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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내가 숨 쉬는 오늘이 철학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흔한 일상이기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고,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원하는 내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힘겨움의 연속. 하지만 내가 시간을 멈출 수 없고, 죽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게 우리 네 인생이다. 죽을 것 같은 하루. 그 하루를 그렇게 연명하다 어느 날 대박이 터질 수도 있고, 오늘의 대박이 내일의 쪽박이 될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우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건 아닐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하루라는 시간, 한 달이라는 시간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에 의미를 생각한다. 의미를 두지 않았을 때엔 그렇고 그런 하루였지만 의미를 두기 시작하니 매 시간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지금 이 순간이 모여 내 오늘과 내일 그리고 미래가 만들어질 테니까. 근사한 제목의 책을 만났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이라니. 도대체 어떤 순간이기에 철학적일까 궁금했다. 그렇게 책을 펼친 순간 뭔가가 머릿속에서 종을 울린다. 우린 일상에 너무 길들여졌을까? 매일을 아무 감정 없이 받아들이고 시간을 보냈다니... 생각해보니 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철학적 사유나 철학적인 단어에서 오는 어려움을 배제하고 일상 언어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매 순간 철학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언어나 행동에 의미를 둔 것과 두지 않은 것의 차이 일뿐. 이 책은 인간이 태어나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아니 죽음 이후 내세까지의 시간적 흐름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철학적 사고를 매치 시킨다. 태어남, 걸음마와 옹알이, 학교, 자전거, 시험, 첫 키스, 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취직, 사랑, 결혼, 출산, 이사, 중년의 위기, 이혼, 은퇴, 늙어감, 죽음, 내세까지. 이 스무 가지에 해당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모든 주제가 다 마음에 와 닿는다. 이 것들 말고 내가 철학적 사유를 한 순간도 있었는데 그건 어린 시절 느꼈던 형제와의 차별과 진학, 그리고 학부모가 되어서의 흔들림도 포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 이 뿐일까? 사람마다 만남에서 우정, 그리고 이별과 식탐이나 다이어트 그리고 비교 등... 철학적 순간을 뽑으라면 무궁무진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어른 세계로 가는 가파른 계단인 이유는 각종 규제와 금지를 준수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 편 49) 시험의 주된 기능이 응시자에게 제도권에 속하게 되었다는 ‘상징적 장난감’을 주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참된 지적 능력을 시험하기보다는 옳든 그르든 지도층과 상류층의 눈에 드는 데 목적이 있다. (시험 편 81) 첫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의 희망으로 가득한 세계를 상상해 보라. 그들은 가난하고 조직화되지 않았으나 강직하고 열정과 창의에 넘친 아름다운 젊은이들이다. (첫 투표 편 145) 훌륭해진 기업의 차이를 연구한 결과 세 가지 요소가 조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뭔가를 잘하고 그 뭔가를 즐겨하고, 그 뭔가를 고객이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취직 편 167)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이 익힌 가치관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결함마자 물려주지 않도록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출산 편 206) 중년의 위기란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무슨 일이든 생기게 하려는 악의 없는 시도를 나타낸다. (중년의 위기 편 231) 슬픔은 우리가 실제 죽음과 조우하기 전에 죽음을 연습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죽음 편 295) 철학은 늘 어렵고 이해하기 난해한 자신들만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철학이 우리의 삶에서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네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철학은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아니 외면하고 무시해도 매 순간 우리 곁에 철학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 생애 주기처럼 철학 주기라는 이름으로 내 삶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까? 결국 철학은 내가 나를 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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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에서 첫키스까지, 학교에서 이사까지 내 인생의 20가지 통과의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우리 삶 중간중간을 되짚어 보며 그 속에 숨어있는 철학적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사실 IMF 시대와 88만원 세대를 거치면서 문(文) 사(史) 철(哲)의 가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잣대로 측정당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논술 시험이나 자소서 작성 내지 공무원 시험에서 측정되지 않는 철학이란 존재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시대만큼이나 우리에게 멀게 느껴졌달까. 철학이라고 하면 허름한 버스 좌석 뒤에 으레 붙어있는 OO 철학원 광고 속 역술인 얼굴이나 떠올리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플라톤은 이데아설을 주장 등등 이렇게 고등학교 윤리 시험에나 나올만한 몇 가지 간단한 상식을 주어넘기고 나면 철학에 관해서 딱히 더 말할 것이 없어진다고나 할까. 계몽주의, 실존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세기말을 뜨겁게 달궜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좀 더 읊고나면 생각나는 것은 독설로 무장하여 여기저기 찌르고 쑤시고 다니는 우리 시대 논쟁가들의 모습이랄까.
