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개토대왕비 해석에 대한 한/일 역사가 사이의 논쟁은 끝나지 않는 전쟁과도 같다.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내용이 논쟁의 중심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탁본에 근거한 신묘년(서기 391년)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屬民)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XX와 신라를 깨부수어 (일본의)신민(臣民)으로 삼았다” 일본측의 역사가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였고, 고대 한반도의 남한 지역은 일본의 지배아래 놓여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이 대두하기에 이르고, 결국 군국주의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하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우리 민족에 새겨졌다.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고, 비문이 해석되어 알려지게 된 시대는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전이다. 비문이 알려지자 단재 신채호나 위당 정인보와 같은 분들께서 반론을 제기하였을 뿐, 우리나라는 이러한 역사적인 왜곡에 대항하여 저항하거나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국력, 주권, 인재가 없을 때였다. 광개토대왕비는 강대해던 광개토대왕의 역사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역사적 유물이었다. 해방 후 광개토대왕비가 소재되어 있는 집안 지역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공산주의의 땅이였기 때문에, 또한 일제의 의해 길러진 역사가들이 관심을 굳이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1970년 재일 사학자 이진희씨가 광개토대왕비의 변조설을 주장하고 나섰고, 이러한 주장은 군국주의의 망령이 여전한 일본사회에 큰 파문을 가져왔다. 광개토대왕비 비문은 국내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하지만 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서예가로 알려진 저자가 비문 해석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은 흥미롭다. 다른 역사가들의 주장처럼, 당시의 역사적/국가간 정세 혹은 다른 역사서들을 증거로 들어가며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문에 새겨진 글자에 기반해서만 새로운 사실을 입증해 냈다는 것이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다. 저자는 순수한 서예가의 입장에서 광개토대왕비문의 그 글자의 모양에 반하여 몇번이고 따라 썼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예가의 붓놀림을 막히게 하는 답답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이진희씨의 학설을 듣게 되면서 그 답답했던 부분이 변조설의 핵심을 이루는 신묘년 기사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비문이 저자를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었던 것일까? 저자는 비문 전체에 흐르는 글자의 서체의 특징을 분석하여, 변경된 부분을 추적해내고, 또한 원래 거기에 있었던 글자까지 유추해 내었다. 또한 그러한 해석을 통해 원래 비문의 뜻을 복구해내었다. 비단 서체의 해석에만 기반하지 않고, 사용된 한자어의 뜻과, 순수학 한문학적인 해석 과정은 저자의 주장을 더욱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복잡한 역사학적 인과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자의(字意)적인 해석을 통해서도 우리는 현재 전해지는 기사의 비상식적인 사항들을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서예가가 아닌 일반 역사가였다면 아마도 유추하거나 복구해 낼 수 없는 학설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전 탁본은 그냥 비문에 대고 찍어내는 것인줄로만 알았지만, 실제로 일본이 내세우는 최초의 탁본은 쌍구가묵본이라는 형태의 탁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글자모양에 따라 외곽선만 그려온 후에 먹을 칠하는 탁본인 것이다. 비문에서 직접 찍어오지 않고, 외곽선만 그려오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탁본아닌 탁본이다. 마음껏 조작이 가능한 쌍구가묵본으로 일본측에 유리하게 탁본을 만든 후에 만주사변 이후 광개토대왕비를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된 일본은 이제 원래의 비문까지 변경하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기꾼이 집주인을 몰아내듯, 자식이 부모를 치듯, 원래의 광개토대왕비는 일제의 손에 의해 시달림을 받았을 것이다. 해방 후 경주 지방과 옛 가야 지방, 그리고 백제의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일본의 임나일본부 설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일본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고대 유적지들의 발굴은 일본 궁내성이라는 일왕하 기관에 의해 억제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발굴하기만 하면 고대 한반도에서 문물이 전해진 증거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진희씨를 필두로 하는 많은 사학자들이 한일 공동 발굴을 의뢰해도 그들은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비로서 일본의 식민사학이 자리를 잃어가고 있나 싶은데, 얼마전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바탕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고구려는 먼 옛날 중국의 변방민족 국가로 중국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배후에 어떠한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현재 중국 땅의 각종 고구려 유적들이 중국의 주도 아래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음도 가만히 넘겨보아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실로 우리 민족은 일제하에서 벗어나긴 하였지만, 아래로는 임나일본부 설을 주장하여 한반도 남부가 예전에 자기네의 지배아래 있었다고 주장하는 일본과, 위로는 광활하였던 고구려의 땅이 기실은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할 곳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사이에 끼여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땅이, 외국인들의 주장에 의해 점차 줄어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만일 그대로 한강 이북이 중국 역사에 편입되고, 한강 이남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땅이라 친다면, 우리 민족은 어디에 발을 붙여야 할까? 1500여년 전 광개토대왕비를 세웠던 장수왕이 통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광할한 대지를 호령했던 민족의 기상을 드높이기 위해 정성껏 새겨넣었던 광개토대왕의 기록이 일제에 의해 치밀히 조작되어 이제는 민족의 자긍심을 깍아내리는 데 사용되고, 그 비가 서있는 땅조차 중국인들에게 넘어가 버렸으니, 애초에 비문을 세움만 못했을 것이라고 후회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른지. 광개토대왕비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이진희씨의 주장에 대한 지지는 커녕 관심조차 서서히 사라지고, 민족은 북한과 남한으로 분리되어 통일을 꺼려하고, 중국의 조선족은 더 이상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한줄기 짧은 소낙비와도 같은 깨우침이다. 저자의 새로운 주장이 여전히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로 나뉘어져 있는 국내 사학계에서 어떠한 반응을 가져올 지 기대된다. 무엇보다 동북공정이 한참일 때 잠시 달아올랐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되돌리는데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 광개토왕비문은 한문으로 적혀있다. 중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이를 해석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또 비문의 자체(字體)를 가지고 변조를 확인하는 데에도 역시 서예학자로서 그가 적격이었다. 