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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벽 사이: 균열과 동요, 동요의 파생, 미세한 불균형
"창과 벽 사이: 균열과 동요, 동요의 파생, 미세한 불균형" 내용보기
'여성, 동성애자, 좌파'인 그녀는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통해 제도와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회의하고 주저하는 일상의 순간, 현대적 삶의 편린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실제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시도때도없이 악을 지르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물흐르듯 아무 사건, 사고도 없이 밋밋하게 흘러가는 게
"창과 벽 사이: 균열과 동요, 동요의 파생, 미세한 불균형" 내용보기

'여성, 동성애자, 좌파'인 그녀는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통해 제도와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회의하고 주저하는 일상의 순간, 현대적 삶의 편린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실제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시도때도없이 악을 지르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물흐르듯 아무 사건, 사고도 없이 밋밋하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다. 그렇다고 심심하고 따분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인생이 스펙터클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인생은 그렇게 심심해 죽겠을 만큼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불면증에 시달려 일주일 내내 1시간도 못 잘 수도 있는 법이고, 열정을 다해 뜨겁게 시작한 사랑도 지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후 내게 자신의 삶을 주었다. 내겐 처음 있는 일이라 우선은 기분이 우쭐했지만 곧 어깨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벼운 삶이란 없다. 모든 삶은 다 지니고 다니기 어렵다. 유약하고 순종적이엇던 나는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지고도 흔들림 없이 산으로 나아갔다. 가끔 균형을 잃을 때면 그녀의 삶이 내 견갑골에 부대꼈고, 피부는 심한 통증과 함께 붉고 여위어갔다. 한쪽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올 때면, 등을 휘게 해 무게가 반대편으로 완전히 옮겨가도록 했다(48쪽).

 

1분1초라도 못 보면 못 살 것 같던 바로 그 사랑이 어느날부터인가 목을 졸라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거미줄 내뿜는 거미처럼 느껴진다.

 

"내 사랑은 영원하고, 용해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으니까요. 내 가슴에서 샘솟는 액체가 당신에 닿아 단단해지고, 내 자궁에서 새어나오는 이 무기질이 당신 갈비뼈에 들러붙으니까요. 우리가 떨어지는 일은 더이상 없을 거예요." 승리에 겨워 그녀가 말했다.
그녀를 떨치기 위해 헛되이 흔들어보지만 더욱 피곤해질 뿐이었다. 어설픈 달팽이가 껍질을 지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처럼 원치 않아도 움직일 때마다 그녀와 같이 갔다. 산에 근접하자 잠을 자지 못했던 나는 딱딱한 돌멩이에 그녀를 세게 부딪혀볼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나 역시 미쳐버린 야수처럼 산산조각 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51쪽).

 

중요한 건 그 사랑이 찬란했던 젊음마저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나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아내와 잠든 침대에서의 지루하고 고독한 불면증도 피할 수 있었다(158쪽).

 

산을 오르기는 힘들고, 내 등은 점점 굽어만 간다. 이제 길을 가면서 나는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곳에 인적이 드물거나 산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지나가더라도 무게 때문에 몸이 바닥으로 기울어져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지녔던 명성은 이미 사라졌다. 뼈는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여위었으며, 덕지덕지 껍질이 말라붙은 나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52-53쪽).

 

그런데, 이건 과연 개인들의 문제일까? '사랑이 식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들의 변덕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문제인 걸까?

 

난 큰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사는 덴 익숙해도 사소한 욕망들이 충족되지 않는 건 용납하기 힘든 것 같아(248쪽).

큰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허락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허용된 건 '사소한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에게 허락된 사랑에만 집착하지만, 결국은 지지고 볶다가 퇴색해버린다.

