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기 전에 '오 자히르'를 읽었었다. 이 책과 '오 자히르'와의 공통점은 결혼,부부,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과정을 풀어가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물론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다르니 다를 수 밖에는 없었지만 읽는내내 비교가 되어 그 동안 결혼에 관한 한 무슨 박사라도 된듯하다..^^ 헝가리 소설도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도 처음인 것 같은데, 헝가리의 귀족계급과 천민계급의 생활환경,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발발전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시대적 배경과 1차 세계대전의 상황까지 그려내고 있어서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결혼생활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독백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처음은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 준 중산층 계급 출신인 일롱카의 남편 페터에 대한 끝없는 사랑, 천민계급인 유디트를 사랑하면서도 사회적 관습에 의해 그 사랑을 내 보이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던 귀족계급 페터의 용기없는 이기적인 사랑, 마지막으로 천민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사랑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빠져있는 페터를 이용했던 파괴적인 사랑의 유디트... 결혼은 신성한 것이라고 교육 받아 온 일롱카는 남편이 자기가 아닌 '남편에게 맞는 여자'가 유디트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도 그 후로 몇 년을 서로 모른 척하면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에겐 결혼이 신성한 것이니 이혼은 당연히 신성모독에 해당되므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던 것...그러나 그녀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된 일롱카는 그후에도 페터를 잊지 못한다. 열정적인 일롱카의 사랑에 대해 읽은 후 페터의 용기없는 사랑은 세계어디에나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서로의 살아 온 관습에 의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는 일은 정말 슬프다고 생각했으나, 유디트의 뜻밖의 고백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페터의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 둘이서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사람의 독백 가운데 가장 진실된 이야기는 유디트의 이야기인데, 그녀가 토해내는 이야기 속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의 생활과 그 시대의 계급사회 그리고 1차 세계대전으로 서서히 무너져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귀족계급에 동경하며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그 귀족계급을 이해하지 못했던 유디트..결혼의 변화는 헝가리의 변화이자 귀족계급의 변화이다. 산도르 마라이의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어. 이래 봤자 다 부질없는 짓이야. 이런 상태는 굴욕적이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야. 내 힘으로 변화시키고 기적을 일으켜야 해'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이는 아찔한 순간들이었어. 자신이 얼마나 많은 힘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무슨 일에 비겁했고 무능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말이야. 그것은 삶이 변화하는 순간들로, 죽음이나 종교적인 각성처럼 예고없이 불쑥 찾아온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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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형경의 추천의 글을 읽고 주문했던 책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아마 유명 소설가들에게 서평을 받기 위해 많은 출판사들이 목을 메고 있겠지. 하지만 쏟아지는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란, 정말 어렵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가 골라준 책이라면, 별 의심없이 주문할 수 있다.
"시민"계급으로 판에 박힌듯 관습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자신에게 부족한 뭔가를 느끼는 페터,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했지만, 불행한 삶으로 인도된 페터의 전부인 일롱카, 가난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페터를 이용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유디트. 세사람과 페터의 친구 라자르. 이렇게 네 람의 이야기이다.
작가인 산도르 마라이는 헝가리 태생으로 전후에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시민계급이 해체되는 전후의 혼란한 시기를 빌어, 작가는 결혼과 이혼, 사랑과 증오, 기대와 절망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회의적이고 반성적인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형식이 참 독특했는데, 세 주인공이 모두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나간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독백체로 쓰여져있다. 일롱카는 까페에서, 페터는 밤새 술을 마시며, 유디트는 로마의 호텔방에서 자신의 젊은 애인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일롱카는 단정하고 절제된 표현들 속에서 페터에 대한 사랑과 노력할 수록 더 절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결혼생활에 대해서 여전히 교양을 잃지 않은 자세로 이야기하고 있고, 페터는 자신의 삶과 운명의 굴레를 생각하며, 결혼과 사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유디트는 가난을 벗어나 부귀를 쫓고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 젊은 애인과- 자신의 재물을 노리는 것뿐임이 분명한데- 사랑이라는 관계로 위태로운 모습으로 지난 세월을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다시 읽을 때를 위해서 표시를 해두는 편이다. 이 책들을 읽는 동안, 특히 뒷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거의 모든 쪽의 모서리가 접혀갔다. 나에게는 시민계급 태생의 모범 부인 일롱카보다는,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외로운 페터에게 더 공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유디트의 배신과 증오와 사랑에 놀라워하다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삶에 자신을 던지는 유디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더욱이 유디트의 독백인 3부에서는 전후의 혼란한 세계가 바탕이 되어 세상에 냉소적인 라자르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완벽한 태도를 갖는 것도, 고군분투 하는 것도, 냉소적인 것도, 결국 그 주체가 얼마나 어렵게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은 연민에 가까운 것이다.
