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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혼자서도 어떤 일을 능히 이룰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혼자서는 상상도 못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해석한다. 미국 작가 앤 패칫의 산문집 <진실과 아름다움>에 나오는 저자와 친구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 책은 1992년 <거짓말쟁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데뷔해 2001년 출간한 <벨칸토>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앤 패칫이 2004년에 발표한 첫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우정을 나눈 루시 그릴리와의 일화들을 소개한다. 앤과 루시는 같은 대학에 다녔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루시는 앤에 대해 잘 몰랐지만 앤은 루시에 대해 알았는데, 그건 루시가 대학에서 유명 인사였기 때문이다. 루시는 어릴 때 앓은 암의 후유증으로 턱의 일부를 잃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다. 처음에는 남다른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루시에게는 탁월한 재능과 엄청난 친화력 등 다른 매력도 많았다. 그래서 앤은 루시와 같은 대학원(아이오와대학 문예창작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뻐했고, 루시 또한 앤과의 만남을 기뻐했다. 작가와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가난한 여자 대학원생인 앤과 루시에게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둘 다 하루라도 빨리 성공하고 싶어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버틸 만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두 사람은 각종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펠로십, 공모전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를 격려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작은 목표들을 이루고 결국 둘 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작가로서 인정을 받으면서 점차 생활이 안정되는(집도 사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난) 앤과 달리, 루시는 화려한 성공을 거둘수록 장렬한 고통을 겪는다. 루시는 오랫동안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자신을 사랑해줄 남자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그런 남자를 만나려면 적어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외모를 갖춰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위험한 성형 수술을 여러 차례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졌다. 앤은 친구로서 루시를 말리고 싶었고 실제로 말린 적도 있지만, 암도 장애도 겪어본 적이 없는 앤으로서는 루시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루시의 선택을 비난할 수만도 없다. 그래서 앤은 루시를 위해 간병도 해주고 돈도 빌려주고 방도 내주는 등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다가 결국 더는 못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얼마 후 들려온 루시의 부고. 사인은 따로 있었지만 앤의 자책을 막을 순 없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앤이 루시를 위해 해준 것들이 정말 많지만, 내가 앤이라면 루시와 알고 지내는 동안 내가 루시에게 해준 것보다 루시가 나에게 해준 게 더 많다고 느꼈을 것 같다. 앤의 재능과 성실성을 고려할 때 앤은 혼자서도 충분히 작가의 꿈을 이루었을 것 같다. 하지만 루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루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이제까지 쓴 작품들과 같은 작품을 쓰고 지금과 같은 작가가 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혼자 걸을 뻔했던 길을 함께 걸어주고 더 먼 곳으로 이끌어준 친구의 빈자리를 들여다 보는 저자의 모습이 애처롭다. "루시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고, 상황이 온통 암울해 보일 때 자신이 내뿜는 환한 빛을 빌려주었다. 나누어줄 빛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빛을 빌려주는 것, 수년에 걸쳐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해온 일이었다." (21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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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패칫의 산문 『진실과 아름다움』은 한 사람의 생애를 곁에서 가장 충실하게 지켜본 목격자가 써 내려간 뜨거운 고백이자, 우정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헌신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은 소설가 앤 패칫과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작가였던 루시 그릴리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형태의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린 시절 암으로 인해 얼굴의 일부분을 잃고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루시와, 그녀의 곁을 지키며 함께 성장해온 앤의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록 이상의 울림을 준다. 저자는 루시를 단순히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루시는 매력적이고 명석하며 생기 넘치는 예술가인 동시에,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무절제하며 때로는 주변을 힘들게 하는 결함 있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앤 패칫은 이러한 루시의 불완전함마저 '진실과 아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개미와 베짱이의 비유처럼, 성실하게 삶을 일구는 이들에게 베짱이가 가져다주는 예술적 영감과 생의 환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루시를 갉아먹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방황은 깊어지지만, 그럴수록 앤의 보살핌은 더욱 단단해진다. 비록 그 성실한 사랑으로도 친구를 절망의 끝에서 완전히 구해내지는 못했을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빛을 빌려주며 어둠을 건너온 시간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죽음으로써 육체는 사라졌지만 앤의 글을 통해 루시는 다시금 생명력을 얻는다. 이 책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황홀한 일인지를 증명하며,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묻는 독자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연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