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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귀엽고 깜찍하고 소중한 존재, 가수 ‘B….’이 아니라 한 손에 쏘옥 들어오고 읽기 쉽고 생각을 정리하고 좋은 책이 나왔다. 『여백으로 살아가기』 저자의 스승이자 추천사로 함께 하셨던 김기현 교수님의 책. 부제목으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여백’이라고 적혀 있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순간마다 고민하고 살아내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양이지만, 천천히 하나씩 음미하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씀에, 빨리 많이 읽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나름 천천히 조금씩 시간을 투자해서 읽었다. 목회자분들에게는 예화로 쓰기에 좋은 내용이 가득하고, 교회 수련회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시작하는 글로 같이 읽어보고 토론하기에도 좋을 분량과 생각들이랄까. 책의 제목처럼, 한 톨의 생각(글)이, 겨자씨처럼 커다랗게 자라는, 성찰이 영그는 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드벤트 #김기현 #한톨의생각겨자씨처럼 #일상속에서발견하는작은여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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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겨자씨를 선물 받은적이 있다. 학교 후배가 위로의 편지를 써주며 '점' 만한 겨자씨를 '콕' 하고 붙여주었던 그 편지. 작은 겨자씨가 대체 무엇이길래 수많은 좋은 것을 두고 그 작디 작은 것을 주었을까.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이라면 많이 들어봤을 비유, 바로 겨자씨 비유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비유를 들어 말씀 하신다.
겨자씨는 정말 작다. 손가락에 '콕' 하고 들러붙어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작아서 자칫 하면 흘러내려 버리고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들다. 그래서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반전은 그 이후다. 자란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게 한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의 매력이다! 그런데 그런 겨자씨 비유를 하시는 이유는 바로 천국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천국, 하나님 나라는 아주 보잘것 없고 작은 것이 성장하는 것과 같다. 소위 자랑하거나 멋있어 보이는 분량이 많은 벽돌(?)책을 읽으면 멋있다. 거기에 반해 이 책은 정말 작고 얇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여기 있다. 작고 얇지만 수많은 겨자씨들 50개 이상의 겨자씨를 얻을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읽지만 짧은 문장들이 나를 툭툭 치다, 이내 내 가슴에 '훅' 하고 들어온다. 바야흐로 쇼츠, 릴스 등 짧은 영상들의 시대다. 1분 이상 영상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게 되어버린 시대다. 릴스와 쇼츠는 짧게 웃음을 준다. 그러나 큰 임팩트는 없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짧지만 여운이 있다.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새 가을의 입구에 성큼 서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이 도전한다. 그대, 겨자씨가 되어라고 말이다. 책의 저자인 김기현 목사는 한톨의 겨자씨였다. 그조차 이렇게 되리라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겨자씨로 사용하셔서 이제는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와 가지에 앉아 고전과 성경을 읽고 묵상할 수 있는 거목으로 만들어 주셨다. 이 책을 통해 기대해본다. 수많은 이들이 겨자씨가 되기를, 그리고 자라서 또 수많은 거목들이 되어주기를, 그리하여 이 책을 만나는 이마다 성장한 겨자씨처럼 수많은 이들이 쉬어가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갈 수 있는 좋은 나무들이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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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목사님의 책 『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은 그 크기나 분량만 보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얇고 가벼워 어디에나 쏙 들어가는 작은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마치 고가의 에센스 화장품처럼 농축되어 있어 한 줄,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요즘 사람들은 ‘가성비’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내용비’, ‘밀도비’로 형용하고 싶다. 작은 겨자씨 한 톨이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듯, 책 속 한 문장이 독자의 생각을 크게 넓히고 자라게 만든다.
이 책은 총 52개의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1년이 52주라는 점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독자는 이 책을 매일 한 편씩 읽어도 좋고, 혹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마다 한 꼭지씩 묵상하며 한 해를 보내도 좋다. 무엇보다 짧은 글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과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기에, 한 번 읽고 넘기기보다는 곱씹으며 읽는 데 더 어울리는 책이다. 독서라기보다는 ‘머무름’과 ‘멈춤’의 시간으로, 그리고 ‘성찰’과 ‘실천’으로 결심하면 좋겠다.