그렇다면 결코 허락되지 않는 통제할 수 없는 열망에 사로잡혔을 때, 현대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안온해 보이는 삶에 '균열'을 일으킬 때 말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회의하고 의심하며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상처들은 균일하진 않았지만 아프긴 매한가지였다. 다른 것보다 훨씬 깊은 상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자존심에 깊이 베인 상처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고,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서 좋을 건 없단 생각까지 들었다. 미래의 계획에 난 상처에는 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썩어 문드러진 조직이 일요일 오후까지 지속되었고, 불면증을 일으키며 밤의 꿈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160쪽, 「시간이 약이다」).

 

그런 식으로 페리 로시는 현대의 정신분석과 공권력과 같은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와 체제를 비판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어쩌면 작가가 인식하는 세상이란 「끝나지 않는 여행」의 배 안 같다. 목적지도 없고, 어느 항구에도 결코 도착하지 않을 배에 승선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몇 사람은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운명이 아무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라면 그들은 운명을 앞당기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수면제는 바닥났고, 현명한 사람들은 다양한 자살 방법을 제안한다(117쪽).

 

아마도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일 게다. 지나치게 현명하고 예민하기에 어떠한 헛된 바람도 가질 수 없다. 불행하게도. 어쩌면 이것은 '먼저 깨달은 자' 현대 사회에서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비애일 수도 있겠다. 가진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중압감이나 강박 같은 것. 사회적 책무들 사이에서 허우적 거리는 나약한 한 개인 말이다.

 

나는 꿈속에서 많은 일을 한다. 한 가지 일을 다 마치자마자 또 다른 시급한 일이 닥쳐 나를 옭아맨다. 나는 꿈속에서 인류를 위해 많은 것을 한다. 내 책임감은 밤마다 가중되어간다. 사람들은 사소한 습관 때문에 자신이 감수하고 있는 위험을 간과하고 사고를 당할 운명에 노출되기 때문이다(165쪽).

 

꿈에서 나를 짓누르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방대하다는 것뿐 아니라 내가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는 길에 놓인 장애물을 분주하게 치우고, 벽을 떠받치며, 추적자들을 따돌리거나 불로 타버린 집을 치우는 것 같은 동일한 동작을 한결같은 의지와 집요함으로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위험을 감지하고, 그 피할 수 없는 위험이 닥치는 것을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나를 짓누른다. 신의 복수로 인해 자신의 예언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도록 저주받은 카산드라처럼 꿈속에서 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고독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나의 전조를 느낄 수 없다(166-167쪽).

 

이들은 창과 벽 사이의 협소한 공간에 (갇혀) 있다(170쪽, 「창과 벽 사이」. 스페인어로 '창과 벽 사이에 있다'는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창을 피해 벽으로 뒷걸음치면 벽의 한기가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벽을 피해 반대편으로 가면 창이 내 목을 겨눈다. 그래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대안도 거짓이 되고,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만다(170쪽).

 
뭐든 확실한 정답들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어느 정답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혹은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정교하게 선택한 말로 용기를 주려 하지만 내겐 그 말들 자체가 소름끼친다. 누군가가 내 공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오히려 공포를 가중시키는데, 왜냐면 그 사실이 공포가 실제하며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147-148쪽).

 

도와주려는 그 관대함 속에서 오만함과 소름끼치는 우월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침대에서 내려오는 문제를 쉽게 해결한 듯 보이지만(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양 매일 침대에서 내려온다) 그것은 나를 자극하지도, 존경심이나 부러움을 자아내지도 못한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가장 자연스럽게 끔찍한 행위를 해왔던 것이다(자연은 의식의 적이다).(148쪽) 

 

지상의 삶은 너무 힘겹다. 우선 모든 사람이 발을 딛고 서 있으면 그들은 서로 비슷하다고 느끼게 돼 서로 적대감을 갖게 된다. 경쟁도 늘어간다. 예를 들어, 침대 위에 있으면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내가 스탠드나 옷장 같은 물건인 양 자기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한다. 결정하고 행동할 때 나를 완전히 배제하는 덕분에 그들의 공격성과 적의로 인한 고통을 면할 수 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을 딛고 서 있을 때면(절대로 그 불편한 자세로 오래 버티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을 감지하며(고백하건대, 모두 다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들의 논쟁을 듣고, 집 안의 분주함은 불안하게 반사되어 내게 도달한다(149-150쪽).
 