빡빡해진 요즘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유명 철학자들의 이론, 다소 히스테릭해보이기까지 하는 논쟁가들의 모습과는 달리 이 책 속의 내용은 현실 세계와 밀접하며 그 태도는 일견 포근하게까지 보인다. 삶의 이정표에 담긴 의미란 제목을 달고 책머리에 실린 글은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 인터스텔라의 후반부 한 장면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면 곧바로 타임머신이 된다고 상상해보자. 하지만 이 타임머신은 H.G. 웰스가 상상한 것처럼 역사의 앞뒤로 가는 대신 우리의 생애로 들어간다. 자동차는 우리를 아기 시절로 데려가고, 수학 시험이 한창인 학교 안으로 슬며시 들어가고, 버스 정거장에서 십대의 우리가 첫 키스를 하는 장면에 들이닥친다. 그런 다음에는 미래로 이동해 중년의 위기에 맞닥뜨린 우리의 모습과 즐거운 정년퇴임 파티를 보여준다. (후략)
이 책은, 태어남 / 걸음마와 옹알이 / 학교 / 자전거 / 시험 / 첫 키스 / 순결의 상실 / 운전면허 / 첫 투표 / 취직 / 사랑 / 결혼 / 출산 / 이사 / 중년의 위기 / 이혼 / 은퇴 / 늙어감 / 죽음 / 내세 이렇게 20가지 테마로 구분되어 있다. 이 중 몇 가지는 나도 거쳤고 나머지 몇 가지는 아직 거치지 않은 것이며 최소 한 두 가지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맞이하지 않을 것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순결의 상실, 출산 같은 내용이 생생하게 머리 속에 들어온다.
어디서부터 삶이 시작된다고 봐야 되냐는 질문부터 던지는 이 책은, 대수롭지 않게 느꼈던 부분에도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 철학적인 사유를 유도해낸다. 데이비드 흄, 플라톤, 샤르트르, 마르크스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이 출생이란 테마 속에 녹아든다. 마치 잘 베어낸 소고기 살 점 위에 질 좋은 소금을 뿌린듯 철학자들의 사유가 저자가 임의로 베어낸 테마 위에 녹아든다. 그리고 어느 한 테마 버릴 것 없이, 마치 마블링 잘 된 고기를 불에 잘 굽어 한 입 크기로 베어 물듯 질 좋은 사유의 미감(味感)을 제공한다.
걸음마와 옹알이 테마로 넘어가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가 등장한다. 걸음이라는 행위로 인해 인간은 어떻게 인간답게 되었나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면서도 현학적으로 진행된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에서 사유하는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로의 진화는 불 보듯 뻔한 것이렸다. 이어 저자는 옹알이의 단계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가진 특성 중 하나인 언어의 사용을 언급한다.