저자인 김병기씨는 어려서 부터 부친으로 부터 한문과 서예를 배웠고, 대만으로 유학을 가 중문학과 서예학을 전공한 교수이다. 서예골동품의 위작 판정 시 원본과 아무리 똑같이 보이게 글씨를 쓰더라도 전문가들이 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책에서 나오듯이 ‘날획’, ‘들획’ 등 글자 속에 있는 한 획만 가지고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듯이 저자는 비문 속에 있는 글자의 획을 가지고 비문의 비밀에 접근해간다. 광개토왕비는 높이만 해도 6미터 이상이나 되는 거대한 자연석을 가지고 그 네 면에 1,775자를 적어 놓았으며, 이 중 141자가 훼손되어졌으며, 그 내용은 고구려 건국신화와 광대토대왕의 정복기사 및 광개토왕릉을 지키는 책임을 다 할 수모연호의 출신과 가구수를 적어 넣은 것이다. 그런데 100년 이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신묘년(辛卯年, 391년) 기사는 불과 23자에 불과하며, 특히 23자 중 변조 의혹이 있는 글자는 바로 세 글자인 ‘도해파(渡海跛)’이다. 불과 세 글자가 4세기 후반의 역사뿐만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전체에 그 많은 글자 중 단지 세 글자를 가지고 그 긴 세월 동안, 그 많은 학자들이 논쟁을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도 중요한 것은 한 문장이거나 불과 몇 글자일 수도 있다. 저자는 앞 뒤 문맥이나 변조의 용이성을 들어 ‘도해파(渡海跛)’가 아니라 ‘입공우(入貢于)’ 일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신묘년기사를 해석한다. 그러자 100년 동안이나 문법적으로 맞지 않고, 역사서와도 맞지 않던 부분이라고 여겨지던 부분이 명쾌하게 해석되는 것이다. 혹자는 역사가도 아닌 저자가 고대사에 있어서도 첨예하게 부딪히고 전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에 새긴="" 역사,="" 박창범="" 저="">보듯이 천문학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전체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학제간 연구의 성과를 깍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고 또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자구(字句)의 뜻만 가지고 100년 이상의 논쟁 속에서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일본인 연구자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진희 교수처럼 비문의 변조에 대해 이야기한 학자도 있었지만 이는 그간의 연구에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주는 효과는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변조설은 더 이상 연구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저자는 신묘년 기사가 비문의 정토기사에서 차지하는 입장을 문법적으로 확인하며 변조되기 전의 세 글자가 ‘입공우(入貢于)’을 재차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20년 동안이나 광개토대왕비문을 연구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현행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보면 ''광개토대왕비문''에 대한 부분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는 비문의 내용이 고구려의 정복활동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비문의 서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런 교과서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과연 광개토왕비문에 어떤 내용이 있으며, 그 내용 연구결과를 가지고 지난 100여 년간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학문적인 논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의심이 든다. 그 오랜기간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비문의 내용은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가지고 일본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병합하는데에 있어서 정당성을 내세웠다.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임나일본부설은 한반도 남부를 4~6세기 경에 일본이 지배했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일본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서기란 책은 저자도 모르고 집필시기도 모를뿐더러 책에 표기된 년도 자체도 다른 역사서들과 맞질 않는 등 거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런데 일본인이 생산한 문서가 아니라 고구려란 나라가 만든 금석문에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생긴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의 진실성을 대내외에 나타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그들은 19세기 말에 비문의 연구결과를 드디어 발표한다. 하지만 그 비문은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찬양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때와는 달리 몇 글자가 조작이 된 것이었다. 세 글자에 불과한 글자를 조작함으로써 일본인들은 동아시아 고대사를 새로쓰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 비문에 대해 한국이나 북한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반론을 펼친 그 내용에는 문제가 있었다. 반론은 조작된 바로 그 글자를 그대로 인정한 채 해석만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1972년에 가서야 재일 사학자인 이진희씨가 비문이 변조되었음을 밝힌다. 그때부터 비문의 내용은 새로운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모든 논쟁의 내용을 이 책에 담고있으며, 그의 중문학자와 서예가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조작된 글자를 찾아내고 원래의 글자를 복원해내고 있다. 물론 저자 이전에도 서예학적 접근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저자 처럼 치밀하게 규명하지는 못했다. 이 책의 내용을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 지가 궁금하다. 나로서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이 주제에 관련한 책을 여러번 읽어보았다. 이 책을 다 읽고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작해서 집에 있는 관련 역사서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 책만큼 일제가 한 변조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책은 못봤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정점에 있는 이 광개토대왕비문은 이제는 또다른 적을 만들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우리의 영토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정신까지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우리를 옥죄고 있는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현행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로는 어림없는 일이다.하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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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광개토대왕비에 대해 일본의 변조혐의가 있었던 정도로 알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기억속에 희미해져 버린 기억들이 저자의 역작으로 새롭고 좀더 구체적으로 각인됩니다. 단순히 이 비문의 변조에 관련한 역사 왜곡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학문의 진리와 비뚤어진 애국심,주위열강들의 국가적이고 조직적인 -지금도 진행중인-치밀한 위협속에서 우리역사를 어떻게 지켜가야 할것인가등 보다 넓은 역사적인 시각과 생각들을 다시한번 생각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