장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펼쳐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화장실, 침대 머리맡, 사무실 책상 위, 자동차 안 등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꺼내어 읽을 수 있다. 단 몇 분만 시간을 내어도 그날 하루를 다르게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치 아침에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한 잔처럼, 이 책 한 편이 정신을 일깨우고 마음을 정돈하게 해준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무의미함을 느낄 때, 책 속 짧은 문장이 새로운 시선과 질문을 던져준다.
저자는 책에서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독서”(74p)을 강조한다. 신앙과 지성, 영성과 사유를 동시에 붙잡는 삶을 독려한다. 실제로 이 책 안에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깊은 묵상뿐 아니라,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사유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문학작품에서부터 철학자들의 사상, 유명 인물들의 명언까지 폭넓은 인용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고 확장시킨다. 이는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책을 읽고, 깊이 있게 사유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지식을 뽐내기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고민과 질문, 삶의 태도를 독자와 함께 나누려는 진심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책에서 명확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저자는 우리 내면에 있는 질문을 다시 꺼내어 바라보게 만든다.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마주하려는 진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되묻고, 자신만의 해석과 방향을 찾아가게 된다. 이는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동행하는 책읽기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사유의 동반자가 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상의 언어로 쓰여 있다. 어렵거나 고리타분하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진실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앙서적이지만 종교적 용어에 갇혀 있지 않고, 크리스찬이 아니여도 누구나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덕분에 이 책은 특정 독자층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책이 된다. 이 책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강하다. 독자에게 삶의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바라보게 만들며, 큰 소리로 가르치기보다는 낮은 소리로 곁에 머무르며 함께 생각하자고 말한다.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을 통해, 겨자씨 한 톨이 어떻게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지를 마음 깊이 깨닫게 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사야 50:4) 저자가 자신을 소개할 때 인용하는 성경구절이다. 학자이자 제자요, 작가이자 목회자로서 말과 글로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겠다는 그의 비전은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내 안의 야곱 DNA』, 『욥, 까닭을 묻다』, 『부전, 자전, 고전』 등 이전 저서로부터 『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에도 선명하게 담겨있다.
『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은 매일 먹는 밥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씩 회복시키고 재생시키는 책이다. 당장은 큰 변화가 없어 보여도, 차곡차곡 쌓이는 사유는 분명 삶의 방향을 바꾸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키게 된다. “사람은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생각한 대로 산다. 생각없이 살아도 문제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더욱더 중요하다”(48p)는 저자의 말처럼 지친 하루의 끝에서, 혹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에서 이 책 한 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태도와 마음의 중심을 다시금 정돈할 수 있다. 그러니 손 닿는 가까운 곳에, 당신의 일상에 이 책을 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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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시간 읽어봐야...”
일주일에 한 번 독서모임을 가진다. 1시간동안 낭독으로 읽어가는 분량은 많아야 40페이지. 주변지인들에게 모임을 권유하지만 대부분 돌아오는 반응은 “일주일에 1시간 읽어봐야 얼마되나요?” 이다. 그렇게 읽은지 몇 년이 된다. 단순하게 1년 56주로 40페이지 읽는다고 계산하면 대략 2,200페이지. 벽돌책 5권을 깰 수 있다. 일주일 한 시간, 누군가는 가소롭게 보지만, 생각보다 독서량은 상당하다.
“한 톨의 생각”
책을 받고 눈을 의심했다. 이제껏 본 책 중에 이렇게 작은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책 제목이 “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이라니!! 책 제목과 책이 이렇게 조화롭다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책을 읽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 한국의 이야기꾼 김기현목사님이 이런 기획을 한 이유가 뭘까?” 살펴보니 신문 칼럼에 실은 글을 모았다고 한다. 이야기주머니가 12개도 넘게 가지고 있는 저자가 최대한 줄이고 줄인 엑기스와 같은 글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설렌다.
“ 참외 20개가 주렁주렁 열렸죠.”
올해도 텃밭에 꼭 심는 작물이 참외다. 특히, 폭염이 심한 춘천날씨에 참외는 그야말로 노다지다. 모종 한 개에 최소 20개 이상의 참외가 열렸다. 심을 때 ‘한 개에 몇 개나 열릴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폭염이 엄청나던 올해는 다른 작물은 피해가 많지만, 참외 수확은 엄청나다. 설마 모종 한 개만 심었을까 10개를 심었고, 텃밭엔 잡초사이에 샛노란 참외들의 기품이 실로 당당하다.
