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읽지는 않았으나 박종현님 역주는 이미 알고 있으니 걱정안하고 무엇보다 이무리 새책이라도 어디찍혀있거나 하는 일이 있는데 이번 책 상태는 완벽에 가깝네요 정말 기분좋았습니다 받자마자 비닐에 입혔습니다 그럼 열심히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
| 소크라테스의 저서는 시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플라톤의 다수의 저작, 크세노폰,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저작을 통해서만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저작을 남기지 않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전해 듣는데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귀감이 되고 있는 그의 비범함과 통찰력에 감탄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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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전이다. 올바르게 살자고 한다. 삶에 대한 진실한 자세가 전편에 흐르며, 많은 지혜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들어있다.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으니 장점 못지 않은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대중을 등에 업고 무도한 행동을 하고, 자신의 이해에 몰두한 언론은 자유를 방패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글을 쏟아낸다. 플라톤이 살았던 2000년 전 민주정체의 모습도 지금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요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지하게 이상사회를 논한 그의 글에서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플라톤은 ‘올바로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한다. 진리를 보고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자고 한다. 지혜는 교육과 수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지혜로운 자가 다스리는 국가가 이상적이다. 현실에는 4가지 유형의 부조리한 정체가 있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불멸과 보편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서술한다. 그의 주장에서 올바름과 교육에 대한 부분은 되새길 만하고, 부조리한 현실의 정체에 관한 부분은 익혀둘 만하고, 이상사회로 제시한 공동체 부분은 비판적으로 음미할 만하다.
주요한 내용이다. 현실에 올바르지 못함이 있고, 우리 마음이 올바르지 않고자 할 때도 있지만,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인간은 올바른 삶을 통해서 한 단계 높은 광명에 도달할 수 있다. 현실의 부조리와 인간의 부족함에 눈멀지 말고, 아름다운 영혼이 이룰 수 있는 경지를 추구해야 한다. 최상의 인간은 지혜로운 자로 삶의 이치를 알고 즐긴다. 이들이 통치하는 이상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본분을 행하며 조화롭게 산다. 사람들에게 시가, 음악, 체육을 익히게 하고, 우수한 자에게는 변론과 지혜를 가르친다. 이상에서 멀어진 현실의 모습은 명예지향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 참주정체로 나타난다. 또한, 이에 상응하는 부족한 인간들의 모습이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확신을 갖기 어렵다. 못된 놈이나 착한 척하는 놈이 잘 사는 경우가 많고, 누구나 이익 앞에서 흔들린다. 몸을 보이지 않게 해주는 구슬 앞에서 탈선을 생각하지 않을 자는 없다. 올바르게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결과가 좋기에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니, 올바름 자체를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는 빛을 보지 못하고 동굴 속에 사는 어리석은 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지혜에 눈 뜨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높은 경지의 삶을 알게 되면 누구나 올바른 삶을 추구하게 된다. 지혜를 얻어 광명을 본 자는 인생의 굴곡에 흔들리지 않는다. 올바름은 어떤 모습인가? 올바른 상태, 아름다운 상태, 원하는 상태이다. 올바른 인간은 지혜로 욕망과 격정을 조절한다. 최상의 인간은 和 德 勇 知 節制를 지니고 영혼이 평안하다. 올바른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 소질에 따른 직분을 수행하고 화평하게 산다. 지혜로운 자가 수호자가 되어 지혜가 부족한 자들의 욕망과 격정을 조절한다. 지혜를 가진 부류가 통치하고, 용기있는 부류가 보조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부류는 절제하며 지혜로운 자들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올바름에 어떻게 도달하는가? 