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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을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한다. 언제 무슨 근거로 등장한 속담인지는 몰라도 당시 시대에는 맞는 말이었는지 몰라도 현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다. 국가와 기업이 나날이 부유해지고 있는데 빈곤층은 늘어나는 시대에서 바라본 이 속담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득권층의 합리화를 위한 변명의 도구밖에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모 대기업 회장의 생일 테이블마다 놓여있었다는 와인 한 병 값이면 빈곤층 한 가족에게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액수다. 누구에겐 잠깐의 욕구 만족을 위한 도구의 가치가 누구에겐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치와 맞먹는다는 불편한 진실.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심화된 현재에 그 가치의 크기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이런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능력에 맞게 돈을 벌고 그에 맞춰서 사회가 돌아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되묻고 싶다. 스스로의 능력이 노력에 의해 커질 수 있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또 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들은 적이 있다. 참 웃기는 얘기다.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을 해도 상황이 나쁘게만 변해가는데 어떻게 더 노력을 하라는 말인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렇게 일을 하는 사람이 게으르다라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상황이 극복될 수 있을만한 조건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 책은 '불평등 경제 극복을 위한 희망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경제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저자는 어떻게 해야 현재의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 조금 다른 시각의 해결안을 제시한다. 감수의 글에 적혀 있듯 이 책은 미국의 기준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미국의 사회 구조나 문화, 정책 등이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허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국가적인 기반사항들을 초월하여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마인드에 관한 내용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소비의 핵심주체는 일반 소비자들이다. 정부나 기업들이 아무리 돈이 넘쳐난들 소비의 양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또 소득 대비 지출만 봐도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하게 된다. 저자 말의 핵심은 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져야 기업들의 이익률도 높아지고 경제가 선순환 된다는 것이다. 중산층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개개인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살아나며 국가 경제가 탄탄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사실 장하성 교수가 한국자본주의라는 책에서 역설한 내용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가 있다. 장하성 교수가 '기업의 잉여이익금이 너무 높고 기업의 이익증가율에 비해 노동자들의 급여인상률은 터무니 없이 낮다. 그러므로 세금 혹은 급여의 형태로 부의 분배가 필요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저자는 극빈층의 금융 교육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 속에는 미국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빈곤층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계층(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까지 포함한 계층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던 역발상 사업들의 성공담을 소개하며 생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함께 호흡하고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형태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던 닉스파이낸셜의 사례나, 미국의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개선, 보완한 '착한 모기지', 금융교육을 통해 빈곤층의 신용점수를 끌어올린 후에 벌어지는 긍정적인 선순환 효과,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가져오는 변화들은 상생을 고민하는 사회라면 고려해 봐야 할 대안이다. 물론, 하나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도 지역사회 중심의 공동체 사업을 운영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인구와 기업들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탓에 그 영세함을 벗어나기 어렵고, 대출 제도를 개선하고자 해도 이미 가계대출이 위험수위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 추가적인 빚을 만든다는 자체가 위험을 증가시키는 상황이다. 거기에 창업을 독려하는 듯한 정책을 쏟아내는 듯이 보이지만 실패 시 그 책임이 오롯이 사업가에게 돌아가며 재기의 기회자체가 말살되어 버리는 현실에선 기업가 정신도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 금융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례와는 다르게 국내에는 은행계좌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만들어도 넣어둘 재산이 없는 것이 문제고,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자금이 있어야 금융교육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실제로 그런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있어 얘기해보면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고 무슨 얘기를 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변화를 주려면 스스로가 이 악물고 참아내야 할 고통의 시기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혹자는 그들의 의지를 탓하지만(그런 사람도 분명 있다) 그렇게 참아내더라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무언가가 없는데 무슨 희망을 갖고 노력하겠나. 이 책을 읽다 보니 미국이라는 나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반면에도 필요하다 싶은 지원은 아끼지 않음을 느낀다. 또, 기업가들의 마인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겉으로는 공생이고 정 많은 나라인데 실상은 '나만 살면 된다'가 판을 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소시민들끼리 끈끈한 정을 주고 받고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니 씁쓸할 따름이다. 저자의 주장을 듣고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만 쏟아내고 있지만 솔직히 내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딱 부러진 대안도 없다. 그저 정부와 기업들이 개과천선하고 사고의 방향을 비틀어 공생을 위한 발전계획을 세우기만을 바랄 뿐이다. 예전부터 공익을 위해 꿈을 꾸고 있는 일이 있지만 계획하고 생각할수록 현실이 참 어렵게만 느껴진다. 나부터가 흔들리는 계층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사회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기란 쉽지 않음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이 사회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 갑갑하기만 한 심정이다. 충분히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나랏님이 되었는데도 책임 회피만 하고 있는 현실.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