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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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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낭만적일 것 같은 제목은 살짝 로맨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책은> seyoh 님이 책나눔으로 주셨다. <저자는> 저 : 전경린  ---발췌하다 全鏡潾, 본명:안애금 작가의 본명은 안애금.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다. 당시 누가 `린'이라는 화두를 주었고, 차례대로 `경'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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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낭만적일 것 같은 제목은 살짝 로맨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책은>

seyoh 님이 책나눔으로 주셨다.

<저자는>

저 : 전경린  ---발췌하다

全鏡潾, 본명:안애금

작가의 본명은 안애금.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다. 당시 누가 `린'이라는 화두를 주었고, 차례대로 `경'과 `전'을 추가해서 `전경린'이라는 이름을 완성시켰다. 작가도 물론 `전혜린'을 떠올렸다. 작가는 전혜린을 좋아한다...

 

196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KBS에서 음악담당 객원 PD와 방송 구성작가로 근무했다. 그 후 운동권이었던 남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 둘째를 낳은 후인 1993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갔다... 전경린의 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2002년 변영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책내용 맛보기>

책소개 중에서 ---발췌하다

'유지'는 어린 시절 큰 고모부를 아버지로 알고 살았지만, 그의 죽음과 더불어 작은 고모인 '손이린'이 생모임을 알게 된다. 크레바스를 건너듯 단숨에 그녀의 삶이 변하고, 이린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꾸려나가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유지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에게, 생물 교사인 '이사경'의 존재는 각별하다.

'침묵의 음성'을 가진 그에게 유지는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고, 자신의 감정과 존재성을 인정받기 위해 그의 앞에서 옷을 벗는다. 어린 제자의 돌발적 행동 앞에서 이사경은 당황하고, 곧 이 사건은 그의 아내인 '백주희'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은 유지를 손자인 '연조'의 피아노 교사로 집에 들이고, 되려 유지를 다그치는 이는 백주희가 아닌 손이린이다. 이 묘한 관계성 속에서, 유지는 이린과 사경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책읽은 소감>

사람내음 나는 사람이 좋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건 좀 그렇지만 적어도 좋고 싫음, 슬픔, 아픔 등을 조금은 표현할 줄 아는 사람, 가급적이면 상대가 내 느낌을 알 수 있는 사람, 나아가 남의 마음도 좀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 나의 감정때문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갖게 될 느낌을 조금은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러자면 내 감정에만 충실할 수는 없으리. 이 모든걸 무시하고 상대가 어떻든 내 감정으로만 지내는 사람을 만났다. 나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남의 감정에도 무심한 아이. '나'다. 남들이 '유지'라 불러주는 아이, 손유지다.

 

유지의 둘째 고모는 손이린이다. 동네사람들은 이린이 유지의 친모라는걸 안다. 나는 큰 고모네서 자라다 고모부의 시한부 삶이 정해진후 해변빌라의 이린에게로 왔다.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도 엄마라 부르지 않았고 이린도 엄마로 불리든 말든 상관이 없다. 한 집에 살되 그림자도 마주치지 않고 지내는 사이. 이린은 약사인데 자연주의요법을 지향하며 약초를 캐러 자주 집을 비운다. 마을의 약사면서도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다. 오로지 약 지으러 온 손님일때만 대화를 한다.

 

생물선생님인 이사경이 왠지 큰 고모부와 느낌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큰 고모부가 생부라는 생각을 한 건 느낌이었다. 이사경 샘을 보고나서 이 사람이 생부구나 싶어도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과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지낸다. 피아노를 치면서 가슴 안에 담긴 감정을 잊을 때가 있었다. 미친 듯이 피아노에 골몰하면서도 특별히 좋다거나 마음이 비워지는 경지 같은 것도 없다. 그냥 할 게 그것밖에 없어서 친다. 이사경 샘은 늦게까지 인체모형를 놓고 몰두해 계신다. 가끔은 이사경 샘을 몰래 훔쳐보는데 오늘은 호기심으로 다가가자 설명을 해주신다.

 

선생님 눈에는 제가 보여요. 그러면서 옷을 벗는 유지. 그래, 보여. 이사경 샘은 몸으로 유지를 덮어주며 보인다는 말을 했다. 이사경 샘에게만 보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유지.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유지가 이사경 샘에게는 자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파격으로 이사경 샘을 움찔하게 한 저의는 뭘까. 자신의 친부인지도 모른다는 어림짐작을 이런 식으로 보여줘 확인시키고 싶었던 걸까. 이린과 만났을거라는 생각에 대한 경쟁심? 이린에 대한 반발심? 자신을 학대하는 방식?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독자인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가 없었다. 몸으로 덮어준다가 단순히 벗은 몸을 안아줌으로써 덮었다는 의미인지? 흐음~

 

중략

 

늘 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바다가 항상 거기 있기에 오히려 무심하려나.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해변의 빌라에 사는 두 여자. 둘은 가족이지만 적어도 가족의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다. 동거인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침범하지 말자 설정하고 약속한게 아닌 무의식적으로 성립된 관계다. 타인인 남이 동거를 해도 정이 들텐데 이 기묘한 가족은 서로의 생활에 관심이 없다. 관계에 서툴다기 보다는 아예 관심이 없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자신들은 불편해하지 않는구나.

