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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찾게 되면,도슨트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다. 나름 이곳저곳을 기웃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도슨트분들의 역활이 얼마나 새삼 중요한가를 느끼는데.. 덕수궁에서 라틴전을 볼 때 도슨트분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설명조의 그림 해설은 정말 흥미롭지 못했다.물론 그림이 좋으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라고 생각 할 수 도 있겠지만,그림에 설명이 그림보기를 더 즐겁게 해 주는 경우가 분명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도슨트분의 재미난 설명은 즐거운 그림 보기의 한 요소라 생각한다.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라는 책도 그런 점에서 맛깔 나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우선 그림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아닌,그 그림이 나오게 된 동기 혹은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이 우선이다.그렇다고 가벼운 농담처럼 한 번 듣고 잊어도 될 그런 내용들도 아닌것이다.
지금 덕수궁미술관에선 근대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가 열리기전 이 책을 읽었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었겠다 하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들면 지금 전시 되는 이중섭 작품엔 은지화에 그린 작품이 전시중이다.그런데 은지화 작품을 어쩌면 볼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더불어 은지화 작품이 세점 있다는 것도 그런데 나는 그저 가난한 화가의 상징정도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다.그가 가졌던 열정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그리고 막상 전시된 은지화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다시 가서 볼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전 학고재에서 낯설기만 한 서화전을 보고 왔다. 서화전앞에도 근대라는 제목이 붙어있었기때문이다. 당연히 아는 이름은 허백련정도이었으니 온전한 감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안중식 혹은 김은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 책을 먼저 만났더라면 서화전도 조금은 더 다르게 감상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림에세이란 장르가 그림보기에 대한 낯설음을 많이 해갈 해 주었다면 이렇게 그림사, 그것도 야사의 글들은 그림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게 만들어 주는 기분이 들어 좋다. 그래서 단편적으로 알았던,화가에 대한 이야기 혹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져 즐거운 그림보기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아닐지..
이 책을 읽고 나니,그냥 스치듯 지나쳤던 이중섭의 은지화 그리고 고희동 구본웅의 그림앞에서 다른 느낌으로 그림을 감상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더 많은 근대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나는 다시 덕수궁미술관으로 향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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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월간 미술세계"에 연재했던 내용을 다시 편집해 만든 책인데,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먼저 1899년 휴버트 보스보다 앞서 새비지-랜도어라는 사람이 1891년부터 1년동안 서울에 머물며 조선 사람들과 곳곳의 풍경을 그렸고, 특히 고종과 민씨 일가 초상도 유화로 그려 궁중에 큰 화재와 놀라움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초상화의 대상이 된 이들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려 넣지 않는 서양 화법의 사실적인 기본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에피소드도 소개된다. 1900년대 초 황성신문에 나온 광고로 알 수 있었던 한국 최초의 화랑 정두환 서화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미술계에서 1911년 당대의 쌍벽 대가였던 안중식과 조석진이 중심이 된 최초의 근대적 미술학교로 3년 과정의 서화미술회 강습소가 창덕궁 황실 후원으로 설립되고, 여기를 졸업한 이용우, 김은호, 박승무, 이상범, 노수현 등이 1920년대 이후 전통적 한국화의 새로운 모색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일찍이 청국에 가서 대륙적 서법과 화법을 체득하고 돌아와 궁내부 시종이 되어 어린 황태자 이은의 서법 사부를 지냈고, 1906년 황실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사진 기술을 익히고 와서 궁중 사진사가 되었던 김규진이 1907년 자신의 큰 저택에 천연당 사진관을 개설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3.1운동 때 민족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인사동의 옛 태화관 자리 근처에 현재 민충정공 민영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는 1905년 을사조약 당시 조약거부와 파기를 고종황제에게 필사적으로 상소하였으나 가망이 없자 최후의 항거로 피신처에서 끝내 자결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의 피 묻은 군복과 단도 등이 보관되어 있던 본가가 바로 그 기념비 인근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반년 