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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며 읽는 작은 철학책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북노마드] (2025)
사람이 가득한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
저자 사사키 아타루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일단’과 ‘어쩌다’의 삶 사이에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로 놓여 있는 존재다. 그러니 곰곰히 따져보면 이처럼 부조리한 현실이 없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삶의 이력(history)이 나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음’은 세상에 태어난 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운명이다. 피할 길이 없다. 어느 누구도 경험한 바 없지만 누구나가 지극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대상이다. 그러니 탄생과 더불어 이토록 ‘부조리한’삶의 진실이 있을까.
저자가 이야기하는 ‘일단’과 ‘어쩌다’의 철학은 어머니의 ‘우짜노’ 철학과 닮아 있었다. 다만 어떤 사건 혹은 현상의 전과 후를 마주하는 주체의 부조리한 감각이 전/후로 구별되어 있을 뿐이다.
내게 어머니의 ‘우짜노’철학은 체념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체념이 포기가 아니듯, 이는 앞으로 다가올 삶을 덤덤하지만 의연하게 맞이하겠다는 결연한 견딤의 의지이기도 했다. 지금껏 겪었던 크고 작은 시련들에 어머니의 ‘우짜노’ 철학이 언제나 내게 큰 힘과 위안을 준 이유다. 나아가 어머니의 ‘우짜노’철학은 그 뒤에 (그래도 해야지, 그래도 살아가야지)라는 말이 숨어 있는 삶의 지혜이기도 했다.
멜빌의 <모비딕>에서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생각난다. 입 가운데가 살짝 갈라지고 입 전체를 덮은 듯 보이는 참고래가 죽음을 굳건히 참고 견디는 스토아 철학자를 닮았다고 말하고, ‘얼굴 없는’ 향유고래는 죽음에 초연해 보이는 듯한 인상이 플라톤을 닮았으며, 나아가 향유고래는 말년에 스피노자를 만났을 것이라 말하는 대목 말이다. 이처럼 ‘죽음’의 문제는 우리의 ‘존재함’과 떨어질 수 없는 이란성쌍둥이다.
철학자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작은 책은 ‘죽음’이야말로 “나에게 고유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단 하나의 경험”이기에, “나의 죽음은 내 것이다. 누구도 나 대신 죽을 수 없다.”(54)고 부연한다.
오늘 내가 품은 욕망은, 아타루에 따르면, 타인이 만든 ‘모조’된 욕망일 뿐이다. 유럽 여행을 하고 지중해의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는 일, ‘인생의 목적은 행복해지기’와 같은 표현은, 결국 내게 주입된 타인의 욕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욕망은 인간의 등장 이후 끊임없이 복제되고 변형되어온 진부함의 총체이기도 할 테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아마도 ‘죽음’이야 말로 나 자신에게 고유한, 결코 진부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듯하다.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플라톤이, 혹은 철학자가 ‘죽음을 열망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이는 결코 ‘자살하고 싶다’거나, ‘어차피 죽을 건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식의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내게 고유한, 이 존재론적인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뜨거운’ 물음인 것이다. 이건 문제에 대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차갑게’ 직관하는 일에 더 가까울 듯하다. ‘뜨거움’과 ‘차가움’은 같은 진실의 다른 단면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죽음에 대한 나의 태도는, 순간순간 혹은 오늘 나의 하루를 다르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제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지 퇴근할 때 마저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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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은 늘 미루게 되죠. 어렵고, 멀고, 왠지 ‘공부’ 같아서요. 그런데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은 표지부터 이상하게 담백해요. 여백이 많고, 선 하나가 길게 그어져 있는데 그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시선이 멈춥니다. 그리고 부제,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이 책은 “철학이란 뭘까?”를 친절히 설명하기보다, 출발점을 딱 하나로 잡아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그걸 피하지 말고, 그 사실을 제대로 생각하는 순간 철학이 시작된다고요. 읽는 내내 떠오른 장면이 있었어요. 장례식장 다녀온 날, 집에 와서 불도 안 켜고 멍하니 앉아 있던 시간. 그때는 ‘슬프다’보다 ‘이상하다’는 감각이 먼저였거든요. 사람은 분명 거기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지는’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감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질문뿐이더라고요. 나는 왜 태어났지? 나는 왜 죽어야 하지? 책은 삶을 ‘일단’과 ‘어쩌다’로 설명합니다. 태어남은 선택이 아니고, 인생은 계획표처럼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는 고백. 저는 요즘 “내가 잘못 살아서 이렇게 꼬였나?” 자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런 죄책감이 조금 느슨해졌어요. 어떤 인생은 원래 우연의 조합이고, 그래서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에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라는 느낌. 그리고 꽤 날카로운 부분도 있어요. 