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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다. 새해다. 새해가 되면 우리가 늘 꿈꾸곤 하는 희망찬 미래와는 안 어울리게 최근 디스토피아 소설을 2권 연달아 읽었다. 바로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84>가 전체주의가 극에 달한 사회, 그래서 구성원의 일거수 일투족이 빅브라더의 감시 하에 통제되는 암울한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멋진 신세계>는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발전시킨 과학 문명이 극에 달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84>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 당하는 과거의 사회이고(지금 기준으로 볼 때), <멋진 신세계>의 사회는 원하는 모든 것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미래의 사회이다. 하지만 결론은, 두 사회 모두 아니라는 거다. 그럼 본격적으로 <멋진 신세계>의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A.F 632년이다.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여기서 연도의 기준은 포드사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해 낸 1908년을 기원 1년으로 친다. 고로, A.F 632년은 지금으로부터 약 528년 후의 이야기라 하겠다. 그럼 도대체 포드사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해 낸 것이 어떤 의미이길래 연도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었을까? 바로 이 시기에 T형 자동차 라인에 최초로 자동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도입되는데, 이를 통해 대량 생산 체계가 구축되고 생산성이 극대화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설의 앞부분에는 태아가 병에 담긴 채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제조’되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됐건 이 당시의 세계는 <공유, 주체성, 안정>이라는 기치 하에, '만인은 만인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절대 진리로 여긴다.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제조될 때부터 알파-베타-감마-델타-입실론으로 계급이 나뉘고 계급에 따라 차등화된 영양분을 공급 받는다. 이 시기의 과학자들이 고심하는 난제는 효율성을 위해 어떻게 하면 하나의 난자에서 최대한 많은 태아를 생산해 내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난자가 수없이 분열하여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같은 머리카락, 같은 눈동자 색상, 같은 체형을 가진 쌍둥이들이다. 병 속에서 제조된 아이들은 자라면서도 반복적으로 다양한 수면학습을 받는다. 이 수면학습을 통해 최하층의 일을 하는 입실론 계급조차도 자신이 우월한 알파계급으로 태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왜냐면 알파계급처럼 책임이 많고 머리쓰는 일은 피곤하다고 무의식적인 반복교육을 받았으니까!)
또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에 대해 배우며, 의학의 발달로 인해 죽을 때까지 늙지도, 젊음을 잃지도 않는다. 이 사회에서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이 고유하게 가지는 감정(예를 들어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한다던가 하는)은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취급된다.
이곳의 사람들은 수면 학습에서 배운 대로 자신들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들은 일이 끝나면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고, 자유롭게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삶에 있어 고통과 고뇌, 그리고 눈물 따위는 불필요한 것이다. 혹시라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작은 소마 몇 알만 먹으면 그 모든 우울한 감정들을 안온한 행복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어느 날, 이 사회 속으로 소위 야만인이라 불리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은 존이 들어온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 린다가 해주는 말을 들으며 문명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울 것이라 상상한다. 하지만 문명 사회 안으로 들어온 존의 눈에 비친 현실은 그의 상상과는 달리 끔찍하기만 하다. 똑같은 얼굴의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똑같은 것에 열광한다. 이 곳에서는 신도, 눈물도, 사랑도 없다. 단지 행복이라 믿고 있는 쾌락만 있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는 각자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서로 다른 외모와 능력으로 인해 차별받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인해 울고, 웃고, 싸우며, 행복해 한다. 또한 나이가 들면 병들고 쇠약해지고 추해지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없이 약해지기도 한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이 모든 것들(병들고 나이듦, 고통, 눈물, 차별...)이 사라진 신세계는 정말로 행복한 곳일까?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부품처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 쓰임새가 정해져 있다면, 인간이 기계부품과 다른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학습된 감정은 그들에게 자신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사람들이 끝없는 조건반사 학습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을 투명하게 인지할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린 현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특징적인 측면은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인 'Brave New World' 도 세익스페이어의 작품에 나오는 문구이다.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에서 미란다는 이렇게 외친다. " How many goodly creatures are there here!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has such people in it! " " 아아, 얼마나 신기한가! 여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 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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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이 세력을 휘어잡고 인간을 지배한다-에머슨. 이 책을 보면서 20세기 초중반의 책은 어쩌면 이리도 닯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화가 완성되어 분업의 형태가 발달하고 콘베이어를 이용하여 인간을 단순 작업에 얽매이게 한 포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랄까? 어쩌면 지난 세기 초반에 인간은 과학에 대한 환상을 신봉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모순된 존재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산업화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획일화,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대한 두려움, 인간 이성의 무한한 믿음이 한데 어우러진 20세기의 최고 소설이 아닐까 여겨진다. 프롬이 지적했듯이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착각이며 오히려 사회에 흡수됨으로써 자유를 찾지만 오히려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당시 사회적 메커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들어내주는 작가의 통찰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이 글을 단지 문학 작품으로만 보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산업화가 모든 것을 가져다 주리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은 결국 불행으로 끝나며 우매한 대중을 프로파간다로 현혹하는 당시의 사회적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어찌보면 그 시대보다 지금이 더할 지도 모른다. 더욱이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이라는 '소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대중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게 묶어두는 지도 모른다. 계급사회, 물질 만능주의, 소마....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암시를 던져주는 '멋진소설'이다. |
