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연애소설에는 ‘알랭 드(롱)’처럼 생긴 멋진 남자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에는 미남 대신 철학자 타입의 남자가 나온다. 그러니 독특할 수밖에 없다. ‘철학적으로 연애하기’라고나 할까.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생각의 나무)에는 ‘철학적 연애소설’이라는 다소 낯설고 어색한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의 화자(작가)와 주인공(이사벨)은 시종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연애소설이면서도 그 흔한 키스 장면 한번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화자는 주인공의 사고방식, 생활습관은 물론 과거의 행적과 가족관계까지를 줄기차게 파헤쳐 들어간다. 만약 어떤 남자가 소설의 화자처럼 집요한 스토커라면 그 남자와 연애에 빠져들 여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소설에서는 그러한 스토킹이 지극히 상식적이며, 당연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 말도 안 되는 설정을 그럴 듯하게 그려내기 위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철학적 고민을 했을까. 작가의 노력 덕분에 화자의 행동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읽기도 전에 미리 어려운 소설이라고 단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루하고 어려울 거라는 편견은 적어도 이 소설에서만큼은 거두어 들여도 될 듯하다. 이 소설은 철학적이지만 대단히 재미있고, 철학적이지만 대단히 유쾌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그게 바로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재능이자 매력이다. 『왜 나를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철학적’이라는 선전문구가 선입관을 만들듯이 소설의 화자 역시 여성들에 대한 지독한 선입관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선입관은 이사벨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밟게 된다. 파티장. 몇몇 남녀가 ‘지미 핸드릭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옆 소파에는 젊은 여자가 비스듬히 앉아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화자는 소파에 앉은 여성을 보며 예의 편견에 찬 생각에 잠긴다. "예술 분야의 초라한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교활한 남자들에게 과장된 호감을 표시하는 부류의 여자. 자신을 정숙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자신이 처한 존재의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남자와 어울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48쪽) 우연히 이사벨과 대화를 나눈 후, 화자는 자신의 선입관이 적어도 그녀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들은 부담없이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야말로 부담없이다. 한편, 화자의 관심사는 새로운 형태의 전기를 쓰는 것이다. 왜 전기는 저명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평범한 젊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전기로 풀어내보는 건 어떤가? 이사벨은 곧 화자가 쓰려는 전기의 대상인물이 된다. 전기작가와 대상인물로서 둘의 만남은 빈번해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덧 그 만남에는 그녀의 가족들도 들어와 있다. 물론 가족들은 만남의 동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 무렵 화자의 의식속에서 또 다른 의문의 싹이 자라난다. “누군가에게 과거를 떠올려보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총을 겨눈 채 재채기를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비슷하다.”(127쪽) “‘기억’이란 누군가의 질문에 의해 억지로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다.(...) 어느 기차역 카페에서 풍겨오는 샌드위치 냄새를 맡고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오래 전으로 돌아가는 우연한 조우 같은 것이다.(128쪽)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대상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과거는 인위적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며, 설령 떠올린다 해도 그것은 현재에 의해 조작된 과거일 뿐이다. 따라서 전기작가는 대상인물의 삶을 자신의 의식 속에 투사해야 하며, 동시도 그 반대도 진행되어야 한다. 상호 ‘동일시’ 혹은 ‘감정이입’을 통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기는 쓰여질 수 있다. 작가가 취한 방식은 이사벨의 삶 전체를 완벽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화자에 의해 공개된 이사벨의 프라이버시는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사벨의 삶에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미묘한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이 개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보다 너그럽고 깊이 있는 시선을 담아낸다. “사람의 눈 하나와 뇌세포의 절반은 다른 이를 위해 있는 것”이라고 이사벨은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화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간 자신이 관찰한 것은 단지 이사벨의 삶의 괘적이 아니라 자신과 이사벨의 사랑 확인하는 과정이었음을, 관찰의 대상이자 주체였던 둘은 이미 서로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음의 표현은 침묵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제 그녀에게 키스할 때가왔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까지다. 그야말로 키스하기 전까지만 말하고 있다. |
|
언젠가 대형서점에 가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책저책 둘러보다가, 남다른 사이즈와 비율, 그리고 표지디자인(구름섞인 하늘밑에 사람냄새나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쉽게 표현해서 이뻐서 구입했다.
