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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장이 출신 존 번연의 <거룩한 전쟁>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처럼 “의인화” 기법을 활용하여 치열한 신앙의 세계를 묘사한다. <천로역정>이 “길” 위의 싸움을 그려냈다면, <거룩한 전쟁>은 “전쟁”의 길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천로역정>의 디아볼로스가 다시 나타난다. 그에 맞서는 인간의 영혼은 ‘맨소울Man-Soul’이라는 요새의 모습이다.
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 몇 군데를 짚어 본다. [1] 천진무구한 평화를 누리고 있던 맨소울의 성문을 열게 만든 디아볼로스 일당의 책략은 “샤다이 왕”(성부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맨소울 주민의 마음을 “자유”와 “행복”라는 열쇠로 여는 것이다. 아름다운 언어는 악한 세력에게 이용될 때 마성적인 것이 되며 더욱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2] “자유의지 경”은 디아볼로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를 뼈아픈 회개로 만회한 후부터는 악한 힘에 저항하는 데 가장 유능한 용사가 된다. [3] 디아볼로스가 맨소울을 공략할 때, 다른 문들(감각의 문, 코의 문, 입의 문)보다도 “귀의 문”과 “눈의 문”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었다. 특히 우리가 무엇을 듣느냐가 전투의 성패를 가름한다는 사실을 적어 놓고 싶었다. [4] 임마누엘 왕자가 재탈환한 맨소울이 무엇으로 다시 무너져 내리는가? “육적인 안일 씨”(Mr. Carnal Security)의 활동이 속도를 내면서 맨소울은 급격하게 타락했다. “제 한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언뜻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 폐해는 치명적이다. “육적인 안일”의 부모가 “자만”(Mr. Self Conceit)과 “무모함”(Lady Fear-Nothing)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자만과 무모함은 안일함을 낳는다. [5] 디아볼로스는 맨소울을 다시 공략하면서 맨소울의 약점을 파악한다. 문란함과 교만도 큰 문제지만 최대의 약점은 “의심과 절망”이었다. <천로역정>에서도 “절망 거인”이 무지막지하게 크리스천과 소망을 두들겨 패는 대목은 두 사람의 여정 가운데 최고의 위기였다. [6] “경성 씨”(Mr. Prywell)의 활약이 마지막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다시 “경성”하게 된 인간의 영혼을 유혹하는 디아볼로스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약속하며 맨소울의 주민을 회유한다. 주민들은 “경성”하여 그 유혹에 잘 맞서지만, 두 번째 전투에서 제일 먼저 무너지는 자리가 “감각의 문”이었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7] 두 번째 공격을 위해, 맨소울에 미리 잠입시킨 악의 세력들은 철저하기 자기를 위장한다. 탐심은 “검소함”으로 위장하고 호색은 “무해한 재미”로, 분노는 “선한 열심”으로 자기를 포장한다. 그 위장 전술에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속지 않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끝까지 맨소울을 괴롭힌 “악한 질문 씨”(Mr. Evil-Questioning)도 스스로를 “정직한 탐구”(Honest Inquiring)으로 위장했다.
아직 ‘완역본’을 읽지 못했다. 부피로 볼 때 이 번역본은 축약판인 것 같다. 그러나 완역본을 읽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불러 일으켰다. 속도감 있게, 존 번연의 또 하나의 작품 세계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열한 영적인 전투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저자에게, 역자에고 모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