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갓 꺼낸 수박을 잘라 먹고, 에어켠 켜놓은 거실에서 앉거니 눕거니 해가며 책 읽는 것, 이 보다 더 시원한 피서법이 또 있을까. 주말에 이렇게 쉬어가며 《유림》 두번째 권 - 공자 편을 읽었습니다. 주말이 이틀이지만 토요일에는 술독이 깨지 않아^^ 일요일에는 가족 행사에 다녀오느라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해, 오늘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한 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니 열어놓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유림》 제2권의 부제는 〈周遊列國〉 - 말 그대로 여러 나라를 두로 돌아 다닌다는 뜻인데, 공자가 고향인 노나라를 네 번씩이나 떠나 겪었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출국은 기원전 517년 공자 나이 35세 때, 즉 三十而立 하고 四十而不惑하는 사이에 제(齊)나라로 망명을 떠납니다. 제나라로 가는 길에 태산의 산기슭에서 여인의 통곡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 때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가 만들어집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 이는 공자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노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이 난세 중의 난세였는데, 노나라에서는 임금 소공(昭公)이 세 귀족인 삼환씨(三桓氏)에 밀려 제나라로 도망쳐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공자가 제나라로 정치적 망명을 하려했던 것은 노나라의 옛 임금이 가 있는 곳이기도 했고, 또한 당시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영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고사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귤이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그것은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시면 작고 시고 떫어서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던 것도 안영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망명 생활은 그의 뜻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 통틀어 최고의 재상인 안영이 공자를 끝까지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임금 경공은 공자를 중용하려 하나 안영이 끝까지 반대를 합니다. 철저하게 현실주의자였던 안영의 눈에 공자는 이상주의자처럼 비쳤기 때문입니다. 안영은 경공에게 "중니(공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보이기는 하오나 실용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제나라의 대부들은 모두 공자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등용되어 실권을 장악하면 자신들의 위치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객을 보내 공자를 죽어려했다고까지 합니다. 이렇듯 공자의 망명 생활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게 되고, 불과 일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 출국은 기원전 506년 공자 나이 46세 때 주(周)나라로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첫 번째 출국이 정치적 망명을 위해 떠난 것이라면 두 번째 출국은 노나라 임금의 허락을 얻어 수레와 말까지 하사받아 떠난 호화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노자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신들의 만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노자가 서로 '인간'의 모습을 지닌 채로 만난 이 사건을 저자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노자의 사상과 공자의 사상의 차이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만남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공자와 노자의 만남은, 그러나 싱겁게 끝나고 맙니다. 평행을 달리는 두 사람의 사상적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집니다. 노자를 만난 공자의 첫 마디. "예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시오." 노자 왈 "예에 대해서라면 더구나 나는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재차 묻자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할 법하지만, 후에 공자는 제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만나 뵌 노자는 마치 용과 같은 분이셨다." 용 - 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동물입니다. 한편으로는 노자를 마음 속으로 존경하지만, 인간사를 포기할 수 없는 공자의 무언의 항변이기도 했습니다. 이 일 이후로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가는데, 이 때부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고 하고, 노자는 영원히 은둔 생활을 하려 세상을 등지려 합니다. 노자가 은둔하기 위해 길을 떠나던 중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이를 알아 본 윤희라는 관리의 간청으로 노자는 며칠 만에 《도덕경》을 써주고 떠납니다. 