”겨자씨처럼 “
”내가 준것과 남이 나에게 베푼 것 중 무엇이 더 생각나는가? 거저받은 것이 절로 생각나는 것 그것이 은혜받았다는 증거다.“(p68.은혜받았다는 증거)
“무릎 꿇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까닭이다.”(p94.무릎꿇지 마라)
“어떤 장류의 책이든, 심지어 무협지라도 독파하면 이치에 맞게 사고하고, 글을 쓰는데 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하물며 성경이랴.”(p16. 성경이냐 무협지냐)
겨자씨 분량만큼 소소하고 한 눈에 들어오지만, 태평양 분량만큼 사유를 확장시키고, 한 눈에 들어오지만, 곰곰이 되새겨야 할 문장이 숨겨있다.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여백”
’일상. 발견. 여백‘ 저자 김기현목사의 주특기라면 일상의 이야기로 머릿속 그림을 그려주는 언어화가다. ’실패한 계란죽, 닭울음소리. 공부를 계속하라.‘ 편은 읽으며 그림 한 컷이 그려진다. 그는 진부한 일상속에서 알짜를 뱔견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의 눈매도 좀 닮아가겠지. 그래서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자. 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일상속 여백을 발견하고, 그 여백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 바람은 우리의 영혼을 싱그럽게 해 준다.
소양강 댐 하류 산책을 하는데, 무심코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 산책로에 핀 각 종 강아지풀이 너풀거리고, 옹망종말 모여있다 인기척에 후루룩 날아가는 쥐방울만 참새들. 폭염이 일상이 된 기후, 한 줄기 시원한 바람. 싱싱한 강아지풀. 날아오르는 참새들. 그 사이를 걷다 보니 느껴지는 에덴의 시원함을.
한 톨. 겨자씨. 일상. 발견. 작은 여백. 인생의 그림을 그려가는데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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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는 시대다. 굳이 보태지 않아도 언제나 삶의 무게는 버겁고, 살아가는 동안 불안과 두려움, 고난은 끝이 없다. 그래서일까, 일상의 편린들이 가벼운 문체로 담긴 에세이가 줄기차게 세상에 나온다. 골 아프게 해득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내 마음 같아'라며 공감하고 술술 넘어가는 책들은 "나 독서했어. 알차게 보냈어"라는 묘한 성취감까지 준다. 그러나 책과 친하게 지내다보면 으레 그렇듯,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어가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개인의 느낌과 생각을 넘어선 고차원의 지혜를 얻고 진리를 탐구하는 '독서의 본질'이 그리운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고전(古典)을 읽으려니 부담스럽고, 독서는 쉼이 아니라 짐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찾게 된다. 크기는 손바닥만해 가뿐히 첫 장을 넘길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지혜가 응축되어 맛있게 읽히는 책 말이다. 그런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저자 김기현은 '사부(師傅)'다. 신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 쓰기 사부다. 또, 글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글쟁이 사부,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시의적절한 책을 건네는 독서가 사부다. 더 나아가 그는 살 소망을 잃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세상과 다시 만나게 해주는 '희망의 인문학'을 전하는 사부다. 이렇듯 많은 이들의 사부가 되어 발자국을 남기는 그는, 동시에 자신의 사부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느끼고 깨달은 귀한 것들을 글로 써서 부지런히 책으로 펴낸다.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내 안의 야곱 DNA』, 『욥, 까닭을 묻다』등 그의 저서들 속에는 사부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또 사부로서 이 땅을 살아가며 정직하게 토로해낸 그의 탄식, 눈물, 기쁨, 깨달음, 사랑이 담겨 있다. <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은 쉼을 준다. 무더위가 한창일 때 세상에 나와 카페에 앉아 차 마시며 한 숨 쉬어가라며 아담하고 예쁜 표지로 우리를 초대한다. 52개의 챕터가 부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여백'에 딱 들어맞게, 한 챕터당 2쪽씩 가볍게 적혀 있다. 말씀의 검으로 자신을 벼리며 진검이 되어가는 신앙이야기,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위인들의 삶, 독자들이 읽어보기를 권유하는 좋은 책,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을 말씀으로 풀어내는 에피소드, 세상 속 신앙인의 삶의 자세에 대한 지혜 등이 담겨 있다. 평생을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며 고전, 신학, 글쓰기 등 묵직한 글을 읽었고 삶 속에서는 치열하게 살아왔건대, 저자의 글은 참 소소하고 쉽게 읽힌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탈이 났을 인생의 굴곡을, 아프도록 꼭꼭 씹어 잘 소화해내었기에 신앙의 정도, 지혜의 깊이와는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안식을 주는 글이 되었다. "어떤 장르의 책이든, 심지어 무협지라도 독파하면 이치에 맞게 사고하고, 글을 쓰는 데 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하물며 성경이랴(『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 16)." "믿음의 이유를 묻는 구도자들에게 대답할 '책'을 항상 예비해 두자(『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 18)." "간혹 성도들에게서 비기독교적인 책을 읽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비기독교인이 지은 농산물과 만든 공산품을 사용해도 되느냐는 물음과 다를 바 없는 우문이다. 