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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근심과 걱정,상처와 트라우마의 연속은 아닐까 한다.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반면 기쁘고 즐거우며 희망찬 삶 역시 영속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그래서 인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에는 부모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존재이고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삶 자체를 긍정과 낙관에 힘을 실어 살아가는 것이 후회없는 삶이 될 것이다.삶은 항상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늘 초월하는 듯한 자세,늘 이익을 보려는 자세보다는 좀 손해를 보는 듯한 자세로 더불어 살아가노라면 삶이 삶다워질 것이다.
대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여 요양 중인 내게 종교의 가르침은 무언의 위로와 평안을 안겨 주고 있다.종파를 불문하고 말이다.운전중일 때에는 기독교 방송을 자주 듣고 집에 와서는 불교와 관련한 도서를 자주 읽는 편이다.각 종교에 대한 메시지는 그때 그때 다르지만 공통점은 단 한순간이라도 팍팍하고 재미없는 현실의 삶에 지혜와 위로,평안을 안겨 준다.그릇된 욕망을 내려 놓고 우매함은 냉철한 지성으로 되돌려 주기도 한다.이것은 각 종파의 촌철살인과 같은 메시지를 접하면서 순간 순간 순수로 돌아가고 마음을 정화하려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명나라 가정(嘉靖) 13년(1535)에 태어나 만력 43년(1615)에 돌아가신 운서주굉(株宏)스님은 생전 인생의 참뜻과 지혜를 정리한 수필집이 1991년 한국에 소개되면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고 한다.스님의 저술은 경소(經疎) 외 잡록으로 《죽창삼필》 등 세속인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 대부분이다.오욕과 물질에 찌든 세속인의 삶은 이미 검붉게 오염되었다.인체 내부의 질병으로 따지면 혈관이 좁아졌다든지 꽉 막힌 형국일 수도 있다.게다가 대사성 질환으로 자칫 치사에 이를 수도 있을 정도로 마음의 병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사람도 많다.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치고 찌든 상황에서는 욕망보다는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연습과 타인에게 베풀고 나누려는 항상심의 지속성은 질높은 삶을 유지시켜 줄 것이다.원만한 관계,자아실현이라는 높고 이상적인 삶의 욕구까지 실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운서주굉 스님의 인생의 참뜻과 지혜는 《죽창수필》로 편집되어 불교인 및 불교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청정심과 반향심을 안겨 주고 있다.국내에는 성철스님,법정스님 그리고 근자 법륜스님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스님들이 전하는 말씀은 세상을 도통한 스승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다만 미혹하고 우매한 존재이다 보니 늘 뭔가 부족하고 쫓기고 목적없는 부평초와 같은 삶이 지속되는 것은 아닌가 자성하고 또 자성한다. 죽창일필,죽창이필로 나눠 쓰여진 이 글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든 통용되는 극히 상식적이며 처세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들이 참 많다.죽창수필을 쓴 시대가 16세기이다 보니 호불호와 관련한 것들은 현대인의 의식과 비교하여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가장 공명이 가는 것은 지나치면 아니 한 것만도 못하다(과유불급)는 점이다.적당하게 하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최상이 아닐까 싶다.
스님은 신통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그것은 과보로 얻은 것,수행으로 얻은 것, 깨달음으로 얻은 것이다.이 중에 수행과 깨달음이 가장 보편적이면서 궁극이 아닐까 한다.만물의 영장이면서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은 소원성취를 위해 기복(祈福)행위를 한다.그런데 인간사 소원성취를 위해 기도하는 방법 중에,가장 옳지 않은 것은 짐승을 잡아 희생으로 바치면서 기원하는 행위라고 스님은 지적한다.살아있는 목숨을 희생시켜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행위는 설령 소원을 이룰지언정 좋은 소원은 아닌 것 같다.그렇게 얻은 소원은 잠시 기쁨을 안겨 줄 뿐 고보(苦報)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특히 스님은 살생보다 더 나쁜 것은 음행이라고 했다.