뒤에 대나무 네 줄기가 솟아올라 구국혼과 애국 정신을 고취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대나무 그림을 남긴 화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전통 수묵화가였던 이도영이 대한민보에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풍자만화가로 변신했는데, 자유로운 먹붓 구사를 토대로 서양의 사실적인 묘사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고희동의 1915년 사인이 있는 자화상은 그가 미술학교에서 파리에 유학한 바 있는 구로타 세이키 교수의 인상파 화법을 습득한 밝고 투명한 색채 구사로 그려졌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또한 근대 한국미술사의 첫 추상작품으로 알려진 주경의 "파란"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진다. 집안이 부자인데다가 아버지가 서점도 경영하고 있어서 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주경은 일본에서 나오던 미술잡지를 구독할 수 있었고, 그 잡지에서 서구의 새로운 미술사조의 정보와 작품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의 직접적인 동기는 어떤 일인가로 집안이 갑작스럽게 몰락하게 된 것을 지켜보면서 충격과 비참함과 혼란한 심정을 충동적으로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파란"을 묘사한 것이다. 실제 그림에서는 폭풍에 난파당한 거대한 선체를 연상시키는 구조적이고 기계적인 형체들이 무섭게 무너지거나 쓰러져 있는 파란의 상황을 부각시켰는데, 색상의 무거운 분위기에는 공간적, 시간적 긴장감이 충만하며 불안감 짙은 미래파적 표현을 구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주경이 18세 때 그린 것으로 이후 일본 미술학교 유학시기인 1930년대에는 순수 추상작품도 여러 점을 그렸지만 사실적인 그림도 병행해서 그렸다고 한다. 이렇듯 1920년대에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은 새로운 표현방법의 동양화를 그릴 것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유럽 중심의 다양한 미술사조의 변화를 반영하라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나타난 빛과 색채 중심의 새로운 화풍이던 인상주의는 후기인상파 등으로 변화 발전했고, 후기인상파의 대표적 화가인 세잔, 반 고흐, 고갱 3인은 20세기 초기 혁명적 회화 운동인 순수한 색채와 격정적 표현의 야수파, 복수 시점과 사물 형상의 구축적 재구성 등으로 지향된 입체파, 자연의 재현을 거부한 자유로운 회화 창조의 표현파, 기계 문명 시대에 어울리는 속도감과 역동감 내지 어떤 불안 등을 표현하려고 한 미래파, 그리고 추상주의 등 출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190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표된 미래주의 선언을 통해 이 사조들은 전위 미술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구에서의 반 전통적 회화 혁명의 양상은 동양으로도 파급되어 동양에서도 새로운 미술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1910년대 후반부터 주로 도쿄에 유학한 신세대 미술학도들 중에서 그 새로운 서구 미술사조를 신문, 잡지를 통해 알고 충격과 이해와 추종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구 중심의 새로운 세계 미술사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소화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여러 미술서적에서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을 목격하고 미술잡지를 통해서도 서구의 전위미술 실상에 열광했던 구본웅 같은 이가 선도했다고 한다. 특히 부유한 명문가 태생이었으나 신체적 불구의 곱사등이였던 구본웅은 신문화운동의 후원자였던 아버지 구자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9세기까지 한국미술사에 서양에서나 볼 수 있던 누드 미술, 곧 나체의 젊은 여인상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상 작품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며 서양의 미술 방식이 수용되는 가운데 한국에도 서양식 누드 미술의 예술적 정당성이 인정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미술학교와 파리에 유학한 신세대 양화가와 조각가의 작품 중에서 그런 누드 작품의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누드 미술의 역사적 첫 작품은 1916년 김관호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할 때 제출했던 "해질녘"이라 한다. 도쿄미술학교를 수석 졸업한 김관호의 그림은 유교적 도덕관이 엄격한 사회규범으로 살아 있던 당시에 신문에조차 개재되지 못했다고 한다. 도쿄미술학교의 경우 졸업할 때 서양화과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자화상과 성적 평가를 위한 자유작품 제출하는데, 보통 나체 작품을 많이 출품했다고 한다. 이후에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서양미술을 본받은 누드 미술의 사회적 이해와 자연스런 감상 관계 성립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 밖에 이 책에서는 저자 자신의 애장품이었던 구본웅의 "김상옥 의사의 장렬한 최후"에 대한 이야기, 근대 한국 미술사의 첫 양풍 조각가 김복진의 굴곡진 삶에 대한 이야기, 한국 첫 양화가 부부 임용련, 백남순의 작품을 우연히 찾을 수 있었던 이야기, 뉴욕 근대미술관에 보내진 이중섭의 은지화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양담배를 누군가가 다 피고 버린 빈 갑을 주워 그 속의 은박지를 바탕으로 삼은 선화를 만든 이중섭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면서 임시 판자로 만든 변소에서 삐저나온 못을 빼내어 은지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개인적으로 근대미술관련 도슨팅을 준비하면서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