노자 유일의 저서인 《도덕경》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노자에 대한 행적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오로지 전설만이 남게 됩니다. (중간 생략^^. 예스24 블로그에서 확인하세요~) 책의 순서에 따라 공자의 여정을 옮겨놓다보니 정작 공자 사상의 진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이 짧은 글을 통해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살아있는 공자의 생생한 모습을 보시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수 많은 책들이 공자의 단면만을 부각하거나, 그의 사상만을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작가 최인호는, 공자가 그의 사상을 완성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전국시대의 열국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다시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자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텍스트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논어를 보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논어를 다시 읽고 싶습니다. |
| 유교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공자>의 생과 사상을 그의 네번의 천하주유를 통해 알아보고 있다. 거기에 <예수>,<석가>등의 성인과 세계의 유명인사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공자>의 사상과 그의 인간미를 비교해 보며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최인호>의 소설은 재미는 있을지 언정 주제와 빗나가는 얘기로 페이지를 장식해 뭔가 허전하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오랫만에 주제에서 빗나가지 않고 곁가지가 없는 제대로된 주제의식의 소설을 선보인 듯하다. <공자>는 노나라의 사상가로 제자들과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유랑하면서 자신의 인과 예의 사상을 전파하고 당시의 정치인과 왕들에게 인의 정치와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려 한다. 현실정치의 대가 <안자>와는 현실과 이상정치의 괴리감만을 주는 언변의 사상가라고 버림받고 세상을 등지고 무의 세계를 주장하는 <노자>에게는 오히려 미친자의 취급을 받기도 한다. 유력한 정치인과 시대의 조류를 타는 정치인에게는 <상가집의 개>취급을 받으며 궁핍한 유랑생활을 하게 되고 그 와중에 따르던 제자들 마저 스승에게 회의를 느껴 하나씩 떠나게 되니 <공자>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채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고행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다른 성인과는 달리 너무도 인간적인 <공자>의 모습을 작가는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다. <예수><석가><알라>의 한치의 인간적이지 않은 신의 모습과는 달리 먹을 것을 가리고 천대 받고 하는 그러나 제자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자신만을 따르기 보다는 제자들의 부모의 죽음과 제사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공자의 인의 사상이 언변과 형식만을 내세운 명분만이라 하여 그를 배격하고 있다. 그러나 <유림>에서는 <공자>의 첫번째 핵심철학인 <正名主義>는 모든 사물의 명칭과 직위가 제대로 명분에 맞게 바른 상태로 놓인다면 그 국가는 원칙에 충실하게 잘 다스려진다는 뜻으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 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로 각자의 위치를 명분에 맞게 행동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지러운 지금 모든 정치인과 기업인들 공무원들 그리고 각자 생산에 종사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진정한 <공자>의 사상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원칙에 충실한 국가관과 기업관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상도><해신><잃어버린 왕국><제왕의 문>등에서 보여지는 산만한 전개에서 벗어나 모처럼 집중력 있는 최인호의 소설을 경험하리라. |
| 유교의 중심적 인물인 공자의 주유열국!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공자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사상과 생활방식, 제자들의 생활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기다림이란 사상으로 주유열국의 끝을 공자가 태어난 나라 노나라에서 맺는다. 공자에 대한 평가와 실상을 직접 보면서 약간의 의아함도 남는다. 공자와 노자가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 만남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질문도 질문이거니와 대답도 의외이다. 내 느낌 이 부분을 다른 좋은 뜻도 있는데 부정적으로 보았다. 공자는 현실에 대한 애착, 노자는 현실에 대한 회피로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잘팔리는 책이 도덕경이란 사실도 또한 놀랍다. 공자가 유교를 세우고 천하에 도를 유세하고 다니는 주유열국.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남이 뭐라하든 꿋꿋한 자세와 신념으로 유세한다. 그러나 그 뜻을 알아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애제자 안회는 공자의 그 뜻을 알아준다. 공자의 질문은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거늘 어째서 광야를 헤매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도가 그릇된 것일까 우리가 어찌하여 그런 지경에 뼈졌는가? 