운서주굉 스님에 대해서는 난생 처음 접하게 된 셈인데 말씀 하나 하나가 울림이 크기만 하다.스님의 말씀 가운데 내게 꼭 필요하고 실천으로 옮긴 메시지는 수행과 깨달음의 차원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 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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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4대 고승(明末四大師)으로 알려져 있는 ‘운서 주굉’이 남긴 책 <죽창수필>. 서문에 그가 쓴 글을 보면 제목 그대로 ‘죽창(竹窓)아래서 때때로 느끼고 본 것을 붓 가는 대로 적다 보니’ 나온 책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의 나이 팔순이 지났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제자들이 자신의 말을 모아 어록을 간행한 것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범부라 말하며 ‘행여 사람을 그르치는 허물이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라고 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서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렇게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그의 마음은 그가 남긴 426편의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인용했던 명나라 스님 욱당의 산거시山居時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언제던가? 클래식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던 어느 스님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행 중이라 음악을 들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어느 날, 방바닥에 누워 그 서러움을 곰 씹고 있었는데, 비가 내리는 숲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그것보다 아름다웠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클래식 공연을 볼 때면 그 생각을 하곤 하는데, 욱당의 산거시도 그런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주굉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남긴 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를 배워야 한다. 아마 그런 글을 읽지 않은채로 내가 어느 산사에 누워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산거시를 읽으며 감탄을 하지만, 그 시가 나올 때까지 선행되었던 깨달음에 대한 노력과 충만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그저 시로만 기억될 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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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지인 덕분에 전남 강진의 백련사, 화순의 운주사를 들르면서 사찰의 경치에 마음을 뺐기고는 시간 날 때 또 멀리 있는 사찰을 찾기도 했고,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자 근교의 사찰에 부담없이 명상의 마음으로 들러 보기도 했다. 그런 산새의 근사한 풍경을 떠올리며 펼쳤던, 중국 명나라의 고승 운서주광의 ‘죽창수필’은 제목만으로도 힐링이라 생각했다. 그져 의미 전달로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는 지금에도 힐링의 느낌은 다르지 않지만, 어느새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불가의 말씀을 전해 들은 양 마음한켠 기분좋게 묵직한 느낌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렵게 느껴졌던 불경의 말씀과 불교용어는 차치하고라도 살생, 육식 등 주제를 여러 이유로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는 무리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서도 변함없이 와닿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으로, 마음은 무엇과도 비견될수 없다는 것이다. 지혜조차 마음으로 받아들였는지 그 지혜로 욕심과 이기심을 부린 것은 아니었나, 현대 사회의 혼탁한 마음이 책의 여기저기서 들춰졌다.
용기와 통제가 있는 올바른 지혜인지, 어리석은 지혜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스님들의 생활, 생각을 엿보며 이런 사명감이 있으시구나, 누구나 어느 자리나 살아있음으로 계속되는 자기와의 싸움이 그려진다. 많은 이들이 깨닫기 바라는 마음으로 426편의 글을 남기신 것이리라. 생각없이 섣부르게 내뱉은 말들로 힘들기도 하고, 전하지 못한 말로 내내 어쩐지 마음 불편해 지기도 했던 많은 일들이 부질없다 느껴지기도 한다.
삶을 잘 살아내도록 알려주는 지혜, 그 지혜를 책속에서 얻는다는 말 그대로다. 처음에는 ‘읽어 보면 편해지지 않을까’하고 글속에서 마음 갈곳을 찾고자 하는 그냥 편하고 쉬운 길로 책을 접했는데, 그랬기에 더 많이 제대로 곱씹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를 깨닫기는 어렵지만 선행을 하기는 쉽다’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행복에 대해 그다지 세속적이지 않다 생각했는데 그 또한 어쩌면 상대적 비유였다는 생각이다. 어느새 욕심을 많이 담아두었는지 갈길은 멀게 느껴지지만, 책으로 이렇게 마음을 다스려 본다. 사찰을 향하는 첫 번째 문, 일주문을 향하는 것처럼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펼쳐 봐야 하는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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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알면서도 기기문명의 족쇄를 스스로를 채우다 못해 그 시간 속에 온전히 내던지다 못해 그것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이다.