나보다 한 세기 앞서 살아간 사람이 문장들이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역시 고전의 매력이다. 이 정도로 고전이라고 할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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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의 장편소설인 이 책 [결혼의 변화]는 제목 그대로 '결혼'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 결혼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따지고보면, 결혼은 인류의 장구한 문화체계이자 사회제도이며, 삶을 구성하는 커다란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 [결혼의 변화]는 이러한 결혼 제도가 정치적, 사적, 문화적 환경이라는 외적 세계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고, 어떻게 변화, 변질되는지와 함께... 그러한 변화와 변질의 과정 속에서 한 인간이 다시 말해 한 인간을 이루는 외로움, 감정, 가치관, 생활태도 등 다양한 측면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해 섬세하고, 날카로운 인식으로 진단하고 있다.
소설의 각부를 구성하는 3명의 등장인물과 (일롱카, 페터, 유디트) 이 3명의 삶을 목도하는 '라자르'라는 인물은 작가인 '산도르 마라이'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된 역할 분담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첫번째 아내 '일롱카'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남편 '페터'는 욕망을 피해 경직된 규율로 도피하고, 하녀인 '유디트'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힘으로 부실한 인습의 종지부를 찍는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을 때, '결혼의 변화'란 제목을 보고 TV 프로그램중 하나인 '부부클리닉'과 비슷한 류의 소설인줄 알았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을 보고 그런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다. '산도르 마라이'... 그의 작품들은 많지만, 내 경우에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 읽은 것은 [열정]뿐이었다. 그 작품을 통해 나는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내면의 깊은 성찰들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 속 내용들은 실로 간단하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내용들이 그의 내면을 거치면서 실로 다양하면서도 속깊은... 다른 누가 흉내낼 수 조차 없는 그만의 감수성으로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아직까지 내 나이가 많지 않고, 또한 결혼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을 때이기에 이 책의 내용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하면 결혼을 한다는... 그런 단순한 생각에 젖어있는 지금의 내게는 말이다.
결혼에 있어 사랑은 전부가 아니라는 이 책에서 전해주는 이야기는 지금의 내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인 '산도르 마라이'가 표현하는 부분들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세 인물... '일롱카' '페터' '유디트'... 이들 세 인물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한다는 설정은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이들 세 인물은 각기 서로 다른 곳에서 자신의 가장 친한 측근에게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 세 인물의 서로 다른 성향과 서로 다른 느낌들이 그들의 독백 속에 고스란히 전달되며 단순히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었던 일이 무한하게 변화되며 독자들의 가슴에 파고든다.
단순명료한 그의 문체...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들의 심정과 지금의 마음의 변화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 그들의 모습에서 결혼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도 지금은 이 책의 참 매력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흘러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또 결혼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또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결혼의 변화란 이 책의 제목은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결혼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이기에... 결혼을 한 두 사람의 마음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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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맺음이다? 결혼은 개인적 사랑의 사회학적 산물이다? 토마스 만에 비견되는 문학의 거장, 산도르 마라이가 생각했던 결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소설은 산도르 마라이가 1940년대 사회적 상황을 토대로 빚어낸 결혼과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40년대 유럽의 시민 사회를 토대로 결혼과 결혼으로 인한 변화, 결혼의 바탕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롱카. 페터와 결혼한 그녀는 아름답고 교양있는 중산층의 여자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성실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남편의 마음 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 여자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나서도 무척이나 침착하다.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그녀의 자제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마음을 비우고 그와 헤어지게 된다. 어느날 문득 그녀는 알게 되는 것이다. 