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성과연봉제가 이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성과연봉제는 업무능력과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 임금에 차별을 두고 저성과자는 해고시키는 게 방침인 제도다. 정부는 일단 공공기관부터 그것을 적용하려는 참인데, 현재 노조의 반발이 꽤나 거세다. 물론 취지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 서비스가 주목적인 공공기관에서 사기업처럼 업무 능력과 성과를 일률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공 기관의 무능과 부패는 대부분 권력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자행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한 것인데 그 책임을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할 뿐인 일반 직원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과연봉제는 임금 억제와 쉬운 해고가 골자다. 근본적으로 부자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 상황을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타개하려는 데 있다. 단적으로 소득 불평등 심화에 일조하는 정책인 것이다. ![]()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토마 피케티는 이렇게 되는 이유로 전체 소득에서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꼽는다. 그는 그것을 선명히 나타내기 위해 피케티 공식이라는 것을 고안했다. 공식에 대입하면 피케티 지수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 전체 소득 중 자본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킨다. 피케티는 이 지수가 1950년 이후로 계속 증가해 왔다고 한다. 즉 원래 가지고 있는 자본에서 얻는 소득이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부의 획득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 오로지 세습을 통해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단어인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정태인 교수가 피케티 공식에 따라 우리나라 피케티 지수를 산출했는데, 우리나라 전체 소득 중 자본이 차지하는 몫이 무려 절반에 가까운 48%였다고 한다. 절반에 가까운 소득이 아무 노동 없이도 가능하다니, 정말 우리나라 불평등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피케티는 이 지수가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 본다. 당신이 흙수저라면 앞으로의 미래도 현재만큼이나 암울하다는 예언인 것이다.이 운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피케티는 조세 정책에 승부수를 띄운다. 무엇보다 오직 자본을 압박하는 조세만이 자본과 노동의 진정한 재분배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p. 91) 지금까지는 경제 성장이 우리의 생활을 향상시킨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피케티에 따르면 OECD 국가의 경우, 1983년부터 1995년까지 부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같은 시기 노동자들의 삶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실질 임금의 하락으로 삶의 질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한 마디로 성장의 과실은 결코 노동자에게로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들이 흔히 주장하듯, 경제 성장이 더 좋은 삶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다만 넌센스인 것이다. 때문에 기댈 곳은 오직 재분배 정책밖에 없다. 그것도 자본 소득에 집중된 재분배 정책이어야 한다. 거기에 가장 실질적이며 커다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세 정책이다. '21세기 자본론'에서 피케티가 강조한 부유세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고찰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인적 자본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불평등도 그렇지만 부국과 빈국 간 불평등의 핵심은 생산 수단의 불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인적자본의 불공평한 분배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p. 112) 이 인적 자본을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바로 '효율적 재분배'다. 피케티는 재분배 정책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높은 임금과 낮은 임금 사이의 격차를 완화시키는 '기초적 재분배'이고 다른 하나는 인적 자본 형성 과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개인의 학력간 능력간 차이를 없애는 '효율적 재분배'다. 이를테면 효율적 재분배란 로스쿨처럼 돈과 부모의 배경이 있어야만 배움의 기회가 허락되는 것을 근절하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학 학제처럼 누구나 균등하게 어려움 없이 자신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부유층 못지 않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 같은 지원 제도를 정부가 광범위하게 마련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효율적 재분배라 할 수 있다. 즉 부유세를 통해 확충된 재정이 효율적 재분배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의 인적 자본의 성장 주도가 궁극적으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심한 불균형을 해소할 것이라 보고 있다.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여기저기서 보다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을 보게되는 요즘, 피케티의 이런 조언은 아무래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
|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와 재분배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그 체감의 정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만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중산층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왔었다. 하지만 고용불안과 물가상승이라는 대외적인 요인과 내부적으로는 주거와 사교육비의 증가로 인해, 점차 중산층이 붕괴되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이제는 점차 가속화 되어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러한 문제점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사회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고 할 때, 향후 국민들의 위기감은 한층 팽배해 질 것이고, 급기야는 사회 안정화를 해치는 하나의 커다란 불안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에 의하면 1980년대 이후부터 대다수 주요 선진 국가들은 소득 불평등의 격차가 더욱 증가하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최근 홍콩에서는 연일 반정부 시위가 날로 확산되어 가면서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홍콩 행정장관 선거 안에 반대하는 자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몇몇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극심한 빈부격차에 의한 소득 불평등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에 관하여 그 원인에 대한 핵심적인 부분을 살펴보고, 수없이 제기되어 왔던 여러 경제적 이론과 관련하여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했다. 