길을 걸을때도,대중교통을 이용시에도 모자라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조차도 기기문명에 다 쏟아붓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이렇다보니 일상사에서 스쳐 지나는 소박한 기다림조차도 놓쳐 버리는 일들이 허다하고,기다림의 미학이란 소통조차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기기문명이 주는 소통 아래 우리는 분명 희노애락을 맛 보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그렇게 아둥바둥 빠른 속도를 가속화만 할 뿐 그 이상의 삶의 여운을 주진 못하기에 안타까울 뿐이다.이런 이야기를 주저리 풀어놓는데는 막 읽고 덮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죽창수필'은 자백진가.감산덕청.우익지욱 스님을 비롯해 명나라 주굉스님의 수필집이다.이미 제목에서 언급한 바 죽창(竹窓)아래에서 붓 가는대로 풀어놓은 이야기인게다.81세에 입적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작고 큰 자신의 경험담을 비롯해 구습을 바로잡기 위한 비판과 함께 수행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게다가 소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이 담긴 단상등 426편의 글을 통해 읽는 독자로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뜨락에 내리는 햇살을 넘치고 넘칠만큼 꾹~꾹 눌러 담은 기분을 맛 보게 해 준다.개인적으로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명상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씻기는 것 같은 기분에 힐링을 하고자 할땐 부처님 가르침이 때때로 인생을 사는데 좋은 지침이 되어준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내가 일상사에서 고되고 힘들때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얻은 듯 하다.첫 장을 넘겨 읽은 초입 부분에서 스님의 일생,행적.제자들에게 진실한 수행을 힘쓰고 기이한 것조차 밝히지 말라했던 것과 정행(淨行)을 닦는 젊은 보살을 의미하는 유동보살(幼童菩薩)을 논하면서 기신론 의기(起信論義記)에 대한 간결하고 짤막한 내용였지만 개인적으로 기신론에 관한 주석서에 관심이 많아서 관계의 문제를 근본적 고찰을 내게 시도케 해 주고 있다.더불어 현 사회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다보니 도(道)는 자연을 본받고 도(道)는 항상 이름이 없다는 글이 문득 떠오르면서 진정 대인군자(大人君子)가 많아져서 달인대관(達人大觀) 할 수 있는, 사회의 투명성과 발전을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청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기도 했다.
또한,인간의 선과악이 서로 대치된 상태와 행복과 불행이 항상 맞물려 존재하기에 참선인(嶄仙人)으로 삶의 자세를 갖춘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하지만 책을 읽는동안 느낀 것은 주굉스님이 보살행으로 인생 연소시키는 삶을 통해 내 스스로 도를 이루진 못하겠지만 스님과 같은 삶의 자세를 내 방식대로 바람직하게 취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함께 한 시간이였음은 분명하다.내 욕심의 실체를 모르고 살아왔고 그간 때묻지 않고자 했던 내 마음 속 사심과 잡념 그리고 악습을 떨쳐내고 청정심(淸淨心)을 닦아 나가고자 한다.그렇다면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적어도 알고 가는 것이 되는 이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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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밤까지 길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계절은 이미 가을을 넘어 겨울의 문턱으로 성큼 들어서 버렸다. 밤이 긴 겨울 밤, 무료함을 달래는 데 무엇이 좋을까? 고민고민 해 보지만 역시 독서만한 것이 없다. 기왕에 읽을거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책이 좋지 않을까, 간만에 두꺼운 책 한권을 접하게 되었는데, 제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죽창수필>!!
죽창(竹窓)은 보나마나 대나무로 만든 창문이라는 뜻일 것이고, ‘수필’은 붓 가는대로 쓴다는 의미이니, 이 책은 스님께서 머무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느 산사의 대나무 창이 있는 방에서 자신이 출가하여 고승이 되기까지의 숱한 고난과 인내, 그리고 공부한 내용이라던지, 번뜩이는 메모 등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신은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초를 버리고 한나로 갔고 초는 마침내 한신으로 인하여 망하게 되고 한나라는 한신으로 인하여 흥하게 되었다. 이렇게 앞뒤로 다 같은 한신인데, 두 나라가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잘 쓰고 잘못 썼기 때문이다.(209면)
글을 읽었을 때, 내공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내공 내지 깊이가 느껴졌다. 이 책을 쓴 이는 운서주굉이라는 분인데 이름이 다소 생소할 것이다. 운서주굉은 중국 명나라 때 4대 고승에 드는 유명한 승려라고 한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하였던 우리나라의 서산대사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 아닐까 추정되는데, 아무튼 책제목 또한 무슨 고사성어 내지는 사자성어 같은 느낌이 짙어 무슨 내용의 책일까 궁금증해 하며 내용을 살펴봤더니, 스님의 수필 모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스님께서 불교 서적은 물론 유학과 도교에도 깊고 넓은 지식을 지니고 계셨던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운서주굉 스님의 죽창수필을 통해서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역사와 지혜, 나아가 고승의 가르침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법정 스님이 생각났다. 사실 스님이 쓴 글, 책이라고 하면, 법정 스님의 책과 글을 애독하였었다. <무소유>는 지금도 책상 곁에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둘 정도로 애지중지 아끼는 책이다.