결혼과 사랑에 관한 단 하나의 진실을. “오직 나한테만 맞는 유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이런저런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맞는 면이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과 꼭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 완벽한 사람은 없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기적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빛만큼 어둠을 지닌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야.” 페터. 용기없는 남자다. 외로움이 너무 강해서 근본적으로 그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남자다. 그는 허영심이 많고 나약하며 두려움이 많다. 사랑한 여자를 위해 충분히 용감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고 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 욕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랑보다 자신의 허영심이 더 중요했고 그래서 그는 두 번의 결혼 다 실패한다. 그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사랑과 결혼의 실패에 대한 기나긴 변명이다. “조건 없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네. 영웅정신은 아니더라도 용기가 필요한 법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영심이 강하고 나약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네. 사랑을 주면서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비밀을 털어놓으면서는 더욱 부끄러워하지. 인간은 원래 애정을 필요로 하며 애정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슬픈 비밀,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네.” 유디트. 그녀는 페터의 집에서 일했던 하녀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여자.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굴욕적인 신분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다. 외로운 한 남자에게 있어 자신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실은 부자들로부터 돈 말고는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증오했다는 고백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녀의 고백은 부유한 시민 계층에 대한 냉소적인 기록이고 결혼을 통해서도 그 계층으로 편입될 수 없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굴욕적인 고백이다. 사랑과 결혼도 개인의 사회적 환경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무가치한 것임을 유디트,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된다. 산도르 마라이는 세 사람의 고백을 통해 사랑과 결혼이 사회 계층같은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사회적 환경의 결합, 구조적인 결합으로서의 결혼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결혼은 마음과 마음이 아닌 하나의 세계와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만남이다. 어쨌든 세 사람의 독백을 통해 표현되는 산도르 마라이의 문장들은 열정적인 힘이 있다. 결혼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이 시간을 초월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열정적인 그의 문장들에 힘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 그 알 수 없는 구조적 변화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2000년대, 그가 만약 다시 결혼의 변화를 쓴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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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맞는 사람은 어딘가에 살고 있기 마련이다?
<용기 없는 사랑--차가운 가면속에 열정을 숨기고 살았던 남편 페터> 부모의 무덤 같은 결혼 생활을 지켜 보면서 성장한 페터는 자신의 집 하녀인 유디트에게 반해 함께 살자고 청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자신의 무모한 열정에 괴로워 하다 아름답고 지성적인 일롱카와 결혼을 한 페터는 아내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외로움이 더해간다.뒤늦게 유디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는 단숨에 아내와 이혼을 하고 유디트에게 달려 가는데,이제 그의 "유일한 그녀"와 결혼했으니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그렇다면 그가 후에 자신에게 맞는 여인은 일롱카였다고 고백하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파괴적 사랑--원초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유디트>이제 유디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본처 일롱카가 손에 넣지 못한 페터의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녀,하녀 주제에 신중한 부잣집 아들 페터의 청혼을 거절한 그녀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그녀의 입을 통해 우리는 일롱카나 페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그를 경멸했기에 그와 결혼할 수 있었다는 그녀의 말을 우린 어떻게 이해해야 좋은 것일까?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세 사람의 진술을 통해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던 소설이었다.우린 결혼이 개개인이 사랑으로 신중하게 선택한 결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원래 현실이란게 이상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 아니던가? 작가는 우리의 상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잔인하다고 할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낭만적인 사랑,순진한 사랑,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 거짓과 기만,가식과 환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어떻게 결혼을 유린하고 오염시키는지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은 어딘가에 살고 있기 마련이다? 