이 책은 21세기 자본론과 관련하여 극히 일방적이고도 편향적인 흐르고 있는 부의 이동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당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어떻게 하면 최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해 집중조명하고 있다. 책의 서두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동안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부의 불평등과 재분배의 문제를 두고 마땅한 해결책을 위해 시각을 달리하는 두 가지의 논점이 있어왔다. 이를테면 시장원리와 개인주의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가급적 줄이는 대신에 생산성의 증가에 초점을 맞춰 이를 기반으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인 우파의 주장과, 반면에 사회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시장원리가 자본소유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세금을 물려 재정이전에 출자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생산과정에까지 정부의 적극적인 공적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좌파의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두 가지 관점을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난 경제의 역사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의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몇몇의 지표들을 토대로 지금까지 불평등을 초래해왔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미 폭넓게 합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재정적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실에 근거하여, 기존의 재분배 전체를 보편적 이전으로 대체하기보다 기존의 제도적 도구, 즉 부의 소득세와 기초소득을 보장해주는 세액제도를 충분히 활용하고 부차적으로는 교육의 투자와 공적인 사회제도를 병행 유지할 때, 비로소 불평등의 개선에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서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무리한 인플레정책이나 자본수요를 증가시키려는 경기부양책은 실질적인 재분배에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지난 250년간의 경제적 부의 집중과 재분배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면서 결론적으로는,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경제 불평등에 해소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불평등을 해결하는 많은 경제이론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용상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일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효율적 재분배를 역행하거나 비생산적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서 인적자본의 모든 불평등을 단지 차별 현상 탓으로 돌린다거나, 임금 저하의 모든 원인을 고용자들의 수요독점권으로 돌리는 행태도 결코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의 말하려는 요지를 함축해 본다면, 국가는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메커니즘의 본질적인 부분을 깊이 인식하고 단기적인 효과를 위한 부양책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시장원리에 불리한 입장에 직면해 있을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들의 처지를 개선하거나, 세제개혁을 통한 재분배의 확대와 고등교육과 같은 공적지원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무리 유효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시행되는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여야 하며, 다른 무엇보다 경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있어 좌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우리의 균형적인 시각이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 책의 저자이면서 21세기 자본을 출간하여 전 세계에 피케티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는 최근 국내에 방한하여 고도의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의 경제 현황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한편 소득 불평등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할만한 수준이라면서, 이에 대하여 누진세 정책과 교육에 대한 투자와 같은 다각적인 방법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오늘 우리의 경제가 안고 있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좋은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
|
경제학은 본디 "정치경제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범한 학문입니다. 이는 애덤 스미스 때도 그러했고, 리카도와 맬서스의 시대까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던 것이, "순수"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란 존립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다기보다, 그 존재 이유가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이며, 따라서 정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아니면, 계량적 분석 방법이 채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상황의 한계도 작용했을 터입니다. |
|
작년 가을, 파리 경제대학교의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준 임팩트를 대단 했다. 피케티의 나이를 거론 하면서 좌우진영의 논란은 오히려 피케티의 인기를 높게 했고, 그 만큼 그의 이론을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활을 했었다. 연세대에서 있었던 그의 특강을 듣고(사실 그의 이론 보다는 그의 프랑스억양의 영어를 알아듣는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그의 저작을 더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21세기 자본이 번역 출판될 당시, 번역의 문제로 많은 말이 많았고, 원서를 읽는게 더 좋다던가 일부에서는 피케티 교수의 또 다른 저작 "불평등경제"를 읽는것이 더 좋다라는 주장도 있었던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불평등 경제를 지금에서에 읽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 했지만 경제학을 공부 했던 사람으로, 특히 피케티 교수와 노선이 비슷한 입장에서 그의 저서를 너무 늦게 읽어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이라도 읽은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무시무시한 크기를 자랑하는 21세기 자본과는 달리 불평등 경제는 250페이지 정도로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다. 첫 출판도 1997년도에 이루워 졌다고 하니, 묘한 아우라를 가진 책인듯 하다. 책은 크게 4가지 챕터를 가지고 있다. "불평등과 그 변화의 척도" "자본과 노동간 불평등" "근로 소득의 불평등" "재분배의 도구들" 전체적으로 21세기 자본과 맥을 같이 하는것을 알수 있다. 하지만, 책이 비교적 어렵다. 21세기 자본이 꾸준한 끈기와 교양수준의 경제학이론을 가지고 있다면 쉽게 다가갈수 있는 책이라 한다면, 불평등 경제는 전공 수업시간에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용어에서 오는 압박이 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주도 책의 마지막에 있어(그것도 용어에만 한정되어 있다) 읽는 불편함이 있지 않을까 한다.