이 책도 성격은 비슷한 것 같은데, 사실 법정 스님의 글과 비교했을 때, 나는 법정 스님 글이 더 좋은 것 같다. 이는 순전히 중국과 우리의 다른 사상과 정서적 차이일 수도 있다. <무소유> 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삶에 교훈이 되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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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때의 고승인 주굉 스님이 쓴 수필집으로 젊은 시절에 출가하여 50년을 스님으로 살면서 깨달음을 적어 놓은 책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스님이 되고자 했으며,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결혼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이혼을 하고 스님이 되었다. 후에 그의 아내였던 탕씨도 스님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 책은 50여 년을 스님으로 생활하면서 선승 또는 민중과의 일화와 설법 등을 수필이라는 문학적 장르로 소개하고 있다.
자백진가ㆍ감산덕청ㆍ우익지욱 스님과 함께 명나라 4대 고승으로 꼽히는 주굉스님은 그가 살아온 생애를 뒤돌아보며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내용 중에는 구습을 바로잡는 비판도 있으며, 수행자들에게 내리는 경문도 있으며 또한 일상의 생활속에서 느낀 깨달음 등을 모아 426편의 수필집로 엮어 놓았다. 주굉 스님은 스스로도 일찍이 ‘자신을 경책하는 서른두 가지 조항’을 지어 늙을 때까지 스스로 빨래하고 요강을 치우며 시자를 힘들게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평등한 대비심으로 온 대중들을 교화하여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고 부처님 행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으며 부처님 일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생을 살다간 스님은 나이 팔순에 이르러 죽창(竹窓) 아래서 때때로 느끼고 본 것을 붓 가는 대로 적었으며, 그의 진솔하고 담백한 글이 글자 그대로 인생의 지혜이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가르침과 지혜가 가득하다.
오늘날까지 그 가르침을 남겨 후학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도가 밝고 덕이 갖추어져 충분히 인간이나 천상의 스승이 될만한 어록을 남겼으나, "나는 실로 범부로서 나 자신도 아직 제도하지 못한 처지인데, 내가 이따금 우연히 한 말들을 나의 제자들이 감히 모아 어록으로 간행하였다"며 스스로 더 없는 선지자이면서도 자신을 경계하는 등 늘 스스로를 낮추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각박하다는 핑계로 마음의 문은 닫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중들의 고통을 평생 간직하고 살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건내기 위해 애쓴 고승의 애잔함이 서려있다.
화려함을 좋아하지도 않고 평생 근면하고 검소했으며 대중의 고단한 삶을 슬퍼했던 주굉 스님의 생애가 잘 나타나 있다. 스님이 남긴 얘기 중에 “관의 돈을 받아들이는 일, 관부에 들어가 벼슬아치가 되거나 관인과 사귀어 공사를 부탁하지 말라. 관가에 출입해 시주를 요구하지도, 관리의 세력에 의지해 다른 사람과 송사를 걸지도 말라.”는 말은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말이 아닌가 싶다. 가난한 민초들의 아픔때문에 고뇌가 깊었던 수심 가득한 스님의 마음이 그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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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독서편식이 심하여 재미위주의 소설책만 읽다보니 앞으로 나아짐이 없는것 같아 독서패턴을 좀 바꿀 필요가 있음을 반성하고 있던 차에 오랜만에 수필집 한권을 읽었다. [죽창수필]!~~ 이책은 명나라 4대 고승으로 꼽히는 자백진가·감산덕청·우익지욱, 주굉 스님 중 운서주굉이 나이 팔순에 지필한 수필집이다. 죽창수필이라는 제목은 '죽창(竹窓) 아래서 때때로 느끼고 본 것을 붓 가는 대로 적은"글 이라는 의미란다.ㅇ 종교가 불교가 아니다보니 당연 연지대사 주굉스님을 몰랐었고 이책에 대해서도 몰랐었는데,,,책을 읽아보니 꼭 불자가아닌 사람들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인생의 지혜를 전하는 글이라서 누구라도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스님의 글에 들어가지 전에 스님의 탄생부터 어떻게 입적을 했는지, 스님의 일생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글이 몇페이지 있는데 스님의 행적과 스님의 도풍으로 이루어 낸 기적같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스님의 대략적인 면모를 알게 되니 더 수필이 (스님의 글이) 깊게 다가오게 만드는 것 같다. 주굉스님은 ' 자신을 경책하는 32가지의 조항'을 지어 평생 그 조항을 지키며 돌아가실때까지 베옷과 무명옷을 입으시며 평생 분수에 넘친 생활을 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스님의 면모가 수필 한편한편에 녹아 있는것 같다. 