내가 원한다고 믿는 욕망들, 사실은 남의 기준에서 옮아온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 SNS에서 보고, 남들이 좋다니까 따라가고, ‘이 정도는 해야지’ 싶어서 채우는 것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보다 “남들이 인정할 만한가”를 먼저 계산하게 되잖아요. 책은 그런 삶을 ‘복제’처럼 느끼게 만들고, 그 순간에 ‘유일무이함’이 사라진다고 말해요. 읽다가 괜히 휴대폰을 뒤집어 놓게 되더라고요. 신기한 건, 이 책이 짧은데도 여운이 길다는 점이에요. 두껍게 설명해서 설득하는 게 아니라, 짧은 문장과 단단한 질문으로 밀고 들어와요. 일본 독자들 반응을 훑어봐도 “입문서인데도 생각이 계속 이어진다, 금방 읽히는데 오래 남는다” 같은 결이 많더라고요. 저도 그랬어요. 읽는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덮고 나서 며칠 동안 ‘장례, 의례, 기억’ 같은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은 우울하게 가라앉는 책이라기보다, 오히려 삶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책에 가까워요. 죽음을 핑계로 인생을 “더 반짝이게” 포장하는 자기계발식 문장과는 결이 다르고요. 그냥, 외면하던 것을 정면으로 보게 합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정돈돼요. 철학이란 결국,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는 경험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요즘 마음이 어수선한 분, 질문이 많아진 분, 철학책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께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을 권하고 싶어요.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어요. 다만 달콤하게 감싸주진 않습니다. 대신, 딱 필요한 만큼만 정면으로 보여줘요. #모두를위한철학입문 #사사키아타루 #죽음을배우는시간 #철학입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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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모두를 위한 철학입문 by 사사키 아타루 🌱 “죽음을 생각할 때 철학은 시작된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가장 짧은 철학 입문서! 🌱 ~'작지만 강하다' 라는 말이 이런 때 쓰는 말일까?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여느 책보다 작고 가벼워서 좋았는 데 내용은 더 좋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조금은 편하게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랄까? 이 책의 부제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이다. 인간에게 철학이 생긴 이유는 삶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철학 뿐만 아니라 종교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진 인간은 삶이 고통스러웠고 자신이 왜 태어났으며, 이 삶의 끝이 무엇인 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스러운 삶을 싫어하면서도 삶의 끝인 죽음은 두려워하며 피하고 싶어한다. 선택지는 없는 데도. "인간은 참 이상하다. 죽어본 적이 없는데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아무것도 허락하지도, 아무것도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난다. 그리고 언젠가 죽어야 한다." 어쩌면 신은 일부러 죽음을 두렵게 만들었지도 모른다. 삶 자체가 고통이기에 벗어나고 싶은 모두가 죽음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음은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고 지옥과 악마 등 갖은 이야기들로 채워넣었음에도 제 발로 죽음에 뛰어드는 이들은 늘 존재한다. 이렇듯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인간은 철학을 했다. "철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이다. 에피쿠로스도, 스피노자도, 니체도 모두 이렇게 말했다. “나의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죽는 순간,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일까? 지독한 번뇌에 시달릴 때, 철학책을 보면 조금은 평온해진다. 죽음 이후의 지옥이 아니라 현실의 지옥을 조금은 잊게 해준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려준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말한다. 그래도 삶은 충분히 가치있다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삶은 유한하다, 그렇기에 삶은 ‘의미’ 있고 반짝반짝 ‘빛난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듣지 않았는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에 의미가 생겨난다! 이것이야말로 ‘국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논리가 아니던가." 허무주의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도 철학자들이 보는 한 면이다. 나는 이 주장에도 수긍이 간다. 눈부신 미래를 꿈꾸며 달려가는 이들의 삶도 가치있고, 조금은 힘을 빼고 흔들흔들 나아가는 이들의 삶도 가치있다. 자기만의 삶의 가치만 뚜렷하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에 나는 몹시 화가나는 일이 있었다. 진짜 비극은 아니었고 순간적인 욱함과 감정조절 실패인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아 날 힘들게 한다. 삶에서 조금은 힘을 빼야겠다. 언젠가 맞게 될 죽음의 시간을 부러진 대나무로 맞을게 아니라 바람따라 이리저리 날리다 흘러 들어온 풀잎처럼 가볍게 죽음의 시간을 맞고 싶어졌다. @book.gu_book.gu @booknomad #모두를위한철학입문 #사사키아타루 #북노마드 #철학 #철학입문 🔅<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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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거울로 바라본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 한 문장이었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에 의미가 생겨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죽음이야말로 삶을 빛나게 하는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있기 때문에 하루가 소중하고, 언젠가 사라질 시간이기에 지금의 만남과 대화가 더 귀하다. 