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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듣고있으면 꽃봉오리가 톡톡 터지고, 녹은 개울물에선 개구리가 팔짝 뛰어오를 것만 같고, 여름에는 당장이라도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칠 기세이고, 가을을 듣고 있으면 한창 영글은 과일이 어서 따주십쇼하며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것만 같고, 겨울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것같아 몸이 저절로 움츠러 드는 것 같다. 그러나 말로 풀어놓는 이런 감상은 사계라는 음악이 재현해내는 계절의 모습의 털끝에도 못미친다. 자주 접해서 익숙한 것 같아도, 비발디의 사계가 재현하는 4계절의 느낌은 언제 들어도 생생하기만 하다.
여러 연주 버젼이 있겠지만, 야니네 얀센의 이 레코딩은 들은 중 가장 소박한 사계절의 느낌이다. 그렇다고 사계라는 음악이 전하는 특유의 생생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웅장한 사계 연주를 벌판에서 온몸으로 계절을 체험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야니네의 사계 연주는 아늑한 실내에서 맑은 창문으로 변하는 계절을 관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클래식 음악은 원래 같은 음률임에도 편곡이나 연주자의 방식에 따라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사계에서는 같이 연주되던 것들을 좀 빼버렸다는 것만으로도 듣는 사람이 야외에서 실내로 공간이동되어지는 것 같다.
CD에 첨부된 리플릿에는 사계를 왜 이런 스타일로 표현하였는가에 대한 야니네 얀센의 코멘트가 나온다. 그녀가 말하길,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웅장한 음악을 몇대의 축약된 현악기들로만 연주하게 되면 wonderfully transparent sound 가 창조된다는 것이다. "경이로울정도로 투명한 소리"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존에 들어왔던 여타 사계 연주에 비해 그녀가 표현하는 사계가 군더더기 없이 소박하고 그러나 거침없고 시원스럽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둔감하고 게을러 계절바뀌는 것을 잘 즐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음악의 사계를 듣는데도 이런 스타일이 더 편하다. 밖으로 나가 춥고 더운 것 피부로 느끼지 않아도 커다란 창밖으로 자연이 바뀌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음악이라도 없었다면 계절 바뀌는 느낌이 뭔지나 알았을까. 해 떠있을 땐 사무실에, 어두워지면 집에만 들어 앉아있는데...사계라도 듣고나니 가을이 성큼 온듯하다. 그러고 보면 정말"경이로울 정도로 투명한 소리" 맞다. 가을 구경 못했어도, 가을이 보이는 듯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