이 말에 대해 주인공 세 사람의 견해는 전혀 달랐는데 실은 그 누구의 주장에도 동조하기 싫었다.하지만 이 문장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져 있을 거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그래,외로운 결혼 생활을 곱씹으며 이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본다.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해도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말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도...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니,일면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의 진짜 모습과 본심을 보여주던 괜찮은 책이 아닌가 한다.결혼을 앞 둔 분들은 읽지 말라고 하던데,엄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면서,어쩜 이 세상에 가장 성공한 인생은 믿음이 있는 사랑에 투자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설레이고... 두근거리며.. 행복하고.. 어떠한 기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똑같이 사랑받고 싶어서..기다려야 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해지기도 하는.. 불안정한 것이다. 행복하지만 불안정한것..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은.. 기쁘지만.. 불안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는것.. 그것은 한없이.. 안정된 것이다.. 늘 배려 받을수 있고... 늘 인정받을수 있고..그품에서 쉴수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에 동반된.. 수많은 따스한 감정이 따라 온다.. 사랑받는 것은.. 안정되고 따스한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평생 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어떤때는 이편에서 어떤때는 저편에서.. . 사랑이 변한다는 명제는... 그 명제가 거짓이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이 변한다는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운좋게도 새로운 사랑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갈수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의 모순일지도..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을 사랑의 이러한 모습들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그 단면들을 보여 준다...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해... 내 맘엔 가득하지만..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픔을.... 사랑받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지만..결국은 이혼해야 하는 .. 하지만 아직도 그사람을 사랑하는 일롱카... 자신에게 맞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평생을 기다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 페터... 사랑이라는 착각에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것은 결국 그의 사랑을 이용한 그녀의 이기심이란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불행한 신사.. 사랑의 존재따위는 믿지 않으면서.. 사랑의 존재를 이용해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이루어낸 여자... 한평생 페터를 시중들었던 하인 유디트.. 하녀 시절처럼.. 페터의 눈치를 살피면서.. 처음에는.. 신발장과 옷장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침대와 식탁에서.. 이 세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작가는 독백형태로 잔잔히 풀어낸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수 있었던 것은.. 독백형태의 문체로 인해.. 나역시.. 일롱카도 페터도.. 그리고 유디트도 될수 있었던것 그래서 사랑의 여러단면을 볼수 있었던것... 그것이 이소설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소설은.. 20대인 내게 보다.. 오히려 4,50대 어른들의 호응을 더 얻는거 같다.. 그만큼.. 인생의 깊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5년동안 한사람만 사랑한 내게 있어..이 소설은.. 씁쓸하게.. 그리고 조용히 침묵하게 한다.. 어느날 내가 4.50대가 되면.. 더 많이 이해할수 있을거 같은.. 글들이다. |
| 결혼이 단지 사랑이나 열정 같은 감정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 현실적인 관계(이 작품에서는 특히 신분질서) 속에서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하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쉽게 이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결혼의 변화]는 제목부터, 그렇게 사람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는 '사랑과 연애의 종착점으로서의 결혼'이라는 환상이 사회적 현실 앞에서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가 마라이는 직간접적으로 시민 혹은 시민적인 것에 대한 서술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두 번의 세계전쟁이 무색할 정도로 이 작품 속에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의 장벽은 두텁게 작용하고 있는데, 조금만 설정을 달리 하면 얼마든지 현재 우리사회에서도 적용될 주제이다. 책을 읽다가 유디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떠올린 것은 클림트였다. 유명한 클림트의 [유디트] 속에서 유디트는 가슴을 반쯤 노출한 채 아시리아의 장군 호로페르네스의 잘린 목을 들고 있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결혼의 변화]의 유디트 알도조는 단순히 남성들을 파멸로 이끄는 요부 그 이상의 다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하녀 출신인 유디트는 '젊은 나리' 페터와 결혼하기 위해, 그리스 남자를 이용해 상류층의 질서를 익히며 십몇 년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여자였던 유디트도 결국은 계급적 한계, 즉 페터의 건초 냄새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부도 젊음도 잃어버리지만 또다시 로마의 젊은 드러머와 사랑에 빠진다. 