세상은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문제인 것일까?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그를 기저로 만든 문명과 제도들도 인간을 구원해줄 수는 없는 걸까?

 

"우리 노인네들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해." 그녀가 중얼거렸다.
"우리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덧붙였다.
"너도 들었지? 내가 말했듯이 이 세상은 젊은이들 살기에 좋지 않아. 젊은이들 역시 도망칠 수밖에 없다구." 두번째 할머니가 말했다(199쪽, 「수요일」).

 

"이 세상은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아요." 나는 생각하던 것을 말했다(200쪽).

 

금기가 왜 그렇게 엄격한지 나로선 이해하기가 힘들었어. 난 그것을 어른들의 세상을 지배하는 이해할 수도 없고 데가다 완전히 자의적이기까지 한 부조리한 법칙들 중 하나로 치부해버렸지(247쪽, 「도시」).

 

1941년 생. 우루과이에서 태어났고 생의 대부분을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서 산 여자. 2010년을 사는 우리와는 그다지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작가의 작품이 우리에게 유의미함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페리 로시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로서 동시대적 삶을 이야기하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저항의 순간과 그 진정한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작품에서 보이듯 저항은 거대한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심 없이 통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순간 시작되며,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 이미 완성되고 있다(267쪽).
  

백인 중심, 남성 중심, 유럽 중심의 소위 '보편성'이라는 것에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통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저항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작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임]

 

1. 애석하게도 국내엔 페리 로시의 작품이 더 이상 소개되지 않았다. 작품을 읽고 싶다면 스페인어를 배우거나, 아쉬운 대로 영역본을 찾아 읽을 수밖에. 꽤 괜찮은 작가 같은데 왜 소개를 안 하는 걸까? 역시 '상품성'이 문제인 걸까?

 

2. 30개의 작품 속 화자들은 성별과 연령대가 제각각이지만, 문체는 여일하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점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일관성처럼 보인다. 이런 것도 작가의 능력인 걸까?



YES마니아 : 로얄 c*****g 2010.10.17.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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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디짧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주는 신묘한 소설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짧디짧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주는 신묘한 소설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내용보기
90년대 말쯤이었나 PC 통신 하이텔에 한 친구가 쓸모없기를 주저하지 않는(이 쓸모없는 동호회를 위해 난 발기까지 했지만) 동호회를 하나 만들었다. 레넌 어쩌고 하는 제목의 동호회였지만 존 레넌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것은 아니고 동호회를 만든 시삽의 생일이 존 레넌의 생일과 같았다) 그곳에서 심심풀이로 릴레이 연작의 포르노 소설을 썼다. 그리고 이러한 포르노 소설의
"짧디짧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주는 신묘한 소설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내용보기

  90년대 말쯤이었나 PC 통신 하이텔에 한 친구가 쓸모없기를 주저하지 않는(이 쓸모없는 동호회를 위해 난 발기까지 했지만) 동호회를 하나 만들었다. 레넌 어쩌고 하는 제목의 동호회였지만 존 레넌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것은 아니고 동호회를 만든 시삽의 생일이 존 레넌의 생일과 같았다) 그곳에서 심심풀이로 릴레이 연작의 포르노 소설을 썼다. 그리고 이러한 포르노 소설의 위악을 조금 덜어보고자 또 한 편의 소설을 더 썼는데, 이번 (엽편) 소설집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소설의 내용이 떠올랐다.

