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디스크는 지금 보듯이 '청황색 말을 보라'라고 제목이 달려 있으나 예스에서 취급하는 다른 상품을 보면 '비루먹은 말을 보라'라고 된 것도 있다. 원제는 'Behold a pale horse'인데, 상태가 좋지 않은 말 따위가 포인트가 아니라 신약 아포칼립스(묵시록 계시록 같은 표기 분별에 신경쓰기 싫어 이렇게 그냥 적으니 양해 바람)에 나오는 구절이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 작품인데 올드팬들 중 이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TV에서 '소년의 기도'라는 제목을 달아 방영). 물론 이들 중 대부분은, 그냥 거물 배우들이 출연한 전쟁물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아마 극장 개봉을 하지 않은 듯하고, 일본에서는 '일요일에 쥐 죽이기'라는 소설 원제를 그대로 따와 제목으로 걸었다.
저 구절은 예컨대 내가 지난 2017년 10월 13일에 올린 <석양의 복수> 리뷰에서, (그 영화가 아니라) <툼스톤> 중에 나온 한 대사를 두고 언급한 적도 있다. 서부극에서 이 구절이 묘한 맥락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꽤 잦은데 다음에 따로 포스트를 만들어 분석해 보겠다.
누구라도 흥미를 가질 만한 스토리라인이었다. 그레고리 펙이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 측 가담자로 나오고, 내전은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으니 이런 이들은 반정부분자, 수배범으로 찍혀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문예에서야 공화군 측은 정의롭게 패배한 순교자 포지션이지만, 이 영화가 제작될 무렵은 아직도 프랑코가 살아서 스페인을 독재로 다스리던 1964년이다. 헤밍웨이, 오웰 등도 다 동시대인이었지만 이런 직접 참여자들과, 이처럼 종전 후 30여년 가까이가 흐른 시점, 또 프랑코가 노숙한 통치를 이어가던 시점에서 스페인 내전의 잔영이 어떻게 조명되는지를 지켜보는 건 또다른 포인트가 있다.
원작자인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경우 문인이기도 하지만 영화인으로서의 경력도 뚜렷한데, 헝가리 봉건 체제가 무너지고 대거 영국으로 망명해 온 이들, 혹은 1차 대전 종전 후 부쩍 늘어난 반 유대감정 때문에 살기 힘들어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 등 '헝가리안 디아스포라'의 흔적도 아주 뚜렷하다. 여튼 영화 제작에는 이 사람이 가담하지 않았고, 원작자의 실제 생을 다분히 반영하듯 소설에는 파시즘에 맞서 자유를 추구한 영원한 리버럴의 혼이 선명히 스며 있다. 반면 이 각색 영화는 꼭 그렇다기보다, 인연이 복잡하게 꼬여든 각 개인의 감정과 극적인 사연 진행에 더 초점을 두었다. 그러니 배경 지식 없이 극을 관람한 이들은 다 저 나름의 관점에서 빛깔 짙은 탈역사의 드라마로 받아들이지 않았겠는가.
펙과 퀸은 여러 고전에서 자주 호흡을 맞췄으며, 이 작품은 오마 샤리프까지 거들었다는 게 놀라운데 기획 측이 처음에 단단히 기대를 걸었음이 역력히 드러난다. 펙과 샤리프가 공연(共演)한 영화는 <마켄냐의 황금>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