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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민족주의'만큼은 확실히(?) 알고 가자
"이참에 '민족주의'만큼은 확실히(?) 알고 가자" 내용보기
주변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난 소설 따위는 읽지 않아!” 딴엔 “전문서적 읽느라 시간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란 말인데, 내가 알기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책읽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말은 거짓말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요즘 통 책을 못 읽고 있어.”라고 하면 될 것을.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간 솔직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 뿐 아
"이참에 '민족주의'만큼은 확실히(?) 알고 가자" 내용보기
주변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난 소설 따위는 읽지 않아!” 딴엔 “전문서적 읽느라 시간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란 말인데, 내가 알기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책읽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말은 거짓말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요즘 통 책을 못 읽고 있어.”라고 하면 될 것을.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간 솔직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 뿐 아니라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난 다이제스트(요약본)는 절대 읽지 않아. 원작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잘못 전달하기 십상인 걸 왜 읽어? 원작을 읽어야지!” 굉장한 잘난 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말이 전적으로 거짓이기만한 건 아니다. 근래 실제로 원작이나 원서를 읽으려 무진 애를 써왔던 터다. 결과는? 참담했다. 두껍고 어려운 인문학 고전 몇 권과 씨름하다 끝내 나동그라지고 말았던 것. 그래, 최근엔 방법을 달리하기로 했다. 고전을 제대로 읽기위해 우선 진입로부터 확실하게 파둘 필요를 느낀 것. ‘살림지식총서’, ‘책세상문고(우리시대)’ 등의 다이제스트 혹은 입문서들을 열심히 사 모으는 이유가 그것이다. 근래 인문학 관련 출판의 패턴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믿었던 ‘한겨레’는 시대담론을 이끌기는커녕 몇몇 저자들(박.한.홍)의 사유의 편린만을 좇느라 정신이 없고, 그 외 출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제대로 된 고전출간 보다는 역시 몇몇 유명저자들의 연재기사 재편집에만 혈안이 되어있을 뿐이니 말이다. 그나마 ‘인물과 사상’, ‘필맥’ 등의 묵묵한 행보가 위안이랄까. 객담이 너무 길었다. 나의 이런저런 편견과 불편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마침 인문학 읽기의 모범을 제시해주는 책이 나왔다. <지식의 발견>(고명섭 지음/그린비 간)이 그것인데, 비록 앞서 비판했듯이 특정 지면에 개제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긴 하지만 주제의 일관성을 잃지 않은데다 선정한 텍스트들의 학문적 독창성, 시대적 이슈와의 밀접성 등을 고려한 편집이 돋보여 매우 유익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책이 반가운 건 근래 이념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민족주의’담론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답답한 속이 확 뚤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안 그래도 근래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적대적 공범자들>들을 읽으며 도통 헷갈려 했던 주제였던 터라 더욱 그렇다. 간단하게 말해, 자기완결성의 결여라는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와 민족주의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퍼붙는 일련의 학문적 움직임은, 사실 그전에 선행되었어야 할 내셔널리즘에 대한 개념정리를 방기한 속에서 진행된 것이어서 문제가 있고, 더구나 보수언론의 지원과 동의가 이어지는 것은 다분히 학문외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 임지현 등이 주도하는 <당대비평>의 ‘민족주의 비판’은 과거 우리에게 수용된 ‘내셔널리즘’(민족주의·국가주의·국민주의)의 의미혼용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극우국가주의와 민중적·저항적 민족주의를 싸잡아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친일·친미극우세력이 전유한 민족주의를 마치 정통 민족주의인 것으로 혼동하는 것은 학문적 난센스이며, 더구나 식민 상황에서나 해방공간에서 그리고 친미정부의 반공주의 하에서도 명맥을 유지해온 저항적·민중적 민족주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정당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박노자의 ‘보론’을 통해 나오는 얘기인데, 이 또한 새겨둘 만하다. 즉,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현상이 된 마당에 민족주의라는 한계가 분명한 이념으로 과연 진정한 해방과 역사발전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박노자는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연대와 진정한 세계화(민중연대와 통합)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 또한 민족주의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민족주의의 유효한 측면과 순기능을 평가하자는 것이지, 그것을 궁극의 이념으로 추켜세울 뜻은 없음을 밝히면서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 이어지는 논의는 서구적 근대이념에 대한 해부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논의는 훨씬 다양해지고 다각화된다. 니체의 난해한 철학속에 담긴 철학 자체를 전복하려는 욕망을 읽어내고, 괴테의 파우스트 속에 들어앉은 계몽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새롭게 해석하며, 도올 김용옥의 동양적 근대성이라는 색다른 주제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며, 신영복 선생의 ‘강의’속에 담긴 존재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관계론적 세계관으로의 전이의 필요성에 대해서까지. 아울러 ‘한나 아렌트’, ‘피에르 부르디외’, ‘노암 촘스키’ 등 20세기 사상사와 정치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거나 현존하는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적 괘적을 좇는 눈 밝은 독자이자 부지런한 학습자로서의 저자의 지적 편력과 그것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는 매우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저자의 왕성한 지적 편력은 어느덧 지적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곧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진정한 자식인의 책무’를 다하려는 신념인 듯하다.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y****y 2005.08.23.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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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지식의 "한국적"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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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외피는 국내 인문서/사회과학서의 저자를 한 명씩 불러내 책에 담긴 그들의 사상과 발언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는 책이다. 책의 내용을 잘 살피면 그런 담론에 고명섭이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달고, 독자들이 소화하기 쉽게 잘 다듬었다. 그렇다고 책의 요약본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일반 책 소개서는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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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외피는 국내 인문서/사회과학서의 저자를 한 명씩 불러내 책에 담긴 그들의 사상과 발언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는 책이다. 책의 내용을 잘 살피면 그런 담론에 고명섭이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달고, 독자들이 소화하기 쉽게 잘 다듬었다. 그렇다고 책의 요약본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일반 책 소개서는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독자가 소외된다. 뭐랄까 저자들이 자신의 지적 편력을 과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책을 읽은 사람만이 논의의 맥락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여기에 소개되는 책을 읽지 않았다해도 충분히 알아듣고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고명섭이 선정한 의제 "민족주의, 근대성/계몽, 정치/사회/지식"은 이 땅에서 사회문제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민족주의'는 편협한 것이라는 이상한 담론이 고개를 든다.


