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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 | 미술과 여행, 북유럽의 여름에서 건져올린 사유의 조각들
"백야의 미술관 | 미술과 여행, 북유럽의 여름에서 건져올린 사유의 조각들" 내용보기
백야의 미술관저자 최정표파람북2025-06-24예술 > 미술 > 미술관여행 > 테마여행■ 책 소개『백야의 미술관』은 덴마크부터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까지, 저자가 북유럽 미술관을 여행하며 느낀 감정과 사유를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한여름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미술관과 자연이 교차하는 풍경을 따라가며 공간 자체로도 예술이 되는 장소들을 섬세하게 기록합니다.작품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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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

저자 최정표

파람북

2025-06-24

예술 > 미술 > 미술관

여행 > 테마여행





■ 책 소개


『백야의 미술관』은 덴마크부터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까지, 저자가 북유럽 미술관을 여행하며 느낀 감정과 사유를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한여름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미술관과 자연이 교차하는 풍경을 따라가며 공간 자체로도 예술이 되는 장소들을 섬세하게 기록합니다.

작품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앞에 섰던 순간의 감정과 질문을 풀어내다 보니 어느새 작품 앞에 선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합니다.





■ 책 속 메시지


예술은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자 자기 자신을 다정히 들여다보는 도구이며 여행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시선을 새롭게 조율하는 일입니다.

삶을 감각하는 통로이자 쉼터가 되는 미술관은 고요함 속에서 가장 깊은 감정을 마주하게 합니다.

『백야의 미술관』은 미술과 공간, 개인의 감정이 만나는 접점을 따라 걷습니다.

유명한 작품들에서 마주한 문화와 철학, 예술가들의 삶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사유는 우리 내면의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 하나의 감상




지난 주말, 방정리하다 보관함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여행 다녀오면서 사온 마그넷부터 미술관, 박물관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마그넷이 한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미술관 다녀온지 꽤 된 것 같아 가고는 싶지만 한여름에 굳이 나가기는 싫어 택한 것이 바로 독서였습니다.

『백야의 미술관』은 예술은 해석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진리를 조용히 전해주는 안내서입니다.

경험으로서의 미술관과 사유로서의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어 마치 여행하는 시인의 노트 같았습니다.

특히 제가 항상 가고 싶었던 덴마크국립미술관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북유럽으로 분류됩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시내 한복판에는 덴마크국립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대전당이라고 불리우는 덴마크국립미술관은 서유럽 작품은 물론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작품, 옛날 석고상 등 26만여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한 대형 미술관입니다.

덴마크국립미술관은 왕의 수집품과 부자들의 기증품으로 만들어졌는데 근대 이전의 왕실은 개인이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그림들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덴마크 왕실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수집한 시기는 16세기입니다.

유명한 독일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가 자기의 판화 중 최고품을 모두 덴마크 왕인 크리스티안 2세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왕가에서 미술 수집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죠.

왕가의 수집품은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에 보관되고 있었는데 1884년에 큰 화재가 발생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많은 작품을 구출해 낼 수 있었지만 왕실 소장품들이 갈 곳이 없어지자 당대 최고의 덴마크 건축가였던 빌헬름 달레루프의 설계로 새로운 미술관을 짓게 됩니다.

그렇게 덴마크국립미술관이 탄생하게 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덴마크 작가와 더불어 국제적인 작가의 현대적인 작품도 수집하게 되면서 소장품들이 한층 더 풍부해지게 되면서 오늘날 덴마크는 많은 명품 미술관을 자랑하는 나라로 거듭나게 됩니다.


처음은 언제나 설레임을 안겨주기 마련인데 대대적인 공사로 인해 미술관 전체가 폐쇄되어 당황스러운 저자의 스웨덴국립미술관 방문 후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공사를 위해 가림막이 쳐져 있음에도 스웨덴국립미술관이 지닌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윤곽에서 고스란히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게 미술관을 구경하지 못하게 된 저자는 미술관 바로 앞이 바다이기에 그 풍광이라도 한껏 느껴보고자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으로 구성된 항구도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앞 순위로 꼽히는 나라인데 미술관은 뒤쳐진 상태였습니다.

건물이 낡고 시설이 낙후되어 나라의 위상을 드높일 수 없으니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화가들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카를 라르손입니다.

카를 라르손은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작품 중 <큰 자작나무 아래서의 아침 식사>는 가족의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그림으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생활용품에 패러디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대한민국-스웨덴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카를 라르손을 비롯해 앤더스 소른, 칼 빌헬름손, 요한 프레드릭 크로우텐, 휴고 삼손 등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명작 75점을 볼 수 있었죠.