 

 

비교적 얇은 장편임에도 읽는내내 답답함이 자리했다. 나를 내리누르는 유쾌하지 않은 이 느낌. 삶의 활력을 주는게 아닌, 있는 활력마저도 빼는 무기력함이 자리했다. 지독한 허무. 저자는 사람관계에 지쳐 있을즈음에 그냥 상태를 나타내는 글을 썼다고 한다. 이 글은 모호하다. 막연하게 짐작하는 것과 믿기지 않아도 결론을 지어주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 무엇도 끼어들 수 없고 자리할 수 없는 그냥 주어진 날들에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일. 허무한 마음으로 허무한 상태로 지내는게 정작 본인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았,다.

 

피아노호텔 이라는 학원 이름. 피아노를 재우는 곳이란 의미로 지었단다. 유지 답다. 대놓고 애증도 아니건만 이린이 일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후 이린의 옷을 입고 이린처럼 해변을 걷는 유지. 이린이 썼던 파라솔을 들고서, 이린이 걸었음직한 방향의 해변으로 향하는 유지. 그런 유지에게 이린의 옷을 입지 말라고 말하는 이사경. 이사경의 처 백주희에게도 애모의 정은 있었으니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는 묵묵함 속에 도사린 속울음이 드러났다. 자식뻘인 유지에게 담담히 털어놓는 속내를 통해 유지는 또 한번의 잘못 짚음에 놀란다. 애 딸린 이혼남이 된 아들 연조와 유지가 잘 어울리는걸 덤덤히 바라봄으로 반대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백주희의 쿨함이여!

k******5 2015.02.04. 신고 공감 6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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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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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이란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시도했을 때 나는 그녀의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언어로, 글로 표현되어 있지만 내가 부족한 탓인지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이해의 범주가 아니더라도 모호한 것을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 그녀의 소설은 다른 나라 말 같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소설이 나왔어도 궁금해 하지 않았고, 읽고 싶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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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이란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시도했을 때 나는 그녀의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언어로, 글로 표현되어 있지만 내가 부족한 탓인지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이해의 범주가 아니더라도 모호한 것을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 그녀의 소설은 다른 나라 말 같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소설이 나왔어도 궁금해 하지 않았고, 읽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만난 해변 빌라라는 책. 책 표지가 예뻐서였을까? 아님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아서였을까? 이번에는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 해변 빌라...

 

해변 빌라의 주인공 유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큰 고모부라 생각했지만 고모부의 죽음으로 작은 고모 손이린이 자신의 생모임을 알게 된다. 그런 유지에게 생물 교사인 이사경이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된다. 그런 감정 때문이었을까? 유지는 이사경 앞에서 옷을 벗는 돌발 행동을 한다. 그 소문이 작은 동네에 퍼지고, 이사경의 어머니 노부인에게 불려간다. 노부인은 유지를 자신의 손자 연조의 피아노 교사로 들이게 된다. 이사경과 유지, 노부인과 이사경의 부인 백주희 그리고 유지의 생모 이린. 이들은 서로를 건들이지 않은 채 묘한 관계를 유지 하게 되는데...

 

줄거리를 적어 놓았지만, 이 줄거리들이 책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건지 모르겠다. 책속에 나온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인생을 책으로 만나게 되는 건 언제나 즐겁다. 그 즐거움 때문에 소설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는 내 입장에서 이런 유의 소설은 난감하고 난해하다. 작가가, 유지가 말하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려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가진 틀 안에서 생각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인다.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라는 착각 속에서..

 

그래서 작은 고모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는 유지를 잘 모르겠고, 이사경 앞에서 밑도 끝도 없이 옷을 벗는 유지란 인물도 모르겠다. 왜 그런 설정이 있는지, 해변에 살고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인생도 잘 모르겠다. 다양한 인물.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사랑.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사람들. 책을 다 읽고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고,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하지만 거기에 써 있는 해설을 보고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글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의 나열들.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데 이렇게도 힘들구나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상엔 분명 전경린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책을 더 읽다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까? 어려운 책 읽기를 끝낸 것 같다. 다시 그녀의 작품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 만나게 되면 그때는 좀 더 마음을 다 잡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5.03.31.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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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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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빌라 』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마블링으로 꾸며진 책표지가 우선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그리고 작가의 이름 ' 전경린'을 살펴보니 언젠가 『엄마의 집』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더 반가운 마음을 가득 안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을 시작하니 책의 표지처럼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뒤죽박죽??   한장한장 넘겨보면 어딘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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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빌라 』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마블링으로 꾸며진 책표지가 우선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그리고 작가의 이름

' 전경린'을 살펴보니 언젠가 『엄마의 집』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더 반가운 마음을 가득 안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을 시작하니 책의 표지처럼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뒤죽박죽?? 

 한장한장 넘겨보면 어딘가 모르게 아리송한 생각이 들면서도 여기서 끝이 아니라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되는 출생의 비밀이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지만 『 해변빌라 』이야기 속에서는 '유지'가 어린 시절 큰 고모부를 아버지로 알고 살다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작은 고모인 '손이린'이 생모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흘러 가기 시작한다. 사실 우리의 주변을 둘러 보면 이런 이야기는 흔한 소재가 될 수 없다. 역시 소설 속의 세상은 정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유지'  입장이라면, 내 삶이 많이 변했을까? 어휴,상상하기조차 싫다. 그 결과 '유지' 그녀의 삶이 단숨에 변하게 되고, ' 이린'과 함께 살게된다. 얼마나 어색하고 어려웠을까?

