는 그러한 모습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변모를 하였다는 사실과 열강들이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서 생각을 하고 움직이고 있고 그들의 면모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약소국의 피해에 대하여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려주고 약소국의 입장에 있던 조선이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서 각종의 방법을 동원을 하여서 벗어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지만 정보의 부족과 자립을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것 보다는 이웃에 있는 열강을 동원을 하여서 이웃의 열강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서 호가호위를 하는 과정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
|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곤 한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만큼이나 객관적인 역사를 해석하는 바른 역사 의식 역시 중요하다. 과거로부터 어떤 지혜를 획득하느냐는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박노자, 허동현 님의 책을 읽은 것은 <우리 역사 최전선>에 이어 두 번째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두 학자가 보여주는 이야기,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깔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대담은 유독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격변''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지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역사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이 제국주의 열강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니 말이다. 한 국가가 철저히 예속되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야기했다. 특히나 러시아를 비롯, 중국, 일본 등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개화를 부르짖던 많은 이들에게 앞서 언급한 국가들은 우리가 닮을 수 있는 역할 모델임과 동시에, 우리를 소위 악한 세력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되곤 했다. 친일, 친러, 친미 등 수많은 단어들로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었음은 그 당시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었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제국주의 국가간의 세력 균형을 통해 독립을 꿈꾸는 것은 그 당시 지식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이성적인 사고였다는 허동현 님의 주장이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사회진화론에 물들다 못해 제국주의 국가의 신민으로서 철저히 자신을 변화시켰기에 지배층은 민중을 외면한 체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박노자 님의 관점은 다소 비관적으로도 들린다. 실제로 허동현 님은 당대 지식인들의 근대를 지향하는 사고를, 혼란의 시기에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치열함을 우리의 역사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꼽았다면, 박노자 님은 제한된, 그것도 완벽치 못한 자료에 의존해 잘못된 결정을 반복했던 지배층의 무능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느 관점을 취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지식인들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몇몇 지식인들이 원했던 열강 간의 세력 균형도, 열강의 모습을 모방함으로써 또 하나의 열강으로 발전(?)하고자 했던 바람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변했다는 사실은 타 세력의 힘 아닌 우리 스스로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지... 이는 과거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지정학적 위치, 여전히 타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자신을 볼 때 현재에도 유효한 시각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제도권에 속한 보수, 진보 모두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국가의 절대적인 힘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현실적인 시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주체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현실감을 상실한 체 과거와 같은 (세력 균형을 꿈꾸었지만 그 세력에 의해 잠식당했던) 주객전도를 경험하게 될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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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대한제국, 조선이나 현재의 한국이나, 그 때 보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은 환경이 아니다. 남북이 갈리기까지 했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열강 사이에서 한국이 헤쳐나갈 길은 무엇인가? 영세중립국? 부국강병?
책제목이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이지만, 정말 고 김구 선생이 꿈꾸셨던 문화국가는 커녕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한편, 박노자 선생과 허동현 선생 각자가 가지고 있는 100여년 전과 현재에서의 대미, 대일, 대러, 대중에 대한 것을 기술하며, 푸른역사에서 덧 질문을 하며 논리의 전개를 돕고 있다. 그런데, 푸른역사의 정리는 조금 어설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노자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해석에 대하여 매우 공감한 바는 인상깊은 구절과 같다.
[인상깊은구절] 만약 과거가 현재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야 합니까? 결국 현재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논하는 게 아닙니까?(6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