 

  소설은 어느 날 이 지상의 삶에 시들해진 한 남자가 서울 시내 공원에 있는 한 가로수 위로 기어 올라간다. 그리고 남자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과 등진 듯 혹은 세상을 굽어보는 듯 나무에 오른 이 남자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긴다. 그 추종 세력 중 일부는 이 남자와 함께 서울 시내의 나무들에 오르기 시작하고 이 남자를 추종하는 또 다른 세력은 나무에 오른 사람들을 위한 지상의 후원회를 만들어 각종 생필품을 나무 위의 사람들에게 공급한다. 뭐 이런 내용...

 

  마지막까지는 쓰지 못하고 나무 위의 사람들이 종족의 번식을 위해 새로운 짝짓기 방식을 개발하네 마네, 하는 부분까지 쓰다가 흐지부지 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내가 이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의 짧디 짧은 소설들을 읽었다면, 어떻게든 흐지부지하게 끝을 맺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러니까 책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 헷갈리는, 쓸모있는 내용인지 쓸모없는 아리송한 서른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비의 채집이나 우표를 모으는 등의 쓸모없는 노력을 모아두는 박물관의 이야기인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잠을 부르는 부적처럼 여기는 잠자리에서의 양이 일으키는 반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고집스런 양 한 마리」, 호주머니에 간직하고 끝까지 버텨야만 하는 바로 그 순간의 이야기인 「마지막 순간」, 사랑하여서 삶을 받았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삶을 주어야만 하는 사랑의 우여곡절을 찰나처럼 함축시킨 「러브 스토리」, 화가를 질투하여 그 화가의 여자 주인공에게 콧수염을 선사하는 「모나리자」, 세계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는 순간에 멈추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 그대로 멈추어버린 「장거리 주자 멈추어 서다」, 드라마  타잔의 족보를 들추는 혹은 미디어의 족보를 들추는 「타잔의 외침」, 정신분석의를 상담하는 상담자 혹은 상담자에 의해 상담당하는 정신분석의를 통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상담」, 오리무중 도마뱀과 아기 예수의 이야기 「도마뱀의 크리스마스」, 어느 틈엔가 국가라는 권력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는 남자의 이야기인 「틈」, 문짝을 주워와 보살피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벽처럼 말이 없는」, 유령선이 유령선이 되기 직전의 모습을 그린 듯한 「끝나지 않는 여행」, 누군가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어떤 실수로 자신은 그것을 받아보지 못할 뿐이라며 우기는 「편지」, 국가라는 대상을 상징화한 깃발을 오히려 희화하고 있는 「깃발」, 스스로 확장하는 말의 심연을 보여주려한 「언어의 심연」,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그리고 그 침대위에서 여러 가지 풍경을 바라보는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들」, 공항에 대한 알 수 없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인 「공항」,  사고파는 시간 그 상당량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산다면이라는 가정의 「시간이 약이다」, 꿈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 꿈이 말하는 바를 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이야기인 「의무감」, 창과 벽 사이라는 미미한 공간에 대한 고찰 「창과 벽 사이」, 수족관 속 물고기들의 잔인한 모양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시선만이 흥미진진한) 「빛이 물고기에게 미치는 영향」, 내가 잊고 있었던 어떤 시간의 이야기 「시간 확인」, 도시를 선점한 조각상들과 그 조각상들로부터 소외당한 외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조각상들과 이방인들의 조건」, 미장원의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스케치 한 「미장원」, 할머니와 젊은이의 만남 그리고 수요일을 향한 집착 「수요일」, 여자 수영객들이 뭘 어쨌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자 수영객들」, 여행을 해야만 하는 운명의 여행객이 쓰는 여행 일지의 9월 판 「여행 일지」, 남미에서 유럽으로 망명을 한 주인공 혹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꿈 속으로부터 전달하는 「도시」, 천정에 매달린 줄 위에서만 생활하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의 줄 위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느슨한 줄에서 살아가기」, 빈 들판에서 국화를 키우고 그 국화를 돼지에게 먹이는 아이의 이야기인 「돼지에게 국화 먹이기」...

 

  하지만 주의하시라, 사실 읽다보면 이렇게 짧은 소설도 지루함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으니...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7.02.0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