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모 방송에서 자연분만을 극찬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OECD 최고의 제왕절개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자연분만을 할 수 없어 제왕절개를 택한 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모유수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프로그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장 생활을 비롯하여 건강상의 이유 등 현실적으로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이들로서는 죄책감을 가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더욱 그렇기 때문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프로그램에 주목했다. 주변의 누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어떤 학원에 등록해 다니는지마저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에서 ‘이렇게 해야 된다’ 라고 제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신봉해야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대치동’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교육 서적이 그토록 불티나게 팔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IMF 이후 많은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왔다. 반 강제적으로 사회 생활을 접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름다운 귀환으로 칭송되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무너진 아버지의 권위 회복’을 부르짖었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혼인 여성은 부양할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되었고, 결혼한 여성은 일하는 남편이 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심지어 많은 여성들이 결혼 혹은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강요당하고, 때론 출산 휴가를 얻지 못해 직장을 관둔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노동부, 여성가족부(구 여성부)에 항의를 해봤지만 ‘그런 여성이 너무 많아서 도와줄 수가 없다’는 답변만을 들었다고 했다. 너무 많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은 훗날 아이를 낳고 양육해야만 하는 예비 엄마로서만 설정되는 듯하다. 그리고 이는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를 의미한다. 대학 후배가 입사한 모 대기업에서 200명이 넘는 신입 직원 중 여성은 정확히 7명 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 7명 중 대다수는 결혼, 출산 이후 직장을 관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역시 여자는 안 돼.”라는 말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고… 프랑스에서 한 때 생활했었고 지금은 미국으로 옮겨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은 사회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저자는 여성의 사회생활이 여성의 자아실현 및 가정 내에서 부부 간의 평등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곤 있다. 하지만 저자가 정말 중시하는 것은 ‘여성의 선택’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선택인 것처럼 엄마로서의 삶도 선택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으레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결혼한 여성에게 가정을 1차적 공간으로 부여한다. 그렇기에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으로서는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항상 아이와 함께 해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를 물으면서 그녀들은 움츠러들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결혼한, 게다가 아이까지 낳은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 톡톡히 한다. 일부러 출장과 야근이 잦은 부서로 발령을 냄으로써 여성 스스로 직장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에서부터, 결혼한 여성이 참여하기 힘든 회식자리에서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함으로써 여성을 소외시키는 것, 아예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런 상황을 접한 그녀들에게 가정은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은 선택일 수가 없다. 전업주부로서의 삶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강요에 의해 엄마가 된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 여성은 자신의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난장판’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보수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설명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상은 그녀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만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 자신의 기대치를 전혀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낙후된 보육시설 그리고 돈을 버는데 지쳐 가정 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남편까지… 그녀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다 쏟아버려서 남편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섹스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그녀들. 사회에서 아무리 찬양한들 소용이 없었다. 약물에 중독되고, 탈출구를 찾지 못해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기까지 하는 그녀들이 앓고 있는 문제에 대해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들의 남편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녀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라고… 수많은 엄마들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 모유수유가 좋다기에 해보지만, 정작 집 아닌 다른 곳에서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좁디 좁은 화장실에서 남몰래 모유수유를 하며 설움을 느꼈다는 그녀들이 내 주변엔 너무도 많다. 힘들어도 ‘이기적’이란 평을 들을까 봐 침묵해야만 하는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높은 사교육비 등의 이유로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않는 요즘, 학교 성적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올라가지만 정작 학력과 사회성은 떨어지는 요즘 아이들, 그들이 잘못된 원인으로 우리 사회는 또 다시 여성을 언급한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 강간범의 대다수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결과마저 발표되었으니, 우리의 엄마들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다 못해 결국 아이들을 망친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지… 전업주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란 나에게 엄마는 항상 나를 위해 준비된 존재였다. 학교에 갔다 오면 으레 간식을 내오고,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깨어 있는 존재. 난 단 한 번도 당신을 여성으로서 이해하려 노력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분이 “넌 뭐든지 될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난 결국 엄마가 될 것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는 현실을 느낄 뿐이었다. 엄마를 닮은 딸의 인생은 결국 엄마를 닮기 마련이라고… 혹자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런 책 너무 자주 읽지 마. 네 눈만 높아지고 남자들이 너 싫어해.” 모르겠다. 알아서 아프면 몰라야 하는 것일까? … 차라리 난 아프고 싶다. 아파야 아픈 곳을 고칠 수 있으니 말이다. |
| 내가 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도 아닌데 괜히 읽고 싶었다. 괜한 선택에 비해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완전한 타인일지도 모르는 나에게도 꽤 심각하게 다가왔다. 엄마 역할이라는 미명하에 이 땅의 여성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가... 아마 그럴 것이다. 모성에 의한 아름다운 희생(?)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고통받으면 살아 왔느냐는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희생을 지금까지 선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말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라고. 누가 이 무서운 희생의 강요를 한다는 말인가. 문제는 이 주체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미디어일 수도 있고 남성중심 사회일 수도 있고, 정부일 수도 있고.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신자유주의 프러스 개인주의 사회일 수도 있다. 결국 이 많은 괴물이 한 통속일 수도 있다. 엄마 자신을 수도 있다.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아이가 낙오자가 될 까봐 오늘도 우리의 엄마들은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힌 채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몬다. 자신 이외의 모든 이는 적이다. 엄마들은 희생당한 자신의 자아찾기에 대한 대안으로 무언가 통제하고 싶어한다. 통제에 대한 욕망은 능력있었던 엄마일 수록 더 하다. 힘을 쏟을 데가 없으니 아이에게 분노(?)를 쏟아붇거나 자신의 몸을 통제할려고 한다.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끊임없이 살을 뺄려고 한다든지... 물론 자신의 살을 통제하는 것이 정말 좋고 자식의 성공만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는 위의 공포가 해당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제기에 비해 해답은 간단하다. 연대. 사회적 연대. 리좀... 무엇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탁아 시설이 필요하다. 아주 간단하다. 근데 왜 이 간단한 일차적 해결책이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지. 책은 엄마로서의 희생에 의해 생기는 엄마로서 삶과 사회인으로서 삶의 불균형의 원인을 자신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론은. 자기 밖으로 눈을 돌리고 정치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라. 너무 단순화 시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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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워너라는 미국의 작가이자 베테랑 기고자인 여성이 프랑스에서의 양육경험과 미국으로 돌아온 후 150명의 미국 중산층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엄마'라는 위치속에서 가지게 되는 환상과 억압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산업시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엄마역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여론을 자세히 기술하고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말자는 내용으로 요약하고 싶다. 미국의 소극적인 사회보장정책 비판도 눈에 띈다. 가정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미국의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
엄마는 과연 미친짓일까. 스스로 자문해볼 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당히 선을 지키면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 할려고 할 필요도, 피하려고만 할 필요도 없다. 내 한계를 인정할 때 의무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