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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하기’와 ‘역사쓰기’ -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읽고 -
처음 일제시대를 실제로 경험한 외할머니께 여쭈면 그 당시의 ‘이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 놀라운 점은 나쁜 기억만큼이나 좋은(?) 기억들도 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일본순사가 길거리에서 먹을 거리들을 많이 주었다는 것. 나는 순간 혼돈을 경험한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민중’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나라의 주인이 누가 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착취를 당해 피폐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래 못살게 구는 나라, 길거리에서 먹을 거라도 주는 주체를 더 좋아한들 애국심이 없다 비판할 자 있을까. 이쯤 되면 식민사관이 꽤나 그럴사 하다. 평범한 소녀로, 혹은 아이로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할머니의 기억아닌가? 역사학자 박정신은 ‘역사하기’를 넘어선 ‘역사쓰기’를 강조한다. 요약하면 역사하기에는 어떤 ‘의도-대부분은 편향적인-’가 숨어있다. 역사쓰기는 있는 그대로의 자료와 분석과 설명, 그리고 해석을 담는다. 그는 “역사학자는 역사하기의 만용을 자제하고 억제하며 역사쓰기에 사로잡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제의 역사나 어제의 사람들에 대한 평가나 재판은 역사학자들의 권리가 아니라, 그 글을 읽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몫이란다. 이태진의 『고종시대의 재조명』은 역사쓰기로의 회기일까? 아니면 또 다른 역사하기에 불과한 것일까?
고종시대, 그 암울의 상징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은 재조명에 관한 이야기다. 재조명이라 함은 기존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시야로 해석을 끌어내는 것일 게다. 그 주제는 다름아닌 고종시대다. ‘고종’이 아닌 ‘고종시대’다. 고종의 시대사는 개항에서 광무개혁까지로 본다. 개항은 무력에 의한 굴욕이요, 광무개혁은 이름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멸망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 시대는 우리 시대를 스스로 일으킬 수 없었던 역사로 보게끔 유도한다. 이어서 36년간 지속된 식민지 시대는, 그러한 역사인식을 더욱 뿌리깊게 의식시킨다. 저자 이태진은 이러한 인식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대한제국은 무능, 무력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광무개혁이 뜻밖의 효력을 발생시키자, 이를 파악한 일본이 러일전쟁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권을 강제로 침탈했다는 것이다. 광무개혁을 본 일본은 이를 더 방치하면 한반도를 장악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는 광무개혁의 기본정신은 1880년대의 군주중심의 동도서기론 개화정책을 재현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독립협회 의회개설운동의 대일의존성과 그 실패, 그리고 이와 대조를 이루는 광무개혁의 성공은 곧 이 시대의 개화, 근대화의 진정한 길이 무엇이었던가를 바로 말해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패-결정론적’인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고종시대가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광무개혁에 희망을 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기간을 살았을 사람들에게 그 역사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듯이 초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들면, 친일성을 그대로 표방한 여러 잡지들의 글들은 우리 스스로의 자발적 성찰이 아닌 대한제국의 자주성을 꺾으려는 일본의 의도를 반영하는데 학자들은 오히려 일본의 공작에 함몰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고종시대의 재조명은, 실패의 연속, 무능함의 극치를 상징하는 그 암울한 시기에 가려져, 미쳐 못보고 있던 사실(fact)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여전히 그 시기에 함몰된 채 왜곡을 살아가는 학자들과, 대중들의 인식을 바로잡는 작업이다.