 

 생물 교사 '이사경',  그녀의 어머니인 '노부인',  '백주희' 등  이 소설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해변속에서 이어진 끝없는 인생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의도인가? 아직도 조금은 아리송하기에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읽어보려한다. 아리송함속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끌리는 매력이 살짝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해변빌라는 아름답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 책 속의 해변빌라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있다. 첫 눈이 오는 날, 해변을 걷는다는 마음을 안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자꾸 먹어 가는 나이 아니 세월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겠다.

 

 

 

   

j***3 2014.11.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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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빌라』 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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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입김을 불어내며 한참을 복도에 서 있었다. 보이는 것은 단풍. 그리고 고속도로. 여인의 허리 곡선처럼 보인다. 탐닉하기 바쁜 차들은 적혈구 같다. 이제 막 골수에서 만들어 졌는지 힘 있게 돌아 다니는 모습에서 온기를 느낀다. 전경린 작가의 소설을 읽고, 모처럼 무어라 형용할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혔다. 벌겋게 달아오른 볼과는 다르게 가슴이 찌릿하고, 찌릿한 가슴과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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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입김을 불어내며 한참을 복도에 서 있었다.

보이는 것은 단풍.

그리고 고속도로.

여인의 허리 곡선처럼 보인다. 탐닉하기 바쁜 차들은 적혈구 같다. 이제 막 골수에서 만들어 졌는지 힘 있게 돌아 다니는 모습에서 온기를 느낀다. 전경린 작가의 소설을 읽고, 모처럼 무어라 형용할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혔다. 벌겋게 달아오른 볼과는 다르게 가슴이 찌릿하고, 찌릿한 가슴과는 다르게 세상이 뿌옇고, 뿌연 세상과는 다르게 눈은 맑다. 괜시리 눈물이 찬다.

 

- "보고 싶다." (p.175)

 

바다의 비릿내와 함께 심장을 도려내듯 뱉어냈던 이사경의 그 한마디. 헛헛한 뱃속을 뒤틀었다. 무엇을 말 하고 싶은 걸까? '시간이 무너진 세상, 모든 것이 느리게만 흐르는 공간, 아무도 찾지 않는 폐해수욕장.' 타인의 강 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이해 하고 싶은 마음에 두번 읽었다. 처음에는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수족관에 갖혀 뻐끔뻐끔 입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화자 유지는 마냥 중학생 같았고, 이사경은 27세의 생물선생 같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배경은 정지 되고, 오직 감정만 출렁였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괄호 안에 갇힌 것 이었다. 최소한의 말을 교환하고, 괄호 안에 갇힌 것은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어려웠다. 소통을 바라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어코 듣겠다고 발광하는 것.

 

- 바다를 끌고 다니는 것은 하늘의 달이에요. 그런 것을 믿기는 쉽지 않아요. 저 멀리 있는 달이 바다의 생물을 양육하고 다스리고 있다니 말이에요. 하긴 해가 땅 위의 식물에게 광합성을 하게 해 산소를 만들어내고, 그 산소를 동물에게 공급하는 이치와 같으니 그리 신기할 것도 없지요. 이런 세상에 어떤 존재든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느꼈어요. (p.173~174)

 

모든 것은 염원에서 시작 되었던 것 같다. 사랑의 끝은 생각지 않은 곳으로 삶을 옮겨 놓을 수 있다는 비가역적 에너지론에 이끌려 해변빌라 509호로 흘러 왔고, 늪처럼 상처 받고 입은 사람들을 잡아 당겼다. 화자 유지는 말 한다. 화려한 고독을. 고모부의 늘어진 회색 셔츠와 하얀 피부. 말 없이 바둑을 두던 손가락. 침묵 하던 입술의 향기를. 같이 식사하던 시간이 얼마나 따스했는가를. 정지 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는 출생의 비밀이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것처럼.

 

작은 고모라 불리우던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과 아빠라 생각했던 고모부를 잃는다는 것, 누구 하나 설명해 주지 않는 이 갑갑한 침묵 속에서, 할 수 있었던 몸부림이 결국 이사경 앞에서 옷을 벗는 결과를 초래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은 인생(삶)을 리드미컬한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겹도록 많이 들어 짜증이 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있기에 이 단조로움이 살만하다고 카페 주인 편사장을 통해 이야기 한다.

 

- 그러면서 왜 사랑을 하느냐고요? 말도 안되는 사랑을 왜 하고 또 하느냐고요? 허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외에 무엇이 있지요? 먹는 것, 입는 것, 꿈도 없는 수면, 걷기, 살랑이는 바람, 햇살, 온갖 향기, 미소, 하지만 타인의 살갗을 파고드는 사랑보다 더 강렬한 행복감은 없어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 중독자이지요. 하지만 그 동작이야말로 삶에서 최고가 아닌가요? 그 외엔 아무리 미화해도 일과 온갖 관계와 생활이란, 그저 인생의 노동일 뿐이니까요. (p.187)

 

벙어리 여인(상희)도 그렇다. 페트병 화병에 백합, 해바라기, 글라디올러스를 꽂듯이 '사랑'을 말하는 꽃말로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인물이 흰 옷에 보이는 집착이 역설적으로 지독한 중독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생과 선생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가 유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였던 것이 단지 그 이유만이 아니었던 것처럼 사랑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소설만 보아도 그렇다. 이사경의 부인 백주희는,

 

- 난 이미 온갖 일을 다 겪었다. 대가를 치를 만큼 치렀어. 이제 와서 포기하진 않아. 어떤 형태로든 사경과 끝까지 갈거야. 너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거야." (p.206)

 

가질 수 없는 마음의 댓가에 다짐하듯 날 선 고독으로 그 침묵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백주희 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인물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노년에 접어 든 그녀가 조용히 앉아 참외를 깎아 먹는 모습에서 비릿함이 배어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흘러 넘치기만 했던 그녀의 울림 없는 사랑에 대한 결과를 말 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이 멈추었다'라는 말처럼 우린 모두 같은 기억을 하고 있다. 캔버스에 그려진 손이린의 모습을 보고 '뒤로 걷는 것 같다.' 라고 말 했던 유지처럼, 우리는 그 기억을 잡고 싶어 한다. 같은 공간에 앉아 차를 마시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만 사실은.. 그 눈을 통해 먼 시간을 건너간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과 체온은 잊으려 할수록 다가오는 죽음 같다. 숨구멍을 조여서 내 안에 살고 있는 그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백주희의 간절함이 <삶이란 부재의 사과는 깎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 알 수 있게 한다.