| 우리가 도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도덕이 되어버리는 사회. 그러니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생각하는 것, 고민하는 것은 다 비도덕적인 것이다. 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자유연애를 해야 하고, 조작된 정보와 믿음을 근거로 항상 행복해야만 한다. 그래서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기 위해 소마, 라는 약을 먹는다. 그때 고민하고 불행할 자유를 달라고 한 원시인이 등장한다. 그는 지금의 현대인과 닮았다. 고통받을 자유를 달라. 너무나 신선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찾아 다니는 게 현대인인가. 그런데 그런 고통의 자유를 달라니. 고민하고 불확실하고 불행한 것도 결국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신의 자유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미래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상적인 것을 꿈꾸고 예지력을 가지고 싶어서지만, 또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유토피아 : 이상향,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디스토피아 :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유토피아를 그려냄으로써 인간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비판하는 소설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1931년에 집필했고, 이는 1932년에 발간된다. 책 속의 세상은 포드 기원을 사용하여 연도를 표시한다.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한 시점을 기점으로 계산하며, 책 속의 세상은 포드 기원 632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으로 2540년이 된 세상이다.
포드력 632년의 세상은 모든 것이 통제되고 기획되어진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나누어 지며, 그렇게 나누어진 계급에 맞는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나기 전부터 훈련과 교육을 받게 된다.
모든 인간은 알파, 베타, 감마, 입실론 계급으로 나누어 진다. 예를 들어, 알파 계급은 리더 계급으로써 하나의 수정란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자라나며, 보다 고도의 지식과 교양을 교육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아래 계급인 베타, 감마, 입실론 계급으로 갈 수록 교육의 내용은 보다 단순해 지며, 나중에 맡게 될 임무를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받는다. 또한 하급계급으로 갈 수록 더욱 열등한 신체와 지식을 갖도록 교육하며, 그들에게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았는다. 하급 계급들에게 생각이란 곧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포드력 632년에는 난자 세포 배양에 대한 기술이 발전되어, 난자세포를 최대96번까지 분열하는 기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즉 96쌍의 쌍둥이를 임의적으로 태어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하급 인간들은 더욱 획일화 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
또한 알파 계급에게 조차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아적인 정도의 사고만이 허락된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고등적인 사고외의 모든 것이 허락된다. 먹고 싶은 음식은 언제든 먹을 수 있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개인용 헬기를 타고 가면 된다. '만인은 만인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구호 아래, 그들은 결혼이란 족쇠에 구애됨 없이 자유로이 연애할 수 있다. 또한 정신적 불안이나, 공포를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면, '소마'라고 하는 만능 치료제를 통해 아무런 문제없이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멋진 신세계'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맡은 만큼의 임무만 수행하면 모든 생활이 풍족하다. 오로지 즐거움과 쾌락만이 있는 세상인 것이다. 혹자는 말할 지도 모른다. 알파 계급 이하의 하급 계급들은 힘들고 불만에 찬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하급 계급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자라났고, 힘든 일을 하기에 최적화된 상태로 태어난다. 이곳이야 말로 완벽하게 통제되고 기획된 유토피아가 아니면 무엇일까?
멋진 신세계는 지금의 사회의 미래상의 반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유토피아니 디스토피아니 하면서 멋진 신세계를 평가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멋진 신세계'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은 아니란 점이다. 아마도, 이 소설이 발행되었던 1930년 보다 더, 현실이 '멋진 신세계'에 가까워 졌다고 하면 잘못된 착각일까? 2012년의 세상은 다음과 같다. 보이지 않는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존재하지 않는 계급간의 이동은 더욱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이상기후로 인해 약자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더해지는 경제불안과 경제위기로 인해 미래는 더욱 불명확해졌다. 인터넷과 통신의 발전으로 모든 사람들에 대한 통제와 접근이 용이해졌지만, 개인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은 보다 어려워졌다. 홍수 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를 감당할 만큼의 역량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는 점차 멀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기계화와 정보화란 미명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간단해지고 세분화되어 가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 의문이 든다. 소설이 발간된지 거의 100년이 흐른 지금의 세상은 유토피아적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2540년까지는 약 500년 이 남았다. 과연 500년 이 흐른 다음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견해로는 만인에게 만족스러운 유토피아는 단지 이상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어려운 때문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다양성 때문이리라. 즐거움에 대한 척도와 기준이 서로 다르고, 인내와 책임감의 정도도 모두가 다르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창조하고 예술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도 있다. 누군가 만족하면, 누군가는 불만족하게 되기 마련이다. 소설 속에서 갈등의 발생은 바로 이러한 다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파,베타,감마,입실론의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보느냐, 아니면, 그들이 처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보느냐에 대한 견해 차이가 갈등을 발생시킨 것이다. 소설 속에서 알파 계급의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 밑에서 일하는 베타,감마,입실론 계급의 인간이 있다.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든지 묵묵히 어려운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유토피아는 바로 이처럼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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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담출판사는 책의 편집, 구성이 보기 편하게되어있어서 마음에 든다.