나나 내 친구나 계몽되려면 한참이나 멀었는데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목에 힘을 주고 이야기한다 싶으면 "니네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드느냐"고 따지는 이가 부지기수이다. (심지어 토론에서도 이런 이들이 많다. 발언의 내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발언하는 자의 태도를 자꾸 문제삼는다.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또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정치사회환경은 삼복에 부글부글 끓는 삼계탕 속이라 그 열기가 대단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도, "쿨한" 태도가 지식인의 미덕인 양 득세한다.


 


그래서 이 책이 선정한 의제가 내게는 가뭄에 단비처럼 무척 반가웠다.


이 땅의 지식인(그에 준하는 대학생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자기 딜레마가 있고, 한번쯤 자기정립이 필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에 꽤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 책에 소개된 책을 읽어본 이들에게는 자신이 읽었던 책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상상의 공동체>나 <만들어진 전통>,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읽었을 때는.. 그 이름의 무게에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내 안에서 민족주의 같은 편협한 시각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 강박에서 해방이 되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읽은 후에 너무 어려워서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지 좀 헤맸는데, 고명섭을 길라잡이 삼아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또 문학계의 참여/순수논쟁으로 나의 문학적 취향이 다소 말랑말랑한 게 아닌가 죄책감 비슷한 게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순수냐 참여냐가 아니라,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예술"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예술"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권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외래학문 일색인 커리큘럼을 아무 의심없이 수용했다가 이게 한국말인지 외국말인지, 이런 사상은 대체 왜 배우는 것인지 고민했던 대학생들.


-여러 사상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대고 흔들린 젊은이.


-냉엄한 자기 성찰을 한순간이라도 멈추고 싶지 않은 사회인.


-촛불집회에 나와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지금 바로 절망해버리고 싶은 그 누군가.

o********s 2008.07.0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