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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2년이 좀 넘은 책인셈인데 읽고 따로 정리를 해둔 것이 안뵈서 찾다가 그냥 생각나는 데로 지껄여 보기로 한다. 언젠가 애니깽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였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래, 우리 정치인들 하는 일이 딱 그렇지... 하면서
아마 이 선례를 나는 정치적으로 일본과 엮어서 보고있기 때문에 그랬을 거였다. 말만 아니지, 이미 아주 예전에 우리 나라의 땅문서는 일본에 넘어간 게 아닌가 (뭐, 장르적으로 상상하시길...바란다..진짜라면 정말 살기 싫잖은가!) 그러고 있었으니...
우리나라는 1900년대초에 러일 전쟁중에 저 척박한 땅에 가서 강제 이주를 당해 (포로라고 봐야 맞겠다) 그 자라지도 않는 식물을 꽃 피우느라 온 몸이 검은 꽃을 피우고 결국은 그 곳서 죽은 이들이 더 많으며, 그런 이야기라,, 그걸 다룬 이야기가 바로 김영하의 검은 꽃이 되겠다. 그 걸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도 좋겠고 반대로 읽어도 큰 무리는 없다.. 시대만 좀 다를 뿐 정치하는 물은 어디 가질 않으니,
와일드 소울은 그보다 시간이 한 50년은 뒤쪽인 1961년 쯤이 된다. 경제도 그렇지만 계속된 전쟁에 자금이 남아 날 일이 없어서 만든 정책 일환이 자국민을 팔아 넘기는 건데, 대부분이 누구겠는가? 일차는 우리 민족이 넘어가 자릴 잡은 사람들이 그 경우일 것이고 , 그 다음은 없는 그들의 자국민일 것이었다. 그들은 브라질로 국민들을 헐 값에 넘기며 아무리 해도 ,아니 가도 가도 어딘지 알 수도 없는 아마존 땅에 국민들을 매다 꼽으며 산매장을 시킨 이력이 있는 셈이니, 한번도 두번도 그들은 참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 안을 수가 없는...것였다.
물도 땅도 설은 곳에서 땅을 파면 이내 우기가 , 우기가 그치면 건기가 아무리 해도 그들이 나눠준 식물은 당췌 자라서 뭔가 될 성 싶지가 않았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이 설어 몸이 고된 이들은 말 그대로 풍토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차례차례 죽어나갈 동안 그 곳 담당의 이민자 위원을 맡는 이는 (요즘의 일본주제 대사관일)항의을 피할 궁리만 할 뿐이고 실상은 제대로 알려줄 생각은 없으며 그 다음에 온 이야 말로 그 들이 버려져서 식량난 해소로 팔려져 온 사람들임을 알게된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 돈으로 왔지만 나라도 없으며 이 나라에서도 보호 받지 못함은 물론이고 자국으로도 돌아길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그들에게 알 릴 수가 없어서 매번 편지나, 금품을 조금 받아 소식이나 전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 전부인 것였으니, 처참하였다. 이주민들이 실상을 모두 알기도 전에 대 홍수가 나고 모두 거의 죽다시피 하였는데 그나마 질긴 것이 목숨이라고 살아남아서 뿌릴 내린 사람들이 극 소수가 있었으니, 이 책은 그들이 살아남은 40년의 이야기가 되겠다.
브라질은 최대 국경지인데다 기회를 갖고자하면 가질수도 있음을, 일찍 깨우친 주인공이 부지런을 떨고 목숨을 지켜내 40년후 마침내 에토일가를 이루는데 성공하며 공공연히 그 도시에서 한 자락하지만 절대 거만하지도 않은 없던 시절을 잊지도 않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가 거의 평생을 일구고 이젠 다 살았노라 생각할 즈음, 그는 한가지 생각을 하는데..그건 바로 그들을 버린 나라에 대한 복수였다.
그는 바로 뜻을 모은 소수끼리 모여서 함께 행동을 하기로하며 자국으로 들어온다. 방송관계인인 여리포터와의 만남으로 다른 전환을 맞게되는 일. 그리고 마지막까지 경찰들과의 그 대치들이 통쾌한 면을 주기도 하니까. 역시 장르적 면이 그런 면을 살린다고 봐야겠다. 그 일을 만들고 실행한 사람들을 후지산의 원시림에 끌고 가서 그들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발상이라니,아마존까지 가진 못하니...