데이터와 데이터 해석에 치중하다 보니, 수식은 적어도 지루함도 상당하다. 이 책은 백지 상태에서 읽는다고 하면 차라리 강의용 교과서로 쓴다면 효과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반이 읽기에는 분명 몇배더 무거운 21세기 자본이 더 좋을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평등경제"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데이타를 직접적으로 해석하며 이야기를 하니, 이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그의 책 번역 문제로 한국 사회가 잠깐 시끄러웠다. 원서를 읽지 못하는 사회와 경제학이라는 어려운 학문(결국 경제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싸움)속에서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조금더 많은 공부와 인내심이 필요한듯 하다. |
|
난해한 책 - 불평등 경제를 읽고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과를 선택했고, 학과 역시 이과 중에서도 가장 이과적일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기계공학부'에 입학을 해, 이제까지 전공을 배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다. 딱히 신문을 보는 것도, 뉴스를 챙겨보는 것도, 아니면 관련 동아리나 스터디에 들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책을 워낙 좋아하는 나머지, 경제 관련 서적도 몇 권 읽었고, 그 중에서는 '나쁜 사마리안인들'이나 '경제학 콘서트',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등, 논란도 많지만 그 만큼 재미도 있어, 공학도 임에도 경제학 이라는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나의 그런 흥미를 한번에 떨어뜨리는 책이었다.
지금 한창 베스트 셀러를 유지 하고 있는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의 역작이라는 이 책은, 처음부터 난해한 개념이 나온다. 기초적 재분배와 효율적 재분배 부터 시작해, 근로 소득과 자본 소득, 세습제안 소득, 쿠르데츠 이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대체 탄력성과 기능편향적 기술변화 라는 용어까지 쓰이면서, 그야말로 난해한 개념을 난해하게 풀어 나가고 있다. 평소 독서량이 적지 않고, 특히 이 책은 내용을 메모지에 정리하면서 읽는 '초서 독서법'까지 해가면서 읽었지만, 여전히 그 개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책의 마지마 페이지를 덮고도, 이 책이 경제의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 이래 저래 분석을 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통념 그 이상으로 세밀하게 알아본다는, 대충 그런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추측만 될 뿐, 그 이상으론 이 책이 무슨 내용을 이야기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나는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 이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교재'가 아닌 '책'이라면, 난해한 개념을 굳이 난해하게 설명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나 저자는, 어려운 개념을 어렵게 설명하는 역할이 아닌, 어려운 개념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에 어려운 걸 어렵게 설명한다면, 이것은 '책'이라 말할 수 없고, 그저 '교재'라고 말을 해야 할 것 이다.
결과적으론, 이 글이 서평인지, 아니면 그저 경제학에 문회안인 한 공학도의 투정인지 모르겠다. 결국 이 책이 어렵다는 것은, 나의 낮은 수준을 다시금 말해주는 역할을 해 준 듯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를 많이 한 책 이었고, 이 어려운 책을 읽으며 무엇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을 한 것에 비해, 얻은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절로 아쉬움이 든다. 확실히, 아직은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님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책이 양서 인지, 아니면 진짜 그냥 교재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내가 수준을 좀 더 올려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난 후에, 이 책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었으면 싶다는 생각이 든다. |
|
<21세기 자본>으로 ‘피케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저자의 1997년 처음 출간된 책으로, 불평등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불평등을 해소할 재분배에 대해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임금불평등과 소득불평등에 대한 조사와 그에 대한 국제적 비교와 역사적 변화를 통해 고용불평등의 평가에의 한계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평균 소득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상위10%와 하위 10%의 차이와, 하위 10%가 상위 10%에 속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벌어야 하는지, 불평등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근로소득(과거에 축적한 자본소득이 아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분배의 수뇌부를 지배하는 사회가 되려면 역사적 상황과 특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재분배를 위한 어떤 공적 개입도 없다면 자본·노동 간 효과적인 소득 분할은 노조의 협상력이나 큰 몫을 챙길 만한 고용자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지만 재분배를 위한 공적개입은 근로소득의 불평등에 집중될 것이고 자본·노동 간 불평등 문제는 잊혀질 것이다. 이 분배가 어떻게 시행되는지 보다는 결과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소득분할은 기초적 분배 갈등을 야기하고 노동의 한계생산성(임금, 사회적 분담금, 상여금 등 기업들이 추가로 노동자를 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노동가격보다 크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을 채용하고자 할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1970년대부터 유럽의 실업률이 증가한 것은 노동을 압박하는 공제(각종 사회적 부담금)의 대폭 증가와 자본을 압박하는 공제(기업 이윤세의 감소, 수많은 자본소득에 대한 면세)의 감소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이러한 정책들이 노동비용을 올림으로써 기업들이 더 많은 자본과 더 적은 노동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노동 측을 압박하는 공제의 일부를 자본 측에 이전해야 한다는 제안들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독자들의 관심사는 사실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기초적 재분배와 효율적 재분배의 중립적 위치에 있는 재정적 재분배는 고소득자들보다 저소득자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는 재분배로 인한 의욕저하 효과를 가져 오게 될 뿐이다. 