안회는 대답한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위대하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은 그 도를 계속 밀고 나가셔야 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다음에야 참된 군자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도가 닦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결함이요, 도가 이미 크게 닦여졌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들의 치욕일 뿐입니다. 그러나 차라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십시오. 받아들여지지 않은 다음에야 참된 군자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답한다. 공자의 귀거래사에서 나온 마지막 말 “좋은 새는 나무를 잘 살펴서 깃들고,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가려서 섬긴다.” 어쩌면 이 말은 내 자신의 현실을 잘 표현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째튼 새는 나무를 가려서 선택해야 한다. 이는 도전으로써도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
| 말로만 듣던 공자가 실제로 어떤 인간이었는지 어떤 삶을 헤쳐나왔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또한 어떤 식으로 스승을 받들었는지를... 공자는 우리가 상투적으로 알고 있는 그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정신적 우상이 아니었다. 수많은 곳을 처량하게 돌아다니며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가운데 유교의 위대한 숲을 차근차근 이루어나갔던 진정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들, 공자가 가는 곳마다 남기고 갔던 수많은 일화들이 한 권의 책으로 재구성되어 흥미롭게 읽혀진다. 한국 사회의 유교 정신의 뿌리를 탐구하고 이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는 '유림' 전체의 맥락에서, 공자에 관한 이 이야기들은 새롭고도 새삼스러운 감동으로 전해진다. |
| 두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공자이다. 4대 성인으로 추앙받기도 하고 너무나 유명한,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 유학 유교 하면 단연 먼저 떠오르는 인물. 그러나 왠일인지 작가는 공자의 이야기를 첫번째가 아닌 두번째로 들려준다. 뭐 1권과 2권 사이 연관성이 거의 없어서 순서없이 읽어도 무방하지만, 공자 대신 조광조를 1번 타자로 세운 데에는 작가의 의도가 있을텐데. 1권 조광조 편에서는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조광조의 사당 및 묘소 등의 여러 유적을 답사하는 장면들이 여러번 겹쳐진다. 따라서 독자 자신이 작가를 따라 직접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조광조를 추적할 수 있는, 흥미 유발이 강하였다. 야구에서도 1번 타자는 어떻게든 살아나가 득점의 발판을 마련하지 않던가. 그처첨 수천년 유림의 숲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작가의 배려로,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작가를 좇아 가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고 지금 막 생각해 봤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고. 성인 군자 공자. 2권 역시 공자의 일생을 전부 다룬게 아니라, 공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선택해 줄 군주를 찾아다녔던 시기의 행적을 담고 있다. 자신의 사상을 실제에 적용하기 위해 현실 정치 참여를 시도했으나, 마땅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상가집의 개' 신세로까지 전락했던, 일종의 고난의 시기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기도 하고, 소신없는 행동으로 인해 제자에게 따끔한 질책을 듣기도 하는 등. 이러한 인간적인 공자의 모습은 예수나 석가의 모습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 이는 현실 인간 세상에 중점을 둔 그의 사상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군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그 스스로가 그렇게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또 그렇게 되었던 공자의 모습과 사상이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술술 익히는 쉬운 설명들을 통해 쏙쏙 전해지는 책이다. |
| 최인호가 쓴 공자의 삶이다. 공자의 나이 서른 다섯에 노나라를 등지고 제나라로 갈 때부터, 68세의 나이로 여러나라를 초상집의 개 취급을 받으며 돌아다니다 다시 노나라로 돌아오기까지의 행적을 그렸다. 이 시기는 그에게 고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하늘뜻을 따르면서 백성을 이롭게 하는 균형잡히고 올곧은 그의 사상이 영글어간 시기이기도 하다. 진정 고통만이 진정한 사상을 낳을 수 있는가? 논어를 읽기 시작한지 넉달 정도가 지났다. 중간중간 논어에 나온 이야기들을 공자의 삶에 엮어 읽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듯 하다. 하지만, 공자의 생각의 깊이를 접하기 위해선 [유림]의 재미난 이야깃거리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논어와 비추어보며 살아보는 방법 밖에는 없을 듯하다. 이야기거리에 만족한다면 또한번 공자를 오해케 될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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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17페이지, 23줄, 27자.