총 426편의 글은 짧게는 한페지에 몇줄로,,길다면 두페이지 정도의 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한자어에 대해서는 밑에 주석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크게 어려움 없이 읽어갈수 있었다. 스님 일화을 쓴 글도, 또 스님이 전하고 싶은 인생의 지혜를 담은 글에서도 한편한편 읽다보면 비록 짧은 글 속에서도 깨달음과 느껴지는 것이 한가득인것 같다 어렵게 다가오는 글들도 물론 많았지만 말이다.. 몰아서 읽을 필요가 없고 또 그래도 안 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고,,,스님의 수필을 읽다보면 아주 어릴적에 읽었던 [ 탈무드 ] 생각나는 글이였다. 책속의 글 속에 옮길수 있을 정도의 짧은 글을 한편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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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수필 운서주굉 지음│연관 옮김│불광출판사 刊
자칫 고금의 고승대덕의 뜬구름 같은 가르침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난해하기 그지없
팬다 곰의 주식이라는 대나무 죽자, 죽창수필이라 題하였으니 필경 시서화 문사철에 서
죽창수필을 크게 일필, 이필, 삼필로 나눴으나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고 매번 사유를 이
이를테면, 사람들은 집착이라면 으레 오타쿠(?)식 발상을 하기 마련이다. 공부에 집착하
자자일自恣日이라는 말도 배운다. 스님들이 죽비 맞으며 수행하는 하안거 뒤의 휴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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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죽창수필>의 저자 '운서주굉'은 중국 명나라의 승려로 연지대사(運池大師)로 불리기도 했으며, 명나라 4대 고승 중 한명으로 유명하다. 유명한 승려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진 승려가 아닌 것 같아 주굉 스님의 연대기부터 읽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고 출가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출중하고 뛰어난 자식을 출가시키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스님은 부모님이 정해준 혼인을 했지만 아내와 아이가 곧 죽고 만다. 두번째 부인을 얻었지만 이번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이번엔 아내와 이별하고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출가를 하여 이곳저곳을 다니며 수행을 하게 된다.
뛰어난 사람은 어떤 행색으로 있던 사람들의 시건과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주굉 스님도 수행의 길에서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는 농부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염불을 외는 것이라 해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우자 비가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로 백성들에게 존경과 신임을 받는 스님이 된 것이다.
<죽창수필>은 주굉스님의 말씀을 정리해 놓은 것으로 꼭 종교를 따지지 않더라도 읽어봄직한 수필집이다. 종교를 떠나 한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종교는 이미 그 민족의 문화에 이미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그런 문화는 언어속에서도 쉽게 찾아보는데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전생'이나 '업보', '환생', '염불' 등의 단어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그 말의 어원을 보면 불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들이다. 이처럼 종교와는 상관없이 단어를 사용하다보니 불교적인 사고가 자연스럽게 생활과 문화에 바탕을 두게 된다. 이렇듯 <죽창수필>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읽을 것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삶의 지혜나 충고, 하나의 수필, 에세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워 보이는 한자가 나오면 주석까지 친절하게 달려 있어 읽는데 큰 어려움을 없었다. 그것보다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생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좋은 말, 깨달음을 주는 말은 긴 말이 아니라 오히려 짧은 글에서 읽을 수 있다. 스님의 짧은 이야기와 글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깨달음과 사색을 할 수 있는 동기를 주는 것 같아 읽으면서도 두꺼운 책의 두께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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