(이 문장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자. "책이 이뻐서 사다니!" - 성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허황된 꿈들 중 나의 관심사에 맞물려 있어서 그런것이니 과도한 오해와 상상은 자제부탁드린다.)
인증샷?
내용역시, 독특한 표지처럼 색다른 소설(에세이)였다. 워낙 독특한 작가이니(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그가 쓰는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책속의 화자(보통)이 이사벨을 만나,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기도 하지만 결론짓지는 못한다. 우리가 늘 경험했던 그런 사랑을 이야기한다. 일상적인 보통의 사랑으로 읽고 있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자치 지루해지기도 했다. 영국런던의 평범한 여성_이사벨의 특별하지 않은 사건, 별로 관심없는 사생활, 그녀의 유년시절은 적당히만 필요했다.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그녀 "이사벨"을 말한다. 죽은자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 자에 대한 전기(biography)를 쓴다는 설정은 신선한 전개방식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호기심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철학적이어서 좀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책을 읽는 내내 쉽게 읽히져지가 않았다.(아마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끝무리에 옮긴이가 독자로 하여금 묻는 질문이 있다. "당신의 이사벨은 누구입니까?" 아마도 질문의 본질은 "당신은 당신의 그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랑을 한다는 것, 그 상대에 대해 궁금증에서 출발해 어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먼저 알고 시작할 수 있는것도 사랑이지만, 우리는 늘 본능을 앞세우는 멋진 동물인것이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함으로써 인생은 극적인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 선 자각 후 반응이든,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라도, 그 사람을 알고 싶어지고, 알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서술적의미가 된다.
|
|
지난 번에 읽었던 스위스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 이어서 접한 그의 두번째 작품. (두번째란 의미는 순전히 내가 그를 접함에 있어서의 두번째. 그가 책을 낸 순서와는 상관이 없다) 이런식의 개그는 절대 식상하지만, 절대 보통 사람 같지 않은 알랭 드 보통 씨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만의 특유한 문체를 사용하며 독자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최근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이 새롭게 디자인되어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여행의 기술>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등 그의 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치 <다빈치 코드>가 대박을 터뜨리자 댄 브라운의 이전의 다른 작품들이 쏟아져나온 것처럼 말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한번 대박 터뜨린거 그의 이름을 빌려 다 팔아보자는 속셈이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즐겁다. 이런 기회에 이 즐거운 작가를 접하게 되었으니 말야.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의 원래 제목은 <KISS & TELL>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 다소 딱딱하고 뉴스거리같은 책의 제목이 우리네 번역서에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달콤한 언어로 표현이 되었던가? 그건 모를 일이다. 출판사만이 알일. 절대로 이 책에서는 우리가 키스하기 전에 무슨 말들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키스를 못해봐서 키스를 하려고 하는데 뭔 말을 해야할지 고민 중인 남녀나 남들이 키스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은 이 책에서 손 떼시라. 아무리 찾아봐야 없으니깐. 키스는 말 없이 그냥 하면 되지 않남? ㅡㅡa 뭔 말이 필요햐? 파아란 깨끗한 하늘에 뭉게 구름 둥실둥실 떠있는 책의 표지와 완벽한 정사각형은 아닐지라도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를 가진 이 책은 단번에 우리의 눈길을 끌기는 한다. 하지만 일부 책 수집가들에게는 이 책은 모양새가 튀는지라 다른 책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같은 선상에 꽂아넣기는 애매한 책. 그래서 불만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제목이나 모양새나 이래저래 출판사가 독자들의 눈길을 좀 끌어볼라고 애쓰기는 무진장 애썼다. 근데 도대체 책 내용에 대해서는 언제 이야기하는거야? 너는 아직까지 서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잖아! 라고 짜증내지말길. 나는 원래 책 내용이야기보다는 딴 이야기를 잘 하니깐. 이게 내 감상문의 끝일지도 모르는거야. 읽은지는 꽤 시간이 흘렀는데 선뜻 감상문을 작성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일에 치여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지 상당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함부로 서투르게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재밌게 봤고, 뭐 대단한 내용이 들은건 아니지만, 아껴주고 싶은 책이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될지 어떨런지는 모르지만 모양새나 내용이나 너무나 마음에 들어 옆에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책이기에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상당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그냥 지 멋대로 감상문을 갈기고 있다. 외관에 대한 감상은 여기서 그만! 