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의 나침반'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세상에 역사가 태어난 이유도, 아직도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터. 그래서 누구나 하는 새혁의 담론이라도 역사의 준거를 들 때는 남다른 설득력을 갖는다. 김춘추의 예를 들며 개혁에 있어서의 어젠더 선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거나, 대동법의 예를 들어 개혁이란 생활에 밀접할 때에 의미가 있다고 설파하면 누구도 딴지를 걸지 못한다. 또한 조광조나 광해군 당시의 북인들, 소론 영수 윤증, '붕당론'을 쓴 이익, 갑신정변의 주역들과 같이 실패한 개혁가들을 통해 개혁의 명분은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지적도 귀담을 만 하다. 하지만 그 모든걸 떠나서 개혁의 요체는 역시 자기극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악역을 자청한 태종이 없었으면 세종의 태평성대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민무구 민무질과 같은 외삼촌이나 아버지와 친구 먹는 이숙번이 버티고 있는 한 세종은 잘해야 그들과 싸우느라 힘을 허비하고, 못하면 그들에게 휘둘렸을 거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태종이 목숨 걸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이들 친구, 처남을 숙청했기에 세종은 민족 최고의 임금으로 만원짜리에 얼굴을 남길 수 있었다. 경종의 독살설에 휘말린 채 왕이 된 영조는 평생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론의 덕택으로 왕이 됐지만 노론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제 손으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것이었고, 왕조의 몰락이었다. 김대중 정부 내내 온갖 리스트가 거론됐지만, 그 이름은 항상 같았다. K, H라는 이니셜로 거명되는 사람들, 간혹 거기에 또하나의 K가 추가로 거론됐다. 이들은 태종에게 있어 처남들 또는 이숙번이나 마찬가지 존재들이었다. 영조에게 있어 노론 세력이었다. 극복대상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나 그렇듯이) 세종이 되고 싶어했다. 결국 그들을 빌미로 야당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것으로 임기를 마치고 말았다. 역사가에게 다소 위험할 지 모르지만 이덕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에 대해서도 나름의 칼을 들이댄다.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어젠다 선점을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놓고 보면 정조의 화성 천도에 비길바가 못된다. 과거사 청산과 같은 어젠다는 생활과 괴리돼 있기 때문에 무익하다. 우리 사회 최대 과제는 세제 개혁이다. 정작 손대야 할 곳에는 손을 대지 못하는 헛개혁이다. 듣고 보니 대체로 적절한 지적이다. |
|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역사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역사 비평가로서 이름난 저자 이덕일 소장(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말한다.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은 이른바 '개혁 피로증'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요즘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자 하는 시도다. 저자는 김춘추· 태종· 정조 등에게서 '성공한 개혁'의 조건을 찾고, 의자왕·숙종 ·영조 등의 사례로서 '실패한 개혁'의 조건을 지적한다. 저자의 의도인지, 선택된 각각의 사례는 현재의 그것에서 멀리 있지 않다. 가령 정조의 승부수인 '화성 신도시'는 '행정도시'와 겹쳐서 읽힌다. 정조는 화성 신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집권 노론의 기반 약화를 꾀했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인 고려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화성 신도시 건설을 상업혁명, 농업혁명을 이룩하는 계기로 활용하려 했기에 배울 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자들에게 무이자로 1천냥 씩을 빌려주어 화성으로 이전시켜 상업도시로서 키우려고 했으며, 병농일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국영농장을 만들어 이상적인 농업도시를 건설하려고 했음을 소개한다. 그리고 오늘날 논의되는 행정도시 역시 개인의 창의적인 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도시가 될 것을 제안한다. 그밖에도 현재의 길잡이가 될만한 사례는 여러 가지다. '과거사에 집착했던 왕' 영조를 통해 '현재의 권력으로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 역사까지 소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는 과거사 정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세종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했던 태종의 악역이란 다름아닌 동지들을 배신하는 것이었다'며 오늘날 우리사회에 민주화 공신들, 노동운동 공신들이 너무 많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럼 사례들를 통해 저자는 역사적으로 과거지향적인 개혁은 실패했으며 미래지향적인 개혁은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개혁은 '시대정신의 추구'이며, 국민의 생활을 위한 개혁을 한다면 '개혁 피로증'이란 단어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간혹 저자의 주관에 의해 선택되고 해석된 듯 느껴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역사 해석은 역사가의 몫이라는 점을 고력하면 그 또한 하나의 재미로 읽을 수 있겠다. 때로는 지나치게 당위적인 결론으로 맥을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신라의 귀족중심 인재 등용제도가 능력있는 인사의 진출을 막았다, 그러므로 골고루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라는 식의 결론이 그런 식이다. 각각의 장이 길지 않아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반면, 짧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역사에 관한 어느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에게 비교해 화제가 됐던 저자의 글 '개혁의 시대 창조의 시대, 정조의 창조적 개혁을 배운다'의 전문도 실려있다. 한국사로> |