 

손이린, 이사경, 손유지, 연조, 오휘, 편사장, 백주희 등등. 그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정황만 있을 뿐 사실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사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일까 아니면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억하고 싶은 기억은 정말 사랑일까? 아름다운 찰나를 담은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도 사랑일까? 사산 된 아이를 놓을 수 없었던 가난한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이야기 보며 해삼을 떠올렸고, 애초부터 그 이상한 생물을 잡으려 했기에 오해를 부르고 고통에 침몰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생명은 유동적이기에 움직임을 멈출 수 없으니 태생적으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인 것 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그리움을 느꼈다. 샤르트르와 대화 했던 손이린 마저도 그 마음을 표현했다 보여지니까. 후, 치정사에 얽매인 이야기가 아닌 사건, 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삶의 변주곡 같다. 그래서 소통하지 않는 그들의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t******4 2014.11.17.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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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해변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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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해변 빌라   이 책을 몇 페이지쯤 읽었을까, 다시 앞으로 돌려 읽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읽었던 내용 중 등장인물간의 관계가 파악이 되지 않아서였다. 무슨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인물들 이름도 그렇거니와 사건이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단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인물들간의 관계 정리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이게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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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해변 빌라

 

이 책을 몇 페이지쯤 읽었을까다시 앞으로 돌려 읽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읽었던 내용 중 등장인물간의 관계가 파악이 되지 않아서였다. 무슨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인물들 이름도 그렇거니와 사건이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단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인물들간의 관계 정리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이게 무슨 일? 하는 수 없이 다시 읽기로 했다. 그만큼 제 1장의 몰입도는 새학기 첫 수업 같이 어수선했다. 아니 어수선해 보였다. 그런 까닭으로 마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아버지를 나중에서야 알았던 것처럼 나도 그 인물들 간의 관계를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을 늦게 안만큼,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의도도 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다시 읽었다, 그제서야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어렴풋이는 소설 끝까지 이어졌다인물들이 한결같이 함께 하기에 거북한 사람들‘(16)이기에 그렇게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책을 일단 다 읽고나서 다시 한번 읽을 생각이 든 것은 끝 즈음에서 문장의 매듭이 어떤 것은 평어체로, 어떤 것은 경어체로 끝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1장에서 시작하면서 * 표시로 된 글에서 화자는 누구일까? ‘는 손유지(윤유지)이다. 그리고 그 발언이 끝나고 나서 소설은 다시 1의 글로 이어진다. 그 때의 역시 손유지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이렇게 같은 화자가 어떤 때에는 경어로 말을 하게 하고 어떤 때에는 평어체로 말을 하게 할까? 여기에 이 소설의 어떤 숨은 비밀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발견하고서야 이 소설에서 무언가 숨은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화자의 심리를 더 심층적으로 서술하면서, 소설은 진행이 되어간다. 작가의 말대로 소설의 내부에 의식과 시간이 흐르고”(224)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장은 화자인 손유지가 경어체로 말하는 부분에서 이사경이 깨어나기를 기도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물론 그런 시작에 앞서 그의 생각은 잠시 노부인과 해삼 잡으러 갔던 때를 회상하기도 하지만...

시점은 노부인이 죽고, 이사경이 평범하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 소설은 에필로그로 글을 마감하기 전() 장인 여우비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따라서 소설의 서두에 시작한 회상이 다시 처음 시점으로 돌아가 끝을 맺는 것이다.

 

회상의 시작과 끝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 일들이 의문투성이인채로 진행이 되는데, 작가는 어찌된 일인지 거기에 대하여 속시원하게 설명을 하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한마디로 중간중간 매듭을 지어 놓지 않아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 놓는다. 일례로, 화자가 윤유지에서 손유지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 사건을 보자.

 

큰 고모부가 아빠인줄 알고 자라던 화자는 어느 날 작은 고모인 손이린이 자기를 나아준 생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20) 그리고 작은 고모를 따라 해변빌라 509호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작가는 그 사건 가운데 마땅히 있어야할 해설을 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생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큰 고모부는 등장하는데 큰 고모는 왜 등장하지 않는지. 그러한 설명이 봉쇄되었으니, 독자는 더 궁금해진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화자의 위치 - 그리고 존재 자체- 는 갑자기 변화를 맞이한다. 그런 획기적인 사건에 맞딱드린 화자의 심경은 어땠을까? 작가는 극히 말을 아끼고 겨우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가서야 밝힌다. “크레바스를 넘듯 윤유지에서 갑자기 손유지가 되었을 때에, 한동안 밤마다 물이 넘치는 욕조 안에 웅크린 채 울었었다.”(209)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나는 하나의 질문을 입 안에 물고 굶주려 죽어가는 새였‘(22)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진행이 되는데, 그런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보니, 작가의 의도대로 충돌을 피하고 사건을 자꾸만 주저앉히고 이야기를 자꾸만 무화시키는형태의 진행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끝을 맺는 법. 거기에 여러 형태의 사랑의 모습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조립해 나간다. 그래서 인물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자신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흐름이 바뀌고 구조에 변화가 오고 차이를 만들어결국은 재조정된다.(224)

