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내가 꽤 오래 전에 해당 작품의 예스 영화페이지Db에 리뷰를 남겼더랬으나(기억도 잘 안 나는데 혹시나 해서 찾아 보니 있었음), 최근 소장 DVD를 다시 돌려 보고 전에 놓쳤던 느낌, 또 생략했던 몇 가지 수다를 좀 더 떨어보기로 하겠다. 마치 <대부>에서 비톨리오 안돌리니가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코를레오네'라는 성씨를 쓰듯(정확하게는 행정 편의를 위한 誤記), 이 Bat
마치 <대부>에서 비톨리오 안돌리니가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코를레오네'라는 성씨를 쓰듯(정확하게는 행정 편의를 위한 誤記), 이 Bathgate도 출신 거리 이름을 딴 (예비)갱스터로서의 통명에 가깝다. 구질구질한 거리에서 자신의 영리함과 행운(그에게는 유독 자주 행운이 따르며 그를 고용한 보스들도 이 점을 인정) 덕분에 슬슬 입지를 굳혀 간다는 줄거리는 갱스터 장르에서 두루두루 다 써먹는 편이며, 이걸 두고 무엇으로부터 무슨 영향을 받았는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에드워드 로렌스 닥터로의 원작 장편부터가 이미 문예는 물론이고 영화쪽에서도 관행이 확실히 세워 진 후에야 출판되었을 뿐이니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겠고 말이다.
닥터로의 원작 소설도 주로 빌리의 청년기를 다루는 구성인 점은 같은데, 결말은 좀 다르고 세부 설정도 꽤 차이가 난다. 우선 원작 소설은 어디까지나 제목이 부끄럽지 않게, '빌리 배스게이트'의 사연이라는 데에 매우 충실하다. 드루 프레스턴 역시 보 와인버그, 본남편 하비 프레스턴, 그리고 아서 '더치' 슐츠 세 남자의 품을 두루(뭐?) 오가지만, 결국은 빌리의 여인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는 게 소설에서의 선택이다. 마치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이 남의 눈먼 돈을 움켜잡고 부농으로의 성장 발판을 (운 좋게) 마련하듯, 빌리 역시 비명에 간 더치 슐츠의 비자금을 장악하고(처음부터 빌리를 좋게 봤던 오토가 이놈 차세대 보스 깜이라면서 은근 밀어 줌) 결국 미래의 조폭 두목으로 자립하는 과정까지 짧게나마 다 다루지만(소설의 실제 창작, 발표 시점도 늙은 빌리가 과거를 회고하는 그 시점과 거의 일치), 영화는 보다시피 대체 빌리가 애초에 왜 영화에 등장한 건지 전혀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느닷 끝나버리는 허술한 구성이다. 제목만 '빌리 배스게이트'로 달았을 뿐이지 내용은 '말년 더치 슐츠의 몰락과 비극적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위 영상은 줄리 런던 버전의 <바이바이 블랙버드>. 이 영화 중의 퍼포먼스와 그나마 가장 분위기가 비슷하여 퍼왔음)
빌리가 처음 바에서 여가수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중 와인버그와 춤추는 드루 프레스턴(니콜 키드먼 扮)을 보고 촌뜨기처럼 막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이 영화보다 19년 후에 나온 <피라냐 3D>에서 주인공 제이크를 연기한 스티븐 R 매퀸을 연상시킨다(물론 둘은 아무 관계도 없고 로렌 딘은 이제 중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임). 둘의 표정이 해당 씬에서 똑같으므로 한번 확인해 볼 것. 참고로 저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피터 잭슨판 <킹콩>에서 막상 칼 더넘의 쇼에 출연 안 하고 소극장을 떠돌며 혹평과 저급여에 시달리는 앤 대로의 현실 시퀀스에 배경으로 깔리기도 한 <Bye Bye Blackbird>이다. 가수 역은 레이첼 요크가 나오는데 자기 목소리는 아니고 립씽크처럼 보인다. 젊은 깡패가 클럽 등에서 라이브 공연을 보고 뻑가는 모습은, <굿펠라스>에서 제리 베일(본인이 직접 나옴)의 <프리텐드>를 듣고 넋이 나간 헨리 힐(레이 리오타 扮)이라든가, 내가 일주일 전에 리뷰한 2015년작 <레전드>에서도 톰 하디가 티미 유로(더피 扮)의 노래를 듣고 황홀해하는 장면 등이 비슷하다.