옹알이를 설명하면서, 존 로크의 타불라 로사 개념과 현대 언어학의 거두 촘스키까지 등장시킨 이 책, 정말로 철학 문외학, 인문학 문외한이 본다면 다소 지루하고 쓸데없이 현학적인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인문학적인 지식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삶 순간순간을 철학적으로 되새겨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순간을 철학적인 시각으로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꽃의 이름을 배워 그 이름을 부르면 그 꽃을 새롭게 보게 된다. 말하는 것은 단지 생각의 표현이 아니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이 점에서 말은 흥미롭게도 걸음과 닮은 점이 있다. 걸음은 지상에 흔적을 남기고 식별 가능한 형상을 부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걸음과 말은 둘 다 세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걸음은 야드로, 말은 단어로 세계를 단위별로 분해한다. p.40~p.41
마치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생각나는 대목이 걸음마와 옹알이 파트의 후반에 등장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 역시 이러한 걸음마와 옹알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걸음마는 지상(地上)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고 리뷰쓰기는 지상(紙上)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닌가.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옹알이하듯 서툴게나마 되새기면서 우리의 읽고 쓰고 말하고 사유하는 능력 역시 키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서가들에게 인문학적 걸음마와 옹알이에 있어서 좋은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 각주 또는 미주를 통해 책 본문 속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겻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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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서, 행복했다. 1) 이 책을 얼마쯤 읽었을까, 이 책을 가지고 나의 생을 반추하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자전거를 맨처음 탔을 때, ‘누구에게 자전거를 배웠더라? 아버지였던가?’ 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하였고, 또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내가 아이들에게 자건거 태우기를 시도했던 그 무렵으로 흘러가기도 하였다. 또 결혼할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했지? 또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물론 나에게는 경험이 기억으로 남지 않은 사건들 - 걸음마와 옹알이 등- 은 내 아이의 경우를 통해 상기해 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저자가 만들어 놓은 ‘순간들’ 마다 나는 내 인생의 그 순간들을 다시 반추하러, 되돌아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 분명 있었건만, 나는 그때 그 순간들을 어떤 생각을 하면서 흘러보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서, 행복했다. 나의 생애 순간 순간들을 이 저자가 기록해 놓은 철학의 자리로 돌아가 비교해가면서, 나의 자세를 다시 한번 훑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들은 저자가 말한 것과는 전혀 동떨어진 자리에서 지냈고, 어떤 순간은 너무 흡사한 모습으로 보냈기에, 페이지를 넘겨 가면서 행복했었다. 자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2) 이렇듯, 내가 지나온 순간의 어느 시점엔가, 분명 생각했었고, 느꼈던 것들을 그렇게 콕 짚어주니, 내 인생을 이 책의 구절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철학의 모습들을 나의 생각과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이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 때 내 느낌이 그랬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났는데. 그런 생각이 나만은 아니었구만!’
‘아니,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그래서 이책의 내용들은 어느 것 하나 빠트릴 수 없는 소중한 잣대가 되어 나의 생 순간순간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
3) 더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순간들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과거를 또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어떻게 조합되어 지나가는가, 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학생들은, 하나의 음을 짚으면서, 동시에 지나간 음을 간직하고 다가올 음을 예상하며 의식을 끌어가는 두터운 현재를 연습해야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순간 속에 결합되어 멜로디로 흘러갔다.>(해변빌라, 125쪽) 그렇게 이 책은 나에게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지금 이 시점으로 연결해 주며, 현재를 두텁게 해주는 아주 귀한 순간을 제시해 주었다. 이 책은 그래서 나의 삶의 자리에서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고, 또한 나에게 다가올 미래(지만 현재로 다가올)를 미리 체험해 볼 수 있게도 해주었다. 이런 귀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책이 바로 좋은 책이 아니겠는가? 4) 밑줄 치며 기억해 둘만한 대목이 많지만, 몇 개만 적어보기로 한다. <학교, 처음으로 나 자신을 타자로 느끼는 곳.> (43쪽) <시험, 선생님이라는 버팀목을 치우고 혼자 만나는 최초의 심판>(75쪽) <시험의 어려운 점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도, 전적으로 혼자 치러야 한다는 데 있다. 시험은 정의상 남에게 대신 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82-83쪽) <첫 투표, 한 나라가 나를 가장 진지하게 대하는 순간>(137쪽) 이 부분에서 나는 바랐다. 국가가 그렇게 나를 - 한 개인인 나를 - 가장 진지하게 대해주기를. 그래야 나도 국가를 진지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기에. 5) 이 책은 주례자의 손에 들려, 새로 인생을 설계하는 신랑 신부에게 전해지면 좋을 것이다. 새 출발하는 자리를 이런 ‘철학’으로 채우게 된다면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또한 이 책은 인생을 가르치는 강사의 손에 들려, 인생을 논하는 사람들의 소장품이 되면 좋을 듯 하다. 이 책으로 자기가 살아온 순간들을 상기하며 다가올 미래를 ‘철학’으로 대비하는 자세, 그런 자세야 말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6) 그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 준,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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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4-256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 웅진지식하우스
