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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의 죽음을 통해 살펴본 우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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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반 일리치(Ivana Ilicha)도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재판관으로 있다가 마흔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적이고 세련되고 활기차고 사교적인 인물로서 출세의 길을 걷는다. 직무는 그의 야심을 만족시켜 주었고, 무도회나 카드놀이를 최고의 기쁨으로 생각하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인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거룩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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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반 일리치(Ivana Ilicha)도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재판관으로 있다가 마흔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적이고 세련되고 활기차고 사교적인 인물로서 출세의 길을 걷는다. 직무는 그의 야심을 만족시켜 주었고, 무도회나 카드놀이를 최고의 기쁨으로 생각하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인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거룩함이나 영원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속인(俗人)으로, 더 나은 수입,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살아가고 소비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며, 그의 삶은 우리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병에 걸린 이반 일리치는 의사의 지시를 믿고 그것을 따르기 시작한다. 또한 사람들의 질병과 건강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통증이 줄어들지 않았지만 전보다 좋아졌다고 억지로 믿으려고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는 믿음 중에선 그러한 생각에 익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다. 클라우스 키에체베터의 논리학에서의 삼단논법도 카이사르에게 적용되었을 때는 옳지만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는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카이사르와 같이 추상적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그와 같이 다른 모든 인간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별개의 존재가 죽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건강의 악화를 부인하려는 이반 일리치는 건강한 타인을 증오한다. ‘왜 하필 나인가’와 같은 질문은 딸과 그녀의 약혼자의 건강한 육체에 분개하며, 나아가 자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죽음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동정심 따위는 티끌만큼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는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주위의 모든 것들에서 고통스럽고 공포심을 느끼며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낀다.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것이 야기하는 고통에 의문을 갖는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외견상 성실하고 비교적 순탄한 성공 길을 달려온 그의 삶은,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잘못 살아왔을지 모른다고 부인하게 된다. 삶에 대한 미련과 그것의 정당화, 어쩌면 그것이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지만 이러한 질문의 회피를 통해 끊임없는 욕망을 갖는 것이다. 죽음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다 좋다고 고뇌하며, 적어도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예전의 모습처럼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이번에 살아난다면, 살려만 준다면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는 다짐 속에서 그의 또다른 욕심을 보여준다. 한편 수많은 친지와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철저한 고독 속에서의 이반 일리치는 오직 과거의 추억만을 곱씹으며 지내게 된다. 과거의 장면으로부터 현실로까지 회상하는 과정은, 자신이 죽음을 향해 점점 다 가까이 다가가고 그것의 저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게 한다. 이 같은 체념은 그에게 게라심을 발견하게 해준다. 가족 의사 모두가 공모하여 그를 속이면서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그를 대하는 상황에서, 오직 게라심만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진상을 숨기지 않고 쇠약해진 주인을 가엾게 여길 따름이었다. “누구나 인간은 죽는 법입니다.”와 같이 말하는 그의 태도는 그날그날에 충실할 뿐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이것은 이반 일리치에게도 죽음에 대한 작지만 다정한 위로를 준다. 결국 고뇌와 회의, ‘게라심’의 보살핌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죽음이 빨리 왔으면, 기꺼이 죽음을 껴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자기 인생이 옳았다는 확신, 즉 그를 단단히 움켜잡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던 정신적인 고통은 아들을 통해 비로소 바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그를 짓누르던 고통에서 해방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짐을 통해 그는 죽음의 고통을 넘어선 빛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죽음의 단계는 임상심리학의 관찰로서 부인과 분개, 타협 혹은 거래, 체념, 친화의 단계로 나타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또한 위와 같은 단계를 거치면서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끔찍한’ 그의 삶이 죽음이라는 세례를 통해, 파멸이 아닌 삶의 일부로서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성찰하게 하고 나아가 한계를 넘어선 무한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은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부정하고 회피하려 한다. 죽음은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항상 대비하고 계획해야 된다는 생각이며, 세계를 합리적이고 의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현대성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이항적으로 판단하는 사고는 삶의 행위 중에서, 심지어 타인의 죽음 가운데서도 자신의 죽음을 ‘따로’ 생각하려는 소외를 가져오며,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 즉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있어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YES마니아 : 로얄 a*****e 2005.11.26. 신고 공감 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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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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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식처럼 정형화된 걸 극도로 거부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라든지, 계몽소설이라든지,. 그래서 뭔가 선하기만 한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문학을 혐오한다. 내 취향이 그렇단 말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아니라.   톨스토이의 단편소설들도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삶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 특히 톨스토이가 도덕가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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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식처럼 정형화된 걸 극도로 거부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라든지, 계몽소설이라든지,.

그래서 뭔가 선하기만 한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문학을 혐오한다.

내 취향이 그렇단 말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아니라.

 

톨스토이의 단편소설들도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삶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 특히 톨스토이가 도덕가로 변모한 이후의 작품들의 내용은 참 교훈적이지만 뭐랄까..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달까. ㅋㅋㅋㅋ 너무 교훈적이라서 말이다.

 

나름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우연히 다치게 되고 그게 죽음으로 이어진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 자체보다는 그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차지하게 될 위치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한마디로 이반 일리치가 '잘 살아왔다'고 믿은 평생은 위선과 가식으로 끓어넘친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를 고스란히 거치면서(부정하고, 절망하고, 수용하는 등..) 정말 중요한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두 질문은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외에도 두 편의 죽음에 대한 다른 단편들이 실려있다.

 

먼저 '세 죽음'.

여기서 난 두 죽음까지는 잘 비교하면서 읽다가 세번째 죽음은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서 잠시 헤맸다. 그정도로 세번째의 죽음은 의연하고 순응적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과 하인'.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상인이 죽을 상황이 되자 '갑자기' 착해져서 자기 하인을 살리고 자신은 죽는다는 내용.

저런 식의 비약은 톨스토이의 '선'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해석들을 한다.(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즉, 계산된 '선'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는.

네, 옳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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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두 가지 짜증나는 점이 있었는데,

 

1. 러시아 소설은 이름들을 외우는 게 너무 힘들다.

애칭만 해도 두 개씩 줄줄 달고 나오고. 비슷한 이름도 많고.

처음에 친해지기가 너무 어려운 게 러시아 소설들인 듯.

 

2. 번역. 역시나 또.

등장인물들이 사투리를 쓰거나 하인다운 말을 쓴다는 점에서 번역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대화가 너무 어색해서 마치,

엄청 연기 못하는 배우들이 대사를 읽으면서 연극하는 걸 보는 듯했다

w***r 2009.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