멋진신세계라는 책은 사실 제목만 보고 읽고 싶다는 느낌에 사게 되었다. 사실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에 존재하는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었는데 작가는 상상 속 먼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무도 생생하고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소마'와 각종 '계급', 그리고 '반복적 학습'이라는 상상의 장치를 통해 오히려 현대문명을 돌아보게 했다. '부모'라는 말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일부일처제', '영원히' 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려내어 무엇보다도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중간 조금씩 지루하기도 했지만 상상의 세계에 진정으로 몰입되기도 했다. 개인주의의 결말이 결국 이런 것일까 싶다. |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우리의 미래를 날카롭게 예언하고 비핀한 작품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소설의 내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인간이라는 제품을 규격화해서 대량 생산화하고 엄청나게 발전된 과학기술로 정부는 사회를 통제하고 문란한 성생활등 인간의 더덕성이 파괴된'멋진신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책을 읽음으로써 점점 더 발전되어가는 과학기술에 대한 도덕적, 인간적인 고찰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비문명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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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주의(포드주의(영어: Fordism)는 일관된 작업 과정으로 노동과정을 개편하여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즉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집약적인 축적 체제이며, 제한된 노동 시간 내에 일정한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 강도를 강화했고, 노동 과정 안에 남아 있는 자유공간을 제거함으로써 자본가의 통제를 보다 확고히 한 체제이다.)가 세계의 기본이 된 미래. 더 이상 부모도 없고 가족이 없는 그 시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으로 계급지워지고 각 계급의 능력과 특성에 맞춰서 맞춤형 인간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대. 문학도 없고 예술도 없으며 투쟁도 없고 전쟁도 없는 그곳. 이곳이 바로 포드력 500년(서기 2400~2500년)의 모습이다. |
|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제목그대로, 정말 멋진 신세계.. 희망찬 미래에 대해 쓴 글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니, 멋진 신세계-반어법이었던 것이다-_-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서운 신세계, 추한 신세계, 비인간적인 신세계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섭다고 느낀 이유는 절망적인 미래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아마도 더 큰이유는 이 소설의 내용이 정말 사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일 지도 모른다. 추하고 무서운 신세계에 살면서도 자신들이 멋진 신세계에서 산다고 믿는 인간들의 모습이 과연 그저 소설속의 걱정으로만 남을 수 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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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선택의 기로에 놓여져 있을 때 또는 나의 미래가 불확실하여 걱정이 몰려올 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그냥 누가 이렇게 하라고 정해줬음 좋겠다!' 혹은 '이걸로 선택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고 알려주는 인생의 정답 목록이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 세상 사람 모두가 스트레스와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며 그런 유토피아를 잠깐이나마 꿈꾸어보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그 시대에서 600년 후(25세기)의 이런 미래를 전망했고, 그 미래에 대하여 소설로써 나타냈습니다. 물론 그 미래가 밝지는 않습니다. 과학이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 모두를 지배하게 되는 반유토피아적 세상을 풍자하였습니다. 600년 후 미래의 그 문명 사회에서는 난자와 정자를 인위적으로 수정 시켜 유리병 속에서 배양하는데, 수정 즉시 질과 우수성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의 5등급의 계급으로 분류합니다. 그리하여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신체, 성격 등을 부여 받고, 태어나서도 계급에 따라 걸맞은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계급 간의 분쟁이 일어날 수 없게 조절되고, 출생도 조절하며 인구를 필요에 의해 가감할 수 있습니다. 신세계에서는 '공유, 주체성, 안정' 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 라는 모토 아래 자유로운 성생활이 이루어집니다. 만약 정신적 불안이 생기려 한다면 '소마'라는 약을 먹으면 바로 행복을 느끼게 되니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계 안에서도 무언가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마냥 행복해 하도록 설계된 체제에 의구심을 느끼는 버나드, 헬름홀츠 같은 인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막상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태어나기 전부터 받았던 세뇌 때문에 그 상황을 피하려 하고 거부반응을 보이며 힘들어합니다. 또한 문명 사회에서 떨어진 '보호구역' 이라는 곳에 살았던 '존'은 문명 사회에 대하여 극한 혐오감을 느끼고, 자유 의지를 갖고 인간 답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결국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자살하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정말 지상낙원 처럼 보이는 신세계. 하지만 자기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 위에서 조종하여 움직이는 강제적 지상낙원. 그리고 인간의 본능적으로 나오는 정신적 불안감을 '소마'라는 약에 의지하여 얻는 안정감. 과연 고뇌 없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행복한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일까..? 