너는 너무 외모만을 보고 있잖니? "훌륭한 삶을 쓴다는 것은 훌륭한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라는 나는 잘 알지못하는, 하지만 보통씨는 책에서 이 사람들 자주 언급하고 있는, 리튼 스트래치 라는 사람의 문구로 책은 뚜껑을 연다. '시작하며, 어린시절, 가족관계, 음식과 이사벨, 기억, 사생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본 세상, 남자와 여자, 심리, 결말을 찾아서, 끝내며, 옮긴이의 말'이라는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제목에서 보면 혹시 알랭 드 보통 자신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용을 읽기 전에 제목에서 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내용이 보통씨의 자서전은 아니었지만, 일단 전기인 점에서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단지 전기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걸 전기로 분류해야할지, 아니면 보통씨의 에세이로 분류해야할지, 아니면 소설로 해야할지 참 애매하다. 알라딘 서점에서는 이걸 '소설'로 분류하고 있고, 예스24에서도 역시 '소설'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차라리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나을 듯 싶다. 전기와 소설과 에세이의 교집합 선상에 놓여있는 이 책은 사실상 작가 보통씨의 사색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사벨이라는 평범한 한 여자의, 그것도 나이들어 죽음에 임박한 할머니가 아닌, 힘 팔팔 넘치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전기라니! 우리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전기에 대한 상식을 깨버린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읽어왔던 전기의 공통점은, "1. 죽은 인물이다 2.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잠깐 생각해봐도 이 두 가지 점에서는 벗어날 전기가 없다. 그런데 보통씨의 전기는 이걸 다 깼다. 왜 전기는 죽은 인물이어야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야 하느냐는 것이다. 평범한, 아직 인생을 다 살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전기를 쓸 수 있다. 또 보통은 전기를 쓸 때에는 작가가 전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은 새뮤얼 존슨의 말을 빌리기도 하고, 자신의 언어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같이 먹고 마시며 더불어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기술할 수는 없다."(새뮤얼 존슨, p45) "진정한 전기가 되려면 저자와 주인공 사이에 어느 정도 정서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 (p68) "은유적으로 말해서 작가는 주인공과 잠자리를 같이 해야한다. 전기가 격식에 맞춰 작성된 회고록이나 학술 논문과 구분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전기는 문자로 씌어질 수 없는 생각의 연쇄고리다. 침실의 불빛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를 조사해본 다음에야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임을 알려주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p154) 대개의 전기작가들은 직업적인 전기작가들이고 따라서 여러편의 전기를 씀으로써 책을 내고 밥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한편의 전기를 쓰는데 있어서 전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만한한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조차도 없다. 우리들이 접하는 전기는 그 인물의 작은 한 단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전기가 되려면 그 인물과 먹고 마시고 자고 싸고 하면서 함께 생활에서 부대껴야하고 그 과정에서 그 인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잡아낼 수 있어야한다. 그러려면 일단 인물이 죽은 뒤에 전기를 쓰는 것은 여기선 불가능하다. 보통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식을 쉽게 깨어버리고 이사벨이라는 여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아주 자연스럽게. 절대 인위적이기도 않고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대단했던 사건들만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처음 자위를 했던 이야기며, 남자와 관계를 맺었던 이야기며, 무슨 음식을 좋아하며 왜 좋아하는지와 같은 아주 시시콜콜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들까지도 보통은 늘어놓고 있다. 마치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전기다 라고 말하듯이. 그러면서도 알랭 드 보통은 전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고, 이사벨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중간중간 풀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이 전기가 아닌 에세이로도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든다. 도대체 이게 소설이야, 에세이야, 전기야! 라고 짜증내지말고 기존의 형식을 과감히 파괴한-일부러 파괴한 것 같지는 않다- 보통씨의 이야기 서술방식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보라. 너무나 사색을 깊이 한 나머지 독자들이 사색할 부분까지도 없애버리는 보통씨. 하지만 그가 깊게 사색한 것을 우리는 눈으로 살펴보며 우리의 머리 속에는 또다른 사색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색은 또다른 사색을 낳는다. |
|
이 책을 읽어 갈 수록 저자(혹은 화자)에게서 느낀 것은 전기(傳記)의 서술방식에 대한 다양한 사고방식과 여러 철학적 주제로 인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변태성에 가까운 탐닉' 이었다
이사벨과의 대화 대부분이 자신의 호기심을 위한 일방적인 질문들이 많아 집요하게 느껴져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생각이 많고 복잡한 질문의 화자에 반해 여주인공 이사벨의 대답과 행동들은 쿨(?)해 보이기까지 한다.
