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25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편들은 부조리극의 대가 외젠느 이오네스코나 사무엘 베케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낯설다. 책 속 작품들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현실에서는 발생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려운 정황들을 글감으로 삼고, 그 정황들이 마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태연스럽게 진술하는 데서 오는 픽션적 리얼리즘의 획득에 있다. 저자는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디테일한 묘사를 포기하고 드라이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혼합하여 진술하는 대담한 방식으로 예리한 의미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인 『어제』에는 작가의 분신인 듯한 인물인 토비아스가 나온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토비아스 역시 망명자로서 공장 노동자로 살고 있는데,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아무튼』은 139쪽의 얇은 책인데, 무려 25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아주 짧은 글들. 작품을 읽는 내내 토비아스가 쓴 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토비아스는 아고타 그 자신이기도 하니깐. -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글을 쓸 수는 없어요. 정신과 의사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의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물론 사람은 죽고 나서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든 진실이 아니든 간에(『어제』, 16쪽).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글을 쓴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가면서도 쓰고, 버스 안에서도, 그리고 공장의 남자 탈의실에서도, 또 기계 앞에서도 글을 쓴다. 곤란한 것은 내가 써야 하는 것을 쓰지 못하고, 되는 대로 아무거나 쓴다는 점이다. 아무도 이해 못 할, 심지어는 나 자신도 이해 못할 글을 쓰는 게 문제이다. 나는 하루종일 내 머릿속에 썼던 글들을 저녁마다 종이에 옮겨적으면서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누구를 위해서 왜 쓰는가?(『어제』, 16쪽) - 난 교양은 없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있어. 작가가 되려면, 쓰는 일만 해야 돼. 물론, 할말이 없어지겠지. 그리고 이따금, 할말은 많은데도,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기도 해. - 결국, 네가 쓴 것 중 남아 있는 게 뭐지? - 결국, 없지, 거의. 노트 한 권에 남은 건 한두 장, 그리고 아래에 쓴 내 이름만 남아 있어. 쓴 걸 거의 다 불살라버렸거든. 아직 잘 쓰지 못하니까 당연해. 나중에, 책을 한 권 쓸 거고, 그건 태워버리지 않고 토비아스 호르바츠라고 서명도 할 거야. 모두들 그게 필명인 줄 알겠지. 사실은 내 진짜 이름이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안 그래?(『어제』, 111-112쪽)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 사람인데 반체제 운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망명해서 살게 된다. 스물 일곱 살에 대학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웠고 이후로는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도 성인이 된 이후에야 배운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 글의 분량이 짧은 이유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작품을 써야 하는. 모국어라면 좀더 길게, 좀더 자세히, 좀더 풍부하게 글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쉽지 않은 언어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고 최소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물론 그 언어에 유창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그것이 모국어와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러니깐 짧고 건조한 그녀의 문체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취한 일종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민자들(혹은 망명자들)의 삶이 전략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잘 하는 것, 더 잘 하는 것을 포기하고(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덜 잘 하는 것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 같은 것. 그런 것을 온 몸으로, 글 전체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고타 크리스토프다. 가장 극단의 것을 취해야만 삶의 겨우 작은 것이라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문체. 그것이 바로 아고타의 문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책에서 등장하는 '현실에서는 발생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려운 정황들' 혹은 '현실과 비현실을 혼합'한 것처럼 보이는 정황들이야 말로 아고타가 살고 있는 일상의 현실이다. 불가해한 현실, 비현실같은 현실,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매일 살아야 하는 인간이 표현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이다. 나도 7년째 외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원치 않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글도 쓰고 말도 하면서 살지만, 어쩌면 그래서 아고타의 작품을 읽을 때 강한 연민이나 동정심,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울지 않아서, 소리 지르지 않아서, 고통스러워하지 않아서, 엄살을 부리지 않아서 슬픔과 아픔은 더욱 커진다.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조금은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하는, 그러나 하루하루 꾸역꾸역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런 인간이라는 존재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은 단 한 번도 내게 호의적인 때가 없었다. C'est égal.