카를 라르손과 관련된 책을 오래 전에 리뷰했으니 아래 URL에서 확인해주세요.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2042442740


평소에도 전시회를 자주 다니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북유럽 미술관 특유의 고요하고 단단한 정서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저자는 미술, 여행, 감정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가 스스로 그 공간에 서 있는 듯한 여운을 남깁니다.

한 문장, 한 시선이 담백하고도 명료해서 미술이나 여행을 잘 몰라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예술은 해석이 아니라 감각이며 여행은 풍경이 아니라 시선입니다.

『백야의 미술관』은 당신의 일상 속에도 미술관 같은 장면이 숨어 있음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읽고 나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깊게 살아내고 싶어질 것입니다.




■ 건넴의 대상


북유럽 여행 혹은 미술관 여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삶의 쉼표가 필요하거나 영감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감상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따뜻해질 거예요.




백야의 미술관 상 (큰글자책)

백야의 미술관 상 (큰글자책)
글쓴이
최정표 저
출판사
파람북

백야의 미술관 하 (큰글자책)

백야의 미술관 하 (큰글자책)
글쓴이
최정표 저
출판사
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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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사락 s*****3 2025.07.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백야의 미술관-최정표
"백야의 미술관-최정표" 내용보기
[백야의 미술관]은 KDI 원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저자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의 주요 미술관들을 탐방한 기록이다. 덴마크는 북쪽의 유럽 중 가장 남쪽에 있고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덴마크국립미술관은 서유럽 작품,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작품, 현대작품, 판화와 드로잉, 옛날 석고상 등 26만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였다. 미술관의 시작은 16세기 왕의 수집품으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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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은 KDI 원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저자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의 주요 미술관들을 탐방한 기록이다.


덴마크는 북쪽의 유럽 중 가장 남쪽에 있고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덴마크국립미술관은 서유럽 작품,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작품, 현대작품, 판화와 드로잉, 옛날 석고상 등 26만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였다. 미술관의 시작은 16세기 왕의 수집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고품은 모두 덴마크의 오아 크리스티안 2세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카를스베르 미술관은 칼스버그 맥주로 유명한 카를스베르 가문에서 만들었다. 카를 야콥센은 조각에 빠진 사람이었는데 고대 조각을 수집했고 미술관은 조각의 성지가 되었다.


현대 작품은 크고 난해하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은 이런 작품을 잘 소화하고 있다. 유달리 두 작품에 시선이 집중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다. 한센은 돈을 많이 벌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집 짓는 것과 예술품 수집이다. 예술품을 수집했고, 전시하기 위해 큰 저택을 지었다. 2년에 걸쳐 저택을 완공했고 지역 명칭을 따서 저택 이름을 ‘오르드룹고르’라고 명명했다. 오르드룹고르는 19세기 프랑스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은 한센이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것들이다.


노르웨이 편에서는 뭉크로 상징되는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을 둘러본다. 오슬로에는 뭉크미술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만, 노르웨이국립미술관도 뭉크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관람객도 대부분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뭉크의 <절규>와<마돈나>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꼭 사진을 찍으려 하는 미술관의 아이콘이다.


노르웨이는 피오르의 나라이고 피오르 관광의 출발점이 바로 베르겐이다. 베르겐은 1년에 300여 대의 크루즈 배가 정박하고 50만 명의 크루즈 승객이 베르겐을 찾는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만든 음악가 에드바르 그리그, <인형의 집>을 쓴 극작가 헨리크 입센 등이 베르겐 출신이다. 에드바르 뭉크는 20세기 전후의 노르웨이 화가로 노르웨이는 몰라도 뭉크는 알 정도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세계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 로슬린의 <면사포 여인>이다. 로슬린은 당대 유럽 최고의초상화 작가였다. 가를 라르손의 작품 <큰 자작나무 아래서의 아침 식사>는 가족의 행복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상 생활용품 등에 많이 패러디되어 사용되고 있다. 스톡홀름현대미술관은 입구의 정원에서부터 예술품을 감상 할 수 있다.