그리하여 이제 이야기는 공자에게로 돌아옵니다. 유학의 본격적인 시작은 공자니 당연한 귀착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책에서는 공자의 네 번에 걸친 외유를 다룹니다. 1장은 제나라의 안영과의 인연, 2장은 노자와의 인연, 3장은 노나라에서 출세하던 시절, 4장은 위나라에서의 인연 1부, 5장은 위나라에서의 인연 2부인 셈입니다. 수십인지 수백인지 모르겠으나 제자들을 거느린 외유이니 비용이 꽤 들었을 것 같은데 당시엔 식객의 수가 세력의 척도라는 말도 있었다니 약간의 눈치를 제외한다면 그다지 어려웠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1권하고 분위기가 확 달라져서 집필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3권을 봐야 감이 잡힐 듯하네요.
130905-130905/13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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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쪽 읽다가 몇가지 눈에 거슬리는 사항들을 정리해 본다.
115쪽 < 이에 공자는 집요한 양호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말꼬리를 잡히지 않고 교묘하게 피했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습니다. 장차 나도 벼슬을 하겠습니다.”>
214쪽 < 안탁추의 처와 자로의 처는 형제였다.>
형제가 아니라 자매다.
이번에는 번역의 문제를 짚어보자. 최인호는 <도덕경>, <논어> 그리고 <장자> <맹자>에서 관련된 사항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데 번역문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의아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156쪽 < 언어는 천하의 공기이니 너무 이것에만 얽매여서는 안되며, 인의는 옛날 성왕들이 묵던 주막이니 ….>
이를 다른 번역본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 명예는 공공의 기물이므로 많이 취하면 안된다. 인의는 선왕의 여인숙이니>(기세춘, 장자, 311쪽)
<당신이 존중하는 명성도 모든 사람의 것이므로 당신이 더 많이 가지려 하면 안되지요. 인의란 옛임금들이 머물다 간 주막일뿐이요.> ( 윤재근, 장자- 털끝에 놓인 태산을 어이할까, 128쪽)
다른 두번역에서는 명예, 또는 명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유림에서는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名公器也 不可多取 仁義先王之遽廬也>
명예, 또는 명성을 의미하는 名을 최인호는 ‘언어’로 번역해 놓았다. 과연 제대로 된 번역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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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은 나라를 다스리는 현실의 학문이다. 그런데 공자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요순시대는 현실적인 국가가 아니다. 애초에 공자는 실재하지 않는 국가의 정치 이념을 현실 국가에 적용하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서 출발했기에 그의 정치적 이상은 學에 머무를 수 있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 최인호는 그의 바람대로 혼란한 시대를 향해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나약한 펜을 들어 국민의 세금으로 밥을 빌어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일까 공자가 환생을 한다면 대한민국의 혼란함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공자의 입을 빌어 정치로 협잡을 일삼는 이들에게 일갈을 하기 위해서일까 공자는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는데, 5년이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긴 임기라면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 최인호는 6권의 소설을 통해 이렇게 생각하는 무례함을 타일러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자 한 것일까 글 중간에 정치인에게 내뱉는 힘없는 아우성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예수와의 적절치 못한 비교는 일천한 종교적 지식의 바닥을 보였고, 고사성어의 어원 찾기는 글의 맥을 끊고 있다. 무엇보다 중언부언하는 반복적인 내용은 논어를 읽는 것만큼이나 지루하다. 6권 소설로 그는 너무나 많을 것을 하려고 했다. 정치가를 훈계하고, 일천한 종교적 지식으로 기독교와 유교를 비교하고, 고사성어의 어원을 찾고, 거기에 유학까지를 가르치려고 했으니 글은 얽히고 내용이 반복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상도’의 상상력도, ‘길 없는 길’의 의연함도, ‘유림’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공자의 꿈이 한낱 정치 사상가의 이상향이듯 유림은 소설가의 몽상에서 더 이상 진일보하지 못하고 것은 백척간두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소설이라는 도구의 한계를 망각한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서 유학사상을 실현하지 못한 공자가 열국을 주유한 것처럼 그는 방대한 유학 사상 속에서 글의 핵심을 잡지 못하고 주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