교육과 수양이다. 시가, 음악, 체육을 가르쳐 지혜, 성정, 신체를 계발한다. 교육은 바른 내용으로 해야 한다. 시가에 신이 나쁜 짓을 한다는 것과 같은 혼란스러운 내용이 없어야 하고, 음악은 음일하지 않고 강건해야 한다. 자질이 우수한 사람들에게 추상적인 산술과 기하 등을 가르치고, 이들 중에서 선별된 자에게 변론을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일을 맡아 수행하게 하여 경륜을 쌓게 하면 지혜로운 자가 생겨난다. 올바름을 알게 해주는 지혜란 어떤 것인가? 빛처럼 밝은 것으로, 동굴 속에 갇힌 자는 그림자만 볼 뿐이고, 처음 대하는 자는 눈부심에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빛처럼 존재하고 삶에 보편적으로 흐른다. 변화가 아니라 존재를 아는 자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모습은? 명예지향ㆍ과두ㆍ민주ㆍ참주정체 등 네가지 유형이다. 명예지향정체, 한편에서는 명예를 다른 한편에서는 이익을 추구한다. 과두정체,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로 빈곤층이 많다. 민주정체, 자유와 방종으로 무질서가 넘친다. 참주정체, 독재자 아래에서 노예처럼 사는 참혹한 곳이다.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 또한, 이 네가지 정체에 상응한다. 명예지향형 인간, 잘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의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인간으로 지혜를 갖지 못하고 올바름과 욕망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과두정체형 인간, 명예를 추구하다 재산과 인생을 허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인간으로 재산에만 관심이 있다. 민주정체형 인간,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인색한 환경에서 자란 인간이 온갖 쾌락을 제공하는 영리한 짐승들과 만나서 생기는데, 올바름을 알지 못하고 방종한다. 잠주정체적 인간, 욕망에 몸을 맡긴 자가 부끄러움과 분별에서 풀려나고 해방될 때 생겨나, 거짓을 일삼으며 타인을 속이고 억압한다.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지혜를 즐길 뿐 사사로운 욕망이 없는 통치자가 다스린다. 통치자들은 공동체로 살며 배우자나 자기 자식도 가지지 않으니, 私가 없고 公 만 있다. 이들은 지혜 속에 자유롭게 거닐다가 통치할 의무를 져야 할 때를 맞이하여 나아가서 일한다. 욕망에 휘둘리는 나머지 부류들은 이들의 통치를 받아 자신의 욕망을 따르면서도 조화로운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혼은? 신화로서 답을 대신한다. 영혼은 불멸하고 윤회한다. 죽은 영혼들이 모이는 곳이 있고, 그 곳에서 각자 다음 생의 모습을 선택한다. 망각의 강을 건너 모든 기억을 지우고, 단지 영혼의 자질만 유지한 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간다. 과거의 내가 현생의 환경을 결정하고 과거의 성정이 현생의 모태가 된다.
무지와 오만이 공론의 장에서 꺼리낌 없이 행해지는 현실 속에서, ‘국가’를 읽으며 느낀 바이다. 올바른 삶을 지향점으로 가져야 한다. 올바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궤변에 휘둘리면 사회가 뿌리채 흔들린다. 플라톤이 이 책 내내 올바름의 당위성을 설파한 것은 올바름에 대한 지향이 없이는 좋은 세상을 위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바름을 믿지 않는데 좋은 세상을 위한 논의가 가능하겠는가. 인간은 악하기도 하고 사회는 부조리하기도 하기에, 올바름을 추구하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플라톤은 올바름이라는 당위가 궤변이 횡행하는 현실 속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고자 논변을 펼쳤다. 당위를 논설하기에 이야기가 길고 긴 길을 돌아오며 논리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올바름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아 준다. 올바르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속삭임을 넘어 공론으로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하고. 모두 나쁘다는 식의 선동에 넘어가 올바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나쁜 놈이 잘 산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떨치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우리 편이면 좋다고 하는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위를 애써 설명해야 하는 시대를 산 고대 철학자의 모습이 고달프고, 그의 글을 읽으며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우리도 힘겹다. 플라톤이 묘사한 정체와 인간상이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존재한다. 그의 안목에 감탄한다. 