에르미타주미술관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에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만든 사람은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다.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작품은 보석과 명문이 새겨진 작품이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4000점의 최고급 호화작품, 3만 8000권의 희귀도서, 1만 점의 보석, 1만 점의 드로잉, 1만 6000점의 코인과 메달을 수집했다. 수집품은 서유럽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러시아도 문화국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도 미술관에는 민간인의 기부와 기증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트레티야코프는 처음에는 자기 집에 미술관을 열었다. 10년 후 많은 그림을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동생이 수집한 서유럽 작품까지 기증을 받아 러시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등극했다. 자택 미술관은 모스크바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모든 수집품을 자기 자택과 함께 모두 모스크바시에 기증했다. 모스크바시는 1893년에 이 미술관을 시립 미술관으로 만들어 공식적으로 개관했는데, 오늘날의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이다.


[백야의 미술관]은 미술관의 역사, 소장품, 전시 디테일뿐만 아니라, 미술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의 중요성, 미술관의 운영방식과 그 사회적 기능을 종합적으로 소개한다. 미술관은 부자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설립도 어렵고 유지도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책을 통해 유럽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g****n 2025.07.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_백야의 미술관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_백야의 미술관" 내용보기
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서는 곳은 어디인가. 손을 눈앞에 대고 한참을 바라봐도 결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촛점을 최대한 가까이 당긴다고 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콧끝'이 전부다. 그렇다면 '자신'을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봐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유리 뒷편에 있는 얇은 금속층, 거울이다. 거울을 뚫어져라 보면 '금속'이 아니라 실제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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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서는 곳은 어디인가. 손을 눈앞에 대고 한참을 바라봐도 결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촛점을 최대한 가까이 당긴다고 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콧끝'이 전부다. 그렇다면 '자신'을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봐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유리 뒷편에 있는 얇은 금속층, 거울이다. 거울을 뚫어져라 보면 '금속'이 아니라 실제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아마 '미술관'을 표현하는 가장 은유적인 비유이지 않을까. 한 국가, 사람, 문화의 수준을 알기 위해 최선이라면 그 국가에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스스로를 보기 위해 촛점을 콧끝에 두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콧끝은 겨우 볼 수 있겠으나 결코 전체를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은 국가와 국민, 시대가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지, 자신들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자신들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흔히 말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사실상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가장 풍족한 지역이며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무엇을 남기고자 했고 무엇을 보여주고자 할까. 그 흥미로운 관찰을 '백야의 미술관'이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덴마크의 루이지아나 미술관'은 바닷가 언덕에 지어져 있다. 이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 철학을 담은 산책로에 가깝다. 거장들의 조각과 회화가 바다와 숲 사이에 놓여져 있다. 건물은 조용히 자연과 하나처럼 묻혀 있다.


초록색 병에 담긴 '칼스버그 맥주'는 내가 유학시절 적잖게 즐겼던 맥주다. 여기서 '칼스버그 맥주'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칼스버그 맥주'의 창업자가 만든 '카르스베르 미술관'의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만날 수 있다. '소유'가 아니라 '기증'의 방식으로 건축된 이 미술관의 면면은 덴마크 사회가 자본을 어떤 식으로 순환시키는지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나라 중 하나일 것 같은 '노르웨이'에서도 역설적인 작품이 있다. 뭉크의 '절규'다. 고요한 외면과 달라 내면에는 스스로가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를 떠올린다. 이곳 조각상은 대부분 벌거벗어 있다. 노르웨이는 굉장히 차가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정서적인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는 유럽 왕정의 권위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이다'라는 자긍심을 듬뿍 가지고 있다. 피카소, 달리, 앤디워홀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시대를 대표하며 비추고 있다. 왕실의 전통과 근대라는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투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황실'이 수집한 작품들이 잔뜩 있다. 쉽게 말해 유럽 예술의 금고다. 정교한 궁전 내부에 마티스와 렘브란트가 나란히 걸려 있다. 몇 걸음을 옮기면 트레챠코프 미술관도 있다. 이곳에서는 농민의 삶, 혁명, 전장에서 죽은 수많은 러시인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미술관은 그저 유명한 작품을 벽에 걸어두고 입장료나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시대와 사람들이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했던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다. 국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두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타국가의 그림을 걸어두기도 한다. 그림을 핑계 삼아 보여주고 남기고 싶은 모습을 저장하고 전시한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그저 미적인 표출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흔적'이다. 어쩌면 미술관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빨간색, 파란색 물감의 배열이 아니라, 그 '철학적 고민'과 시대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보여주고자 했는지 했던 수많은 고민과 시간들이지 않았을까.


k*******4 2025.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백야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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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개개인이 부를 쌓기 이전까지, 미술작품은 왕이나 귀족같은 전통적인 부자들의 수집품이었다. 이는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다 여러 이유로 왕실이 사라지거나, 과거보다 그 힘이 줄어들면서 왕실이나 귀족들이 소유하던 미술작품들이 대거 민간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국립미술관’ 또는, 신흥 부자들이 건립한 ‘미술관’을 통해서. ‘미술관’은 대표적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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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개개인이 부를 쌓기 이전까지, 미술작품은 왕이나 귀족같은 전통적인 부자들의 수집품이었다. 이는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다 여러 이유로 왕실이 사라지거나, 과거보다 그 힘이 줄어들면서 왕실이나 귀족들이 소유하던 미술작품들이 대거 민간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국립미술관’ 또는, 신흥 부자들이 건립한 ‘미술관’을 통해서. 