요컨대 마라이의 유디트는 신분, 정절, 부와 명예, 예술, 그리고 사랑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현대적 캐릭터다. 일롱카와 페터의 결혼이 실패한 이유를 일롱카의 열정과 페터의 용기 없음으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둘 사이의 신분 차이(전자는 '시민'의 축적자, 후자는 수호자) 때문으로 해석할 것인지 반드시 양자택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것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아말감해놓은 것이 산도르 마라이의 능력이니까. 마찬가지로 3장의 구성을 토대로 유디트를 일롱카와 페터에 대한 변증법적 총합으로 읽어야 할지도 어디까지나 독자의 선택이다. 소설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안적인(유디트와는 다른 의미로) 인물이 있다. 바로 책의 전반에 등장하는 근대의 마지막 예술가 라자르. 시민성에 대한 분량만큼은 못하지만 '예술가'에 대한 서술 역시 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마라이가 제시하고자 했던 예술가상 그리고 그 주제와의 연관성은 숙제로 남겨둔다.(05-10-6, 필유) 덧: 소설의 마지막 장소적 배경은 라자르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 로마다. 로마는 과거의 빛나던 '문화'가 죽어 흔적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맹룡과강]에서 이소룡이 말했듯이. |
| 결혼의 변화라는 제목만 듣고는 결혼의 역사를 다룬 인문 교양서쯤으로 오해할만하다. 일롱카, 페터, 유디티라는 세 명의 주인공을 축으로 친구에게 얘기하듯 편한 구어체로 씌어진 이 소설은 결혼, 그 자체보다는 세 사람이 바라보는 배우자, 배우자와 꾸려나가는 결혼 생활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다. 이 속에는 특이한 결혼 생활을 해 나가는 세 사람의 삶도 들어있지만 삶 전체에 대한 가치관이랄까 인생에 대한 철학이 많이 묻어난다. 상류층에서 성장하여 순진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전처 일롱카와 들쥐가 뛰어나디는 더미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후처 유디티 사이를 오가며 어느 누구와도 딱 들어맞는 결혼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 페터. 기다림과 그리움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느껴지는 일롱카. 계급의 한계를 끝끝내 뛰어넘지 못하고 돈 속의 침몰하는 유디티. 모두가 우리 속에 내재하는 모습이 아닐지...헝가리 작가라는 낯섬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사랑, 결혼, 우정 등이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고,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
| 산도르 마이의라 결혼의 변화는 삼각관계(?)인 세 사람의 이야기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책입니다. 먼저 완벽한 결혼을 꿈꾸었던 여자인 일롱카의 이야기와 완벽한 결혼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페터, 그리고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꿈꾸었던 여자 유디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잡은 주제는 이러하지만 책의 목차는 열정적 사랑 일롱카, 용기 없는 사랑 페터, 파괴적 사랑 유디트라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장은 열정적 사랑 부분인 일롱카 부분입니다. 열정적인 한 사람이 비겁한 한 사람을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였지만 결국 이혼을 하였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입니다. 결혼이랑 상호 쌍방의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용기 없는 사랑 부분을 보면서는 너무 화가 나서 읽기 싫었습니다. 하녀에게 한 마디 내 뱉어보고 나서 반응이 안 좋으니 여행을 떠났다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다가 결국 헤어져 하녀와 다시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그 뿐... 다시 하녀와도 결혼을 하게 되지요. 이 주인공은 어찌보면 정말 병적일 정도로 예절바르고 깎듯하지만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하녀에게 청혼하는 장면.. 그리고 다시 만나는 장면 뿐일 정도입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였지만 누구를 만나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였지만 이혼하였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였지만 또 이혼하였고 결론은 혼자 살아야 되는 거 같습니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유디트입니다. 일롱카와 페터 두 사람의 행복하진 않지만 무난한 결혼 생활을 파괴시킨 사람이지요. 하지만 이 사람 또한 정확한 사랑에 대해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어느 정도의 신분 상승 욕구 때문에 페터와 결혼을 했지만 결국엔 자기의 본질을 깨달아서 정신을 차렸다고 보입니다. 페터가 정신을 차린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요^^ 이 세 사람의 주인공 외에 작가인 라자르가 등장합니다. 라자르는 세 사람을 묶는 하나의 연결고리 같은 인물입니다. 어떤 순간에 불현듯 나타나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하나씩의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키를 쥐어줍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지요^^ 꽤나 분량이 많은 책, 첨으로 보는 동구권 작가의 책, 그리고 현학적이고 예절바르게 나오는 사람들의 대화를 읽고 있노라면 한편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결론은 결혼 생활은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이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
