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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죽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작년 내 주변엔 다양한 죽음이 존재했다. 죽음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빛이 되기도 하고. 모르겠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나는 내 몸을 어쩌지 못하는데 사는 데만 연연하고 싶지 않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죽음이 어떤 행태로 올지 모르니 지금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자고. 근데 만약. 내 손에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해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안락사 법이 제정되고 그 죽음을 AI가 허가하는 세상이 있다. 민간 안락사 기업 ‘스틸 라이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미래’. 어느 날 얼굴, 존재조차 몰랐던 이복동생 ‘영원’이 찾아온다. 영원은 치명적인 희귀병을 앓고 있는 소녀로, 안락사를 희망하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7퍼센트의 안락사 허가 가능성만 도출된다. 영원이 안락사를 받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미래를 찾아온 영원. 미래는 영원의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타인의 죽음이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 버겁다. 미래와 영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남은 자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존재조차 몰랐지만, 이복동생과 생활하면서 미래는 더욱 갈등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해야 가장 좋은 것인지..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솔직히 너무 버거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연명 치료하지 말고 엄마가 선택하고 얘기한 대로 해달라고 하는데. 또 아이들의 입장은 다를 것 같다. 평소 나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죄책감은 없을 것도 같은데, 가족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다는.
미성년자 아이. 만약 미성년자 아이가 희귀병에 걸렸고, 치료비가 억대이고, 아이가 죽음을 원한다면? 내가 만약 부모라면 안락사를 결정하게 될까? 부모에게 아이의 문제는 쉽지 않다. 어떻게든, 돈을 들여서라도 아이를 살리고 싶은,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인다면 뭐든 하려는 부모. 나도 그런 부모가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죽음에 동의가 필요한 일이라니. 내가 나이를 먹고 내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이의 문제는 다르지. 삶을 선택할 수 없다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죽음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것. 이런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 아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어느 정도 안락사에 동의한다. 숨만 붙어 있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우리에게 안락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안락한 삶을 산다고 행복한 것일까? 사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과 죽음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언젠가 미래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 그리고 행복하자. 출처 : https://blog.naver.com/heygirl0903/224189022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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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만 보면 죽음의 권리조차 인공지능에게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발전된 사회의 무거움을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상 전혀 그렇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희귀병에 걸린 ‘영원’이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램을 나타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의 가시 박힌 말들을 들어야만 했던 그 상황이다. 122쪽에서 “차라리 어른이 되는 게 빠를 거라며, 역시 어려서 어쩔 수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이들. 많은 이들이 영원을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려 싸우고 있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당사자의 힘듦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헤아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입장만 떠들어 대느라 무분별한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화가 났다. 영원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생각의 짧음을 논하기 전에, 영원이에게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생각은 없고 그저 공격적으로 누군가를 물어뜯기 바쁘다. 이 사람들이 진정 2차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현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와 사정, 그리고 삶에는 관심도 없고, 부정적인 감정을 쏘아대기 급급하다. 왜 자신의 힘듦과 아픔을 해결하는 방식이 꼭 그런 식일까? 자신의 말들이 굉장히 이성적이라 착각하고 상대방을 공격하지만, 사실상 알맹이 없는 무기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도현’이나 ‘미래’와 같은 영원이를 따뜻하게 보듬어 줄 멋진 어른도 존재한다. 영원이는 이들을 만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따뜻한 마음 속 공간이 생기게 된다. 영원이가 죽기 3일 전, 자신의 뼛가루를 강릉 바다에 뿌려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미래와 영원이가 정말로 가족이 된 것만 같아서. 정을 붙이자마자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람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어서 눈물이 났다. 좀 더 좋은 세상이었다면, 둘이서 도란도란 웃으면서 살 수 있었을텐데. 부자 놀이도 원없이 할 수 있었을텐데. 그치만 마지막에 둘은 서로를 영원한 가족으로 인정했음을 느꼈다. 삭막한 인생에서 서로를 통해 오랜만에, 영원히 기억될 기억과 마음을 남긴 것 같아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미래와 영원은 처음에 서로를 생물학적 가족으로 받아들였지만, 마지막에는 그렇지 않았다. 함께한 시간으로 인해 비로소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생물학적으로 이어진 사람이더라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고,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인간도 아니고 피가 섞인 것도 아닌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함께한 시간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나눈 정. 