 

그렇게 해서 화자가 있는 지금’(11)으로 다시 돌아와, 소설은 끝이 난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오면서 아퀴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초반에 인물들간의 관계파악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은 작가의 숨은 의도였던 것이다. 인물들간에 관계 설정을 해주느라, 퍼즐 맞추듯이 인물들간에 선을 그려가며 맞추다 보면 어느새 소설은 이야기를 마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독자로 하여금 미로를 따라 헤매며, 출구를 찾아 가게 만드는, 이게 바로 소설가의 역량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가급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223)고 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나의 느낌은 화자가 마치 처음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있었던 듯 하다. 작가가 그 화자의 인생길을 한바퀴 설명하며 이야기를 해주었음에도 그 동안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 화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애초부터 있었고, 사건은 일어났으나 일어나지 않은 듯. 그래서 작가는 훌륭하게 자기의 뜻을 이 소설로 그려내었다고 생각된다.

 

사족 하나. 사랑은 사람을 따라 여러갈래의 모습으로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진다.

화자와 오휘의 경우, 손이린과 이사경의 경우, 편사장과 해영의 사랑, 진수와 알콜 중독 유부녀, 그리고 해영과 진수의 사랑. 그렇게 사랑은 여러 갈래로 구분되고, 만들어지고, 매듭지어져 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사랑 형태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일 듯.

 

사족 또 하나. 작가는 , 말이 좋다. 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이 소설을 읽은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다. 

이상한 것은, 그가 말하는데도 침묵이 들렸다.>(24)

삶이란 사과 껍질을 가급적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76)

<혼자 보는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 곁에 있다면 같은 것을 두배로 볼 수 있는 것이다.>(97쪽)

학생들은, 하나의 음을 짚으면서, 동시에 지나간 음을 간직하고 다가올 음을 예상하며 의식을 끌어가는 두터운 현재를 연습해야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순간 속에 결합되어 멜로디로 흘러갔다.>(125)

s***h 2014.11.13.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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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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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책을 너무 너무, 과하게, 많이(같은 뜻이지만 무려 세 번의 강조할 정도로 많은 양을) 읽어대다 보니, 거의 하루에 한 권씩 혹은 하루에 서너 권 씩 마구 읽다 보니 초반 몇 페이지만 읽어도 마지막 페이지가 예상되거나, 전개될 스토리가 뻔해서 그냥 덮어버리거나, 몇 문장만 봐도 행간에 억지로 숨긴 의도가 보여 지루해지거나, 그러니까 뭘 읽어도 재미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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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책을 너무 너무, 과하게, 많이(같은 뜻이지만 무려 세 번의 강조할 정도로 많은 양을) 읽어대다 보니, 거의 하루에 한 권씩 혹은 하루에 서너 권 씩 마구 읽다 보니 초반 몇 페이지만 읽어도 마지막 페이지가 예상되거나, 전개될 스토리가 뻔해서 그냥 덮어버리거나, 몇 문장만 봐도 행간에 억지로 숨긴 의도가 보여 지루해지거나, 그러니까 뭘 읽어도 재미가 없는, 딱히 어떤 이야기도 나를 사로잡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유일한 처방전은 책에서 아예 손 놓고 시간을 보내거나, 이야기와 플롯에서 해방된 책을 만나거나, 조금 가벼워지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이번에 만난 전경린 작가의 신작은 딱 그런 상황일 때에 읽으면 너무 좋을 만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바닷가 해변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쐬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복잡한 것들 모두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작가는 이번 신작을 쓸 무렵에 세상의 온갖 이야기가 다 싫었다고 한다. 오해와 착각과 환상과 거짓과 허구와 진실의 충돌 사이에서, 타인의 이야기든 나의 이야기든 싫증 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가급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정황만 있을 뿐, 별 사건도, 갈등도 없는 그런 소설 말이다.