또 어떻게 보면 현재 나도 사회, 국가가 만들어 놓은 사회 제도라는 궤도를 따라 그저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생을 병 속에서 살아가는 유아의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신세계 인간들 처럼. '멋진 신세계' 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문명사회 공동주의적 계급사회인 '신세계'의 섬뜩함에 마구 비판 해주고 싶었지만, 반면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바르게 잘 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p33 이 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 학생은 하층 계급의 인간이 독서로 인하여 세계 국가를 위한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한다든가 해로운 독서를 함으로써 그들의 조건 반사화 작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는 사실은 납득이 되었지만, 꽃에 대한 반응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필이면 왜 델타 계급의 인간으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꽃을 증오하도록 만드는 수고를 해야만 하는가? . . . 장미꽃과 전원 풍경에는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이 있다고 소장은 지적했다. 그것은 일할 필요가 없이 공짜로 얻어진다는 것이었다. 즉, 자연을 사랑하도록 훈련을 시켜 놓다 보니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층 계급의 인간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연을 사랑하도록 하는 훈련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 인간이 자연을 사랑하는 본성, 사랑하고 즐길 권리를 박탈 시킨 것입니다. 일을 해야 하는 효용 가치를 지닌 하층 계급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p309 인간이란 조건 반사 교육을 받음으로써 무언가를 믿게 되는 거라네. . . . 하지만 인간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린 그들로 하여금 고독을 증오하도록 만들고 있지.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조종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 = 섬뜩했던 부분. 조건 반사 교육을 통해 인간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니. 그런데 지금 우리 세상도 계속 변해가고, 시대에 따라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생기면 처음엔 생소해서 거부감을 느끼지만 점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중에는 원래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내용이라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p315 "하지만 저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싫어요. 저는 신과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를 원합니다" "그럼 자네는 사실상 불행한 권리를 원하는 셈이군." "그래도 좋습니다. 그래요, 전 불행한 권리를 원하는 셈이죠." "물론 늙고 추하고 성 불능의 권리를 원하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야. 어디 그뿐인가? 게다가 매독과 암에 걸리는 권리도 원한단 말이지. 먹을 것은 없어지고 이가 들끓고 미래에 일어나게 될 일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장티푸스에 걸리고 말할 수 없는 각종 고통으로 고통받게 되는 그런 권리도 원하는 셈이지." = 실제로 그렇습니다. 나이들어가면서 얻는 질병. 불편한 신체 기능, 노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총통이 말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각종 고통으로 고통받게 되는 그런 권리' 물론 고통스럽겠지요. 내 스스로 장애물을 이겨내고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고,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고통들을 없애주고 행복한 감정만 느끼게 해줄테니, 대신 네 자유의지를 가져가겠다면..그건 안될 것 같습니다. 내 자유의지가 아닌 강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면 그건 불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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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1932년에 출간되었으니 꽤 된 책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에 대한 충격과 변화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별 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상상하기 힘든 것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간을 필요에 따라 만든다. 쉽게 얘기해서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듯이 생산한다. 지적인 일을 하는 계급과 낮은 노동을 하는 계급들을 필요에 따라 만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감정이 있을 수 없다. 사랑이란 단어도 없다. 충격적인 얘기들이 나온다. 태아에게 처음부터 산소 공급을 조절해 지적능력이 떨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조건반사훈련을 통해 태아 때부터 그가 할 일을 정해 사람을 훈련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정체성에 대한 것들을 애초에 없앤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만들어 진다. 이게 새로운 세계인 포드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A. D. 가 아닌 새로운 시대, 포드 기원(A. F.)에 살고 있다.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인간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 그들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유치한 장난, 버려야 옛 습관이 되어 버리고 가족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것이 멋진 신세계다.
행복을 향해 나아갔던, 그리고 자유를 갈망했던 한 사람 존의 자살은 기계로 대변되어지는 과학의 발달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저자는 첨단 과학의 끝은 어쩌면 인간의 종말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우리는 참으로 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손가락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젓가락문화가 발달한 우리에게는 더욱 유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다른 쪽에는 어두운 그림자들도 있다. 모두가 모이면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만 움직이며 혼자 웃고 있는 세상이다. 아이가 자라도 말을 하길 싫어한다. 손가락만 가져다 댄다. 그리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더욱 사람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하게 되는가 보다.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