‘참값’에 근거한 편견과 오류 비판 제1부는 편견과 오류 비판에 대해서 지적한다. 고종황제의 암약설(暗弱設) 비판에서부터 1894년 6월 청군 자진적 출병설 비판에 이르기까지 기존 연구의 편견과 오류에 대한 재조명에 이른다. 특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정부의 자진 청병설은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청병은 조선정부측이 아니라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 위안스카이측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1894년 5월 22일부터 조선정부와 위안스카이 측의 동태를 자세하게 파악해 본국 외무성에 보고한 일본공사관측의 탐문보고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는 역사왜곡의 주체, 일본의 기록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근거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일본측은 위안스카이의 청병 강요 과정을 낱낱이 탐문했다. 그에 근거한 논지는, 곧 사실(fact)의 재발견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러한 청병 과정의 진상이 최종 결정자로서의 국왕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하기’의 유혹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국왕이 처음부터 반농민적 입장에서, 또 두려움에 못 이겨 무책임하게 스스로 청병한 것은 결코 아니란 점이다. 전주화약은 일본과 청 양국의 출병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는 부족하나마 조선정부와 농민군의 ‘합의’를 의미한다. 그래서 청국 리훙장측에서도 공동철수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청국과의 일전을 각오한 일본은 조선에 계속 머물 수 있는 명분을 찾아 조선의 내정개혁대책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개혁안에서도 조선정부는 농민군과의 합의를 저버리지 않앗다. ‘전주화약’에서의 합의를 지켰다. 끝까지 고집을 부린 고종에 의해서, 위안스카이 내정갑선 체제도 끝나게 된 것이다. 편견과 오류의 비판은 자의적으로 ‘역사하기’를 위한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가장 근접한 자료를 재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근대화의 현장, 의욕과 현실 사이 이태진은 이어 근대화의 현장 곳곳을 들여다 본다. 1부가 오류와 편견에 대한 실증적 비판이었다면, 2부는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관찰을 통해 재조명이다. ‘대한제국의 서울 황성(皇城) 만들기’는 흥미롭다. 저자는 최초의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으로 대한제국의 황성 만들기를 들여다 본다. 그런데 이 ‘들여다 봄’은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는 않지만, 그 관찰만으로 식민사관과 충돌한다.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으로 가장 잘 알려진 논리, 식민지가 근대화와 개발의 초석을 다졌다는 근거가 뒤집히는 현장이다. 최초의 근대적 황성 만들기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도로 및 하천의 정비, 새로운 중심 건축물 축조, 새로운 공원 조성, 전기와 수도 등의 새로운 문명의 도입이다. 저자는 이러한 1896년 아관파천 후에 시작된 서울 도시개조사업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으로 민족사적으로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주장하고 입증한다. 이러한 역사적 의의가 일본에 의해서 왜곡된 것이다. 한국을 강제합병한 일본은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고종시대사에 대한 부정적인 작업을 서둘렀다. 고종시대는 '민왕후'와 대원군의 싸움으로 뒤덮인다. 고종은 왕비와 아버지 사이에서 어쩔줄 모르는 무능한 군주로 그려지고,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치적들은 개화파나 독립협회가 한 것으로 왜곡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통감부와 통독부는 도시개발사업의 성과를 변조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맺음말에 주장되는 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1896년 이래 대한제국 황성 만들기로서의 서울개조사업은 일본의 이러한 파괴공작 속에 잊혀져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잊기에는 그 사업의 의욕과 의도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명확한 만큼, 한계도 지니고 있다. ‘의욕과 의도’의 영역에 한정되는 주장이라는 것. 당시 대한제국의 재정상황이 도시계획을 의욕과 의도만으로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관점을 되돌리기 위해서, 반대쪽을 참값 이상으로 의미부여 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왜곡, ‘역사하기’의 유혹으로부터 쉽게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맺음 고종시대의 재조명은 역사하기와 역사쓰기의 기로에 서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과거의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밝혀, 지금의 삶을 더욱 성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사건들이 어떤 ‘역사하기’ 운동에 의해서 왜곡되어 있다면, 이를 다시 역사쓰기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것이 역사학자의 사명인 것이다. 저자 이태진은 바로 그런 작업에 손을 대면서 하기와 쓰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감행한다. 당시 상황을 가장 근접하게 밝혀주는 자료에 근거하여, 음지에 가려져 있던 고종시대에 대해서 재조명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지나친 목적의식은 음지를 가리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량이 부족했다는 근본적인 폐인이, 그 의지와 정신만으로 가려질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둘을 병렬구조로 놓고, 판단은 일반 대중들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듯 보인다. 그렇게(의도한 것 처럼) 보고 싶은, 욕망을 제거한 역사쓰기로 말이다. 어찌됐건, 지금까지 오랜시간을 ‘그랬으면 하는 사람들’의 의도적인 역사하기(운동)를 통해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암울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재조명의 빛줄기가 오늘날 우리의 역사쓰기를 돕는 것만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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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듣고 본 것이 모두 다 옳고 맞을 거라는 가정하에 살아가게 마련이다. 특히나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번 고정되고 고착화 되면 좀처럼 비틀어 바꾸기가 힘들다. 고종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리라. 강한 명성황후와 엄한 아비 대원군 사이에서 갈등하다 제 역할을 못하고 스러져 간 허약한 군주, 그 언저리 쯤에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꽂힐 듯하다. 역사를 배웠다는 나는 그러했으니 말이다. 사실(史實)은 다면체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세상은 둥글며 그 안에 사는 우리의 모습도 다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또한 깨닫는다. 그 동안의 고종에 대한 편견과 오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인용문에서 고종황제가 총명한 자질을 타고났다고 한 것은 이전의 다른 책에서 영매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일치한다. 그리고 고종이 군주로서 신하를 조종하고 인심을 수렴하고, 새로운 제도 문물을 살피는 데서는 역대 어느 왕보다 뛰어 났다고 한 것은 앞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