이린이 가끔 하던 말장난이었다. 내가 어느 날 사라지면 페루로 떠난 줄로 알아, 라고 말했다. 페루엔 왜? 라고 내가 물으면, 모르니?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할 때의 그 사과이지. 삶이란 사과 껍질을 가급적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그 사과는 페루에만 있는 거야?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매우 담백하게 흘러간다.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메인 플롯이 아니고, 어린 주인공과 선생님 사이에 벌어진 다소 외설적인 사건도 덤덤하게 지나가버린다. 이야기들이 파도에 휩쓸려 왔다가, 다시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이 작품은 작가가 시간의 무게만큼 더욱 깊어지고, 그만큼 또한 가벼워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경린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였나.. <염소를 모는 여자였으니 어느덧 이십여 년이 가까워온다. 한 작가의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다 보면 살면서 누구나 변하듯, 작품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한참 나를 매혹시켰던 것이 극중 인물들의 사랑과 열정으로 대표되는 캐릭터와 스토리였다면, 갈수록 그녀의 작품은 단순해지고, 그만큼 깊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 문장보다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단순한 문장이 더 먹먹해지는 법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진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상대의 변심은 곁으로 흘러서 지나가게 하고, 거부는 가만히 받아들이고, 비밀은 덮어놓는, 말하자면 문제를 괄호 속에 담아두고, 타자와는 가능한 부딪치지 않고, 세상과는 최소한만 연루되는 그런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인물들은 변화하고 성장하고 시간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삶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주인공 유지는 큰 고모부를 자신의 아버지로 알고 살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작은 고모가 자신의 생모라는 걸 알게 된다. 그녀가 살아온 작은 세상이 뒤틀리며 산산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생모인 이린은 끝내 유지의 생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완전한 부정처럼 느껴져서 유지는 자신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투명 인간같다고 느낀다. 하루 아침에 윤유지였다가 손유지가 되는 경험은 그녀에게 지독한 박탈감과 결락 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즈음 그녀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생물선생님인 이사경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사경은 말을 하는데도 침묵이 들리는 것 같은, 침묵의 음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물 실습실에 인체 모형도가 새로 들어온 날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그 앞에서 옷을 전부 벗고 자신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당황한 이사경은 자신의 몸으로 유지를 가리며 네가 보인다고 말해준다. 그것은 유지가 그즈음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이다. 이 사건은 곧 그의 아내와 어머니도 알게 되고,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은 오히려 유지를 손자인 연조의 피아노 교사로 집에 들이게 된다. 유지는 그렇게 노부인의 집을 다니며 피아노를 치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어간다.

그즈음 나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세상의 중력이 내게만은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았고 사람들 눈에 내가 보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설마 그럴까,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현실이었다. 작은 고모의 눈에 내가 보일 때면 흠칫 놀라곤 했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나 나갈 때 투명인간인 양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였다. 교사들이나 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크고 작은 말썽이 일어나곤 했다. 나는 아무리 놀라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라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한밤중에 내내 아파서 앓다가 아침에 응급실에 실려 갈 때도 결코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유지의 생모인 손이린과 이사경, 그리고 그의 부인 백주희, 유지의 전 연인 오휘와 이사경의 아들 연조에 이르기까지 이들 인물들의 관계는 바닷속에서 부유하는 해초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히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있지만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서로 모른 척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분위기랄까. 작품의 시작 즈음에 노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여자의 진짜 능력이란, 제 남자를 알아보는 거란다." 라고, 그리고 "남자란 세상의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 하지만 자기를 알아보고 계산 없이 인생을 내놓는 여자를 만나면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몽땅 주지. 거기에 제 생명을 쏟는 거다. 그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비밀 논리야." 라고.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처럼 들판을 떠돌다가 덧없이 세상 밖으로 사라진다고. 이렇게 무섭고도 슬프게 정확한 진리가 있을까. 서로의 짝을 만나지 못한 남자와 여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말은 어쩌면 그 동안의 전경린 작가의 작품들을 일맥상통하는 키워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주인공들에겐 항상 사랑이 세상 전부이니 말이다. 나는 '사랑을 한 후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 매혹을 느낀다. 사랑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거라는 걸 동감하니깐. 사랑의 끝은 누군가의 삶을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옮겨놓을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니까. 그러니 우리는 정신 반짝 차리고 사랑을 해야 한다. 대신 삶은 바다에서 물결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어떨까.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라는 말처럼, 어떤 사건이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그것이 지나가버린 뒤의 일이니 말이다.

 

r*******n 2014.11.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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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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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간만에 전경린 작가의 책을 읽었다. 너무나 덤덤하고 서늘하게 그려내는 주인공 유지의 모습에 아~ 상처도 너무 깊으면 모든 것을 초월해 한 없이 담담해질 수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어느 순간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 충격이야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윤유지에서 한 순간 손유지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어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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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간만에 전경린 작가의 책을 읽었다. 너무나 덤덤하고 서늘하게 그려내는 주인공 유지의 모습에 아~ 상처도 너무 깊으면 모든 것을 초월해 한 없이 담담해질 수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어느 순간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 충격이야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윤유지에서 한 순간 손유지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어린 초등학생의 눈으로 어른들의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이해를 넘어 받아들이기 힘들다.

 

과묵하지만 좋은 아버지였던 큰 고모부의 갑작스런 죽음도 충격이지만 약사인 작은 고모가 자신의 생모란 사실이 더 충격으로 다가 온 유지... 자신의 생부는 그림을 그리는 생물선생님이다. 유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본능이 생물선생님이 생부라고 말하고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객기 아닌 객기를 부리며 선생님 앞에서 아니 아버지 앞에서 옷을 벗는다. 이로 인해 선생님의 어머님... 노부인의 호출을 받게 되고 소문을 가라앉힌다는 이유를 들어 선생님의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부인의 집에 주말마다 가게 된다.

 

유지를 둘러싼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생모인 작은 고모와 생부인 생물선생님.. 그리고 그의 아내, 두 사람의 아들 연조, 환, 죽은 노부인, 여기에 해변카페를 운영하는 편사장과 팜므  파탈의 직설적인 나쁜 여자 해영, 그리고 젊은 남자와 그를 찾는 여자, 유지와  같이 유학가고 싶었던 과거의 남자 오휘까지... 어느 한 사람도 상처를 갖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린 환까지도 그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처를 잊기 위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유지의 생부는 과거의 커다란 상처가 그를 평생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온다. 평범할 수 있는 생활이 어긋나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담담하고 쓸쓸하게 다가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사랑을 왜 하고 또 하느냐고요" 허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외에 무엇이 있지요" 먹는 것, 입는 것, 꿈도 없는 수면, 걷기, 살랑이는 바람, 햇살, 온갖 향기, 미소, 하지만 타인의 살갗을 파고드는 사랑보다 더 강렬한 행복감은 없어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 중독자이지요. 하지만 그 동작이야말로 삶에서 최고가 아닌가요? 그 외엔 아무리 미화해도 일과 온갖 관계와 생활이란, 그저 인생의 노동일 뿐이니까요."       -p187-