1. 셰익스피어는 《뜻대로 하세요》에서 온 세상이 무대이고, 누구나 다 배우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등장과 퇴장, 각기 살아가며 맡는 여러 배역들의 이어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대는 아이가 태어남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여러 무대를 전전하다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 2.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공통으로 겪게 되는 여러 과정(태어남, 걸음마, 학교, 시험, 취직, 사랑, 결혼, 죽음 또는 자전거타기, 첫 키스, 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등)에 철학적 의미를 담아주고 있다. 3. ‘태어난다는 것은 스포츠카를 받은 즉시 열쇠를 잃어버린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태어남은 삶은 주지만 삶에 필요한 의미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영적 성숙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출생은 존재의 두 측면인 시간과 공간의 선물이다. 출생 이전에 우리는 무(無)였지만,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곧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공존함을 뜻한다.” 4. ‘학교’는 어떤 곳인가? 지은이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타자로 느끼는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집 안에서와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체성도 분열된다. 이해되는 부분이다. 집에서 ‘나’란 존재와 학교에서 ‘나’란 존재는 어찌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혼란스럽다. ‘나 학교 가기 싫어’라는 말을 아이에게 듣는 부모는 속 터진다. 해결책은 없는가? 우리 모두의 숙제다. 5. ‘중년의 위기’. 중년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사라진 삶에 대한 반응이라는 표현이 있다. 대충 삶의 단맛, 쓴맛 다보고 지상전, 공중전, 수중전까지 마친 경우가 허다하다. 중년이란 나이는 그렇다. 그렇다면 중년의 커트라인이 어디인가? 중세에는 보통 마흔이면 죽었다. 중년의 위기라는 것의 맛도 모르고 갔다.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요즈음엔 중년도 점차 상향조정된다. “중년의 위기는 향수와 퇴행과 회환의 덫을 피한다면 새 출발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6. 자,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죽음’을 생각한다. 이런 문장을 읽는 당신의 기분은 어떠신지? “우리의 사망은 다른 사람을 살게 한다.” 보험금? 다행히 지은이는 좋은 말로 위로해준다. 이 땅을 떠나는 이들에게. “우리가 죽으면 그때까지 퍼져나가던 우리의 영향력은 소멸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뒤에 남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 곁에 잔존한다. 여기서 잔존이란 초자연적인 의미만이 아니다. 우리는 죽은 뒤에도 한 두 세대 동안 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는 것이다.” 단지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갈 선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숙제다. 7. 이 글을 읽는 이나, 이 책을 읽는 이나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살아가는 동안 거치는 통과의례는 지역과 인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거기서 거기다. 그 길을 잠시나마 좀 더 위에서 또는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여정이 그려있는 로드맵을 바라보듯 이 책은 그렇게 포인트별 철학적 의미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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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은 제각각 모두 달라보여도, 누구나 함께 겪는 과정이 있다. 탄생에서부터 걸음마, 학교, 이사, 첫 키스, 결혼, 취직, 은퇴 등 인생에 있어 겪게 되는 어떤 결정적 터닝 포인트 같은 시점. 그리고 누구나 중년이 되고, 어느덧 노년이 되어 생을 마감하기까지 모두가 거치는 인생의 경로는 어찌보면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각각 삶의 의미를 다르게 느끼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런 비슷한 경로 속에서도 나름의 독특함과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나만의 관점과 가치관 때문은 아닐까. 인생에 있어서의 20가지 통과의례를 철학적인 순간으로 재조명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나름 참신했다. 때론 내 기준에선 철학적인 순간으로 해석하기 좀 애매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철학을 이용해 그 순간을 해석하고, 바로 살아내기 위한 인생의 선택의 순간들을 제시해준다고 해야할까.
게다가 그 철학적인 순간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도 있다. 자전거, 운전면허 같은 것이 그것이라 해야할까?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을 겪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나 같은 경우도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데, 자전거 타는 그 순간에도 이러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새삼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인생에 있어 모든 시점, 누구나 겪게 되는 이런 순간순간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곧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는 의미는 아닐까. 일종의 통과의례같은 삶을 그저 주어진 대로 지나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아내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도약으로 받아들이라는 것. 어떤 순간은 아름답게 기억되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만큼 아팠던 순간도 있다. 그러나 이런 순간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결정해 주고 있으니, 우리는 매 순간을 놓칠 수 없다. 결국은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힘들다면 책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여러 이정표들로 나누어 순간을 살아내는 방법도 유용하리라 믿는다.