| 1. 신분의 차이는 사랑을 가로막는가? 이 소설의 미덕을 충분히 감식할 수 있을 만한 독자들도 이야기의 세부 내용에 들어가게 되면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데 또한 동의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페터가 하필이면 유디트를 사랑하고 결국 그녀와 결혼한다는 점이다. 페터와 유디트는 주인집 아들과 그의 하녀라는 신분으로 만났고 이러한 만남의 구조는 20세기 초의 시대적 배경을 가진 부루조아 소설로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작가는 남자의 입을 빌어 심드렁하게도 이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들의 사랑을 그럴싸하게 채색해 주는 우연과 드라마틱한 이벤트는 전무하다. 굳이 찾자면 화롯가에서의 만남, 남자의 고백과 여자의 거절, 그리고 긴 시간을 뛰어 넘어 ‘파란 끈’이 있을 뿐, 고작 이런 소소한 사건으로 그들은 그 높은 신분과 취향의 벽을 뛰어 넘었다. ''왜 항상 멜로드라마에서는 상징계가 상이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가? 살레클※은 이를 ’환영적 성격의 명제’라고 지적하며, ‘사랑에 대한 가장 큰 환영 가운데 하나는 금지와 사회적 코드가 사랑의 실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역으로 말하면, ‘리비도를 최고조로 부풀리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물이 필요하다’는 프로이트의 분석처럼 사회 규범과 사회관계의 위계가 바로 사랑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유디트와의 만남을 결코 잊지 못한다. 페터의 말처럼 ‘그녀는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고 꼬리를 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부잣집 도련님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유디트라면 증오와 선망의 모호한 경계 상에서 그런 태도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롱카는 분노가 가득 차 그녀의 방문을 열었을 때 ‘수녀’와 같이 끊임없이 절제하는, ‘상징적’인 하녀로서 자아를 동일시한 유디트를 본다. 2. 사랑 앞에선 모두 신경증자다. 그러나 유디트 자신은 ‘남편에게 나는 단순히 한 여자가 아니라 커다란 시험, 모험이었고 맹수이면서 같이 사냥에 나선 동료였으며, 고삐 매이지 않은 존재, 금지된 존재였어.’라고 술회한다. 사이렌 혹은 팜므 파탈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면서도, 스스로는 결코 매혹되지 않으며 무관심하게, 혹은 냉혹하게 몰락시키거나 몰락하길 지켜보는 여자가 바로 그녀다. 또한 그녀는 속 깊이 상징적 질서를 체화하지도 않았고, 무작정 무식쟁이 하녀처럼 주인남자의 프로포즈를 기다리고만 있지도 않았다. 페터는 두 여자 모두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외면상으로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신사적인 남자였다. 내면적으론 지나치게 말 수가 적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고수하며 철저한 도덕과 일상적 의례로 무장했으면서도 항상 자신의 삶에 회의(懷疑)와 계급적 상황에 모순을 느낀다. 여자에 대한 욕망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그는 한편으로 ‘우정’속으로 숨으며 여자를 비하하거나 동정하거나 분석한다. 그의 유일한 친구, 라자르는 페터의 증인이요, 정신감성자이며, 동시에 그는 삼각관계에 빠진 세 사람 모두의 현자 즉, 소크라테스이기도 하다. 견해란 것은 모두 그로부터 기원한듯 그의 말을 인용하며, 무지와 갈망 뒤에는 한가로이 배회하는 그의 유령이 보인다. 라깡에 의하면, ‘여자’는 근본적으로 그 무엇도 아니고, 단지 신화화 됐거나 남자와 같이 남근의 결여를 경험한 ‘주체’로 보지 않으려는 남자들의 환상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여자는 없다’라는 명제로 압축되는데, 라자르에게서 남편의 비밀을 캐려고 ‘성녀이면서, 탐정이고, 스파이’가 되었던 현모양처형인 일롱카는 끊임없이 자신을 여성과 동일시한다. 유디트가 ‘나’로서 문장을 시작하는 반면, 일롱카는 망설이면서 ‘우리 여자들은, 나는 다만 여자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여성 일반의 특성을 규정지을 때도, 유디트가 가끔 ‘대체로 그런 편이지’라고 유보적으로 말할 것을, 일롱카는 당연한 과학적 사실인양 자신의 나약함의 근거로 삼는다. 생물학적 여성을 사회적 여성으로 규정하는데 왜 그게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여성 독자들은 이러한 일롱카의 태도를 자신과 동일시하기 쉽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성으로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남자는 일반적인 여자들 이상으로 여성을 체화하려할 것이다. 여자와 남자를 개념화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절대 차이는 없어지고, 결여 없는 여성적 주체가 되는데, 이는 상징화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증으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에 여자가 여자를 동일시한다면, 항상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묻는 히스테리자가 되며, 그 정체성 문제의 해답을 타자로부터 구하며, 그 타자야 말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해 줄 유일한 대상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희망 속에서 끝없이 타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전전긍긍하는 ‘단지 여자인 여자’로 남아 있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일롱카는 남편과 이혼하자 전의를 상실하고 복수와 회한의 흔적만을 쓸어 담으며 카페를 들락거리게 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나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식 그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는 일롱카의 질문이다. ‘왜 당신은 내가 갖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을 사랑하는가?’는 페터의 질문이 될 것이다. 질문은 후렴구처럼 반복되며 세 명의 독백을 타고 흐른다. 듣는 이는 친구로 가장한 심리 상담자이며, 긴 고백의 구조 자체가 소파에 앉거나 누워 끊임없이 자기 얘기를 하게 하는 치료의 과정으로 보인다. 상담 시간이 종료되고 치료가 끝났을 때, 어렴풋이 그들은 스스로 대답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의 안티테제로서 진단하건대, ‘멜로드라마’는 결코 그 기질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사이렌 혹은 여성적 향유가 ‘노래’라는 기표로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듯 시청자 혹은 독자들은 자신들의 향유를 대신 경험하거나 확인시켜주는 멜로를 끊임없이 원하게 된다. 한편, 드라마는 그 구조상 신경증자들의 욕망과 외상을 다룰 수밖에 없다. 결국 멜로드라마는 구조적으로 신경증자들이 향유를 환기하는 과정, 즉 그 자체가 하나의 심리치료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