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확산은 군인과 대포들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부를 얻거나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포함하는 이념적 형성에 의해, 그리고 그 지배와 연관되는 지식의 형태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는게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이다.
19세기 유행했던 풍속엽서는 당시의 인쇄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서구문명을 미화할 제국의 미장센으로서 기능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개항후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화하면서 조선을 비롯한 나머지 인접국들을 타자화하는 방편으로 인류학적 틀에 꿰맞춘 풍속엽서 발행에 몰두했었다는 것을 저자 권혁희는 300여장의 19세기 사진엽서자료로서 설명한다.
'죄인들'이라는 제목의 일제가 발행한 이 관광기념용 사진엽서에서 저자는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무엇때문에 이들은 감옥에 있지 않고 관아의 뜰에 나와 있는가? 사진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시선의 주인공 촬영자는 누구였을까? 촬영자는 왜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을까? 왜 하필 죄인들의 모습이었을까?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자, 보이지 않는 시선의 체계에 의한 재현임을 나아가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 또한 제국주의적 정복자의 시선에 의한 피정복자와 그들 문명에 대한 타자화의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아! 어려운 책은 아닌데 감상은 꽤 난삽하게 되버렸네.
내 멋대로 감상 포인트 :
문화인류학적 자료로서의 사진들이 이렇게 작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수업 받을 당시는 생각해 보지 못햇었다. 학문 자체가 사상누각이 되는 것 같은 기분.
사진의 사실성은 헛소리인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사진에 나타난다는 말을 요즘 많이 하곤 했는데.... '사실'에 대한 추종 자체가 미련한 짓인것인지...
거짓이 아닌 진실을 외치는 자 순진하다. ㅉㅉ 현명한 자에겐 거짓은 없다. 오로지 사실만을 내놓는다. 다만 교묘히선택된 사실만을 제공할 뿐.
|
|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 시선-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권혁희 지음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겉표지 벗긴 것)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을 다니다, 조선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 아직 사진기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 선교사들이나 외국인들의 사진기를 통해 남아있던 조선말기 우리 백성들의 모습, 일제 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 광복 후 그리고 육이오 전쟁 중의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는 책이 보이면 가능한 구입하려고 한다.
이 책도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2005년에 민음사에서 초판 발간한 책인데 속지가 깨끗했고 그 동안 이렇게 많은 엽서 사진을 포함한 책을 보지 못한 상태여서 주저없이 구입한 책이었다. 사진 자료도 풍부했지만 저자의 긴 글들이 많아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얼른 챙긴 책이었다.
그런데, 책 속 내용은 내 기대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 동안 많은 책을 읽으면서 서구의 제국주의가 동양과 아프리카에 갖는 폭력적인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정보들은 대부분 서양인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침략, 식민지, 선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러한 정보를 습득하면서도 여전히 타인을 보는 듯한 제3자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 조선시대의 선교사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노골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한구석에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오리엔탈리즘에 있어서는 덜 폭력적인 시선 속에 놓여 있지 않았을까 합리화에 의한 안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억지로 남겨 놓았던 그 안위를 인정사정 보지 않고 파괴시켰다. 파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저자의 거룩한 분노가 내 가슴속에 그대로 와 박혔고, 분노를 불러 일으킨 수많은 정보들이 이 책속에 여과없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합리화하며 억지로 만들었던 안위를 버리고 보다 정직한 실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 조선도 똑같았구나.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었는데 왜 그토록 억지로 숨기고 있었을까.
저자는 우리에게 남겨진 조선시대 사람들의 풍속 사진엽서가 단순한 과거시대의 정보나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님을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일본 제국주의가 어떻게 자신들을 미화시키고 우리 조선을 미개한 아프리카처럼 여겼는지를 그들이 발행한 수많은 조선엽서를 통해 증명한다.