사회보험 형태의 재분배가 효율적 재분배가 되려면 고등교육 공적지원은 흔히 저소득에서 고소득으로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임금인상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이로써 고용수준과 경제활동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케인즈식 수요의 재분배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재분배의 도구일 것이지만, 개념적 근거와 경험적 토대들이 비교적 약하다고 한다. 인적자본의 모든 불평등을 차별 현상 탓으로 돌린다거나, 임금 저하의 모든 원인을 고용자들의 수요독점권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것은 허사이고 역효과만 낼 뿐이라는 말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체계를 통해 제공되는 최저생계의 기회와 조건들을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맥시민 원리'를 실현시키려면 불평등을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매커니즘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해야 할 것이다.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장원리 방식을 구조적으로 수정하려고 애써야 하고, 생산과 자원 배분을 모든 이들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재편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가장 정의롭고 가장 효율적인 재분배를 실행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라 한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
리뷰 - 불평등 경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봐라....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서 돈이 아니면 안될 것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없는 자가 범법을 하면 중형을 선고 받지만, 돈이 있는 자가 범법을 하면
그냥 풀려난다. 그렇게 아무 이상이 없던 건강도 범법 사실이 드러나면 곧 죽을 것 같다.
판결이 나오고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온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은 다시 회복한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그들은 그리 쉽게 빠져나가고, 그 와중에도 엄청난 부를 챙겨 간다.
그래서 인지 우리나라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부자라고 말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 소득의 불균형은 비단 지금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경제 사실이다.
올해 초부터 토마 피케티 교수가 정말 뜨겁다.
21세기 자본은 이미 원서로 올초에 국내에 들어왔고, 9월 번역본은 엄청나게 주인을 찾아갔다.
그가 연구한 21세기 자본은 불평등 경제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가 있다.
불평등과 재분배의 문제는 두 입장간의 대립이 갈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원리와 개인주도성, 생산성 증가만이 극빈자의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우파의 자유주의적 입장과
사회정치적 투쟁만이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극빈자의 불행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전통적 좌파의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겪고 있다.
피케티만의 오랜 연구와 분석력에 나온 의견이기에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서로 공무원을 하려고 한다면 그 나라는 복지가 형편 없는 국가라는
얘기가 있다. 공무원이 아닌 나라의 복지를 누리면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 할수 있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나라가 바로 서야 한다. 부의 재분배를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과 탐욕에 젖은 자들의 기준으로
나누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2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간판은 그럴듯 하게 걸려있다.
과연 , 대한민국의 현실이 세계의 경제대국 12위의 현실일까?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허례허식이 가득한, 정작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말로만 형식적으로만 복지국가를 지향하면 안된다.
언행일치는 진심으로 정성을 다할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에 하소연을 풀어보며 지금도 나는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꿈꾸고
실천해 나가려 한다. |
|
2012년 대선에서 지금의 정부는 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그리고 2014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증세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재정건전성을 보다 좋게 하기 위한 자치단체들의 요청에 의해 담배값과 주민세를 올린다고만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것이 증세의 또 다른 모습이란 것을. 정말 국민의 건강을 위했다면 담배 가격을 훨씬 더 높게 올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가진 자들과 없는 자들이 똑같은 세금을 물게 한다는 것을. 과연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한 것일까? 하물며 기업과 재벌을 위한 감세를 하면서 국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불평등 경제>는 최근 <21세기 자본론>으로 세계 각국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1997년 저작으로 초판이 출간된 이후 2014년 7판이 출간예정으로, <21세기 자본론>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책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는 임금과 소득에서 불평등을 일으키는 요인들과 프랑스 및 OECD 국가들 내부의 불평등과 국가간의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고전 경제학의 주제인 자본과 노동간의 불평등에 대해서, 3장에서는 근로소득 자체의 불평등에 대해서 그 원인들과 분석 이론들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재분배의 방법들(임금으로 직접 분배해 주는 기초적 재분배와 세금이나 사회보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분배해주는 효율적 재분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론들과 사례들을 통해 보다 깊이있게 설명한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이 읽기엔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좌우 갈등은 공적개입의 구체적 형태와 적절한 시기에 관한 대립의 원인이 사회정의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메커니즘에 대한 상반된 분석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좌우 갈등은 특히 재분배의 여러 유형들, 곧 재분배를 위한 여러 도구들간 대립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경제학자의 용어를 빌면, 이 대립은 기초적 재분배와 효율적 재분배의 구분에 해당한다.” - P. 7~9.