여기서 더치 슐츠 역을 맡은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는 너무도 실망스럽다. 그는 마치 <대부> 시리즈에서 잘 표현된 알 파치노(냉혹하고 절제된 성격 묘사)와 로버트 드 니로(열정과 화려한 제스처) 두 후배의 명연기를 두고 좋은 점만 모방하는 듯 보이는데, 이 정도 거장이 자기 색깔도 못 드러내고 훌륭한 전통(<대부>로부터 거의 20년이나 지난 시점)을 답습하는 모습이 대단히 졸렬할 뿐 아니라, 그나마 연기의 완성도도 떨어지는 결과에 그쳤다.
웃기는 건, 더치 슐츠가 노리는 여인 드루의 전 애인 보 와인버그(실존 인물임) 역에 브루스 윌리스가 나온다는 사실인데, 와인버그는 더치보다 약간 연상이지만 실물 배우로서 브루스 윌리스는 더스틴 호프먼에 비해 거의 아들뻘(까지는 아니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배우로서 뜬 게 조금 늦은 나이라서 거의 그렇게 느껴짐)인데도 이 영화에서의 모습은 거의 친구처럼 느껴진다. 한번 보고 확인하기 바람. 본래 이 사람이 젊은 나이때부터 대머리가 까지는 등 노안인 탓도 있지만 여튼 이 역도 슐츠 역 만큼이나 코믹인지 순정인지 비장한 희생양인지 뭔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 희한한 캐릭터.
컨셉이 뭔지 감 안 잡히는 건 니콜 키드먼이 맡은 드루 프레스턴 역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너무도 순수하여 만나는 남자마다 포로로 만들고 마침내 그 운명을 파멸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팜므 파탈일까, 아니면 내면이 썩은 탕녀 중의 탕녀일까? 사실 소설에서도 결국은 빌리에게 마음을 주는 결말이므로(영화에서는 그나마 그런 설명도 없이 도중에 증발함) 아주 막되어먹은 여자라고 보긴 무리이다. 이런 허술한 성격 설정과 구멍투성이 연기도, 니콜 키드먼의 개인적 매력에 가려 관객 눈에 안 띄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못 배운 더치 슐츠가 protege(피보호인)과 prodigy를 헷갈려 말실수를 하는 장면은 사실 이 빌리가 조직과 보스에 뜻하지 않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식이므로 그로서는 결과적으로 말실수도 아니었던 셈이다. 이 장면은 그나마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무죄 평결을 받으려는 치밀한 술책의 일부로 제시되는데, 영화 전체 진행과 안 어울리게도 심도 있는 디테일(마피아의 잔머리)이 구현된 터라 그나마 좋았던 편. 원작 베스트셀러의 밀도 높은 진행에 충실하기라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영화의 실패는 날아다니는 진행도 진행이지만, 더치 슐츠, 드루 프레스턴, 보 와인버그, 장식이나 다름 없는 빌리 모두가 성격 구축의 중심이 뭔지 철저히 주저앉았다는 데에 있다. 그나마 성공한 배역은 빌리를 끝까지 챙겨 주고(망하는 조직에서 빨리 발을 빼라는 듯 거액의 퇴직금까지 건네는. 그래도 보스에 대한 충성심은 강해서 '니가 전성기의 슐츠를 봤어야 해. 그때 그는 왕과도 같았다고'라는 대사는 사람 마음을 찡하게 한다. 책에도 이 말이 나옴) 오토 역의 스티븐 힐, 성깔 더럽지만 의외로 정이 깊은 오른팔 어빙 역의 스티브 부셰미(이 시절 흥행작에 조연으로 자주 나온 사람), 그리고 새파랗게 젊은 시절 천만 뜻밖에도 러키 루치아노 역을 맡은 스탠리 투치(<악마는 프라다...>에서 그 대머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