그것이 없으면 피가 섞여도 가족이 가족이 아니게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받아들이게 된 가족의 안락사를 동의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나오게 된다. 나는 생명의 권리는 개개인에게 고유하게 작용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목숨에 대한 결정권도 스스로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족의 마음을 아예 무시할 수 있나?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나눈 시간과 정이 있는데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는 것은 그 시간을 무시해버리고 가족들이 스스로 초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나의 가족이 안락사에 대한 동의를 구할 때, 무작정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라면, 쉽게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싫다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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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업체에서 책만 제공받았으며 내 생각과 느낌은 읽고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짤막한 소설이지만 많은 철학이 담겨있으며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지루한 감이 없기도 하고 워낙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을 수 있다. 전개는 주로 인물들의 심리 묘사로 진행되기에 섬세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다. 또 주인공 미래와 영원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서술되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은 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AI가 하는 판단이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AI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합리적이고 옳은 것일까? 이미 AI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의 소설 속 모습에서 나는 감정과 양심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꼭 AI 인공지능을 한정하여 생각하지 않더라도 현재 법에서는 옳으나 양심으로 바라보면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마 이런 부분들은 필수불가결처럼 우리 인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소설 속 안락사에 대한 문제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마음이나 생각을 편안히 하기 위해 이 질문들을 피할 때 생겨날 것이다. 제목처럼 고민하지 않는 '안락한 삶'을 누릴수록 '안락하게 죽어갈 것이다.' '안락한 삶'이란 죽음으로 말미암은 것을 뜻할 수 있지만 양심과 고민을 하지 않는 안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해야한다. 그것이 힘든 일이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인간다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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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삶>에서는 AI테스트를 통해 더이상 생존 가능성이 없는 사람만이 안락사를 허가받을 수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조차 AI를 통해 나의 죽음을 허가받아야 하며 테스트 결과에 따라 합법과 불법으로 판정된다는 게 충격적이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나아질 희망도, 버텨낼 힘도 없을 때 당사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그래도 살아야지.' '다 의지가 역해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라는 말들은 당사자에겐 희망고문이자 또 다른 고통일지 모른다. 삶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든 이는 타인일 뿐이기에 자신의 삶의 무게와 고통, 그에 따른 선택은 모두 각자의 몫일 것이다. 나도 안락사에 관해서는 찬성이나 반대라 할만한 확고한 의견이 앖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고통받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볼 수 있었고 두 입장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그 상황에 빠져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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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할 수 없어 도입된 AI 프로그램과 그 사이에서 충돌하는 '미래'와 '영원' 의 이야기..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책이었고 감동포인트가 많았던 소설이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소설의 끝에 다다라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마음을 울렸던 책! #열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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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필요한 거야."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롭게 본 책 최근 대두되는 AI와 안락사에 대해 다룬점이 독특하다 나라면 미래처럼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든 부모님이 안락사를 선택한것을 철회시키려고 할것이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영향을 준 사람을 잃는다는건, 그것도 당장 죽어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런다는건 난 견딜수가 없다 미래가 다시 한번 가족의 안락사에 대해 결정해야 했다는게 너무 마음아프게 다가왔다 최근 넷플릭스의 ~은중과 상연~을 보면서도 둘의 관계와 마지막의 안락사 장면을 보며 정말 많이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나가는 것을 본다는건 너무 괴롭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알게되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선택인것 같다. 원하는대로 해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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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작가의 소설 <안락한 삶>은 제목에서 풍기는 평온함과 달리, 독자를 불편한 질문 속으로 끌어들인다. 가까운 미래, 안락사가 제도화 되고 민간 기업이 그 과정을 대행하는 사회가 배경이다. 주인공 미래는 '스틸 라이프'라는 안락사 전문 기업의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그러다 어느 날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이복동생 영원의 삶과 죽음에 개입하게 된다. 