워낙 옛날의 책이라 요즘은 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절판이던가? 그럼.검은 꽃을 읽으시면 되겠다. 그만해도 역사관이나 저 이주세대들에 관한 인식이 사뭇 달라 질 터이니,
시간은 또..흘러서 사람들은 상징이 되는 것들을 잊고 싶어하기도 하니,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나 할까...
나도 나 보고 싶은데로만 보는 건지 모른다. 그것도 우리 민족의 아픔에만 더 격분해서 실상은 거의 일본민의 심정보단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읽고 느꼈으니 말이다. 에토일가가 브라질에서 고생할땐 거기에 우리나라의 성씨 를 대고 읽고 했다. 그래야 속이 후련하니, 참 얄궂다면 얄궂은 일이지 뭔가. 그렇다해도 그 국민들이 겪은 일이 잘된 것이란 뜻은 아니다. 늘 생각하지만 윗물이 괜히 맑아야 하는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발상은 대체 어디서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이냐.. 지금의 현실이라면 싸드에(김진명 소설) 나오는 김변의 의견과 같이 우리나라도, 일본도 자국민을 그리 싸게 넘겨버리는 족속들이니, 우리나라도 그 나라도 망국에 들어야 한다. 국민이 없으면 나라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그 뜻이다. 아무리 글로벌해진다고 해도 국경이 무너진다 해도 ,그 국경이 돈이 국경이라 해도,, 사람이 없다면, 소중한 무엇이 없다면...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 늦어 왜 복수냐..하겠지만..그들은 사람이 ..사람을 잊은데에 대한 것을 말하고 픈 것이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것엔 누구나 아픔을 동반하듯이 그러니, 저 책을 단순 유쾌한 복수의 책으로 보지는 말기를 바란다.
가치를 저 밑에서 부터 일궈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날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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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권으로 나눠진 상당히 두꺼운 작품인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짧게 구성된 챕터들이 속도감있게 넘어간다 살사를 배우면서 남미에 무척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 작품에서 남미의 풍광과 생활모습이 무척 생동감있게 다뤄져 있어서 참 좋았다 남성적인 선굵고 박진감 넘치는 내용전개, 개성넘치는 등장인물들...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너무 휴머니즘적인 결말이 맥빠진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뭐 그래도 좋았다 작가가 정말 엄청난 자료조사와 현지조사를 통해 쓴 작품 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나도 꼭 브라질에 가보고 싶어졌다... |
| 일본 역사상 최초로 3개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는 문구가 호감을 주지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뭐 큰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보니 그렇지만. 하지만 첫 장을 읽을 당시 나의 감정은 분노로 가득하였다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은 슬픔과 통쾌함을 느꼈다. 하나의 국가가 자국의 국민을 외국에 팽개치고 나몰라한 경우가 우리나라 역사에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사실 전후라는 시대를 생각하더라도 의외의 사건이었다. 특히 다른 책에서 브라질 등의 중남미 이민 2세가 일본에 취업 목적으로 들어온 사실을 이미 접했지만 이런 비극적인 과거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의 첫 장은 브라질 이민을 간 한 일본인의 처참한 과거에 대한 기록이자 뒤에 벌어질 사건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이다. 읽다보면 정부와 영사관에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들이 경험한 과거가 그만큼 분노를 자아내는 것이다. 이후의 진행은 일본 정부에 대한 복수를 위한 준비와 복수자들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여기서도 상식을 초월한 그들의 첫 복수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도전까지 엄청난 속도감과 흡입력으로 사람을 잡아당긴다. 범인들에게 강한 동조를 하면서 이들을 쫒는 방송국과 경찰청의 모습은 풍부한 상황 설명과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으로 재미를 높여가고, 범인 케이와 방송기자 다카코의 연애이야기는 즐거움과 기대감을 배가시킨다. 이 소설이 나온 2003년과 책 말미에 설명된 2004년 고이즈미의 브라질 이민단 대표 앞에서의 눈물 흘린 사과가 시차는 있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민 시기의 정책 담당이나 결정자에 대한 후속 조차와 처벌을 생각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참사를 불러올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지만 자신들의 승진이나 보신만을 위해 이 정책을 실행에 옮긴 그들에게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고,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문책하지 않는 것은 분명 후세에 일어날 일에 대한 면책 기능을 할 것이다. 뭐 그 당시 인물들 대다수가 죽었겠지만. 일본 추리소설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전개 방식을 접하지만 이런 소설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테러가 범인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대변되지만 주인공의 경우는 그를 쫒는 형사들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범인이 주인공이다. 정부에 가하는 테러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모르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브라질적(음! 표현할 다른 말이 없어서) 성격이 그런 느낌을 강하게 부채질하였다. |
