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만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지만 첫 번째 시집에서 읽었던 시들과 겹쳐 보인다. 아무래도 시선집이라 좋은 시들을 끌어 모아서 묶어두었나 보다. 읽었던 시들보다 새로운 만남의 시들을 위주로 읽게 되었다. 가끔은 새 만남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잎”에서 인생을 발견하다] 늘 이만치 저마다의 목숨들이 피었다가 지고 졌다간 다시 피는 살아 있는 시간 나무에 피어나는 잎을 보면서 사람목숨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단지 잎의 시간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간보다 조금 더 빠를 것이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잎은 나라는 사람보다는 더 충실하게 살다가 가을에 하늘로 돌아가지만, 과연 나는 낙엽처럼 그렇게 충실하게 살다가 갈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충실하게 삶을 살아온 것 같지가 않다. 반성해야 한다. 반성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반성 다음에 대책이 있지 않다면 늘 지금과 같지 않을까? 조금은 자신감 있게,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지금 당장 예전 하는 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친구 가게에서 하는 일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일을 함에 있어서 시키지 않지만 해야 할 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날 그렇게 사라져간 목숨들이 조용히 그만치 되살아 오는 잎은 떨어지면 또 계절이 바뀌면 새 잎이 돌아온다. 사라져간 목숨들이 그만치 돌아온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그 세대가 계속 이어간다.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나무의 세상도, 사람이 사는 세상도 이렇게 끊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그만치 되살아오는 목숨들이(사람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지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도록 살고 싶다. 이제는 거리에 심어져 있는 나무의 잎을 보면 왠지 지금 생각한 결심들이 그 잎에 붙어서 나를 지켜볼 것 같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앞으로의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겠지. ![]() - 저 조그마한 꽃잎들도 피었다가 지겠지. 인생의 한정된 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음”에서 인생의 열정에 대해 생각하다] 물은 이름을 잃고 상온에서도 김을 뿜는 다른 이름이 된다. 열을 안으로 숨기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미끄러운 얼음에 찍찍 들어붙는 것을 보면 얼음의 뜨거움을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일하는 곳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장이다. 아이스크림은 그냥 두면 스르르 녹아버린다. 그렇게 되면 맛도 잃게 된다. 포장을 하는 손님들에게는 얼음 대신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포장해 드린다. 드라이아이스는 얼음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액체가 아닌 기체로 변해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하지만 둘 다 공통점은 있다. 둘 다 열을 내부에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이아이스의 열정으로 인해서 포장된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는 것이다. 얼음도 마찬가지다. 손바닥이 미끄러운 얼음에 찍찍 들어붙는 것을 보면 얼음의 뜨거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내부에 숨긴 뜨거움을 다 발산하게 디면 다시 얼음은 물로 변하겠지만 그 뜨거움만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든지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는 얼음으로 돌아가기를 꿈꿀지도 모를 일이다. ![]() - 매장에서 집까지 오는 데 녹지 않게 열정을 다 바치친 드라이 아이스(얼음도 마찬가지겠지만) 는 사라졌지만 그 덕분에 아이스크림은 녹지 않을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처럼 열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을까? [“월정사 금강교 위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다] 사람의 배에서 태어나 신의 손길에 사라지는 외로운 목숨 - 나의 주변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과 무관할 줄 알았다. 아버지가 떠나신 것이 2005년도이니 벌써 5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 가족들도, 내 주변 사람들도 한 사람씩 떠나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을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올 때마다 무엇인가 허전하고 슬펐다. 앞으로 어머니도 형님도, 나도 그리고 가까운 친척 분들도 시간이 또 한 번 훌쩍 지나면 하늘로 돌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울적해지고 허전해진다. 사람의 배에서 태어나 신의 손길에 사라지는 외로운 목숨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줄 알면서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인가 보다. 1년에 몇 번 아버지가 계신 미타원이라는 곳에 다녀온다. 어머니와 아침 일찍 다녀오거나, 지방에 살고 있는 형님이 서울에 올라오는 경우에는 형님의 차로 다녀오기도 한다. 갈 때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좋아하셨던 사이다 한 캔과 과일과 떡을 준비해 간다. 사실 술을 좋아하시지만 술은 못 놓게 해서 가져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신다. 올해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다녀온 날은 마음이 더 무겁다. 거기서 본 어머니 눈물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대흥사 숲길”을 아파트 뒷산에서 발견하다] 서로 손을 잡으려 뻗친 팔을 깍지 끼고 있는 가지 끝. 투명한 바람은 몸을 뒤집고 있는 초록색 잎새 몸짓 위에 오월의 햇살처럼 반짝인다. 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것을 빼면 정말 환상적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적으로 너무 덥다. 이제 봄이 물러가고 여름이라도 온 것은 아닐까 싶다. 겨우 6월초인데 이렇게 더우면 아마 한여름에는 무진장 더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낮에 볼 수 있는 햇살은 너무 기분 좋게 해준다. 마치 마음에 있는 그을음까지도 말려 없애 줄 것 같다. 아파트 복도에 잠깐 나가서 뒷산을 바라보니 뒷산 나무들 모습들에서 깍지 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반짝거리는 잎새 때문에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대흥사 숲길도 뒷산과 다르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대흥사 숲길을 거닐어 본 적은 없지만.
- 역시 휴대폰 카메라로는 잎새가 반짝 거리는 것까지는 잡지를 못하는 구나.
날씨가 더운 6월 가끔은 대흥사 숲길과 비슷한 뒷산의 숲길을 거닐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투명한 바람이라도 만나면 반짝거리고 있을 초록색 잎새도 구경하는 자연의 선물을 받아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
| 허만하의 시는 우선 제목들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제목만 가지고 그의 시에 다가서면 실망하기 쉽상이다. 허만하의 시들은 건조하다. 물기가 거의 없는 듯하여 읽는 이가 목이 마를 정도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꾸 끌린다. 많은 시집을 낸 것도 아닌데 꽤 오랫동안 봐왔던 것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건조한 모래바람이 부는데 그 모래가 알고보니 어린 시절 뛰어놀던 놀이터에 있던 모래랄까... 잊고 있었던 것을 만나는 것같은 느낌이다. 지루해 보이는 문체이나 어디하나 흠잡을 때 없고 건조해서 물기가 없음에도 마음에선 무엇인가 샘솟는 그런 글쓰기가 허만하의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