영원은 미성년자이지만 희귀병을 앓고 있어 삶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스스로 안락사를 신청하려 하지만 여러 제도적, 윤리적 장벽 앞에 놓인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죽을 권리의 문제를 넘어, 죽음을 둘러싼 관계와 책임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읽는 내내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그 선택을 지켜보는 사람 - 미래의 감정이었다. 영원의 요청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자기 삶을 마무리하는 선택이지만, 미래에게는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미래는 이전에도 부모님의 안락사에 동의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안락사에 대해 본인이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더라도 결국 타인의 죽음이 내 선택에 얽혀 있다는 무거운 마음이 있다. 이러한 등장인물과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과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소설의 분위기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암울하지 않고, 인물들 사이의 대화나 상황 묘사에서 은근한 온기를 남긴다. 미래와 영원이 나누는 관계에선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죽음을 매개로 연결되어 가족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한계 책임의 불균형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가족이란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타인의 삶과 죽음에 책임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현재의 우리는 의료적 결정, 돌봄의 문제, 존엄사 논의 등 삶과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갈림길에 서 있다. 소설 속에서 영원이 던지는 질문은 곧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질문이며, 다만 더 극단적이고 명료한 형태로 제시될 뿐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며 안락사 찬반에 대한 입장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이 남는 질문은 나는 사랑하는 사람 - 가족의 죽음을 어떤 자세로 맞이할 것인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 선택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같은 물음이다. 이서현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무겁고 예민한 주제를 치밀하면서도 섬세하게 다루었다. 동시에 인물의 감정에 진득하게 몰입하게 하면서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안락한 삶>은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지만, 죽음을 다루면서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역설적으로 가장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였다. 이 글은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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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안락사 가능 여부를 과연 타인이 결정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책. 그리고 과연 AI는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AI를 만든건인간인데..그렇기에 인간이 부여한 가치와 윤리적 판단이 포함 될 수 밖에 없는데 이걸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객관적이지 않다면 윤리적인 판단을 제외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명확하게 예,아니오로 의견이 갈리지 않는 질문들이 떠오르는 책을 좋아해서 너무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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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안락사라는 주제를 다루는 소설은 흔히 무겁고 차갑게 느껴지지만, 『안락한 삶』은 오히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결을 품고 있어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이 작품은 죽음을 금기시하거나 단순히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 건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였다. 혈연의 낯섦과 함께 찾아온 이복동생 영원은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니라, 미래 자신에게 죽음의 권리를 묻는 존재가 된다. 죽음을 허가받기 위해 AI와 제도 앞에 서야 하는 소녀의 모습은 차갑고도 불합리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처럼 다가왔다. 그 속에서 ‘동의’라는 형태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존중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용기 있는 태도임을 알게 된다. 안락사에 대해 이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인 나에게 이 소설은 일종의 '설득'처럼 읽혔다. 죽음을 택한다는 건 단순히 고통을 피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남은 시간과 자기 존재를 끝까지 존엄하게 지키려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 영원이 바랐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자기 결정을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리고 미래가 마침내 그 바람 앞에 서는 순간, ‘죽음을 허락하는 사랑’이라는 어려운 문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안락한 삶』은 결국 안락사를 말하는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의 윤리와 용서,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읽다 보면 지금 우리의 사회와 가족 안에 놓인 문제들이 그대로 비친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나에게 이 소설은 "죽음조차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동시에, 사랑은 증명이 아니라 ‘동의’일 수 있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안락한삶 #열림원 #이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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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내 죽음을 결정한다? 삶의 존엄성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나 자신도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문제이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어떤 메세지를 던지는지 본문 내용이 궁금해서 구입 결정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