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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이 되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귀를 쫑긋 거린다. 혹시나 우리가 아는 인물이 될까 하여 간절한 바람을 안고 기다리게 되는데, 같이 거론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응구기 와 시옹오'라는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작품을 썼을까는 궁금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처음 보는 제목이었지만 '응구기 와 시옹오'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반가운 작품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인 아프리카 케냐에서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인물과 그에 반하는 인물들, 다시 케냐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케냐의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케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 검색해보았고, 이 소설이 1952년 '마우마우의 투쟁'이 있었던 시기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마우마우의 투쟁'이란 유럽인에게 빼앗긴 농토를 찾으려는 민족운동이며, 이 운동은 케냐의 독립운동이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군과 독립군의 가족, 백인의 그늘에서 그들을 잡으려는 자치대군은 우리의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독립군인 키히카가 한밤중에 무고의 집에 찾아왔고, 그를 숨겨주었던 무고는 그에게 걸린 현상금이 크다는 걸 알았다. 키히카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무고는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다. 사람들은 키히카의 죽음을 기렸고, 독립기념일을 맞아 무고에게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은 때로는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다. 무고는 왜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계속 거절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키히카의 친구인 카란자가 정말 키히카를 고발했던 것인지 알수 없다. 다만 무고는 제대로 잠을 못자고 마치 수행자처럼 말없이 묵묵히 밭일을 할 뿐이었다.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인 무고에게 뭄비의 남편인 기코뇨가 자신의 수용생활과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뭄비와의 불화에 대해 말했고, 뭄비 또한 수용소에서 나온 기코뇨가 자신이 카란자의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곁으로 오지 않는 기코뇨에 대해 말했다.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코뇨와 뭄비는 자신의 속내를 무고에게 이야기했고, 자신의 감정들이 서로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죄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자신의 죄를 숨기고 그저 아무일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죄때문에 하루하루를 고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밭을 가는 일로 소일했고,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기를 거부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에 괴로워했고 거짓말로라도 거짓된 연설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묵묵히 밭을 갈았던 일 또한 참회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고자질했던 것을 밝힐 수 있는 용기를 냈고, 자신을 대신해 죽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를 위해 나섰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요한복음 12장 24절 (317페이지)
작품속에서 우리는 세계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각으로 쓴 글에서 우리들의 시각으로 역사를 채운다. 한 나라의 독립에 대한 투쟁은 비단 어느 한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도 과거에 고통스러운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다른 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응구기의 눈으로 바라본 케냐의 역사는 과거 우리의 아픈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것들이 닮았다. 독립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오늘을 살기 위해, 우리들에게 다가올 희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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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된 아프리카의 절망과 희망을 노래하다. 아프리카 문학을 처음 접한 것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숨통>(2011,민음사)이라는 열 두편의 작품이 담긴 단편집이었다. 그 이후 존 쿳시의 <추락>(2004,동아일보사)이었고, 세번째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응구기 와 시옹오의 작품 <한 톨의 밀알>을 만났다. 우리나라 문학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만나는 다른 나라의 문학들이 대부분 영미, 일본, 유럽, 남미권의 책들이다. 그곳에 뿌리를 두지 않았지만 자주 만나다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나 지명, 이야기의 흐름들이 친숙하다 보니 자꾸 손길이 가게 되고, 대부분 많이 번역되는 책들이 내가 접하는 문화권의 책들이다 보니 그 외에 다른 나라의 문학은 손에 꼽을 정도로 조악하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 톨의 밀알> 역시 작품은 접하지 않았지만 매년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덕분에 알게 되었다.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접점이 닿지 않다가 최근에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위에 언급된 작품들 역시 아프리카 문학이지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출생이고, 존 쿳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응구기 와 시옹오는 케냐 출신이기에 아프리카 문학이라고 하지만 각 나라에서 보여지는 정치적 상황이나 문학적인 특색이 다르다 보니 이전에 읽었던 작품이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그의 작품을 읽었을 만큼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 톨의 밀알>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63년의 케냐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백인에게 땅을 빼앗기고 그들은 백인 아래서 힘들게 일을 하고 겨우 푼돈에 지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무엇보다 케냐의 독립을 강렬하게 희망하는 영웅 키히카의 맹렬한 투지와 자신을 희생해서도 자신이 태어나 나고 자란 곳의 희망을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강렬하게 그려져 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한 개인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기코뇨, 뭄비, R장군, 카란자, 무고, 의 모습은 개개인의 이익과 울분을 엿 볼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개인의 수단으로 하여금 가난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기코뇨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뭄비에게 빠져 카란자와 라이벌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훔치는 과정이 재밌게 읽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응구기 와 시옹오는 케냐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뭄비의 오빠 키히카가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이 조직의 배신자로 카란자가 지목된다. 그러나 무고는 갑작스레 찾아온 키히카를 숨겨두다가 키히카의 목에 엄청난 현상금이 걸린 것을 알고 밀고를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키히카를 마지막까지 숨겨준 영웅으로 칭송하게 되자 그는 고민에 빠진다. 백인정권의 탄압으로 많은 케냐의 사람들이 수용소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게 되고, 뭄비의 남편인 기코뇨 역시 6년을 수용소에 있다가 아내에게 달려오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뭄비는 카란자의 아이를 품에 안고 살고 있다. 시간이 흐른 사이 모든 것이 변했고, 개개인마다 바뀌어버린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백인과 흑인의 대립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차이 또한 너무 현존하게 차이가 지다보니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자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뭄비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주체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당시에 살았던 많은 여자들이 핍박을 받고, 남편이 때리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존재로서 그려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백인과 흑인과의 대립이라고 하지만 그들 속에서 다시 흑과 백이 나뉘는 상황이 너무나 잘 그려져 있어 억압과 핍박, 날 것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응구기 와 시옹오의 작품은 케냐의 모든 것이 잘 담겨진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치우치지 않은체 스러져가는 영웅의 모습이나 당시 케냐의 정치 상황, 남녀간의 모습, 경제 상황들을 보여줌으로서 다시 한 번 케냐의 모습을 연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케냐를 바라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각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선택하고 누리는 삶을 생생하게 지켜 볼 수 있었다. --- 그때는 아무도 몰랐지만, 돌이켜보건대 와이야키의 피는 토양과의 결합에서 주된 힘을 얻는 조직을 태어나게 만든 한 알의 씨를 그 안에 담고 있었다. - p.24 케냐는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죽음을 필요로 해.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나는 너를 위해 죽고,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어야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거지. - p.153 카란자는 기코뇨와 다르게 연주를 했다. 기코뇨는 거칠고 격렬하게 연주했다. 때로는 악기ㅏ 그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연주에는 거칠고 조야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카란자는 달랐다. 그는 연장을 다루는 목수처럼 악기를 통제했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더 확실하고 더 세련미가 있었다. - p.154 "정치가 아니라 삶이야. 다른 사람이 자기 땅과 자유를 가져가도록 놔두는 사람이 과연 남자일 수 있을까? 노예한테 삶이란 게 있을까?" (중략) 이 땅은 케내인의 것이야. 아무도 그걸 사고팔 권리가 없어. 땅은 우리의 어머니야.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인 땅 앞에서 평등한 거야. 백인 정착민들 중 아무라도 생각해봐. 수백 에이커가 되는 땅을 소유하고 있어. 그런데 거기에 눌러앉아 커피와 차와 사이잘과 밀을 기르느라 뼈가 빠지게 일하곧 한 달에 단돈 10실링을 받는 흑인들은 뭐지?" - p.1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