| 어김없이 1년에 한권의 책을 내는 저자의 모습 ~ 한번 혹은 순간의 모습에는 강하지만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끈기가 부족한 나를 포함한 젊은세대에 많은 귀감을 준다.. 먼저, 좋은글로써 독자들에게 자칫 뼈다귀들만의 이름을 외우는 수준의 역사보기로만 머무르고 바라보는 시선에서 현실이란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실천적역사보기로 시선을 바꾸게 한 점에 대해서 감사드린다... 역사에서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하는 것들을 보면 백성입장에서 현재로 대입하면 국민입장에서 국가의 정책이나 문제에 대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전히 불만을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정축제 덜하고 세금 덜 걷고 완전한 평등은 문제가 있지만 기회로서의 평등, 과정에서의 평등이 있는 모습을 볼때 백성들은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지도층을 믿게된다고 본다. 지도층만이 배불리 먹으면서 백성들 등골빼먹는 행동들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어도 백성을 사랑하는 모습이 이전보다 많아지고 좋아지고 애쓰는 모습이 있다고 느낄 때 후한 점수를 주게된다. 실패한 개혁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참신하면서 주변의 여론도 좋다. 하지만 실패한 개혁들의 모습은 과정및 결과에서 땅을 파기 위한 삽질이 아니라 허공에 대고 삽질한 것 같은 애매하고 모호한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궁극적으로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들정도이다. 나름대로 역사관련 서적을 보면서 주목하는 일련의 과정은 모든 지도자들이 굶주린 광야 혹은 재야에 있을때는 내가 정책을 짜고 집행하는 자리에 오르면 정말로 잘해야지란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정권초기에는 그런 모습이 강하다.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주변을 감동시킨다. 또한 백성을 생각하고 자신은 이전의 권력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많다. 정권초기여서 그런지 부족하고 배고픈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육체적으로는 배고프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한 순수성을 보인다. 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배고픈 시절은 쉽게 잊고 편안하고 권력이 주는 속성에 취해서 이전의 다짐및 생각들은 머리속에서 사라지고만다. 또다시 역사에서 실패한 사례로 언급한 일들이 현실속에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아마도 더욱 슬플것이다. 흡사 화장실 들어갈때 마음과 화장실에서 일 다보고 나오는 마음의 묘한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 노무현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참여정부의 태생을 보면 사심도 없고 공명심도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뒤틀리고 그릇된 현대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정말로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자신의 돈 써가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그 땀과 눈물의 열매로 인해서 참여정부가 탄생했다고 본다. 당시에는 너무도 기뻐서 여의도로 달려가 2002년 6월 월드컵 감동의 물결처럼 축제의 모습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참여정부의 모습에 처음에는 신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되어지는 노무현대통령의 말실수 및 문제가 터지고 상황이 악화되면 국민들에게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책임있는 지도자상에 많은 의문을 갖게했다. 또한, 여러게이트들이 들리고 권력에만 관심있는 사심파와 공명파들에 의해서 이 정권도 어김없이 과거정권의 몰락과정을 답습하는가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작년 대통령탄핵으로 인해 위기로 몰린 참여정부에 국회과반수란 선물을 통해서 그들이 잊을지도 모를 태생의 사명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태생의 사명을 잘 기억하고 일해야 될 사람들이 자신이 잘 나고 운이 좋아서 자리를 차지 한것으로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승리에 도취해 판단능력을 상실한 것인지 참으로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다시는 돌아오지않는 시간말이다. 그러다보니 개혁은 흐지부지되고 태생의 사명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허공에 대고 삽질만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예전 노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말한 기억이 난다. 자신은 태종이 아닌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을 해야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태종도 아닌 세종도 아닌 모습으로 보인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말이다. 최근 참여정부에 대한 인상은 대통령부부가 같이 쌍꺼풀한 것만 기억에 남을 정도이다. 노무현대통령을 바라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리더십이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볼때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예전에 비해서 나아진것 없이 도토리 키재기 수준의 인사이다.. 