유교적 문화권에서 명예를 지향하면서도 돈을 숭상했던 사회가 돈만을 아는 사회로 변화하였고, 권위적 정권을 무너뜨린 자유에 대한 갈망이 정도를 지나치니 혼란스러운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했고, 이 틈 바구니 속에 양심이 없고 궤변을 일삼는 자들이 대중을 호도하여 권력에 가까이 가니 참주정체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혜도 없고 이루어놓은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자가 오직 대중에 아부하고 돈과 권력을 탐하는 부나방들을 밑천 삼아 참주가 되고자 한다. 이 시대의 불량한 자들 역시 플라톤의 인간상에 나타난다. 젊어서 정의만 외치다 지식을 배우지 못한 자들이, 온갖 쾌락을 제공하는 자들을 만나 부와 향락을 맛보고, 부끄러움과 분별을 잊어버리고 거짓을 일삼으며 부패의 나락에 빠진다. 실패한 부모 아래서, 가정과 학교에서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타인에 대한 반감만 키우던 자가 우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자그마한 권력을 얻고, 그 이후로 온갖 수단으로 사익를 챙기며 부정을 저지른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가진 어리석은 자 주변에 부정한 일에 능한 자들이 모여 함께하니, 선동과 방종에 거침이 없다. 방종을 멈추고 최소한의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거짓된 자가 참주가 되어 백성들을 억압할 것이며, 이들 또한 다른 참주에 의해 쫓겨나는 비극이 반복될 것이다. 방종 속에 인생의 평화를 얻지 못한 자들을 제어해야 한다. 교육와 수행을 통해 능력과 위의와 예의를 갖추어 올바른 삶으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의 줄기를 가져야 하고 글의 핵심을 보아야 한다. 논변의 말꼬리만 따라다니면 대의를 놓치기 쉽다. 논변은 양면적이라 반론이 존재하기에 한꺼번에 많은 논변을 만나면 혼란에 빠진다. 이 책 또한 수 많은 논변을 포함하고 있어 길을 잃기 쉽다. 그런데, 논변은 뜻을 전하는 방편일 뿐이니,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후에, 자신의 시각에서 보면 족하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에는 논변의 세부적인 부분을 보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자주 주춤거렸다. 하지만 글의 줄기를 파악하고 ‘이런 말을 하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관점에서 보니 술술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저자의 부모도 자식도 없는 공동체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의 고뇌를 이해한 후에는 읽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젊어서 용감하며 희생정신에 넘치던 아름다운 영혼들이 나이가 들면서 욕망의 덫에 걸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을 수 없이 본다. 또, 지혜를 자랑하던 자들이 욕망을 참지 못하고 뒤에서 나쁜 일을 행하는 것도 수 없이 본다. 욕망에 따른 타락을 절대적으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플라톤은 사적인 것을 없애 욕망의 뿌리를 없애는 일을 생각한 것이다. 자식과 아내가 있으면 남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고 그들에게 더 잘해 줄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사익을 없애기 위해서 자기자식도 아내도 없는 세상을 그려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를 제시하고도 적극 옹호하지 못한 것은 플라톤도 자신의 주장이 과함을 알았던 것이다. 극단적인 비난을 삼가해야 한다. 플라톤을 전체주의자라로 비난하는 글을 자주 본다. 이들 중에는 자신을 뽐내고 싶은 어리석은 자들이 많지만, 자유를 진심으로 주장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국가’ 어디에서도 자유를 억압하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없다. 플라톤이 전체주의자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가 교육과 질서를 강조하고 소질에 따른 삶을 이야기하고, 철인의 지배를 말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자유를 주장한다고 방종과 폭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듯, 질서를 주장한다고 파시즘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질서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플라톤이 산 시대의 과제를 보면 그의 질서에 대한 강조를 이해해할 수 있다. 자유가 방종으로 흘러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고, 어리석은 자가 통치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도 못할 일을 좇으며 인생을 낭비하고 소란을 피우니, 질서와 소명에 따른 삶을 이야기했다. 무질서와 욕망의 향연을 보며 질서 있는 공동체를 꿈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