 

근사한 말로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는 편사장의 솔직함이 부러우면서도 불편하다. 아마 그의 말속에 우리 역시 같은 모습의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아침마다 밤새 해변에 쏟아내는 쓰레기는 사랑을 하고 잃어버리는 우리들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해변빌라, 피아노호텔, 해변카페, 바닷가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듯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누구보다 치열하지만 의연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아픔이 더 잘 전해져 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삶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는 담담하지만 아프게 그려낸 전경린 작가의 신작 '해변 빌라' 마음에 든다. 

q******5 2014.11.14.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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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빌라/전경린/자음과모음]부유물처럼 해변에 떠밀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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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빌라/전경린/자음과모음]부유물처럼 해변에 떠밀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엔 이런 삶도 있나보다. 소설 같은 세상이니까. 무심한 관계, 시크한 관계이면서도 끈질기게 얽혀 있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던가. 소설을 읽으면서 관계 파악에 몰입하기는 생전 처음이다. 무슨 미스터리도 아닌데, 인물 관계를 도식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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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빌라/전경린/자음과모음]부유물처럼 해변에 떠밀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엔 이런 삶도 있나보다. 소설 같은 세상이니까. 무심한 관계, 시크한 관계이면서도 끈질기게 얽혀 있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던가. 소설을 읽으면서 관계 파악에 몰입하기는 생전 처음이다. 무슨 미스터리도 아닌데, 인물 관계를 도식화해야 한다. 외면적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론 꽤나 복잡한 인물 관계다.

    

여자의 진짜 능력이란, 제 남자를 알아보는 거란다.

(중략) 남자란 세상의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 하지만 자기를 알아보고 계산 없이 인생을 내놓는 여자를 만나면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몽땅 주지. 거기에 제 생명을 쏟는 거다. 그게 남자와 여자의 비밀 논리야. (책에서)

 

주인공은 부모 없이 자라다가 어느 날 윤유지에서 손유지로 바뀌게 된다. 작은 고모 손이린이 자신의 생모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고모가 사는 바닷가의 해변빌라로 이사하게 된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는 또 누구일까. 유지는 늘 아빠의 존재가 궁금하지만 그 누구도 아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유지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늘 피아노를 치며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그녀는 아버지 부재에 대한 갈망에서 중년 남자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생물 선생님인 이사경이 눈에 들어온다. 늘 자신을 관찰하며 무심한 듯 말을 건네던 선생님이었기에.

 

어느 날, 생물실에서 새로 들여온 신체 모형을 구경하다가 모형 앞에서 벌거벗고 서게 된다. 이 일로 교사인 이사형과 추문에 휘말리고 급기야 이사형의 어머니인 노부인의 호출을 받게 된다.

 

네 나이에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말, 차라리 적게 치고 많이 들으라는 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치라는 말, 중요한 것은 네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말 등을 듣게 된다. 그리고 괴이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노부인 집에 와서 피아노를 배우라는 말을 듣게 된다.

 

노부인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 이사경 선생님과 고모이자 생모인 손이린의 사이를 간파하지만 그저 속으로 삼킬 뿐이다. 사경 선생님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은 무엇일까. 이사경은 유지의 생부일까. 사경의 몸이 불편해진 시점에서 사경의 처로부터 사경과 이린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고......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이 멈추었다는 것이다.(책에서)

 

타인의 눈엔 제멋대로이거나 당찬 아이, 누구도 닳을 수 없는 아이, 중심에 고독을 담고 있는 아이, 그래서 때로는 제법 어른스런 소녀의 이야기가 무덤덤한 속에서 슬픔을 자아낸.

 

생모를 사랑하는 이사경 선생님, 그런 사경에게 끌리는 유지, 사경의 아들인 연조와의 관계, 오랜 연인 오휘와의 이별과 만남의 반복, 이사경의 아들인 연조와의 관계, 해변의 소박한 가게들, 부유물처럼 해변에 떠밀려오는 사람들......

 

아빠라는 근원에 대한 무지가 그녀를 투명인간 같은 삶으로 이끌었을까. 투명인간처럼 행하는 시크한 아이의 성장 이야기다. 태생적인 슬픔을 지닌, 태생의 존재를 들은 적 없는 아이의 무덤덤한 외로움이 더욱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파도를 통해 전해지는 바다 소리, 피아노 음률이 들리는 소설이다.

피아노에 대한 몰입으로 사랑의 허기를 채우거나 바닷가 산책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모든 만남은 바닷가에서 이뤄지고 모든 헤어짐도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바닷가 옆에 있는 카페 해변의 가능성처럼, 소설에서는 사랑도 이별도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세상이다.

 

매사가 기회의 여신이 주는 운이 필요한 법이다. 매사에 밀물과 썰물처럼 때가 맞아야 되는 법이다. 그리고 관계는 언제나 조금씩 변해간다. 삶이 원래 그런 거다. 그런 생각이 든다.


a******7 2014.11.1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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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해변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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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듯 모를 듯, 때론 누군가를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마치 가끔 아무 일 없는데, 그저 마냥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것처럼. 바다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자기 혼자 무심히 왔다 갔다 파도를 보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평안해진다. 때론 쓸쓸해질지라도.     전경린의 <해변빌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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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듯 모를 듯, 때론 누군가를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마치 가끔 아무 일 없는데, 그저 마냥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것처럼. 바다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자기 혼자 무심히 왔다 갔다 파도를 보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평안해진다. 때론 쓸쓸해질지라도.