철학은 몽테뉴가 말했듯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배우는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p 308).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바로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삶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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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태어났고, 걸음마를 배우고 옹알이를 하다가 말이라는 걸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기까지는 내 기억에 없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까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의 삶을 고찰한 한 철학자가 있다.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는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인생의 중요한 20가지의 순간에 여러 철학자의 견해를 들어 인생의 의미를 찾는 법을 말한다. 스포츠카를 받은 즉시 열쇠를 잃어버린 것(태어남), 걸음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말로써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걸음마와 옹알이), 처음으로 나 자신을 타자로 느끼는 곳(학교), 아빠가 자전거를 잡은 손을 놓을 때, 의심과 믿음의 갈림길에 선다(자전거), 선생님이라는 버팀목을 치우고 혼자 만나는 최초의 심판(시험), 키스는 침묵이며, 단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비밀이다(첫 키스), 우리는 순결을 잃을 때 종의 기원으로 되돌아간다(순결의 상실), 처음 만나는 신선한 자유, 그러나 동시에 통제를 받아들이다(운전면허), 한나라가 나를 가장 진지하게 대하는 순간(첫 투표), 제대로 취직을 하면 일하는 동물에서 일하는 인간이 된다(취직), 사라질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영원을 믿는 고백(사랑), 서로의 운명을 소유하기로 결정하다(결혼), 격렬한 낭만적 사랑에서 소중한 현실적 사랑으로(출산), 바로 그날까지 타인이 살던 불확실함 속으로 뛰어들다(이사), 결국 이디에도 올바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다(중년의 위기), 사악해질 수조차 있는 불행한 관계를 끝내는 정직한 수단(이혼),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아직 늙지 않은 모호한 순간(은퇴), 제3의 인생, 스스로를 신선하게 바라보다(늙어감), 우리의 사망은 다른 사람을 살게 한다(죽음), 죽음 뒤를 상상할 때 현재가 바뀐다(내세) 이렇게 20가지의 순간에 대한 감각적인 어휘의 뒤에 숨은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어 나의 삶의 의미 찾기를 도와주고 있다. 가장 재미있고 신선했던 부분은 자전거 타기였다. 어른들에게 자전거는 목적지까지 가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특정한 목적지가 없이 달리는 장난감이다. 그 자유분방한 행동에서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 즉 '목적론'적 의도가 없다. 아이와 어른의 여러 가지 차이들 중 하나는 아이에게 목적론적 의도가 없는 것이다. 아이는 골을 넣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당면한 목표를 넘어 어디로 가거나 무엇을 성취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는 구체적인 결과에만 집중하는 데 만족한다. 그래서 자전거 타기는 단순한 유년기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의 은유가 된다. 즉 자전거 타기는 유아성의 상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은 오히려 반대 방향, 즉 어른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유아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정복해버린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은 획득한 영토를 완전히 정복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자전거라는 기계에 대한 기술적 정복이다. 이를테면 핸들을 조작하고, 브레이크를 너무 급히 밟지 않고, 페달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자아의 정복이다. 자전거 배우기의 특징은 처음에 자전거를 잡아주던 사람이 얼마 안 가 손을 놓는다는 점이다. 자전거 타기를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그것은 순전히 의심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잡아주던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상태까지 가려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연속적인 궤적을 그리며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두 가지 존재 질서 사이의 협곡을 뛰어넘어야 한다(즉 종속에서 독립으로, 안전에서 자기 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혼자서 방향을 결정하고 자전거 위에서의 침묵을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와 닿았었던 주제는 '중년의 위기'였다. 저자는 중년의 위기는 그 세계를 끌어안고 그 기대와 절박함을 따져보는 시점이라고 했다. 중년의 위기가 새로운 것이 사라진 삶에 대한 반응이며,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무슨 일이 생기게 하려는 악의 없는 시도다. 수명이 늘어나며 정의하기도 어렵고 문화적으로 정해진 형태도 없는 인생이 40퍼센트나 남게 되었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면서도 그 삶을 잘 이용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정년퇴직자 주택을 건설하면서도 부수 시설인 상점이나 영화관은 짓지 않는 부동산 개발자들과 같다. 최선의 치유책은 예방이다. 예방의 핵심은 '자아'에 있다. 그동안 바깥의 사건들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내 안의 종이 울리면서 아직 성찰하지 않은 내부를 성찰하라고 촉구한다. 