‘미술관’은 대표적인 문화시설이다. 이런 문화시설은 흔히들 말하는 선진국에 많고, 유명 미술관들 역시 우리가 말하는 선진국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돈 많은 나라에 있는 시설이며, 미술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수집하는 수집품이라는 인식이 꽤 널리 퍼져있다. 왜 그럴까?

‘미술’은 고고하고 독창적인 예술 분야라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의 원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은 기본적으로 방문객이 많아야 유지된다. 대내외 방문객이 많아야 그만큼 미술관 수입원이 늘어나고, 수입원이 늘어나야 더 많은 미술작품을 사들이고, 그 미술작품에 걸맞는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외국 관람객이 많은 미술관을 보유한 나라는, 외국 관람객이 체류하며 사용하는 관광비까지 +@의 수입원이 생긴다. 이렇게 늘어난 수입원으로 다시 질 좋은 미술작품을 사고,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로 미술관은 그 자체로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드는 화가(또는 조각가 등) 역시 자신의 작품을 팔기 위해선, 작품을 사는 고객의 니즈를 맞춰야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권력을 지닌 독재자를 찬양하는 작품을 만들곤 한다. 미술을 뿐만 아니라 음악가, 건축가 등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작품을 팔아야 ‘돈’이 되고, ‘돈’이 있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물론 한평생 자기만의 길을 예술가들도 분명 있다. 워낙 가진게 많아서 남의 ‘돈’이 필요치 않은 사람, 또는 ‘돈’이 없어서 생계가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 갈길 가는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후자에 속하는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들은, 후대에 가면 엄청난 값어치가 매겨지곤 한다. 예컨데 고갱이나, 이중섭 같은..


결과적으로 ‘돈’과 미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한 경제학자가 미술관에 꽂혔다. 바로 이 책 『백야의 미술관』의 저자 최정표님이다. 이 경제학자가 미술관에 꽂혔고, 그렇게 북유럽 미술관 답사를 다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카를스베르 미술관 in 덴마크


카를스베르미술관은 칼스버그 맥주로 유명한 카를스베르 가문에서 만들었다. 창업자 야콥센의 아들 카를 야콥센이 미술관 설립의 주역이다. 카를 야콥센은 수집광이라고 불린 당대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였다. p 040


아버지 야콥센도 미술품 수집에 조예가 깊었지만, 그의 아들 아들 카를 야콥센의 미술품 수집은 아비를 능가했다. 심지어 그의 아내 역시도 미술품에 조예가 높았다고 한다. 그렇게 2대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돌연 국가에 기증했다. ‘좋은 장소에 미술관은 만들어야 한다’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들의 미술품 기중은 덴마크 국민들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유명 미술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카를 가문의 미술품 기증으로 시작된 ‘카를스베르 미술관’.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중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프랑스 대표 화가인 에드와르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압생트 애주가>. 특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전쟁이 주는 폭력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알려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마네는 스페인 화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고, 이후 후대 화가들이 이런식의 전쟁 폭력을 고발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럽 화가들이 그린 전쟁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아주 유명한 화가도 있다. 바로 피카소. 피카소가 전쟁 폭력을 고발한 작품의 이름은 <한국에서의 학살>. 이 그림은 6.25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그린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해 알고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오르드룹고르미술관 in 덴마크
어느 나라나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면 큰 재벌이 생겨난다. 미국은 석유가 나오면서 록펠러 재벌이, 자동차가 나오면서 포드 재벌이 만들어졌다. 한센 재벌은 덴마크에 보험업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재벌이다. 덴마크 보험업계에서는 그의 족적이 매우 크다. 보험회사 두 개를 일구어 덴마크의 대표적 보험회사로 키워냈다. p 89

 보험업은 현금 유동성이 가장 높은 사업이다. 보험료는 계속 들어오는 데 보험금은 미래에 지급하기 때문에 돈이 계속 쌓여간다. 그래서인지 보험업으로 성공하면 재벌로 등극하고, 다른사업으로 재벌이 되어도 보험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삼성그룹이 ‘삼성생명보험’과 ‘삼성화재보험’을 가지고 있다. p 90