| 이 책의 앞 부분은 ''시드니 셀던''이나 ''존 그리샴'' 소설의 주된 서술 방식인 "누군가 이러이러해서 그러그러했더라."의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만약, 끝까지 이런 톤으로 갔더라면 아마 "쳇 ''하드보일드''나 ''스파이 소설''인줄 알았더니 속았잖아! 뭐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작가는 ''하드 보일드'' ''스파이 소설'' ''써스 펜스''에 ''경찰 소설'' 그리고 가끔은 ''코미디''까지...온갖 장르의 기교를 구사하며 마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무리수를 둡니다. 그러나 요리라는 것이 재료에 갖은 양념만 듬뿍 친다고 해서 훌륭한 음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듯, <와일드 소울="">은 갖가지 양념이 들어가기만 했지 재료와는 충분히 버무려지지 않은, 간이 맞지 않은 음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뭐 여기까지도 애교로 보아 넘겨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흐름을 툭툭 끊어놓는 단조롭고도 지리한 상황 묘사는 정말 참기 힘듭니다. 추측해 보건대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절대로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혹시, 작가가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설은 독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영화처럼 용이하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석양의 건맨="">에서 ''리 반 클리프''는 그 생김새 하나만으로도 등장하는 그 순간, 누가 뭐라지 않아도 관객들이 자연스레 ''악당''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엔 제 아무리 치밀하게 묘사한다 해도 영화처럼 확실하게- 그것도 단 몇줄만으로는 - 독자들에게 각인 시키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와일드 소울="">의 작가는 주인공 ''마쓰오''가 시가 중심부와 주변도로를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때로는 추격전이 되기도 하고) 장면을 마치 자신의 상관에게 브리핑이라도 하듯 하나하나 빠뜨림없이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자신이 참고자료로 던져준 3장의 시가지 안내도만 충분히 숙지한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머리속에 주인공 ''마쓰오''와 영화 ''프렌치 커넥션''에서 범인인 탄 차를 쫓기위해 고가도로 아래를 질주하는 ''진 해크만''이 오버랩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더 나아가 마지막 부분쯤, 자신이 지휘하는 경찰 병력의 이동 경로를 지정해주는 상관의 명령을 한 페이지 가득 숫자만 다를 뿐 똑같이 반복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이 작가가 ''편집증'' 증세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추리작가 협회상을 포함)3개 부분의 상을 거머쥔 소설이라는 기대감으로 첫페이지를 열었던 것에 비해 또한, 스케일의 크기나 내용의 무게감으로 비쳐볼 때도 여러가지로 아쉬운 작품입니다.와일드>석양의>와일드> |
| 계속 이어지는 푹푹찌는 듯한 더위, 덥고 후덥지근한 여름밤을 날려버리고 싶은 추리소설 한권을 접하고 싶었다. 우연히 가키네 료스케라는 낯선 작가지만 2004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와일드 소울"을 접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의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생생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동기를 가진 등장인물들의 복수를 통해 국가의 책임이나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개인의 책임 같은 주제를 속도감 있게 펼치는 작품이었다. 깔끔한 끝마무리와 함께 통쾌함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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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 우리는 일반적으로 해외에 나가있는 동포들은 모국에 대해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세대 2세대까지는 그렇다치고 3세대부터는 애매해진다.
나 역시 10여년전 멕시코 바닷가에서 만난 애니깽의 후손 ( 성만 나하고 같았다.
'권' )은 혼혈이었고 한국말은 단어 몇 개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몰랐다. 또한 중국에
서만난 조선족(요즘은 중국동포라고 한다)들과는 말이 통한다. 분명 같은 민족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축구할 때는 중국을 응원한다. 그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당
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국을 응원하길 바라는 것은 한국에 사는 우리들의 욕심일
뿐이다. 소재의 신선함은 정말 좋다. 그러나 그 소재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역량은 2
권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다소 약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