철학자의 말이지만, 내 일상의 마음에 직접 와 닿는 울림이었다. 📒책은 얇고 가볍지만, 던져주는 질문은 오래 머문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라는 물음은 곧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라기보다,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작은 철학의 등불이다. 작지만 무겁고, 가볍지만 깊다.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책이다. 내게 이 책은 언제든 꺼내 읽고 싶은, 손바닥 위의 철학 노트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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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앎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철학에 대한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 없고, 무작위로 태어났고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 죽어본 적도 없으면서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렇게 어쩌다 태어난 우리들은 인생이란 '일단'과 '어쩌다'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은 자의적인 의지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힘이고, '어쩌다'는 타의적인 영향으로 운과 같은 의도할 수 없는 힘이다. 우리는 크게 비전에 따라 목적을 세우고 그에 맞는 길을 향해 가며 성공을 이르려고 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목적에 이르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타인이 원하는 것을 보고 내가 원하기 되었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좀 더 깊은 철학적인 생각으로 들어가자면, 모든 것은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윤회하는데,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생각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렇기에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고,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같다면 그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상대가 원하는 것과 일치 될 것인데 결국 말은 같지만 자신이나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것이 아닌가? 부제에서 언급한 '죽음을 배우는 시간' 답게 죽음에 대한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나의 죽음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과 동시에 나의 육체를 확인할 수 없고, 어떤식으로 흘러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타인의 욕망에 의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의 순간만 유일하게 침묵의 유일한 경험을 얻는다. 살아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나의 삶과 다르게 나의 죽음은 오로지 유일무이한 나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과 의례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제시한다. 이것은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을 통제한다. '당연하다'생각했던 제도나 교육들이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점점 주권의식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항상 어떠한 제도권에 맞춰야 하며 다른 사람의 눈이 기준이 되어 행동해야 하며 '감시'아래 놓여 있게 된다. 인간을 개조하고 단체로 재설정하게 만드는 어떤 거대한 권력. 꼭두각시가 되어 마땅해 보이는 보상으로 의례와 의식에 중독되게 만드는 것들. 내가 나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앞서 말한 거대한 권력에 속해 나의 알멩이는 없어진 채 살아가고 있는지 구별해낼 수 있는 깊은 사유를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의례가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이상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죽고난 후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게 될 것을 생각하면 무의미해질 우려가 너무 많다. 의도 없이 태어났으나 반드시 죽어야 되고, 사는데 권태를 느낄만한 이유가 충분히 된다. 이 책에서는 '국가'와 '종교'에 의한 주제로 인간의 죽음을 설명한다. 국가의 죽음 관리는 '많은 사람을 위한 죽음'이라는 숭고한 이미지의 유지를 위해 공동체의 현실적인 존속과 확장을 지향하는 정치적 기술로 개인의 죽음의 의미를 빼앗고, 종교는 이슬람교나 기독교와 같이 일신론적 입장으로 죽음의 공포에 벗어나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오직 타인의 죽음만 관찰하고 그에 대해 근원적인 두려움을 항상 느끼며 살아갈 뿐이다. 결국 나는 죽어서도 죽은 것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토록 두려워 할 이유가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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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할 때 철학은 시작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이듭니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철학을 배워야 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철학은 어려워라는 생각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지지 않더라구요.