진심으로 노무현대통령이 중심이 된 참여정부가 후대 역사에서 성공한 개혁 그룹에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통일을 준비하고 미래로 뻗어나가야 할 우리들이 기쁘지 않겠는가~ 이덕일박사의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을 포함한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흔적인 역사를 통해서 현 정부가 많은 insight와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 그리고 잘못된 방향에서 헤매는 모습이 있다면 과감하게 틀을 벗어던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선회하길 바란다. 더이상 개혁의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닌 개혁의 실제적인 내용이 나오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역사속에서 나온 성공한 개혁 시대에 잠시나마 내 몸을 던져보면서 정말로 역사속에서 평가받는 성공한 개혁의 시대가 단지 과거의 모습이나 추억으로 회상되는것이 아닌 현재에 느끼며 그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시대를 고대하고 희망한다. |
|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시한번 한국사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좀 신선한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한 개혁의 주체들은 이름 모를 땅으로 사라지고 만다. 죽든 살든. 이러면 안되는데 말이다. 하나의 개혁을 이루려면 또 다른 개혁이 미뤄지고, 또 다른 개혁을 이룰려고 하니 다른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의도는 계속해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개혁을 반대하는 자들이 있는한 그 개혁은 지속적으로 벽에 부딪힐 것이다. 개혁이란 어떤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와 그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싸움이 개혁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 현실은 조선시대나 현재나 별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운 위인들을 보면 다들 좋은 분들이 많다. 그러나 소론, 노론, 남인, 서인등의 당수들을 보면 그다지 좋게 생각이 들지는 않다. 현대시대의 리더들은 모두 세종만 추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권을 물려주기 위해 모든 세력들을 제거한 후 물려준다. 그래서 세종시대에 태평성대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태종의 성격을 띄어야 하는데, 왠 낙하산만 자꾸 보이누…. |
| 역사시간이면 듣던 역사는 현시대의 자화상이며 인간사의 수레바퀴라는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저자도 책에서 이야기 되었듯 이시대 사회 곳곳에서 계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용어가 너무 무책임하게 표명되다 보니 이제는 본질에 대한 이해를 떠나 혐오증을 느끼는 수준가지 온 것이 사실이다. 머나먼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 통일부터 고려와 조선의 각종 개혁정책의 실천과 결과에 대한 이해를 쉽게 서술하고 뒷부분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갸혁에 대한 반추의 여지를 남기는 저자의 의도가 매우 멋있다. 자신이 개혁을 부르짓으면서 급하게 당장의 효과를 요구하는 갸혁이 대부분 실패하듯 장기적인 실천 가능 전략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는 그 어떤 형태의 개혁도 실패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세종의 찬란한 중흥기는 선대의 태종이 이룩한 공신들과 왕실내부의 반발을 잠재우는 피비린내 나는 처단자 역할이 있었기에 역사에 길이 남는 문화유산을 탄생시킨 것이다. 정종의 경우 사도세자에 대한 개인 원한에만 급급한 개혁이 이었다면 지금의 화성 즉 수원이 축조되기 어려웠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시대의 진정한 개혁의 목표와 실천 가능한 비전이 존재하는지를 고민할 때이다. |
|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혁명은 그야말로 피를 통한 피지배계층의 권력의 쟁탈이다. 개혁은 무엇일까? 저자는 개혁은 시대정신의 추구라고 한다. 다시 시대정신이란 한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문제점이다. 정치혁명과 사회혁명.. 시대정신으로서의 혁명은 생활개혁, 개혁피로. 개혁,시대정신의 시대반영성--변화.. 일관된 민중의 힘.. 변하는 것만이 지조를 지킨다. - 볼프 비어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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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역사비평서''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개별적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신라 골품제를 비판하는 내용에서 삼국의 지도에 주석처럼 붙어 있었던 "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 수도를 한반도 중심으로 옮겨야 했지만, 귀족들의 반발로 결국 그러하지 못했다" 는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다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빈약한 재료들을 다루는 요리사의 솜씨가 상당히 뛰어난 것 같다. 비유하자면, 빈약한 재료들이나마 그 각각의 맛을 한껏 살려냈다고 할까? 각각의 역사적 사실들에서 이끌어 낸 교훈들은 오늘날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현실의 한국사회의 모습에 한숨이 나오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단순한 한탄 뿐만이 아니라 나름의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하겠다.