중년을 비극이 아니라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길을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의미없는 시기라도 생각했던 일들이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나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갖는 시기였는지, 그리고 그 시기를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쳐버렸는지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내가 겪는 이 모든 시간들에서 의미를 느껴보려고 노력해보리라 다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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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국가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나름대로의 통과의례가 있기 마련이다.사전에서는 '사람의 일생 동안 새로운 상태로 넘어갈 때 겪어야 할 의식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전환점에 가까운 개념이다. 성인식, 결혼식과 같은 행사/축하가 동반되는 것도 있고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이의 걸음마, 시험, 투표, 면허 등처럼 삶에 밀접한 기능을 동반하는 것도 있다. 통과의례가 전환점이라고 표현한다면, 이유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아이의 걸음마는 좀더 넓은 세상을 스스로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내재되어 있었을 충동에 의해 진행된다. 하지만 살면서 암묵적으로 느껴지는 통과의례들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대학을 가야 한다', '취직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 등의 순서가 느껴진다. 그 자체로 분리하여 헤아려보면 통상적인 통과의례에 포함되는 것들이지만, 앞서 나열한 것처럼 '해야 한다'라고 느껴진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저 의례들을 통과하지 않았을 때 '왜 하지 않니'라는 말이 뒤이어 나온다는 의미이다. 의례를 통과했을 때 축하/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완성해나가야만 하는 퍼즐처럼 느껴진다. 결국은 모두 같은 모습의 퍼즐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작가가 나름대로 정한 통과의례들이 흔한 경험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적인 논점을 곁들여, 그것이 당연하게 치부될 일들이 아니라 인생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20가지의 주제들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알고, 지난 의례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아직 앞에 있을 의례들을 상상해보기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당연시해서 오히려 사소하게 여기는 일들이 없었으면 한다. * 본래는 다양했던 감정이 갑자기 한 사람에게로 수렴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관심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었지만, 이제는 한 사람이 다른 모두를 능가한다. 마치 군중 가운데 지금까지 알아보지 못했던 왕자나 공주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다. 특정한 사람이 연관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귀중하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사랑도 없다. 사랑이 감정이라면 아마도 안도감일 것이다. 결국 온갖 떨리는 희망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 안도감이다. * 실제로 중년의 위기는 불안정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앞으로는 통하지 않으리라는 성숙한 견해로 나아가게 해준다. 인생의 초반 20년이 생물학적 변화, 교육, 낭만적 추구로 점철되었고 다음 20년은 세계 속에서 자신을 정립시키려는 욕구가 지배했다면, 중년의 위기는 그 세계를 끌어안고 그 기대와 절박함을 따져보는 시점이다. 삶을 계속 촉진하기보다 삶에서 물러나는 시점에 위치한 탓에, 중년의 위기는 시험이나 취직 같은 삶의 이정표들과는 달리 그동안 그 이정표들이 확고하게 버티고 서 있었던 그 길을 거부하라고 촉구한다.나는 진정으로 그 극심한 경쟁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하는 걸까? 승진이 정말 그토록 중요할까? 도시는 정말 시골보다 나을까? 이런 물음들을 품게 된다. *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치아가 누레지고 등뼈가 굽어도 스스로를 신선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절망과 체념에 사로잡힌다면 사정은 조금씩이라도 계속 악화될 따름이다. 그보다는 그런 상태 변화를 용인하거나 더 나아가 찬미하는 편이 낫다. 가차 없는 불가역 반응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점진적인, 더 나아가 놀라운 재구성의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기혐오를 조장하고 싶지 않다면 나이에 관해 더 너그러워져야 할 것이다. * 내세가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래도 내세는 양심처럼 작용하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그 결과 내세는 철학처럼 작용하면서 실시간으로 우리 행동의 넓은 함의를 고찰하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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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라고 하면 무언가 거창하고, 웅대하고, 진지하고, 진중한 것이어야만 하는 무게감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은, 철학적이란 말이 그렇게 심각하고 중대한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 자체로도 얼마든지 철학이 될 수 있고, 소위 "중대하다"라고 일컬어지는 것만이 철학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의 목차를 본다면, 철학이라는 테마를 다룬다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오히려 무슨 에세이나 회고록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 지경이다. 학교, 이사, 결혼 등 현실에서 누구나 한 번씩 겪을 법한 키워드가 목차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책을 넘기고 직접 읽다 보면, 저런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키워드와 철학적이라는 테마의 조합이, 너무나도 적절하고 타당하며 감명을 가져다준다는 감상을 받게 된다.