화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지적인 호기심이거나 자신과 다른 속성)을 이사벨을 관찰함을 통해 얻어보려고 하지만, 이사벨에게서는 그 필요성을 더 못 느낀건 지 아니면 자기 내면의 한계에 부딪힌 건 지 "그러면 이제 우리는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라며 소심한 이별통보(혹은 협박)를 해 봄으로 책은 마무리에 이른다. 아마 화자는 이사벨에게 전기작가들이 서술 대상에게서 느끼는 애증같은 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의 마지막. '겸손하게 나는 침묵에 빠졌다.' 이사벨과의 만남이 지속되는 건 지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탐닉적 관찰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전기를 한 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 전기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소유하고픈 부분을 나만의 전기를 통해 담아 봄으로 내 조그마한 애증을 음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 한 남자가 바에서 우연히 어떤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첫인상에서 받은 자신의 선입관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사벨의 어린 시절, 가족, 생각, 사고방식, 취향, 신변잡기적인 것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기질들에 관한 전기를 쓰는 전기 작가가 된다. 이사벨은 말한다. 키스를 하기 전에 질투, 솔직하지 않은 모습, 토하거나 코를 후비거나 발톰을 깎는 모습까지도 보여준는 친밀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친밀함은 가작 상처받기 쉬운 모습이나 가장 덜 떨어진 모습에서 발견되는 행위이며 멋진 모습이 아니어도 된다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난 남자를 만나면 그의 어린 시절은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나에게 보여주는 지금의 모습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거짓말, 두려움, 바보같았던 모습들, 유치한 경험들, 용기있던 행동들을 들을때면 그들의 투명한 모습이 보인다. 이 책에 나오는 두 남녀는 당돌하고 재미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한 여자와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한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려는 한남자의 생각이 있는 소설이다. 그들은 내가 연애를 하면 하고 싶은 대화를 한다. 책을 읽고 책에 나오는 집을 서로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서로가 생각하는 아테네의 지도적 위치를 그린다. 난 연애를 하면 이런 대화에서 항상 목이 말랐다. 친밀해 지고 나면 오히려 이런 대화들을 하기가 힘들어지곤 한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 서로의 이야기만을 지껄이는 경우가 대부분이 된다. 서로 이해를 강요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의무를 지키고, 관심사를 억지로 공유해야 하는 것들이 한편으로 솔로의 자유로움을 그립게 하지만 솔로의 외로움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이별을 선언하기 힘든 것이다. 이 책의 두 남녀의 수다를 읽으면서 난 내 애인과 이런 수다를 나누고 싶었다. 책이 끝무렵에 다가가면서 결말에서는 드디어 이들이 키스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끝까지 너무 당돌했다. --------------------------------------------------------------------------------------- [어떤 삶을 A에서 시작해 Z로 끝나는 알파벳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문법적 구속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삶이란 없을 것이다. 어떤 글자를 써야 할지 몰라 고만히는 한 아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Q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설 수도 있고, 그러고 나서 D로 돌아갈 수도 있다. 관심사가 S로 향해 갈 수도 있고 열다섯 살에 일어났던 어떤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G로 돌아가 살짝 발을 담그기에 앞서 다가오는 현재인 R속에 맴돌고 있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혼란을 정리하고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혼란하고 복잡한 상태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가 25년간 알고 지냈던 남자 혹은 여자를 하나의 정연한 총체로 응집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고, 다른 이들도 우리처럼 복잡하고 알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와의 짧은 첫 만남 뒤에는 충분히 생각할 여유와 인내를 갖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다른이에게까지 순교를 강요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어떤 것을 원한다면 돌려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려고 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 나는 자기 자신을 숨기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인간에게 완전히 속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심되는 우리 성격의 어떤 측면들을 비밀이라고 부른다. 비밀은 우리가 가진 고유함 중에서 어둡고 창피한 일면이다. 