상태에 별점 2개를 준 이유는, 이 책의 편집 및 구성이 최악이였기 때문이다. 일단 보통 책 크기보다 세로가 짧아서 답답한 느낌을 주는데, 좀 큰 글씨에 산만하게 배치된 흑백 사진들(사진들을 페이지 전면에 배치한 것도 좀 그랬지만, 가로로 큰 사진들은 차라리 크기를 줄여서 세로로 배치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글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배치해 놓은 것 같은 ''역사 더 읽기'' 같은 코너는 읽는데 짜증을 배가시켰다.
원대한 아젠다를 제시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은, 읽고 나서도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본인도 ''신라의 삼국 통일은 우리나라 역사의 강역을 축소시킨 것'' 이라고 비난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인데, 이 글을 읽고 나서 헛되지만 역사의 가정을 한번 해본다. 김춘추같은 아젠다를 가진 사람이 왜 고구려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영양왕을 몰아낸 연개소문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 그는 통일정권이 탄생할때마다 고구려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중국과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겠다는 아젠다를 제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같은 북방의 대국이 당시에 그런 아젠다를 실현할 여력이 없었을리가 없다. 단순히 쿠데타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 대당 강경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에, 그것이 고구려 망국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진정한 개혁이란 시대정신의 실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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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이나 영화 리뷰는 따로 운영하는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종종 올리곤하지, 이렇게 서점 사이트에 직접 올리는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는데, 읽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서 울컥하는 마음에 글을 남겨 본다. 참고로 이 글은 이 책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태(?)에 관한 것으로, 인터넷 쇼핑몰 상품평쯤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책은 깊게 파고든 심오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나는 이런 류의 역사책을 시간 때우기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 역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그래, 내용은 좋다. 과거의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현재의 노무현 정권이 이러저러했으면 좋겠다-라는 비전을 제시한 것도 좋다. 그런데, 이 작가와 출판사, 책 내면서 교정은 안 본 건가? 군데군데 넘쳐흐르는 오타는 차라리 귀엽다. 아예 인쇄 자체가 되지 않아 글자가 찍혀있어야 할 부분이 하얀 블랭크로 남아있는 건 예사고, 괄호안에 들어간 한자도 변환을 시키지 않아 그대로 한글로 남아있으며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한자(漢자)'.}, 문단 정렬은 제멋대로 들쭉날쭉, 분명 나누어질 문단이 아닌 것 같은데도 뻔뻔하게 나누어져 들여쓰기까지 곱게 되어있다.
게다가 작가는, 역사 지식을 쌓느라 국어 공부에는 다소 소홀했는지 접속사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앞 문장에 나왔던 접속사가 그 다음 문장에 또 등장하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은데, 예를 들어보면 - 나는 밥을 먹었다. '그러나'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더 먹지는 않았다. - 뭐 이런 식의 구성이다. 같은 한국사람들끼리 비록 의미는 통할 지 모르나, 명색이 '책'인데 다듬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초등학교 문예반 어린이도 이런 식으로는 글 안 쓴다.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같은 경우도 몹시 자주 등장한다. 앞 문장은 어려운 전문 용어들로 설명하고, 뒷 문장은 고난도의 앞 문장을 쉽게 풀어주는 해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라면 어느정도 작가의 '친절'로 받아들이겠지만, 단지 줄 수를 채우기 위해 단어 몇 개만 살짝 바꿔서 똑같은 말을 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니 이건 좋게 봐 줄래야 봐 줄수가 없다.
중요한 건 이런 눈에 거슬리는 실수들이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현저히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출판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만큼 오타도 있을 수 있고 문장도 서툴 수 있고 인쇄도 안 됐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해야 눈을 감아주지. 이래서야 마치 하루라도 빨리 서점에 진열하기 위해 보름밤낮 잠 못자고 비몽사몽 건성으로 펴낸 책 같지 않은가.
벌써 출판된지 2년 된 서적이니, 재판이 나왔다면 분명 앞서 말한 여러 사항들이 수정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설마 이렇게 최소한의 교정도 안 된 책을 아직도 버젓이 판매하고 있지는 않겠지. 한 권의 책이 품고 있는 알맹이, 그리고 그 속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담는 그릇에 소홀하다면 과연 독자들이 알맹이와 이야기를 100%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나 바쁘고 힘든 출판계겠지만, 책을 내는 소중한 작업의 그 마지막까지 신중함과 꼼꼼함을 잃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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