얼마전 이 책의 저자 피케티가 한국에 와서 자신의 책 <21세기 자본론>을 가지고 공개강의를 하였었다. 물론 재분배에 대한 그의 의견은 우리나라 재계의 강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상황을 모르고 하는 주장으로 서양의 자본주의에나 맞는 논리일 뿐이라는...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도 1%의 자본가들에게만 대부분의 열매가 돌아가는 현실이, 정규직 일자리를 잃고 계약직과 시간제 일자리로 인해 국민의 20%가 극빈자로 전락하고 있는 미국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듯한 우리의 현실이 과연 정상인 것일까 재벌을 포함한 자본가들과 그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일까 직접세는 낮추고 간접세는 올리는, 그러면서도 증세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이 나라가 정말 복지를 생각이나 하는, 살만한 나라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북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의 풍요로운 삶과 여유있는 노후를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사회복지체계를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이 얼마나 희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도 그들이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지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부러워할 뿐이다. 좋은 복지국가가 되려면 진정 국민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리더와 이런 리더를 믿고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국민들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리더를 만나서 좋은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을까 이런 미래는 바로 우리 손에 달려있다. 꿈만 꾸지 말고 현실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한다. 현명한 국민만이 현명한 리더를 선택할 수 있고,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 |
|
불평등의 초점을 다양한 경제 용어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흥미로운 주제였고, 과감한 주장이 불가피한 내용이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아주 급진적이거나 황당무계한 내용이 아닌, 경제학적 논리로 탄탄히 뒷받침되는 까닭에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한계생산성의 차이가 인적자본의 차이라는 점은 인정은 하지만, 인도만의 사회관에 의한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인도의 한계생산성 차이는 아무래도 과다포장된 면이 있다. 인도는 기저효과로 인해 미국 대비 58배 높은 한계생산성을 보일 뿐이다. 계량적 측면의 단속성을 생각하면, 실상 한계생산성은 아주 낮은 도약으로도 그 간극이 메워진다. 인적자본의 신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도의 문맹률이 현대 사회에 두자릿수라는 점은 비교 잣대로써의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라민 은행도 등장하는데, 그라민 은행이야말로 인적자본에 기대 바닥에서부터 효용을 키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재정이전 효과를 강조하며 케인즈 식 효율적 재정 분배의 허상을 비판한 대목은 너무 짧아 아쉬웠다. 경제학이 케인즈에 의해 일반화라는 명목으로 현상을 아우르면서 어느 정도 비판은 제기될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피케티도 케인즈를 건들고 갔다. 재정이전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의회, 정부 등의 줄다리기가 필요하고, 이렇다보니 경제학이 숫자가 아닌, 정치학의 표심 놀이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제학적으로 논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불평등을 파헤치는 게 식상한 진보의 수단이 아닌 학문적 활동에서 비롯된 점을 빌어 배운 점도 많았다. 다만, 내용이 임팩트는 넘치나 많이 짧다. 프랑스어판으로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다.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
|
불평등 경제,
최근 경제관련 책들을 조금씩 읽기시작하였다. 비전공자에, 경제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이공계열 사람으로 경제 관련 책은 아무리 쉽게 쓰여졌다해도 참 어렵다.
이 책 역시 그러했다. 읽고나니 제목만 이해가 되었으니,, 불평등한 현실에 대하여, 저자의 각종 분석이 날카롭게 쓰여진듯 하였으나,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정확한 저자의 뜻을 알긴 어려웠다.
하지만, 현대의 직장을 다니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반인으로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것을 해가 갈수록 느끼는걸 보니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50,60년대, 하물며 80년대의 청춘을 살아가시던 분들은 부모보다는 자식이 더 나은 재산을 가질수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이 없으면, 빚에만 허덕이게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 이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해는 잘 가지 않는 책이였지만, 책을 다 읽고난 마음은 무거웠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