|
| 도끼와 함께 북역행 기차를 타고 나의 집에서 운하로 떠나는 어느 노동자의 죽음을 보고 나는 더 이상 먹지 않는다고 말한 선생님들과 작가와 아이에게 집을 주기 위해 나의 누이 린, 나의 오빠 라노에를 아무튼, 우편함에 넣고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시골의 거리들을 통해 영원히 돌아가는 회전열차를 탄 도둑으로부터 어머니에게 초대장을 보내어 복수를 꿈꾸다, 어느 도시로부터 제품을 받아 나는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를 괜히 그녀와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말놀이도 하고 싶고, 그녀가 던져놓은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더 많은 것들을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기도 하다. 할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응석을 부리면 이 멋진 할머닌, 까다롭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그대로 살려 내게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긴 옛날 옛날엔 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도끼가 있었지. 생각이 많은 도끼가 있었어." 하고 시작될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흐를 수도 있다. "누이 린과 오빠 라노에는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오빠는 세탁물 속에서 누이의 피묻은 팬티를 보았단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지만 또 시작되지 않기도 하지. 여기 그들의 편지를 한번 보렴. 나의 누이 린..." 이 짧은 소설집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군더더기 하나 없는 그의 문장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후 11년 만의 신작(중간에 <어제>가 있긴 하지만)이라고 보기에는 그 무게부터가 확 덜어졌다. 그런데 그 무게라는 것은 덜어낸다고 해서 가볍고 통속적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낼수록 현명하고 현실적이며 사는 것과 더 닮아지는 것이다. 아마 그의 첫 작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장중함과 덧없음, 현실과 현실의 그릇, 존재하는 것과 존재, 사는 것과 거짓말의 밀고 당기는 환타지와 같은 세계를 경험한 독자라면 그것에서 더 나아간 또다른 무언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이 책은 그러한 기대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염두는커녕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 때문에 어쩌면 이 책은 찬사와 비난(기대에 미치지 못함)이라는 두 극의 독자군을 형성하리라 예상된다. 나? 나는 물론 "할머니 또요, 또 해주세요. 괜찮아요. 다음 이야기는 또 10년 뒤에나 해주실 거지요. 그땐 누가 나올까요. 도끼가, 생각이 많은 도끼가 오빠 라노에를 찾아갔나요? 북역행 열차를 타고? 얼른 좀 해주세요. 그때도 노동자의 죽음이 있겠지요. 그때도 똑같은가요? 지금처럼, 도대체 이건 언제부터 내려온 이야기지요?" 하고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할머니가 너무 좋다. 십 년쯤 전에 하늘연못에서 잛은소설(엽편소설, 경단편이라고 했던가)이라고 해서 한참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그땐 일본의 손바닥소설을 흉내낸 것이겠거니 싶어서 몇 권 보다 말았다. 그런데 아고타 할머니의 이번 책 <아무튼>은 확실히 좋다. 드 보통처럼 한 가지 주제(사랑은 너무 방대한 의미를 담은 단어 이상이겠지만)로 다양한 시선과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짧고 굵직하게 풀어내는 작가도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할어니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벅차게 행복하다. 참고로 20대에 읽었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읽는데만 꼬박 2주는 걸렸던 것 같다. 글쎄 그때의 충격, 전쟁과 비참, 포스트모던한 현실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모호한 이미지와 느낌은 있는데 전체적인 윤곽은 잊혀진 지 오래다. 속살 들춰내지 않으면 읽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것 같다. 다시 읽어봐야지. 이 책 <아무튼>을 나는 한 날 놀이터에서 다 읽어버렸다. 과장하자면 각각의 이야기들이 계속 살아나는 것 같다. 도끼도, 린과 라노에도, 선생을 죽인 제자도, 잘못 전화를 건 여자도, 그걸 받은 나도, 그리고 도시에 있는 유골함이 언젠가 고향으로 가는 이야기까지 모두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 생생함은 두 서너 장에 걸친 짧은 소설이 살아 있는 이야기 구조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 대화로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현실과 가장 닮은 구석이 아닐까. 그래서 아고타 할머니의 소설은 이렇게 짧고 가벼워도 결코 읽기가 쉽거나 간단치 않다. 일독을 권한다. |
| 영화를 보려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할 일도 없고 해서 서점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쪽에 진열되어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의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엇보다도 양장이라는 것과 얇은 두께, 작은 사이즈라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읽고 싶어서 샀던 책이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에, 요즘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그러던 참인지라 때마침 마음에 드는 크기의 책이었다. 게다가 제일 첫번째 단편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에 꽂혔다. 첫번째 단편인 <도끼>는 사고 혹은 자살 혹은 살인 일지도 모르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부인의 대사만이 늘어있다. 한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듯 한데, 활자에는 오직 부인의 대사만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내용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시니컬하게 느껴진다. 뭔가 색다른 느낌의 글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좋을 듯 싶다. |
|
서점에서 우연히 제목을 보고 마음을 뺏겨버린 책,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 사버렸다.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매번 다르다보니 후기를 쓰기에 어려운 책, 그래서 하루에 두 번이나 읽은 적도 있다. 아직까지 나의 지적수준이나 감성수준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주는 책, 그래도 읽을 때마다 즐겁게 느껴진다. |
|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신작이다.
