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는 참고 문헌이 특별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책의 제목인 “낭만주의 Romanticism"는 문예 사조로서 그 지대한 발자취를 따라가려면 혹은 앞지르려면 응당 무수한 참고문헌들이 필요할 법도 하건만 여기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 까닭은 이사야 벌린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이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누구보다 더 많이 외우고 못 외우냐의 지식이 아니라, 얼마나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가 하지 못하는가의 지식이다.)이 그 발자취를 충분히 따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칸트의 유명한 ‘비판’저서들의 이름을 쉽게 말할 수는 있지만 정작 칸트가 평생 무엇을 추구했으며, 무슨 내용의 글을 썼는지 제대로 말하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은 ‘칸트’라는 이름을 단 소개서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요약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리는 기대하기 조차 힘들다. 이사야 벌린은 하나의 답이 아니라 선명한 목소리로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되 그것의 다양한 국면을 명쾌하게 고루 다루고 있다. 낭만주의를 탄생시킨 숨은 공로자 헤르더까지 포괄하면서 말이다. 낭만주의라는 거대한 덩어리 중에서 무엇부터 읽어야할 지 감도 잡히지 않을 때 이 책을 제일 먼저 잡기 바란다. 여기에서 우리는 낭만주의에 대한 지식 습득 이외에도 어떠한 주제를 어떻게 재어보고, 정리해야할지 이 책을 통해 요령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 낭만주의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책의 저자도 낭만주의를 "한번 들어가면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폴리페모스의 동굴"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서로 모순되어 있고 얽혀있는 무어라 말하기 힘든 복잡함이 낭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지도 모른다. 이사야 벌린은 이렇게 정의하기 힘든 낭만주의의 뿌리를 밝히고 그 특징, 영향력까지 낭만주의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벌린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프랑스에게 뒤쳐져버린 독일의 프랑스,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세상에는 진리라는 변하지 않는 질서가 있다는 계몽주의에 반대해 세상은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의 사고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사상 혁명"이었다. 낭만주의는 피헤테, 하만 부터 시작해 낭만주의의와는 대립했을것 같은 칸트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받아 성립했으며 그 영향력은 파시즘, 국가주의 같은 부정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거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체계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나와 다른 남의 생각도 인정해야 한다는 지금의 상식은 사실 낭만주의로부터 생겨난 관념이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모두는 낭만주의에 빚을지고 있는 셈이다. 낭만주의가 꼭 한번은 넘어야할 산이라면 그 산을 넘는데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는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줄 것이다. 책을 읽는데 필요치 않은 잡스러운 장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텍스트만을 위해 존재하는것만 같은 표지와 내용디자인은 정말 신선하다. 또 책에 두르는 띠가 이렇게 품위있고 멋져보이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내용과 디자인이 모두모두 훌륭한 최고의 서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