 

  전경린의 <해변빌라>를 읽으면서 나는 사실 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고심했다. 작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분명 무심한 듯 시크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런데 그들의 삶은 아무도 평범치 않다. 굉장히 묘하고 그래서 어쩌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아버지인 줄로만 알고 지냈던 사람은 자신의 고모부였고, 작은 고모라고 알고 지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어버린 상황. 소녀는 그렇게 아버지 없이, 그렇다고 어머니가 생기지도 않은 상황에서 부유한다. 그래서 그녀는 중년 남자들만 보면 혹 아버지는 아닐까 힐끔거리게 되고, 어쩌면 생물 선생님이었던 이사경을 아버지로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해할 수 없는 사랑, 그러나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그들. 나는 소설 속의 그 누구의 삶에도 공감하지 못했지만, 소설만큼은 이상하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쓸쓸해지고, 우울해지고, 그런데 그냥 무심해진다. 그것이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어쩌면 받아들인 것일까. 누구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서도 삶은 그저 흘러간다. 누구도 필요치 않은 것처럼 굴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이들과 연관돼 있다. 그렇게 우리는 흘러가지는 걸까... 때론 해야 할 말을 괄호 안에 가두어놓고? 그렇게 가만히 흘러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변화한다. 그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해변빌라>의 모든 이들 역시도.

 

 

 

k*****u 2014.11.18.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바다는 모든 것을 안고 있다, 해변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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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전경린 작가의 이름은 너무도 친숙하리만큼 들어왔지만 실제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그녀의 작품을 첫 번째 조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해변빌라>를 통해 바라본 감상평을 짧게 끄적여 본다면 읽다 보면 무언가 뜬구름을 잡듯 확고한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바다는 모든 것을 안고 있다, 해변빌라" 내용보기

아르's Review

전경린 작가의 이름은 너무도 친숙하리만큼 들어왔지만 실제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그녀의 작품을 첫 번째 조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해변빌라를 통해 바라본 감상평을 짧게 끄적여 본다면 읽다 보면 무언가 뜬구름을 잡듯 확고한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책을 넘기게 하는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A B, 라는 확고한 명제는 아니지만은 에둘러 가는 그 길마저도 싱그럽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멍해지면서도 또 어느 순간 또렷하게 각인되기에 신비로움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할 때의 그 사과이지. 삶이란 사과 껍질을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그 사과는 페루에만 있는거야?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본문

해삼을 찾으러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해삼에 대한 상념은 유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회귀되는데 과연 이러한 생각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명의 독자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상상력에 무한함에 다시금 외경심을 갖게 된다.

어찌되었건 다시 소설로 돌아와 아버지인줄 알았던 이는 그저 고모부일 뿐이고 작은 고모라고 생각했던 이가 실은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녀는 담담하다. 자신의 생모에 대한 진실보다는 고모부가 자신의 생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고모부가 생을 마감한 순간보다 그가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에서 상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생부에 대해서 이린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지만 유지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보여요?’라는 그녀의 질문 안에서 존재하지만 실제 세상에 섞이지 못한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문을 향한 물음을 내던지는 셈인데 그 순간 이사경 앞에서 나체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타인이, 그러니까 중년의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가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서였을까. 물론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도 없는 고민을 해보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해석한 바로는 그녀의 존재를 타인에게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일으킨 충동적인 행도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녀와 이사경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되고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을 마주하게 되는데 주말마다 노부인의 집을 방문해 피아노를 치며 유지는 그들과의 관계도 점점 쌓이게 된다. 손이린과 이사경 사이의 관계 정리를 위한 교가로 유지를 이용하고 있는 노부인이지만 유지는 그 시간 속에서 과연 이사경의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만이 점점 커져갈 뿐이다.

갑작스레 떠나버린 이린과 남겨진 유지와 해변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노부인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은 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연조는 이혼을 했고 어느 날 동네에 나타났던 연인은 세상을 등지고 카페의 주인인 편사장은 또 나름의 사랑을 그리고 있었으며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이제 다른 이와 결혼한 오휘까지 다시 돌아오면서 모든 것을 머금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할 것만 같은 이 마을은 나름대로의 생기를 가지고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한 후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모터바이크가 알래스카의 해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처음 시작한 지점에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랑이야. 어느 물리학자가 그랬지. 사랑의 법칙은 푸앵카레의 비가역적 에너지론에 지배를 받는 다고.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살아의 끝은 생각지 않은 고으로 삶을 옮겨 놓을 수 있다는 의미야. –본문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처음과 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경린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떠오르는 것들을 들려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확고한 틀을 가지고서 들려주는 것들이 아니기에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스타카토처럼 순간순간을 들려주고 있지만 그 순간들을 또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지게 된다.

해변에 써 놓은 글자처럼, 순간들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기는 하나 파도 속에 다시금 사그라드는 현실처럼 유지를 비롯해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듯 하면서도 또 금새 고요히 자리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은 파도 속에 묻어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답답하거나 풀리지 않은 궁금증에 원망이 들기 보단 오히려 이 문장 하나하나를 스쳐지나 갈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아마 이것이 전경린 작가의 마력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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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 김혜진저

 

독서 기간 : 2014.11.18~11.20

by 아르

p********1 2014.11.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