국내에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어제>에 이어 세번째로 출간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신작을 좀더 많이 만나 보고 싶다.
이번에는 왠일로 제대로된 디자인의 양장본이라는 옷을 입고 등장!
그것만으로도 뛸듯이 기뻤네!
그녀의 작품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읽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이 아릿하고 쓸쓸한 느낌을. |
![]() 이로써 국내에 번역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전집을 끝냈다. 그리고 내게 가장 어려웠던 단편 모음집이었다. 고국에 대한 향수와 글쓰기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이 여실히 드러나있는 단편집이긴 했지만, 그냥 읽어 넘기기에 너무나도 많은 꼬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책이다. 짧으면 한 두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함축적인듯한 느낌에 단편 하나가 자기 독백과 같은 파괴적인 형식도 특이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글을 읽다보면 글쓰기에 이토록 열정적인 작가지만 왜 생전에 남긴 책은 많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 번역이 많이 되지 않은 걸까. 이 책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에 대한 여정은 끝났지만 남겨놓은 책이 적기에 여러번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 |
| 아고타 크리스토프.. 이 작가가 지었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서 이 책을 망설임 없이 선택을 했다. 10년만의 저작이라고 해서 엄청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도 힘들었다. 엽편소설이라고 하나? 약 25여편 정도의 짧디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져 있다. 첫 이야기부터 날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도끼가 머리에 박힌 채 침대에 떨어져 죽은 남편을 보고 아내는 자신이 절대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도둑이 들어올까 봐 남편이 지레 겁먹고 도끼를 침대 옆에 두었는데 자다가 우연히 떨어져 도끼가 머리에 박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난 죄가 없다. (아무튼) 너무나 홀가분하다. 오랫동안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짐을 내려 놓은 것처럼...'' 혹은 잘못된 전화가 자주 걸려오는 한 남자에게 어떤 여자로부터 역시 전화가 잘못 걸려온다. "마르셀?"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전화였지만, 남자는 처음엔 짜증나서 마르셀이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답을 한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며 남자의 목소리가 좋으니 내일 꼭 만나자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왠지 당신은 청반지 검은색 폴라티에 신문을 옆구리에 차고 나올 것 같네요." 그렇다. 남자는 싫다 짜증난다 대체 먼 일이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자의 말대로 준비를 하고 여자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바로 다가가지 않는다. 여자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한동안 기다리던 여자. 갑자기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온다. 청바지, 검은색 폴라티. 여자가 주문했던 그 모습 그대로. 여자는 외친다. "마르셀!!" 여자는 진짜 ''마르셀''에게 만나러 온 사람도 없고 약속도 없다며 활짝 웃으며 마르셀과 같이 밖으로 나가 버리고.. (아무튼) 여자를 만나러 왔던 가짜 ''마르셀'' 남자는 아무런 존재로 아닌 채로 남겨진다. [아무튼]을 읽는 내내 너무도 힘들었다고 했다. 정말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바짝 말라서 바로 바스러질 것 같은 차랑차랑한 낙엽들을 만지는 느낌이다. 사건도 많고, 고통, 아픔들이 가득하다지만 정작 있어야 할 그 감정들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있다''라는 것만 알게 된다. 그렇다. 아무튼 있다..있는 것이다. 그러나 느껴지지 않는다. 메마르고 허전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글들이 읽는 나로 하여금 감정들을 소모시키게 하고 있다. 억지로 고통스러워 하고, 억지로 슬퍼하려고 하고, 억지로 아파하려다 보니.. 정말로 (아무튼) 힘들어질 수 밖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퐁당 빠졌던 난 의심없이 아고르의 새로운 작품인 [아무튼]을 선택했고, 그 결과에 후회는 없지만... 혹여 이 책을 읽을 또 다른 분이 계시다면... 에너지 만땅으로 채워 놓고 읽으시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