모든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 하나님이며, 그분을 지향하고, 그분 안에서 완성된다는 확신의 부족이다. … 좋은 책 한 권은 한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이끈다(『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 23-24)." 인간의 상식에 대한 존중이 담겼다.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고 신앙을 가지게 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선 눈에 보이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야 믿음이 커지고 신앙이 깊어진다. 인간이 애써 사유하고 공들여 글을 쓰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골로새서 1:16)'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독서하고 싶고 진리에 목말라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본연의 추구, 자연스러운 일상에, 갖은 이유를 대며 죄책감을 심어주는 영적인 세력들을 대적할 무기를 얻게 되어 기쁘다. "하여, 사울은 원수를 묵상하다 웬수 같은 인생을 살았고, 다윗은 성경을 묵상하다 복 있는 사람이 되었다. … 오늘 나는 무엇을 제일 많이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하나님인가, 원수인가? 말씀인가, 빵인가? 분노인가, 용서인가? 그것이 나를 사울로 만들고 다윗으로도 만든다(『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 48)." 인간의 감정에 대한 존중이 담겼다. 상처와 고난을 겪으며 우리 안에 피어나는 분노, 슬픔, 적개심, 한탄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로 가슴을 짓누르지 않는다. 사울도, 다윗도, 목사인 저자도, 그리고 우리 모두 똑같은 인간임을 말한다. 감정이 죄가 아니라, 그 감정을 성경에서 다윗은 어떻게 풀어내어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는지에 대해 적어놓았다. 이것을 저자는 국민일보 칼럼에 '시편으로 성질부리기'라며 필연적인 고통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써 두었다. 책에서는 시편으로 성질을 부려 마음의 독소를 빼낸 다윗의 이야기를 전하며, "괜찮다"는 위로와 더 나아가 멋지게 성질부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음껏 땡깡부리며 이 땅에서는 죄짓지 않고, 하늘에서는 상급을 차곡차곡 쌓는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에게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가룟 유다가 항상 따라붙는다. 이 사람 만나 인생 꼬였다고 한탄할 바 아니다.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다. 그가 없이는 나를 보지 못하고, 깎지 못했을 터. 그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단언컨대 성숙은 없다. 그가 있어 내가 있다. 아직도 못마땅한가? 그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고, 하나님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데도?(『한 톨의 생각, 겨자씨처럼』, 110)."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존중이 담겼다. 종종 "이 사람만 없으면 내 인생 살 만한데! 이것만 없으면 괜찮은데!" 한탄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있고, 때론 내가 다른 이에게 가룟 유다가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 번에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가룟 유다 하나쯤 품고 사는 연약한 인간이다. 성경 속 빌런들과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그 빌런들을 붙이셨음을 글에서 발견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탄식하시는(로마서 8:26)' 지극한 은혜를 느낀다. 손바닥에 지혜가 담긴다. 손바닥만한 책을 들고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어가며 마음에 닿은 글귀들에 밑줄을 그었다. 지혜가 아득하고 거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은 손바닥 안에 쏙 담긴다. 평생을 교회의 딸로 살아오며 지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다소 고압적인 방법으로 선포되어진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마음껏 질문하고 여러 책들을 탐독하며, 또 묵상하며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의 달콤함을 알아가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옳은 길을 걷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어 개운하지 않았다. 단순히 따라가면 쉬울 것을 자꾸만 곁길에 서서 두드려도 보고 요리조리 비틀어서 바라보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지으신 그분이 가장 잘 아시니,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식, 감정, 연약함을 아시는 그분께 배팅을 걸었다. 이 책에는 그런 나를, 우리를, 그리스도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마음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온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의 작은 손바닥에 담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