철학이란 어떤 것일까? 아니,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무겁고 심각하고 진지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철학이 아닌 걸까?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단적인 답을 제시하거나 단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상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느낌을 받는 것이 얼마든지 철학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진정 우리에게 의미 있는 테마 철학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현실에서 누구든지 겪는 일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감상을 받고, 그 경험이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 모두가 철학적인 것이다. 철학이란 곧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은 비단 현학적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역시 해당되는 것이다. 철학이란 고답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것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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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내가 일기를 썼던 때가 언제였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수십 년이 지났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일기장이 창고 구석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테지만, 오랫동안 찾지 않았다. 아마도 일기장에 즐거운 일만 쓰여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적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가능한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망각도 어쩌면 능력일 수도 있겠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일이 떠오르지 않을 때, 인간이 망각하며 살아가게 해주신 신에게 감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의 저자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는 그런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철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안 그래도 녹록찮은 인생살이에 어려운 철학을 끌어들인다? 정말 그럴까? 저자의 설명을 한번 따라가 본다.
‘자전거 타기’에 관해 말하는 4장이 가장 궁금했다. 태어남, 결혼, 출산, 죽음 등은 인생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라지만, ‘자전거 타기’에 어떤 철학적 순간이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자전거 타는 법을 잊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근육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삶에는 그만두었다가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안 되는데, 전거의 경우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유년기를 다시 포용할 수 있다.”(74)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자전거를 언제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볼 때마다 내 기억 저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어릴 적 기억들을 되살려내게 된다.
내가, 아니 우리 모두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죽음’에 관해서 이 저자는 어떻게 말할까. “죽음에 이르면 우리의 삶은 끝나지만 그 삶이나 삶의 심상은 우리를 돌보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전송된다.”(299) 내 눈은 이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종교를 갖고 있건 그렇지 않건, 내세를 믿건 믿지 않건, 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죽어도 내 삶은 누군가와 기어코 연결된다. “우리의 사망이 다른 사람들을 살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헛되지 않다.”(300)
저자가 사용하는 비유는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를 테면 “장폴 사르트르는 아마 태어남을 독배라고 말했을 것이다. 태어남은 삶을 주지만 삶에 필요한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문장은 단번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말하자면 스포츠카를 받고서 곧바로 열쇠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23)는 문장이 따라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탁월한 비유에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어쩌면 저자가 ‘늙어감’에 관해 말하는 다음 대목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걸 본 적이 없었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인생의 일부를 되찾은 기분이 들 것이다. 반드시 나이가 들어야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당히 젊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시간을 더 얻게 된 것이다.”(283) 지나간 시간은 아쉽고 안타깝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어쩔 수 없이 치밀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한 것처럼,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덜 안타까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의미 부여를 통해 예전에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된 순간, 그 지나간 시간은 우리 기억 속에 적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경태님의 번역은 역시나 훌륭하다. 아무리 대중서라고 해도 철학서를 이렇게 깔끔하게 번역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의 만듦새도 훌륭하다. 나는 변색되기 쉬운 흰 표지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예외다. 굳이 양장을 쓰지 않고도 고급스럽게 보인다. 무엇보다 보드라운 겉표지를 손으로 쓰다듬는 느낌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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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게 되었습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죽음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해본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철학을 떠올리는 이러한 질문은 아마도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간의 근본적인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워보이고 거창해보이는 철학이지만, 분명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철학일 것이다. 다양한 철학자와 더불어 '~주의'로 끝나는 철학 사상은 왠지 우리가 철학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다가도 멈칫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한 부분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없다면 도통 철학자들이 말하는 철학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진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은 바로 이러한 철학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위하여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인생학교>를 설립한 스미스 교수가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생에서 20가지의 상황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던 철학을 좀더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출생에서 내세에 이르는 우리 인생의 20가지의 상황. 좀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걸음마와 옹알이, 자전거, 시험, 첫 키스, 취직, 사랑, 결혼, 출산, 이혼과 같이 우리가 태어난 시점에서 죽어서 사후의 세계에 도달할 때까지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철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자주 직면하는 시험을 스미스 교수는 과연 어떻게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시험의 어려운 점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도 전적으로 혼자서 치러야 한다는 데 있다. 시험은 정의상 남에게 대신 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 초조한 기색으로 펜과 자를 배열할 때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줄 수는 없다." - p. 83 -