사회적으로 예상될 수 있는 비밀의 효과란 천재나 영웅주의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 생활에서 겪에 되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 모욕감을 꿋꿋이 견뎌야 하는 상황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비밀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들이 낯선 것에 대하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고, 그들이 행동하고 느낀 것들을 아주 개인적으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과 자신이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나서 판단한 것이다. 가령 그들의 손을 잡고 보니 비로소 어울린다고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준 상처와 길가의 움푹파인 웅덩이가 안겨주는 상처를 동일시 하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랑 이야기들을 설명하려고 애쓰다 보면 이런 우울한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왜 그들었지?' '왜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었던 거지?' 비정상적이었던 선택들을 돌아보면 우리가 상대방과 감정을 실재로 주고 받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그저 일방적으로 전달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어떤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이동하는 것은 같은 팀 선수들이 각자 주어진 구간을 달리는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을 건네는 것고 비슷하다. 이러한 은유가 암시하는 것에는 차이뿐 아니라 연속성도 있다. 주자가 바뀌는 것은 차이를 상징하고 바통을 주는 행위는 연속성을 상징한다. 나는 한사람의 놀랍도록 다양한 일생을 볼 수 있었던 피카소 회고전 기억한다. 수척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푸른색 계열의 그림을 그렸던 재능있는 한 젊은이가 건넨 바통은 핑크색 계열으리 좀더 부드로운 풍경을 그린 다음 주자에게 건네젔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원근법을 파괴하고 큐비즘이라는 사조를 창조한 화가였다. 릴레이는 끝나지 않고 마음속에 게르니카를 품고 있던 누군가가 바통을 받았고, 그 과정은 계속됬다.] ["우리는 모두 같은 요인들로 감정이 촉발된다. 모두 같은 오류들을 범하고, 모두가 희망에 의해 생기를 되찾고, 위험에 의해 가로막히고 욕망에 뒤얽히며 환락에 유혹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때, 우리가 알고 싶은 사실들은 이미 정점에 달한다.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우리가 알고 싶은 사실들은 이미 정점에 달한다.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우리는 갖고과, 동료, 일, 어린 시절, 삶의 철학 그리고 그들의 로매스에 관해 탐구한다. 그러나 일단 서로에 대하 알게 되면 반갑지 않은 단계를 맞는다. 친밀해졌다고 해서 좀더 심호한 주제에 관해 긴 대화를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상반된 시나리오를 펼치기 일쑤다.] |
| 파란 하늘에 구름이 어우러진 예쁜표지도 마음에 들고, 제목에도 확 끌려서 카트에 넣었는데, 그게 실수였다. 한국어 제목인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이라는 것은 잘못된 광고의 카피처럼 이 책에는 맞지 않는다. 책을 받았을 때 양장으로 된 책 표지가 무엇인가에 찍혀서 손상이 많이 되어 있었다는 것도 기분나쁜 이유중의 하나였지만, 그 내용은 나를 더 실망시켰다. 표지에 쓰여있는 문구, '당신이 생각해왔던 연애관이 흔들린다!' '발랄하고 유쾌한 러브스토리' 이런 말들을 어떻게 붙일 수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뿐이다. 양심에 찔리지도 않았을까? 이 책의 어디가 대체 발랄하고 유쾌하다는 건지... 평범한 남자주인공이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구성... 어떤 사람의 전기라는 것이 이렇게 따분하고 지루할수도 있다는걸 알게 해 준 책이다. 공감대를 찾을 수 없는 어느 평범한 한 여자의 전기에서 무엇을 바랬을까! 어쩌면 너무 기대를 했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많은 실망을 했나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이야기는 내게 너무 진부한 소재였기에... 하지만 평소에 발랄한 연애소설은 이제 질렸다는 분이나, 공감대가 없는 글에서도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 이게끝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서 짜증보다는 여운을 느끼시는 분들께서는 읽어도 좋을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유쾌한 러브스토리『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이사벨이라는 한 젊은 여성에 관한 전기이자 보고서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이사벨이 들려주는 이야기, 화자가 들려주는 이사벨 이야기, 화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넘나들고, 작품의 형식도 소설에서 전기, 혹은 인문학적 에세이로 종횡무진한다.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사랑과 연애의 과정에 대한 단상들을 중점을 두고, 발랄하고 도발적으로 풀어나간다. |
|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적노력이 필요하다. 그에게도 직접 말한 바 있지만, 그의 글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량은 개인마다, 그리고 그 개인의 읽는 시기마다 다를 수가 있다. 그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그는 대단한 것을 얘기해주는 작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희미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해 동감의 감동을 끌어내는 작가이다.