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은 철학을 어렵고 학문적인 영역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유할 수 있는 것으로 풀어내는 책입니다. 이 책은 고전 철학자들의 사상을 거창하게 설명하기보다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같은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철학은 삶을 사유하는 힘임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늘 바쁘게 하루를 쫓기듯 살아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물음을 놓치곤 했습니다. 이 책은 멈춤의 시간을 주었고 정답 없는 길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보는 용기를 줬습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을 두려움없이 깊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좋았어요. 작가님의 소소한 유머가 책을 무겁지 않게 만들었고요, 핸드북으로 들고 다니기에 정말 좋은 크기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철학이 삶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삶이 곧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 떠올려 봅니다. 철학은 당신에게 새로운 정보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듣고 나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것. 이것이 철학의 역할이다. 이것이 철학의 첫 과제이자 마지막 과제다. 들어가야 할 첫 번째문이자 출구가 없는 마지막 문이다. (p.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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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일본 다운 기획에 사이즈에 서술 방식(웃음). - 이런 식. 어쨌거나 죽음과 관련된 서적은 왠만하면 구입하고 보는 나의 성향상 그닥 미덥지 않으면서도 구입. 하지만 한동안 이 쪽 글을 본격적으로 읽지 않은 상황에서 환기의 기능은 하는듯. 타자가 없으면 '나'는 죽을 수 없다. 죽음을 끝마칠 수 없다. (88쪽) 의례에는 '시선의 교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03-14쪽) 어떤 '신체'가 '형성되는' 장소, 즉 어떤 양식의 '주체'가 '설정되는' 시공간에서는 반드시 의례가 필요하다. (107쪽) 이 얼마나 시간과 죽음에 대한 대단한 업신여김인가. 이 얼마나 영원히 산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인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작업에 대해] (1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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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 사사키 이타루 | 북노마드 2025 | 철학일반 ⠀ "매우 기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참된 삶', 즉 영원한 삶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죽음을 거쳐야 한다니......" -75p ⠀ ✨ 죽음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란 부재가 끌렸고, 뭐라 말하는지 궁금했다. 책에서와 동일하게, 모든 철학의 시작은 '죽음'이다. 이 죽음이라는 유한함 앞에 철학이 수천년간 이어져 온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인간의 사유만으로는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는 미제이기 때문이고, 둘째 인간이 죽음에 대한 답을 찾건 못 찾건 다가올 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 한없이 작고 무능력하다. ✨ 두 갈래 결국엔 두 갈래다. 선택이다. 1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2 죽음 이후엔 무언가 있다 이 책은 전자를 지지한다. 보편적 무신론적 일반철학이다. 왜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가. 애초에 인간은 무(無) 혹은 먼지에서 온 진화의 산물 혹은 우연한 탄생체다. 시작이 無니까, 죽음 이후도 당연히 無다. 그래서 이 책에선 인간을 삶을 정리하며 '고생하다 / 무의미하게 / 죽는다 /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그게 정말 인간 삶의 올바른 정의라면, 정말 삶은 무의미, 무가치하게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삶엔 너무 많은 기쁨과 슬픔과 의미가 있다. ✨ 그분의 존재 산과 바다, 동물과 식물, 도시와 문화, 오늘의 햇살과 공기, 일상을 함께하는 이들의 표정, 사랑 혹은 우정을 나누는 이들과의 친밀함과 연대감. 사람의 말로는 다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각들, 정서적, 영적인 인지와 소통들.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함께 누리며 겪은 시간들 속에서 이 세상을 아름다움의 이유로 만드시고 한번 뿐인 삶이 특별하고 행복하길 바라시는 애정어린 원함과 목적을 따라 창조하신 세상 안에 나를 태어나게 하신 분이 있음이 나는 훨씬 더 수월하게 믿어진다. ✨ 여전한 질문들 물론 그렇게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서 인간의 생각으로 풀기 어려운 질문들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땅과 피조물로서의 한계, 철학, 신학 모두가 도달하지 못하는 벽, 풀 수 없는 수많은 근원적 질문들. 사유와 증명 그 너머에. 그러나 분명히 실존하고 여전히 함께하는. ✨ 잘 살고싶은 오늘 인간의 존재근원도 삶도 결국엔 다 無라고 하는 것보단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고 나아가 내 삶이 잘되기를 바라는 스스로의 애정과 주변에 소중한 이들과 그분 안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오늘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갈만한 힘을 주지 않을까.⠀ #레마북스 instagram.com/rhemabookss *도서 협찬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