이 엽서들은 유행처럼 번져 수많은 일본 사람들, 서양사람들이 수집하고 자랑한 시대의 핫잇템이었다. 엽서는 먼 동양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정보로서의 엽서가 아니었다. 자국의 우월함, 조선의 미개함을 만 천하에 알리는 조롱거리로서의 놀이기구였다. 조선의 기생 사진들이 엽서로 만들어지고 조선은 일본의 성적 판타지를 체험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우리를 폭력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았으며, 서양인들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를 문화적으로 짓밟았다. 소설 “리심”을 보면 프랑스로 떠난 주인공이 원숭이처럼 놀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인종박물관이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진 체험관 속에서 더러운 옷차림으로 앉아 다른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어야 했다. 일본은 서양을 본떠 인종박물관을 열었고 일본 내 원주민들과 조선인을 그 안에 가두어 두고 사람들이 관람하도록 했다. 박물관 문화가 훗날 동물원으로 확장된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인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이 책은 가슴 아픈 이야기, 숨기고 싶은 이야기지만 우리들이,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진실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우리도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의 시선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김해보아야 할 것이다.
~~~~~~~~~~~~~~~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가 식민지를 향해 항해를 떠날 때 사진가를 승선시켜 새로운 정복지를 샅샅이 기록했다는 것만 봐도 초창기 카메라의 힘은 곧 근대 문명의 강력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카메라를 보유했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칸 인디언, 아시아인들의 인종 사진이나 풍속 사진이 유행했으며, 20세기를 전후해서는 사진엽서의 형태로 대량 생산되기에 이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엽서들은 이러한 ‘세기적 응시’의 결과물들이다. 그것들은 서양에 의해 만들어진 동양의 모습이며, 지배자의 시선이 투영된 타자의 이미지들이다. 여기서 지배자의 시선은 일본의 시선이며 그것은 서구 지배자의 시선과 교차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른 시선을 조선에 투영하고 있다.
이 사진엽서들은 오랫동안 조선과 역사 경험과 문화를 공유해왔던 일본이 근대 국민 국가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어떻게 조선을 타자화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략)
필자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 또한 여전히 현실 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시선의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다.
(작가의 글, 8~9쪽)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수전 손택의 글을 인용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는 문화를 필요로 한다. ...(중략) ... 카메라는 진보된 산업사회의 작동에 본질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실재를 규정하는데, 하나는 구경거리(대중을 위해)로서, 하나는 감시의 대상(지배자들을 위해)으로서이다. 이미지의 생산은 또한 지배 이념을 공급해 주기도 한다.” (본다는 것의 의미, 존 버거, 84쪽)
|
|
사진은 다분히 촬영자의 의도에 의해 왜곡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차 |
| 식민주의/포스트식민주의 연구가 학계 동향에 대한 소개 수준을 넘어, 이제 (나름대로 식민지를 겪었던) 한국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이 책도 그런 흐름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19세기말-20세기에 걸쳐 조선에서 만들어진 엽서들을 대상으로 그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시선과 그 시선의 구조를 밝혀내고 있다.. 중요코드는 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 문명과 야만의 이분구도 등등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식민지기에 이루어진 문화적 실천들과 그 결과물 속에 내포된 지배자의 시선을 밝혀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자문해보고 싶다. 그럼 저자의 입장은 무엇인가.. 저자는 어느 위치(location)에서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가. 심하게 말하면 이러한 식의 문화비평은 오히려 토착민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저자가 무수히 싣고 있는 사진 엽서 속의 조선인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주체일 뿐이다.. 저자의 위치는 도대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단순히 반제국주의 비평가라는 입장에서?? 하지만 <가련한 식민지의="" 꽃="" 기생="">에서 드러나듯, 토착민 여성에 대한 식민자의 포르노그래피적 응시와 토착민 남성의 응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식민자의 담론 구조를 그대로 뒤엎었을 뿐, 본질적으로 그들의 논리와 동일한 것이다. 그 연환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시도될 수 있는 작업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가진 억압된 희생자인 토착민 여성과의 '상징적 동일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물론 리뷰하는 나 역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고민들이 조금 더 책에 묻어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그리고 강하게 남는다.. 이 책은 이러한 엽서와 이미지들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시선과 그 시선의 구조를 알아보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엽서들은 서양에 의해 만들어진 동양의 모습, 지배자의 시선이 투영된 타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형성된 이러한 이미지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05년 민음사 <올해의 논픽션상=""> 대상 수상작.올해의>가련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