"수험자의 이름이 시험관에게 알려지면 편견이 작용할 수 있으므로 수험자에게는 이름 대신 번호가 부여된다. 수험자는 그 번호에 가려 완전한 익명이 된다. 번호는 이름보다 훨씬 깊이 침투한다. 이름은 인격의 희미한 흔적을 가지고 있지만 번호는 무감각하고 냉담하다." - p. 84 -
"시험을 마치고 펜을 내려놓을 때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겪었던 긴장과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는 유쾌한 안도감에 젖으면서 시험을 치러냈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대개의 경우) 다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우리는 과제를 성취했고 의무를 수행했으니 이제 바통을 다음 세대에 넘기면 된다. 시험을 끝마친 뒤의 환희는 또한 세대별 반복의 표현이기도 하다." - p. 88 -
시험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에세이. 상당히 공감이 된다. 시험은 혼자 준비를 하고, 수험 번호를 교부받아 진행하고, 종료시에는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모습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쉽게 공감이 되는 시험에 대한 일상을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스미스 교수는 시험에 대하여 홀로 남겨진다는 점과 수험번호에 의하여 인격이 순식간에 가려지는 모습과 같이 철학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그저 긴장된 상태로 시험을 치룬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뜻깊은 철학적 메시지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쉽게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갑자기 그저 단순해 보이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철학적인 차원에서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살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깊은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진다. 아니, 너무 과도하게 철학적으로 바라보려고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분명 가볍게 읽혀야 할 책이 갑자기 심오하게 느껴진다. 어려운 주제로부터 뜻깊은 내용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이해를 떠나서 쉽게 공감이 된다. 그러나,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우리 인생의 상황을 철학이라는 거창한 개념으로 재해석하는 이 책은 공감에 앞서 참신함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나 뻔한 주제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것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재해석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는 우리 일상이 곧 철학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일상에 대한 철학적인 재해석은 자칫하면 지나친 비약으로 보여줄 여지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주 단순한 소재로부터 심오한 원리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과장되고 비약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그러한 위험성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앞서 인용한 시험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한 부분도 우리가 미처 잊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처럼 어느새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일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철학적인 메시지를 찾는 것에 더하여 새로운 관점의 제시도 눈여겨 볼만하다. "1+1=2"라는 절대 진리에 대하여 "1+1=1"이라고 말하면서 물방울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서 하나의 물방울이 되는 재치있는 답변이 통용되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하나의 상황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부분을 제공하고 있다.
광고로도 많이 접한 아버지가 딸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자전거 뒷부분을 잡아주면서 딸이 자전거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어느 정도 딸이 자전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면 아버지는 조용히 자전가의 뒷부분을 놓아준다. 마치 아버지가 자전거를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자전거를 타던 딸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음을 발견하는 장면은 딸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성장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빠가 뿌듯한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뒤에 처지면 나는 이제 혼자 힘으로 나아가면서 장차 세월이 흘러 집을 떠나게 될 순간을 미리 경험한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혼자서 자전거의 방향을 결정하고 거기에 수반되는 특유의 침묵을 견딘다는 의미다. 주변에서 온갖 소음이 들리지만, 내가 앞으로 질주하면 그것들은 소리의 터널을 이루어 우리에게 길을 내준다.(중략)" - p. 66~67 - 이 책에서는 자전거를 배우는 장면을 위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 자식이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는 자전거를 배우는 상황은 저자는 자식의 관점에서 좀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행위 자체가 집을 떠나는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요,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전거 타기를 자식의 입장에서 좀더 진지하게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출생에서 내세까지의 상황들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이 된다. 그러한 선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으로서 겪게 되는 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선은 한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시간 자체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꾸준히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모든 시선은 한 방향으로 고정된 것처럼 획일화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저 남과 다르지 않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처럼 살자라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하여 분명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학문이 철학이라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삶을 배부르게 사는 것보다는 가치있게 살기 위해서라도 철학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 결코 쉽다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이라는 책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 인생의 20가지 상황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재해석을 하였지만, 인생의 수많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 바로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잠시나마 내 주위를 둘러보며 한번쯤 의미를 부여하여 생각을 해보고, 그 속에서 나름의 철학을 이끌어내 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