 
한센은 선구안을 가진 사업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구의 영향으로 그림을 좋아했다. 그의 아내역시 그림을 좋아헀다. 한센 부부는 한평생 미술 작품을 사모았고, 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지은 대 저택이 바로 ‘오르드룹고르미술관’의 시작이다. 그렇게 보험업으로 재벌에 등극하며, 멋진 작품들을 사모으던 한센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때 한센은 자신이 모은 프랑스 작품 82점을 팔아야만 했다. 그가 판 작품에는 지금도 유명한 세잔, 마네, 고갱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있었다.


한센은 눈물을 머금고 프랑스 작품 82점을 팔았는데, 이 작품들을 산 사람은 놀랍게도 일본인 사업가였다.1922년에 일본엔 이미 훌륭한 미술작품을 사모으는 컬렉터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동시대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우리나라 미술사는 어땠나. 매우 뼈아픈 대목이다. 한센이 판 이 작품들은 현재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노르웨이국립미술관 in 노르웨이

복지가 넘사벽이라는 노르웨이. 사회안전망이 워낙 탄탄하며,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다는건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노르웨이도 약점은 있다. 독립 역사가 짧다보니,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때 미술계가 약한게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한 화가들은 대게 프랑스를 필두로 그 주변 유럽국가들이 주를 이룬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도 해당 국가들이다. 그렇기에 노르웨이 정부는 더욱 문화시설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노르웨이 정부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개관하며 문화 인프라 사업에 열중했다.


문화시설은 인구가 많아야 만들어질 수도 있고 유지될 수도 있다.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면서 높은 수준의 미술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문객이 많아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인 내수가 확보되면 훌륭한 미술관을 키워나가는 데 유리하다. 노르웨이는 수도 오슬로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인구가 170만 명으로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1/3이나 된다. 이런 인구 밀집에도 국가 자체의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슬로는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가 될 수 업사. 그런 약점에도 정부는 문화 인프라를 서유럽의 대도시에 뒤지지 않게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p 131


 
다행스럽게도 19세기 말 즈음, 노르웨이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배출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화가, 바로 에드바르 뭉크다. 에드바르 뭉크의 탄생은 후대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많은 문화적 자산을 물려주었다. 실제로 노르웨이에 있는 노르웨이국립미술관을 찾는 사람들 대다수가 뭉크의 그림을 보기 위함이다. 


또한 노르웨이에는 뭉크미술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뭉크는 노르웨이 미술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한 사실 하나. 사실 노르웨이에는 뭉크 이전에 크리스티안 달 이라는 걸출한 화가가 있었다. 뭉크가 나타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크리스티안 달 역시 걸출한 화가임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 크리스티안 달은 노르웨이국립미술관 창립멤버이자, 자신의 작품을 전부 이 미술관에 기증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보통 유럽 미술관의 시초는 왕가 또는 귀족들의 소장품에서 시작이 기본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미술관은 조금 달랐다. 노르웨이 정부가 세워진 뒤 정부에서 나서서 미술관을 세우고, 정부에서 미술품을 수집하거나 민간의 기부에 의존했다. 실제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있는 뭉크 작품 80%는 민간의 기증이라고 한다. 왜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노르웨이 역사를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노르웨이는 꽤 오랜기간 덴마크와 한 몸이었다. 연합이라고 해야하나? 지배국이라고 해야하나 뭐 여튼 그러다가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노르웨이가 독립을 한다. 즉 노르웨이가 독립을 하기 전까지, 노르웨이를 지배한건 덴마크 왕실. 덴마크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품은 당연히 덴마크 미술관에 기증할테니, 당연하게도 노르웨이 몫 왕실 미술품이 없는 것이다. 

문득 일제강점기 때가 떠오른다. 일제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많은 미술작품들을 일본으로 무단반출을 했다. 실제로 일본 내 있는 박물관, 미술관에는 우리나라에서 약탈한 작품들이 많다. 물론! 덴마크 - 노르웨이와는 다른 환경이긴하다. 어찌되었든 덴마크 - 노르웨이는 연합이었으니까. 그리고 덴마크 왕실이든 귀족 부자들이든 지들 돈으로 수집품을 사모은거니, 무분별한 약탈을 일삼은 일제와 비교하면 안된다. 아 괜시리 덴마크에 미안해지는 기분.
이달의 사락 c******0 2025.07.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