알랭 드 보통의 팬이라서 이런소리를 하는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책이 재미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알랭드보통과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알랭드보통은
딱, 그 시간의 차이 만큼의 차이를 보여준다.
알랭드보통다운 맛있는 말투 그대로지만,
좀더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은
그의 인생과 사랑의 그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아, 그리고 알랭드보통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만으로 이 책을 구입하면서
역자는 그의 책을 번역할 만큼 똑똑하신 분이
어째서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멍청한 제목을 붙였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멍청이는 나였다.
우리가 키스하기 전에 해야만 하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다.
키스하고 나면 말하고 싶지 않아지는,
하지만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그것이 키스를 최고로 짜릿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_멋진 책의 표지는 멋질 필요가 없다 주의지만,
예쁜 표지도 좋다 :) [인상깊은구절] 그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알고자 하는 의지는 줄어든다는 역설을. |
|
저자는 애 책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방식-전기(傳記)와 소설의 결합-을 실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전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저명하거나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쓴 전기작가와는 서로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대개의 경우가..) 대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도식화해버리는 전통적인 전기 집필의 규범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기를 써보려고 도전한 작품이다.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등 저자는 그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주로 써왔다. 저자가 평범한 한 젊은 여성의 전기를 써보겠노라고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은 사랑에서 왔다. 글 내용에서 여자친구의 가혹한 비난과 함께 실연을 경험한 주인공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한 여성과 만난다. 멀리서 일별하고 나서 그렇고 그런 뻔한 여자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가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물론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젊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공개하고 그 공개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한 독자들은 작가와 주인공들과의 성공적인 피드백의 결과로 우리는 위트 넘치고 사려 깊은 한 젊은 여인의 전기와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목인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사람, 한 여성의 40여년 일대기를 전기의 형태로 저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나는 저자가 책에 왜
소설은 주인공 '이사벨'의 입을 통해 쓰여진 일대기와 작가와 이사벨과의 구체적인 대화와 관계, 그리고 앞의 두 가지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하고 철학과 이성으로 분석하는 세 가지 구성으로 엮어진다. 전기는 한 사람을 깊이 있는 장르이다. 이 소설은 이사벨이라는 한 젊은 여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읽어낸다. 이사벨이라는 텍스트를 읽어가는 저자는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따지고 분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사벨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완벽히 설명될 수도 없고 온전히 이해되기도 힘든 살아 있는 인간, 젊은 여자다. 결국 저자가 사랑했던 건 이사벨이라는 텍스트였지 울고 웃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살아 있는 인간 이사벨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사벨의 주장처럼 한 사람의 삶은 당사자도 왜 그러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전 세계 50억명 가까운 사람들 중에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러한 인간들이 군데군데 모여 집단을 이루고 서로 이야기하고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이 지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말은 선입관을 가지고 누군가를 규정짓고 판정을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애기와 같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인간을 인간답게,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각각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이해하기 이전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시작할 수는 없을까??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절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157쪽)
[ 2010년 5월 30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